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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8. 그럼에도 하비셜은 돌아간다 (2) (62/86)



〈 62화 〉8. 그럼에도 하비셜은 돌아간다 (2)

꿀꺽.


침을  번 삼키고선 문고리에 손을 대었다.

호프 우라, 페스타의 공학과 학과장실.

호프 우라도 처음이었지만, 학과장실을, 그것도 다른 학과의 학과장실을 들어가는 것도 처음이라서,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제노드라에게 면담을 신청한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다. 공학과 교수들 중 숨어있는 흑막의 협력자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원래라면 공학과를 견학하면서 여러 교수를 만날 생각이었지만, 습격이 일어나서 흐지부지해진 만큼, 이번 면담은 굉장히 중요한 기회였다.


심호흡을 한 번,두 번. 이윽고 나는 문고리를 두어 번 두들겨 노크했다.


"마, 마법과의 위즈 율릿입니다!"
"들어오세요."
"우왓?!"


벌컥.

문이 갑작스럽게 안쪽으로 열렸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나는 자연스레 방으로 휘청이며 빨려들어갔다.

자동으로 열리기라도 한건지, 문 주변에 사람은 없다.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어지러운 시야를 정돈했다.

철컥, 철컥.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마정석을 활용한 기계도 있고,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계도 있다. 제각기 정교한 동작을 뽐내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은 흡사 공장과도 같았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그 가운데에 제노드라가 앉아 있었다.


꿀꺽.


침음을 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제노드라 앞에 준비되어있는 의자에 몸을 뉘였다.


"어?"

푹신했다.
아니, 푹신한 것 이상으로 편안했다.

일반적인 소파인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물 대신 솜이 들어차 있는 물침대라고나 할까. 몸의 모양에 맞춰 몸 전체를 편안하게 떠받쳐주는 의자의 느낌에 깜짝 놀라 제노드라를 바라보았다.


"혹시 놀랐나요?"
"네, 네. 이게 뭐예요······?"
"전신으로 압력을 분산시키는 의자랍니다. 체중을 분산시켜, 몸 전체로 부담을 퍼뜨려 편안함을 유지하는 의자죠. 이번 6학년의 졸업작품 시안 중 하나입니다만······ 후후. 자세가 흐트러지는게 단점이네요. 개량이 조금 필요하겠는걸요."
"오······."


신기한 느낌이어서 나도 모르게 몸을 뒤척였다. 몸을 뒤척일 때 마다  몸에 딱 맞게 의자의 형태가 변했다. 뭐야 이거, 엄청난 발명품 아니야?

"이전에는 미안했어요, 율릿 양."


의자의 신기한 감촉에 혼을 빼앗겨 있던 나에게 제노드라가 갑작스럽게 사과를 전했다. 엥, 하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노드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교수들의 힘으로 전부 막아낼 수가 없어서 학생들의 도움을 빌리고 말았잖아요. 특히, 율릿 양과 소크타리에스 양은 1학년인데도."
"아, 아하하."

그런거였구나. 나는 머쓱해져 볼을 긁적이며 멋적게 웃었다. 제노드라는 그런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자, 율릿 양을 위해 많은 시간을 준비해놓았답니다. 어떤 이야기부터 할까요? 다과도 준비되어 있으니 들면서 이야기해요."


제노드라가 책상에 나열되어 있는 마정석 중 하나를 톡톡 치자, 과자가 가지런히 진열된 접시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이 나타났다.
과자였다.
리네스트 폐쇄 이후, 하늘의 별따기처럼 구하기 어려워진, 과자.

"······머, 먹어도 되는 건가요?!"
"후후. 마음껏 드세요."
"자, 잘 먹겠습니다아!"

과자 하나를 집어들어 입 안에 넣었다.


오독.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입 안에서 부서지는 과자조각. 부스러기 하나하나가 혀를 달콤하게 감쌌고, 한 번 오물거릴 때 마다 나긋나긋한 버터향이즐거이 춤춘다.
과자였다. 그냥 과자도 아니고, 간식거리의 삼대장 중 하나인 로젤릿 베이커리의 과자다.

과자 한 봉지가 무려 100 바른화. 한달 용돈을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겨우  수 있는 환상의 과자다.

"면담하길 잘 했어요······!"
"위, 위즈 양? 아직 면담은시작도 되지 않았답니다?"


제노드라가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주름이 잡혀있는 인자한 눈매가 조금이지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걸 어떡해.
이런 과자를  두는건 파티시에를 모욕하는 거라니깐?



결국 접시 하나를  비우고서야 면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간은 많이 비워두었으니, 천천히 질문하도록 해요."


제노드라가 내게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부끄러워져 황급히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정말 무서운 과자였다. 그릇으로 움직이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혼이 빼앗기는 줄 알았다.


무섭도다, 로젤릿 베이커리······!

과자의 마력에 몸을 한 차례부르르 떤 나는 이윽고 제노드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준비해두었던 질문을 꺼내었다.

"공학과는 지금 어때요?"
"······좋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제노드라가 한 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자신들의 재배지에 가지 못한 자연과도 난리가 났다고 들었다. 작물을 말라죽게   없다며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던가. 공학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로페르에서 실기수업을 하지 못한 만큼 온 몸이 근질근질 하겠지. 셰펠리도 제노다이스를 움직이러 가고 싶다며 안달이 것 같았으니까.

"교수님들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아니예요. 습격을 미연에 막지 못한 교수의 책임이니까요. 부끄럽네요."


제노드라가 씁쓸히 대답헀다. 좋아, 기회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노드라. 모든 공학과의 교수님이 로페르에 계셨었나요?"
"네?"
"그냥 궁금해서요. 듣자 하니 로페르의 결계를 바깥에서 알아차려 준 덕분에 결계의파괴가 빨라졌다고 들었는데, 혹시 교수님이 알아차리신건 아닌가 하고."
"아······ 그렇군요. 맞아요. 배움의 나무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온 알베론이 로페르의 이상을 알아차려준 덕에 결계가 빠르게 해제될  있었죠."
"알베론이요?"
"공학과의 부학과장이지요. 알베론 이드. 언젠가 율릿 학생도 그의 수업을 듣게 될 거랍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모두 로페르에 있었구요?"
"그 날은 제노다이스의 시험기동이 있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알베론. 알베론이라.
그 남자에게서 뭔가 냄새가 난다. 수상한 냄새다.
조금  파볼까.

"알베론 교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사려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록 말수는 적지만 공학에 대한 열망만큼은 차고 넘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습니다만, 제 후임으로 내정해 놓은 사람이기도 해요."
"그럼 알베론 교수님은 내년부터 공학과의 학과장이 되시는 건가요?"
"그래요. 그에게 뒷 일을 맡긴다면 안심하고 은퇴할 수 있겠지요."

제노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더니 조그마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예?"
"후후, 조금 아쉬워서 그래요."

제노드라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선  뺨에 손수건을 가져다대었다.

······뭐, 뭐야. 과자 부스러기 다 안 닦였어?

"율릿 양의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노다이스를 전투용으로 쓸 생각을 했다면서요?"
"네, 네."


과자 부스러기를 아직까지도 묻히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제노드라는 그런 나를 책망할 생각이 전혀 없는지,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갔다.

"영특한 아이네요. 그러면서 순수하기도 해요. 이거 참. 은퇴할 때가 되어서 이런 보석을 만나다니, 늙어서 그런지 미련이 생기는군요. 시하 선배에게 질투가 날 지경이에요."
"······어라. 시하 교수님이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물었다. 그러자 제노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저는 시하 선배의 5년 후배였거든요."


라며, 믿기 힘든 말을 던졌다.

"5년······ 후배요?"
"이상하게 보는 눈치네요. 아, 그렇군요. 아직 1학년이어서 노화정지 마법의 이론을 배우지 못한 거로군요."

내가 멍하니 제노드라를 바라보자, 제노드라는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선 이내 말했다.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경지에 오를 때를 기준으로 더이상 노화되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40대에 노화정지 마법이 발현되었으니, 혼란이 올 만도 하네요."
"40대에요? 그럼, 시하 교수님은······."
"언뜻 보기와는 다르게 대단한 사람이에요. 시하 선배는 불과 열 여덟의 나이에 노화정지 마법을 발현시켰으니까요."
"······그, 그래요?"
"저도 나름대로 빠른 축에 든답니다."
"아하."

제노드라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제노드라에게 말했다.


"그, 그럼, 제노드라 교수님! 시하 교수님 나이가, 아니 연세가, 아니 춘추가 어떻게 되세요?!"
"어디 볼까요.  나이가 127이니······ 133살이겠군요."
"백 서른 셋이요······?!"
"보통이라면 진작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죠. 뭐, 시하 선배의 전임 학과장이 워낙 오랫동안 학과장 자리에 계셨으니 어쩔 없는 일이지만."
"말도 안돼······."

시하가 100살이 넘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제노드라가 구체적인 수치를 들이밀자, 나는 조금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 모습이, 그 행동이─ 100살이 넘어가는 사람의 것이었던 건가.

뭐라고 할까. 실례인 건 알지만.

나잇값을 조금 못하는게 아니신지, 하는 생각을 품고말았다.




"뭐지, 귀가 좀 간지러운데."


하비셜의 상층, 현인에게로 향하는 아공간.
가히 이계라고 부를 만  결계  공간을 일주일 째 달리던 시하는, 왠지 모를 감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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