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9. 연화(緣火) (12) (77/86)



〈 77화 〉9. 연화(緣火) (12)

위즈 율릿은 단상의 가장 위에 있다.

대강당의 중앙이자, 하늘에서 내려오는 마운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자리.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어있으며, 동시에 모든 마수의 첫 번째 표적이 되는 곳이다.

마기를 실은 바람이 위즈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본능에서 우러나는 공포가 번졌으나,  수면 아래로 순식간에 가라앉아 이내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위즈는 그녀의 감정을 훌륭히 삼켜내었다. 다만, 포개놓은 손을 조금 세게 쥘 뿐.

세렌은 위즈가 느낀 공포의 잔재를 느꼈다. 세렌은 위즈의 손을 부드러이 쓸어내린다. 아이를 다독이듯 천천히, 새하얗게 질린 손등을 어루만진다.

그것 만으로 위즈의 손등에는 혈색이 감돈다. 조금은 안심한 듯, 위즈의 손길에서 힘이 빠진다. 근육의 경직이 풀려간다. 이윽고, 그녀가 짓고있는 미소처럼 부드러워진다.

하늘의 마운무에서 내려온 마수들의 소탕은 거의 끝났으나, 마운무는 오히려 한층 맹렬히 소용돌이치며 마기를 발산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는듯 발광하는 검은 안개. 위즈는 침을 한 차례 삼켰다.


─제 2파. 마수의 평균 등급은 이전과 같은 5석급이지만 편차가 커. 조심해, 11시 방향에서 7석이 나올거야.


시하의 전음이 파고든다. 7석급 마수의 출현을 예고하는 말이다. 로페르 공작소를 짓밟았던 테라 다칼리온─ 그것과 동급인 마수가 이 곳에 출현한다는 선고.


단상 속에서 대기하던 메디아가 입술을 한 차례 깨문다. 그녀는 마수의 토벌에 나설 수 없었다. 8석급 마수에도 견딜 수 있도록 결계에 엄청난 양의 마력을 공급해야 했다. 조금 어지러울 정도로 빠져나가는 마력을 느끼며, 메디아는 자신의 무력함에 한탄했다.


위즈의 옆을 지키고 있는 세리나를 믿으며, 단상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유클리드는 혀를 차며 마력의 운용을 한층  가속시킨다. 제 주인의 명을 기다리던 마력의 흐름이 한층 거세어진다. 11시 방향에 쏘아낼 막대한 마력을 순간적으로 공급하기 위함이다.

검은 안개에서 물체 하나가 천천히 흘러내려온다. 고치의 형상이다.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얼기설기 엮여있는 흑색 고치.


유클리드는 그것의 이름을 알고있다. 테라 헤트로세라의 고치다. 여섯 장의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마기가 담긴 가루를 뿌려대는 7석급 마수. 헤트로세라의 날개는 그림자로 이루어져 형체가 없기 때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몸체 뿐이다.


그렇다면, 써야 할 마법은?


유클리드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과거의 토벌전을 회상한다. 다섯 기의 헤트로세라를 상대하며 얻어낸 최적의 전투방식을 이 자리에 구현한다.


고치가 찢어지며, 거대한 날개가 허공에서 요동친다.

직경 8m. 몸길이 6m.

작은 건물 크기의 날개가 태동하듯 펼쳐진다. 그리고, 이내, 고치가 다시 검은 안개에 스며들며,동시에 고치에서 빠져나온 몸체는 섬뜩한 붉은 눈을 번뜩인다.

미처 검은 안개에 스며들지 못한 고치는 이내 가루로 변한다. 그리고 중앙으로 흘러들어온다. 보호막으로 덮여있는 단상의 가장 위쪽에 당도한다. 그리고 개최자석을  차례 감싼다.

불쾌한 감각이 데네스와 로이아를 괴롭힌다. 시하의 보호막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으나, 마기에서부터 느껴지는 생물로서의 혐오감이 그들의 인내심을 좀먹는다. 로이아는 목 뒤에서 한줄기 땀이 텁텁하게 흐르는 것을 느꼈다.

"───!!!!"

테라 헤트로세라가 마침내 고치에서 벗어나 완전히 변태했다. 몸을 진동하며 내는 괴성과, 마기의 바람을 지상에 내리는 날갯짓을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단상에서 한 줄기 빛이 궤적을 남기며 헤트로세라의 몸체에 닿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헤트로세라의 몸에서, 조금씩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시하. 폭발에 대비해라."
"아직 마력은 충분하지? 마운무의 마기가 아직도 강해."
"아직까지는."


유클리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자신이 쏘아내고 있던 빛줄기를 거두며, 시하의 보호막을 거든다.

빛이 닿은 부분을 시작으로, 헤트로세라의 몸이 발광한다. 그것은 유클리드가 헤트로세라의 몸에 미리 쏘아놓은 마력 때문이다. 빛의 형태로 마력을 주입시켜, 몸체 안쪽을 공략하는 마법.


헤트로세라에게서 새어나오던 빛이점점 더 광도를 더한다. 퍽, 하고 마수의 검은 피부가 뜯겨나가며, 구멍난 둑에서 물이 쏟아지듯, 빛의 기둥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

아래에서 본 그것의 모습은 흡사 축제의 불꽃과도 같았다. 대다수의 군중들은 그것이 소름끼치도록 정밀한 환상마법이라고 믿으며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몇몇 이들은 그 광경에 조그마한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내 대강당을 감싸는 열기에 그 위화감을 흩어버렸던 것이다.


마수가 빛에 꿰뚫리며 사라지자, 그와 함께 거센 빛이 단상에서 비쳐나왔다. 검은 날개를 펼치며 세상을 잠식해나갈것 같던 하비셜의 상층이 일거에 빛에 휩싸였다.

[이 자리를 축복해 주시기 위해 모셨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십시오.]

 빛을 휘감으며 샤오리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빛줄기 사이에서 실눈을 뜨며 단상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희미해지고, 단상을 감싸던 광채가 엷어지며, 검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한 차례  뒤로 넘긴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감사합니다. 마법과 1학년, 메디아 리베른이에요.]


눈부심의 커튼을 걷어낸 곳에 메디아가 있었다.


아직 잔존해있는 빛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검고 매력적인 드레스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모두에게 인사하는 메디아 리베른.

그 강렬한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평소에 비해 조금 창백했으나.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단상 아래에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그렇게나 창백한 모습을 하고도, 단상을 메우는 찬란한 빛에 걸맞는─ 아름답고 선연한 미소를 지어내 보였다는 것이다.



메디아의 축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덧 제 4파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수의 평균등급은 6. 평범한 영지였다면 중앙의 지원을 바라며 각자의 생존을도모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마수의 파도가 몰려온다.

"─읏."


마정석에서 잠시 입을 뗀 메디아가 가녀린 신음소리를 내었다.

마수가  층 강력해져, 결계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진 탓이다. 마력의 생성은 정신력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반대로 말하면, 마력의 고갈은 정신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녀의 신음소리가 강당에 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메디아의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위즈와 세리나는 그녀가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메디아······."

부우웅.


마수의 울음소리가 위즈의 목소리를 지운다.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닿지 않았다. 하지만 메디아는 이미 그녀의 걱정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는 과도할 정도의 걱정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약해져서는 안 된다.

메디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기대어서는  되는 것들을 기대었음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을 말 없이 지탱해준 아이다. 이 이상 그녀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메디아의 프라이드에  다짐이었고, 위즈와의 우정에 건 약속이었다. 현재의 메디아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 두 개를 모두 걸어놓은 것이다.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리가 없었다. 걸어놓은 것이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그것을 잃을 수 없었다.


고갈되어가던 마력이 다시금 차오른다. 그녀의 정신력이, 굳은 약속위에 다시 우뚝 선다.

메디아는 머리 위로 홍염을 피워낸다. 결계의 유지에 필요한 마력을 제외한, 그녀에게 남겨진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피워낸 홍염이다.

그것은 진짜 불이 아니다. 하지만 환상도 아니다. 생명을 따스하게 비추며, 마기를 자비없이 불사르는 성스러운 불꽃이다.


아름답게 피어난 불꽃을 바라본 이들은 감탄을 멈췄다. 홍염의 빛과 함께 정적이 찾아온다.

그런 적막한 대강당에서, 메디아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축사를 마친다.

[차갑게 내려앉은 국경에, 두 나라를 이어주는 연화가 떠오르길 빕니다.]


그 말이 끝남과 함께 불꽃이 흩어진다. 어둠을 비추는 등불처럼 검은 마기를 한순간에 지워버린다.


자욱한 마기에지쳐있던 위즈는 메디아의 빛에 조금 안심한듯 숨을 내쉬었다. 마수의 울음소리가 멎었기에, 메디아는 비로소 지금 위즈가 숨을 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 걱정이 사라지고 미소만을 남긴 얼굴. 그리고, 메디아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아주는 소녀의 눈빛.


충분한 보상이다. 메디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단상을 내려왔다. 그리고 의자에 쓰러지듯 걸터앉았다.

조금이라도 더 결계에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친구를 돕기 위해.


단상의 바깥에선, 마수의 울음소리마저도 뚫고 전해지는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요란히 들려온다.


메디아의 역할은 성공했다. 비록, 그것을 치하해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메디아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단지, 단상의 가장 높은 곳 까지 자신이 피워올린 함성소리가 닿기를 바랄 뿐이었다.






Bad ending 3. Falter




축사를 진행하던 도중. 작은 움직임이 단상의 가장 위에서 생겨났다.

메디아는 무심코 단상 위를 바라보았다. 작은 움직임은 위즈의 것이었다.


칼날같이 엄습한 마기에, 손목의 위쪽을 조금 베여, 새하얀 드레스가 붉게 물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큰 상처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기가 넘쳐흐르는 이 곳에서, 조금의 상처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부담감은 결코 무시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위즈의 웃음이 사라진 것도, 책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술렁임이 강당에 일었다. 시력이 좋은 이들이 가장 먼저 그 이변을 알아차렸으며, 그들에 의해 주빈의 부상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그래도 여기까지라면, 그저 해프닝으로만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위즈에 대한 생각을 하며 정신력을 유지하던 메디아는, 그녀의 핏자국에, 순간 정신력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미숙함에서 우러나는 단 한순간의 실수였다. 그 때문에 메디아가 공급하던 마력이 갑작스레 끊겼다. 시하가 대처하지 못할 속도로, 결계가 무너졌다.


결계의  사이에서 마기가 새어나온다. 교수들은 마기를 감지하고 사색이 되어 학생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마수의 평균등급은 6. 유클리드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마수들이 그 이빨을 학생들에게 가져다대었고.
 후는,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크세닉스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안고 새벽부터 줄을 서 가장 앞줄에 앉았던 학생들이 가장 먼저 짓이겨진다.
그들을 지키려던 교수들도, 미처 방비하지 못하고 치명상을 허용한다.


조금 뒤에 있던 교수들은 정신을 차리고 마수들을 요격하기 시작했으나, 수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에이트 가가 고용한 용병들은 그 목숨을 바쳐 학생들을 지켰다. 하지만 모두를 지키지는 못했다.

1500명.

교수와 용병들이 목숨바쳐 지켜낸 학생의 수는, 고작 그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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