소설리스트

〈 61화 〉8. 그럼에도 하비셜은 돌아간다 (1) (61/86)



〈 61화 〉8. 그럼에도 하비셜은 돌아간다 (1)

마법과 1학년을 대상으로 벌어진 습격. 공학과의 본산인 로페르 전체를 겨냥한 초대규모의 테러.

두 가지 대형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하비셜의 분위기가 굉장히 흉흉해졌다. 하비셜 본관과 배움의 나무를 제외한 모든 장소는 긴급 폐쇄되어 학생의 발길이 끊겼고,리네스트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은 먹고 살 길을 찾아 하나  하비셜을 떠났다.

학생들은 불안에 떨었다. 로페르 습격에 7석의 마수가 두 개체나 소환되었다는 사실이 암암리에 퍼지자, 다음에는 8석의 마수라도 등장하는게 아니냐며 여기저기서 수근거리곤 했다.


교수진들 사이에서는 더욱 좋지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비셜은 500여년이라는 긴 역사동안 단 한 번도 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습격은 커녕 인명피해조차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곳이 바로 하비셜이었다.

각 과의 교수진이 지금의 상황에 의문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한건도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던 거지? 보호옥조차 없던 옛날이라면 대련 도중의 사고사가 있을 법도 한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던 거지?

교수진은 그런 의문을 품고 하비셜의 역사를 펼쳤다. 수백년의 역사를 분담해서 조사하고 사고의 방지법을 찾아내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굉장히 놀라운 것이었다. 자칫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한 큰 사고들을 막은 것은 모두 라이하빗이었다.

'공학과의 폭발을 현인이 막아내었다.'
'학생의 마법폭주를 현인이 진정시켰다.'
'학생간의대련이 과열되어 생사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을 때, 현인이 나타나 두 학생의 사이를 중재했다.'
'통학로에 매복해있던 자연과의 맹수를 현인이 제압했다.'


역사에 기록된 건수만 수백  건이었다. 기록되지 않은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교수진은 그제서야 하비셜의 무사고가 현인의 힘으로 유지되어왔음을 깨달았다. 현인의 보호 아래에 있으니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수치로 구체화되어 교수진들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교수진은 그 사실에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몇몇 교수들은 그 사실에 오싹한 공포마저 느꼈다.

조사 결과에 따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물음이,너무나도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 한 사고를 막아낸 것이 현인이었다면, 어째서 이번의 습격들은 현인이 막아낼  없었던 것일까?

현인의 선견지명으로는 막아낼  없었던 강대한 적이 배후에 있기 때문일까?


단순히 현인의 실수였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현인이, 더 이상 사고를 막아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걸까?

사실 가장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은 두 번째 경우였다. 하지만 교수들은 이번 사태가 차라리 두 번째 경우에 해당되기를 빌었다. 첫 번째 경우를 생각하고 있자면  앞이 캄캄해졌고,  번째 경우는 차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교수들진들 사이에 불온한 기류가 맴돌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마음 속에 자리잡은 거대한 물음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 가능성을 입에 담는 것 만으로도 끔찍했다.

단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시하가 라이하빗을 만나고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불편한 마음을 애써 감추는 것 뿐이었다.



로페르 습격사건 이후로 한 달 반이 지났다.

벌써 두 번의 시험을 치룬 우리는 이제 세 번째 시험만을 남겨두고 있다. 잔뜩 기대하고 있던 학과대항전은 흉흉한 분위기 탓인지 취소되고 말았고,  자리를 시험이 대신 채웠다.

"말도 안 돼요. 학과대항전 대신에 추가 시험을 보게 되다니······."
"학과 대항전도 평가의 일종이었으니까요. 학과 대항전에서 진행되었을 평가를 대체할 수단이 필요했던 거겠죠."


식탁에 엎어져 울상을 짓는 나에게 메디아가 말했다. 그녀의 옆에서 고기를 썰던 세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대가 착실하게 준비한다면 문제는 없을거야."
"시험이 어렵지 않다는 교수님의 말씀은 믿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어머.공부하지 않을건가요?"
"아니요. 하겠습니다!"


메디아가 살며시 미소짓자, 퍼뜩 놀란 나는 허리를 세웠다. 메디아는 그런 나를 흡족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번 시험때는 그래도 성적을 10계단이나 올렸죠. 이번에는 스무 계단을 목표로 해 보는거예요, 위즈?"
"······스, 스무 계단이요?"
"그래요. 스무 계단."

쿠궁.


포크로 찍어 먹으려던 동그란 과일 하나가 식판 위를 데구르르 굴러갔다.
사실 내가 저번 시험에서 석차를 열 계단이나 올렸던 것은 전적으로 메디아의 공이었다. 물론 메디아가없을 때에는 루아가 공부를 도와주었고, 이따금 세렌과 하스타 역시 내게 도움을 주긴했지만, 내 머리속에 저장된 대부분의 요령은 모두 메디아의 교육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교육을 다시 한 번 받고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하나 없이 고개를 저을  있었다. '리네스트에 갈 시간도 없어졌으니 공부를 하도록 해요' 라는 메디아의 논리에 휘말려, 저녁시간 이후부터 취짐 직전까지 메디아의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짓을 또 하라니. 아무리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메디아와 함께라고 해도, 그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내일부터 시작해요, 위즈.."
"아, 안 하면 안 될까요?"
"성적을  번 올리는 건 벼락치기로도 가능하지만, 성적의 유지는 벼락치기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위즈는 다시 300에 가까운 등수로 돌아가고 싶은 건가요?"
"그, 그건 아닌데요······."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메디아가 미소지었다. 세렌은 그런 메디아를 떨떠름히 바라보면서도, 차마 말릴 수는 없었는지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리네스트도 벌써 한달째  가고 있고. 선배들도 못 만나고. 기숙사랑 호프 바라만왔다갔다 하는 삶이라니. 이게 학창생활인가요? 저는 아닌 같아요······."

울상을 지으며 식판을 정리했다. 옆에 있던 하스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동의했다.

"그렇긴 하지······ 뭐,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니까 이해는 가지만."
"······범인."

루아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면루아는 두 번의 습격을 모두 겪은 유이한 학생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물론 나였고. 조금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아 루아의 어깨를 살짝 잡고 말했다.

"무서워 하지 말아요. 교수님들이 어떻게든 해주실 거예요!"
"무섭지는 않아."

내 말에 루아가 약한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그리고선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습격 때마다 위즈가 날 지켜줬는걸."

오로지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 조금 기쁘기도 하고 살짝 부끄럽기도 해서 볼을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나저나 걱정이야. 한 달동안 이러다보니 점점 불만이 쌓여가고 있어."


세렌이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스타가 세렌의 말에 동조했다.

"맞아. 내가 아는 애들도 죄다 심심하다면서 난리치더라. 이러다가애들이 어떤 짓을 벌일지 상상도 못하겠어."
"그런가요?"
"그래. 그대 주변에선 그런 이를 보지 못했나?"

세렌이 묻자, 메디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살짝 낮은 목소리로 변명하듯 말했다.


"······저는 여러분만 있으면 충분해요."


갑작스러운 우정의 표현. 세렌은 메디아의 말에 조금 당혹스러워 하다, 이내 메디아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실언이었어."
"왜 사과를 하는 거죠, 세리나 바른."

세렌의 사과를 받은 메디아는 오히려 기분나쁜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세렌은 그런 메디아의 기분을 모르는지 구태여 설명을 덧붙였다.


"사과를 하는  당연한 일이야. 그대의 인복을 배려하지 못한 발언이었으니까."


······혹시 메디아의 기분을 알면서 일부로 저러는 걸까, 세렌?
에이, 설마. 우리 착한 세렌이 그러겠어.


"후, 후후. 인복이라뇨. 위즈를 만난  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행복이랍니다?"
"그건 부정하지 않겠지만서도."

메디아가 세렌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리며 식판을 정리하곤, 내 손을 잡아끌었다.

"흥. 먼저 가요, 위즈."
"아,  같이 가야죠, 메디아."
"우으······."

내가 당황해서 말하자, 메디아가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떼더니, 내게서 고개를 홱 돌렸다.

"이럴 때만이라도 편 좀 들어주세요."


메디아가 내게 말했다. 음. 이거. 뭐라고 할까, 난처하다.

"자, 자. 여러분. 밥을 먹었으니, 이제 도서관으로 가서 열이라도  식히는게 어떨까요?"
"······그거좋지.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까."
"메디아도 위즈랑 같이 책 읽는거 좋아하죠?"
"······알겠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하스타가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을 중재했다. 그리고선 내게 살짝 윙크를 날렸다.


"빚은 달아둘게?"
"······으으. 리네스트가 재개장되면 용돈이 전부 사라질  같은 느낌이."


하스타가 후후후, 하고 과장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런 하스타를 복잡한 모습으로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루아와 함께 일어나 메디아와 세렌의 뒤를 따랐다.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하비셜 내의 분위기는 조금 숨이 막히지만,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그러고 보면 제노드라 교수님과의 면담이 벌써 내일이다. 질문거리  가지라도 준비를 해 가야 할까.
하비셜 본관으로 향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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