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9. 연화(緣火) (11)
두근.
심장이 뛴다.
전신에 퍼져나가는 맥동이 느껴진다. 혈맥이, 잔뜩 굳어있는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며 빠르게 순환한다.
내 작은 손을 덮는 세렌의 손길이 느껴진다.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손길. 그 접촉부에서부터 조금씩 뻗어나오는 은은한 온기에, 조금이나마 경직되어있던 몸이 풀려가는 것 같다.
"우리, 잘 할 수 있겠죠?"
나도 모르게 불안한 심정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누구도 확답을 내릴 수 없는 바보같은 질문이다. 말을 내뱉은 나 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세렌은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벼이 끌어안았다. 세렌의 가슴팍에 내 이마가 닿았다.
두근, 두근.
세렌의 심박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평온한 박동소리.
주빈석에 앉은 채, 서로의 맥동을 느낀다.
세렌의 심박을 따라 조금씩 내 심박도 안정을 찾아간다. 마치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간 아이처럼편안해졌다.
"조금 괜찮아진 모양이야."
"······네."
세렌이 짙은 속눈썹을 내리깔며 은은하게 웃었다. 그리곤 다시 내 손을 잡아주었다.
"세렌."
그런 세렌의 이름을 불렀다. 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말이에요. 제 계획이 실패해 사람들이 다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그렇잖아요. 제 계획이니까, 그에 따른 책임도 제가 져야할텐데."
말을 줄였다. 다시금 심장박동이 조금 거세어졌다.
솔직히, 불안했다. 계획이 실패한다면 사람들이 다치고 말 것이다. 세렌, 메디아, 시하, 로이아, 샤오리드, 데네스. 그리고, 크세닉스의 모든 참가자들이 말이다.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실패했을때의 리스크가 너무도 커서,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내 마음을 좀먹으려 든다.
"아하하, 그런가. 그대가 긴장한 이유는,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니었나?"
그런데 세렌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조금 억울해져서 세렌에게 항의하듯 말했다.
"저, 저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대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야.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려 하니만큼, 그대의 말이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지."
"제 안위는 신경 안 써요. 세렌이 저를 지켜주겠다고 말해줬으니까요."
"······그, 그런가?"
"제가 걱정하는 건 그거라구요. 마차 탈취 때 처럼, 세렌이 저를 지켜주려다 상처입는다던가. 제가 짐이 되어서 세렌이 마음껏 싸우지 못한다던가. 뭐 그런거."
"후후, 그래."
"진지하다니까요? 장난이 아닌데······."
"알고 있어."
세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머리카락을 가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손에서 검을 만들어 주빈석의 앞에 꽂았다.
"이 세리나 바른, 그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지. 그대가 염려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어."
그리고는, 믿음직스럽게 선언했다.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거야. 모두 준비해.
시하의 전음이 단상 위에서 준비중이던 모든 사람에게 전해졌다. 샤오리드는 시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정장을 가다듬었다. 붉은 드레스 셔츠와 룽 가의 문양이 박혀있는 검은 블레이저. 한 차례 옷깃을 가다듬은 샤오리드는, 한 번 가벼운 숨을 내쉰 뒤 단상 위로 발을 내딛었다.
그와 함께, 시간정지가 풀렸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샤오리드의 목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크세닉스의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던 군중들의 시선이 샤오리드에게로 쏠렸다. 모든 이들의관심이 한 점에 집중된 짧은 시간. 시하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단상의 윗쪽과 아래쪽을 가로막는 결계를 만들어내었다. 메디아의 마력과 시하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결계는, 8석급 마수라도 쉽사리 뚫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방호력을 가지게 되었다.
군중들은 어두워진 하늘과 단상 위의 샤오리드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시하의 결계 덕에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아름다운 조명들로 수놓아져 있던 대강당의 천장에 검은 안개가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세닉스의 개최에 앞서, 간단한 식전행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아내며, 샤오리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와 함께 검은 안개가 흘러내리며, 마수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부디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그와 함께, 검은 안개 속에서, 마수가 하나 둘 붉은 눈을 번쩍이기 시작했다.
"제 1파. 마수의 평균 등급은 5석급. 이 정도는 은구 없이도 여유롭겠지,유클리드?"
"아마도."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클리드였다. 장갑을 끼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정장을 입고 있던 수업때와는 조금 달랐다. 검은색 로브와 그 주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은색 구체. 유클리드의 전투용 의복인 듯 했다.
"부탁좀 할게. 될 수 있으면 화려하게 처리해줘?"
유클리드에게 시하가 농을 건넸다. 언뜻 여유로워보이는 모습이었으나, 사실 그녀는 결계의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결계에 조금이라도 허점이 생기면, 강당의 하부로 마기가 퍼져나갈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결계에는 어떠한 틈도 존재해서는 안 됐다.
"비효율적이군."
유클리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하는 고개를 으쓱였다.
"속여넘기려면 화려한게 좋거든."
"······알았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유클리드가 이내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감지마법으로 마수의 위칙을 파악하고,각기 다른 마수의 특징을 파악하여, 그에 알맞은 마법을 구현해낸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결코 내릴 수 없는 즉각적인 판단의 연속.
그것이 시하가 유클리드를 지원군으로 호출한 이유였다. 라이하빗을 제외한다면, 하비셜에 재직중인 교수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따라올 수 없는 대 마수전의 스페셜리스트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수 많은 마수의 토벌경험과, 그 경험을 뒷받침하는 효율적인 마력운용을 가진 그이기에, 시하는 마수의 토벌을 그에게 전적으로 일임해 놓았다.
그리고, 유클리드는 시하의 기대에 거의 완벽하게 부응해내고 있었다. 갑각을 두른 마수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는 마탄. 군체로 이루어져, 물리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마수에게 닿는 화염. 자폭하려는 마수를 덮어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보호막.
그리고, 그런전투마법 위에 덮여씌워진 화려한 환상마법까지.
마수와의 치열한 전투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 군중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대단, 하네요······."
"효율적이야. 수 많은 마수들의 대응방법을 모조리 꿰고 있어."
단상의 위쪽, 아직 공개되지 않은 주빈석. 위즈와 세렌은손에 진땀을 쥐며 전투를 지켜보았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웠다. 마수를 쓰러트리기 위한 마법과 환영마법이 섞여 경탄할 만한 모습을 자아내었기 때문이었다. 강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마수가 격퇴당하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상태였다. 설마 진짜 마수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샤오리드는 격전지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사회를 맡아, 단상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에, 그는 마수들이 날뛰고 있는 공간에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 시하의 적절한 보호마법 덕에 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그 안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샤오리드는 입가에서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마수들이 환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듯 한 표정이었다.
[올해, 하비셜은 미증유의사건을 겪었습니다.]
샤오리드가 입을 열었다. 작은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습격인 로페르 습격사건을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샤오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행을 이었다.
[마수의 이빨 앞에 1학년이 놓여졌고, 공학의 본산이 마수에게 짓밟혔습니다.]
"────!!!!"
샤오리드의 바로 앞에서 뱀의 형상을 가진 마수가 입을 벌려 굉음을 쏟아냈다. 지근거리였으나, 샤오리드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비셜은 건재합니다.]
유클리드가 마수를 향해 마력으로 만들어진 창을 쏘아냈다. 뱀 모양 마수의 입을 관통해, 꼬리를 뚫고 나온 창은, 이내 폭발하여 마수의 몸을 찢어발겼다.
[이번 크세닉스가 그 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망하며, 크세닉스의 시작을 알리겠습니다.]
샤오리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에 맞춰, 데네스가 단상 아래에서 대기중이던 관현악단에게 마법석으로 신호를 보냈다. 예정과 다른 진행에 당황하고 있던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황급히 관현악단의 지휘를 시작했다.
금관악기의 쩌렁쩌렁한 소리가 팡파레를 울리며, 주빈석을 가리던 벽이 허물어지기시작했다. 주빈석 옆에 자리하고 있던 개최자석 역시 모든 이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위즈와 세렌. 로이아와 데네스.
두 쌍이 앉아있는, 두 개의 긴 의자.
관현악단의 연주를 뚫고, 네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은 군중들의 열렬한 환호성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