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8. 그럼에도 하비셜은 돌아간다 (3)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1학년 여러분."
별 일 없이 시험이 끝났다.
9월 25일, 하얀 달의 마지막 날. 세 번째 월말평가를 끝마친 나는 시험지를 제출한 채 그대로 책상에 엎어졌다.
이번에는 그래도 자신있는 문제가 몇 개 있었다. 메디아와 특훈을 한 보람이 있었어.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껴두었던 과자를 꺼내어 자축할 생각에 절로 입꼬리가 느슨해졌다. 음, 음. 이럴 때야 말로 기숙사에서 루아랑 느긋이 쉬어야 한다.
다른 곳에 갈 것 없이, 기숙사에서 편하게─
"그리고, 저녁식사 후 8시에 각 기숙사 앞으로 집합해주세요. 하늘호수의 앞에서 청월환야의 의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내고 싶었는데.
하늘호수는 대륙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소금호수다.
대충 페르그 대초원의 2/3정도 크기라던가. 하여간 엄청난 호수이지만, 사방에 지평선이 펼쳐져 있는 페르그 대초원과는 다르게, 하늘호수에서는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원인은 1년 내내 지속되는 하늘호수의 폭풍 때문이다. 하늘 끝까지 치솟는 거대한 물보라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탓에, 하늘호수에는 언제나 거센 파도가 몰아친다. 심할 때에는 작은 산 정도 높이의 파도가 친다고 하니만큼,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늘호수의 폭풍은 현인과 마왕이 벌인 전투의 잔재다. 그 압도적인 싸움의 여파로 신록의 사막이 초록빛으로 물들고 하늘호수에 700여년 동안이나 폭풍이 일고 있다고 한다.
상상조차 하기 힘들고, 쉽사리 믿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의식 때 사고치지 마. 만약 사고라도 벌이면 돌아올 때는 마차가 아니라 의자를 타게 될 테니까."
뭐, 시하가 130살이라는 사실에 비하면 덜 신기하잖아?
마차 위에서 사악하게 웃는 시하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의 달관에 감탄하며, 나는 시선을 돌려 마차의 창을 내다보았다. 하비셜 북부에는 갈 일이 별로 없었던지라 주변 풍경은 굉장히 새로웠다. 하비셜의 북부에 흐르는 중앙천을 따라가는 길. 하얀 달빛을 받아 부드럽게 흐르는 중앙천의 너머로 라플라 재배지가 언뜻 보인다.
"관람자로서 청월환야에 참가하는건아홉 살 때 이후 처음이야. 그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메디아 리베른?"
"······그렇군요. 열 살때부터는 저도 의식을 직접 거행해야 했으니."
6인승 마차의 안은 나름 화기애애했다. 기대에 찬 얼굴로 웃는 세렌과 웬일인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메디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루아와 졸린 듯 하품을 하는 하스타.
······한 쪽 구석에는 케리엘이 풀죽은 채 벽에 이마를 기대고 앉아있다.
케리엘이 우리 마차를 타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다. '시련'때 벌인 허풍으로 인해, 케리엘이 마법과 1학년들 사이에서 기피되었기 때문이다.
룸메이트인 하스타가 곤란해 할 정도로 울며불며 매달렸다던가. 하여튼, 딱히 우리가 반대할 이유도 없고 해서, 케리엘이 우리 마차에 타게 되었던 것이다.
저렇게 풀죽어 있는 모습은 가엾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저기, 케리엘."
"······아, 흐에엑?!"
그래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케리엘은 왠지 모르게 날 무서워하고 있다.
뭐지. 내가 무슨 짓이라도 했나.
기억나는게 없는데. 나는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하비셜 북쪽에 맞닿아있는 하늘 호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촤아악.
고층 빌딩만한 높이의 파도가 결계에 맞부딪히며, 달밤의 하늘에 별가루를 흐트려놓는다.
북쪽 결계의 끝에는 거대한 보호수정이 둥둥 떠 있다. 하늘 호수의 짠물을 정화해 깨끗한 물로 바꾸어놓는 마법이 함께 걸려있다고 하는데, 그 말처럼 결계 안쪽의 물은 잔잔하고 맑아서 당장이라도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평화로이 빛나며 넘실대는 하늘호수의 물은 중앙천을 따라 하비셜로 흘러들어간다.그 모습은시험으로 지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호숫가에서는 의식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교사들이 준비를 거의 마친 제단은 세 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빛을 향해 솟아있는 탑과 그 아랫단에서 삼각형을 그리는 세 개의 봉화. 봉화는 각각 붉은 색, 파란 색, 하얀 색으로 불타올랐는데, 불길이 둥글게 모여 달 모양의 구를 이루고 있었다.
세 번째 단에는 다섯 명의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학과장이었다. 각각 방울이 달려있는 스태프를 가진 채 의식의 준비를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입고있는 옷 또한 평상시의 복장이 아니었다. 남성 학과장들은 순백색 로브를 입은 채 삿갓을 쓰고 있었고, 여성 학과장들은 면사포 비슷한천으로 머리를 가린 채 손을 덮을 정도로 긴 소매를 가진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제단의 아래에서는 수십 명의 교수가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각 학과의 1학년 전원과, 의식을 구경하러 온 상급생 수백명이 몰려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호숫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선배들은 별로 안 보이네요?"
"필수 참가는 1학년만이라고 하더군요. 2학년부터는 자유참가라고 해요."
"2학년 때도 오고 싶네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라고 할까, 펄스레이트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아름다워서,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는, 그런 멋진 모습.
"마차에서 내릴 때 까지만 해도 쉬고싶다고 툴툴댔잖아?"
하스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 팔꿈치를 살짝 쳤다. 짖궂은 표정이어서, 나는 볼을 긁적였다.
"그치만요, 예쁜걸요. 이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구요."
"그래. 수도에 거주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큰 의식을 치루는 곳은 공작령 정도 뿐일 테니까."
"기회가 된다면 리베른의 청월환야를 보여주고싶네요. 후후, 졸업 후에 리베른으로 와 보는 건 어때요, 위즈?"
"바른의 의식을 먼저 보아야 하겠지. 위즈는 바리쉬니까."
"······방해하는건가요?"
"방해라니,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야."
세렌을 째릿 하고 노려보는 메디아와, 그런 메디아에게 당황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세렌.
뭔가 또 싸울 기미가 보였다. 두 사람의 사이를 끼어들어 팔짱을 끼었다.
"그런 건 졸업 하고 생각하죠!"
"······네."
"그래. 지금은 의식에 집중해야 하니까."
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렌도 수긍하며 메디아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나 참. 두 사람은 언제 사이가 좋아지려고 이러는지. 진짜 원작대로 3학년에 가서야 친해지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마법과를 위해 준비되어있는 좌석은 이미 상당부분이 들어차 있었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명이 앉을 만 한 빈 자리가 보였다.
그래서, 그 쪽으로 향하려는 순간.
"아."
등 뒤에서 낙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케리엘이었다. 갈 곳이 없어 우리를 따라온 것 같았다. 뭐라고 할까, 눈동자가 엄청 어두워졌는데. 버려지면 어쩌나 하고 우리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여서, 나는 몸을 돌렸다.
"······다, 다른 자리를 찾아보죠!"
"위즈. 여기에 자리가 있어."
"자, 자리가 안 좋잖아요, 루아. 봐봐요, 여기서는 잘 안 보여요. 저 쪽으로 가 보죠!"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아를 이끌며 부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메디아와 세렌 역시 별 말을 하지 않고 내 뒤를 따라와주었다.
"미안. 괜히 데려왔나?"
하스타가 다가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케리엘을 힐끗 바라보는 하스타의 얼굴엔 미안한 기색이 잔뜩 드러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하스타에게 말했다.
"같은 마법과잖아요. 마음이 좀 안좋아서 그래요."
"나중에 맛있는거 사줄게."
"정말요?!"
"기특해서 그래. 으구구, 우리 위즈 착해라."
하스타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나도 헤실헤실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겸양을 떨었다.
"에헤헤, 안 사주셔도 되는데~"
"안 사줘도 되는거야?"
"······그건 아니구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아하하, 그래, 그래."
하스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네스트가 다시 열리면 바로 사달라고 해야겠다.
자리에 앉고 수다를 떨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음성이 들려왔다.
[지금부터 청월환야의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세번째 단에 모여있던 학과장들이 오각형을그리며 중단 위에 섰다. 파도 위에서 두둥실 떠오른 달은 어느새 하늘의 중앙에 가까워졌다.
[의식을 시작합니다.]
의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제단의 가장 위에 라이하빗이 나타났다.
초록색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호숫가에서 잔잔히 불어온 바람에 몸을 맡기는 라이하빗과, 그 아래에서 방울 달린 스태프를 높이 치켜드는 다섯 명의 학과장.
일렁이는 세 개의 봉화와, 그 위에서 구체를 만드는 삼색의 화염.
청월환야의 의식.
푸른 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