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10. 검은 달 아래 (1) (82/86)



〈 82화 〉10. 검은 달 아래 (1)

검은 달이 깊어가는 13월.


"오늘은 지난 10월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로 하죠."


유고슬레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내 앞에 있던 교과서의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간다.

 번째 같은 내용을 배우고 있어, 조금씩 질리기 시작한다. 그것은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지, 처음 수업을 듣던 초롱초롱한 눈은 지금 말라죽어가는 잡초처럼 변했다.

그런 아이들의 사이에서 빈 자리가 눈에 띈다. 대충 열  정도. 적지 않은 수다.

다른 반도, 다른 학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하비셜을 빠져나가 본가로 돌아갔다.

 이유는, 하비셜에 어떤 문제가 생겼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비셜은 크세닉스 이후로 자잘한 사건사고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원인은, 하비셜로 날아들어온 각지의 비보 때문이었다.


10월부터 14월까지 계속되는 검은 달의 계절. 겨울의 혹독한추위와 더불어, 대륙의 전 지역에서 마운무가 나타나는 혹독한 시기.


언제, 어디에서 마운무가 나타날 지 알  없기에, 각지의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다. 용병을 고용하는 귀족도 있고, 사병을 직접 이끌어 영지를 보호하는 귀족도 있다. 기사단의 운용권이 보장되는 변경공의 경우, 휘하의 기사단을 운용하여 수비를 구축하며, 황실 또한 수도와 각 영지를 오가며 마수를 토벌하기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언제나 발생한다. 영지가 반파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다른 영지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영지 내의 생명체가 절멸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많은 학생들이 본가로 돌아간 이유가바로 그것이었다. 반파된 영지의 복구를 돕고, 때로는 작위를 물려받아 영지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였다.


우편함을 열어보기가 무섭다는 너스레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그 푸념에 진심이 조금씩 섞여있음을 부정할 이는 없었다. 편지를 통해 부고를 들은 학생도 있었고, 소중한 지인을 잃은 학생도 있었다.


활기를 잃은 어두운 시기.

매년 반복되는 일인 만큼, 하비셜의 교사들은  시기의 전후에는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 본가로 돌아가 일손을 돕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이며, 동시에 양 제국에서 쏟아지는 마수 토벌 의뢰를 수월히 진행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유클리드는 이미 하비셜에서 얼굴 한  보기조차 힘든 상황이었고, 시하도 간간이 모습만을 비출 뿐 수업은 거의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고슬레인도 어제 토벌의뢰를 마치고 돌아왔다고 하던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책상에 엎드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잠이 덜  건지 자그마한 하품을 하고 있던 루아와 눈이 마주쳤다.


"응?"


루아가 하품을 하다 말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눈가에 하품의 부산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  아니라는 투의 몸동작에 루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교과서에 시선을 내린다. 그녀의 하얀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세렌과 메디아에 대한 생각이었다.

13월부터 세렌과 메디아는 하비셜을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영웅의 핏줄을 이은 그녀들은 상당히 강력한 전력이었기에, 각 지의 마수를 처치하기 위해 하비셜을 떠난 것이었다.

 살이 되던  부터 마수를 토벌하기 시작했다던가. 세렌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 마냥 짐을 싸며 이야기했다. 메디아 역시 그에 동의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들었고.


솔직히, 어느정도 이해는 하고 있었다. 이미 하비셜의 교수만큼이나 강한 실력을 가진 두 사람이니 만큼, 하비셜에 있는 것 보다는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돕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었다. 후에 황제로 즉위해 제국을 지켜야 하는 두 사람이니 만큼, 전투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한 일일 테고.


하지만, 그건 이성적인 부분일 뿐이었다, 나는 도저히 그들을 웃으면서 배웅할 수가 없었다.


혹여나 다치면 어떡하지. 이 추운 날씨에 전투를 벌이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어떡하지. 그리고, 세렌과 메디아를 두 달동안이나 못 보면 어떻게 버티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세렌과 메디아는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걱정할 필요없다고 연신 나를 다독여주었지만, 나는 끝내 눈물이  돌아  사람의 손을 잡고 울어버렸다.

벌써 3주 가까이 된 일이었다. 루아와 하스타가 있어 외롭지는 않았으나, 두 사람의 빈자리가 자꾸만 쓸쓸해진다.

세렌 보고싶다.

메디아도 보고싶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떼를 쓰는 것도 안 될 노릇이고.

한숨이 깊어져간다.


"율릿 학생. 집중하고 있나요?"
"아, 네!"
"순간이동 마법이 원거리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어, 그러게요?"
"마법은 작용거리가 길어질 수록 마력의 소모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수치는 2학년때 배우겠지만, 기본적인 이론은 이미 몇 번 배웠잖아요. 수업이 끝난 뒤에 추가숙제 받아가세요."
"네에?!"

한숨을  때가 아니었다.
으앙.

옆에서 루아의 안쓰러운 눈빛이 느껴졌다.


"나, 본가로 돌아가봐야  것 같아."
"풉─?!"

무거운 추가숙제를 받아 들고 점심을 먹던 도중. 하스타가 덤덤하게 폭탄선언을 던졌다.


"뭐, 뭐라구요?!"
"무슨  있는거야······?"

한 차례 입을 닦은  하스타의 어깨를 잡았다. 루아도 내 옆에서 하스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스타는 고개를 저었다.

"별 일은 아니고. 아버지가 상단 일을  도와달라고 하셨거든."
"······상단이요?"
"응. 우리 집은 바른에서 상단을 운영하고 있거든. 아, 말 안했나?"
"들어본 적 없어요······."

고개를 저었다. 루아도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스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뭐, 하여간. 요즘 피해를 복구해야 할 영지가 많잖아? 우리 상단이 활동하는 범위에서 좀 피해가 많다 보니까, 수주할 물량이 너무 많아졌다나봐. 기밀 문서도 다뤄야 하는 작업이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필요한데 그런 사람을 급히 구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하스타가 빵조각을 물며 간단히 설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렌이랑메디아도 없는데, 하스타까지 가면 저희는 어떡해요······."
"둘이서 꽁냥꽁냥 지내면 되는거 아니야? 루아에 대한 일도 요즘 분위기 괜찮아진 것 같고."
"······그건, 그렇지만요."


하스타의 말은 사실이었다. 크세닉스 이후로 루아에게 향하던 적개심이 굉장히 누그러진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확실히 크세닉스가 효과는 탁월했다. 특히 샤오리드가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붉은 용의 날개로 로이아를 감싸는 연출은(실제 상황이었지만, 당연히 군중들은 그것을 연출이라고 받아들였다) 수 많은 여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고 하던가.

바른의 공작영식이, 리베른의 공작영애를 감싸는 모습. 푸른 빛을 붉은 빛이 감싸는 모습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어떤 교수가 역사에 남을 퍼포먼스라며 극찬했다던가. 하여간,그것 덕에 리베른과 바른 제국의 학생들이 서로 가까워졌고, 루아에 대한 리베리쉬의 인식 또한 굉장히 개선되었다. 사실 좋아졌다기 보다는 루아를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 전마다 쏟아지곤 했던 증오의 시선보다는 몇배로 나았으니.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다섯 명이 같이 지내다가 두 명으로 줄어버린 건데. 외롭잖아요. 루아도 그렇죠?"
"응? 어, 으응······."

루아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스타가 큭큭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는  팔꿈치를 살짝 치며 말했다.


"뭐 어떻게 할  있는게 아니잖아. 응? 너희가  따라올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나요?"

별 생각 없이 수긍하려던 와중에, 한 가지 뇌리를 번뜩이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
"잠시만요?"

포크를 내려놓고 잠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분명, 13월이 시작할  즈음 교수님께서 뭔가를 알려주셨던 것 같은데······.
아.

"루아, 따라와 봐요!"
"어?"
"밥 다 먹었죠?!"
"하, 하지만. 아직 위즈는 다 먹지 않았잖아······?"
"괜찮으니까, 어서요!"


루아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하스타에게 물었다.

"뭐, 뭐 하려고?"
"흐흥. 하스타, 본가에는 언제 돌아가요?"
"이주일 안에는 돌아오라고 하셨으니까, 적어도 다음 주에는 출발해야겠지. ······왜?"
"충분하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루아를 끌고 우편송수실로 향했다.




"여기는 왜 온건데······?"

우편 송수실. 근래들어 학생들이 꺼리고 있는 곳에 도착한 나는, 루아를 맞은편에 앉힌 뒤 편지지를  개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깃펜을 루아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루아. 그거 알아요?"
"응?"
"하스타를 따라갈 수 있는 방법, 있어요."
"따, 따라가?!"

루아가 하얀 눈을 동그랗게 떴다.나는 후후, 하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번에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셨잖아요.13월과 14월에는 보호자의 허락이 있다면 하비셜을 자유로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루아가 홀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흐흥, 하고 자신있게 가슴을 펴며펜을 한 차례 손 위에서 돌렸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보호자에게 간곡한 편지를 부치는 거에요. 루아도 어서 써요!"
"보호자······."

루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복잡한 얼굴로 편지지를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편지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루아?"
"괜찮아. 나는 나중에 쓸게."
"······무슨  있어요?"

조금 안색이 어두워진 모습이었다. 내가 펜을 멈추고 물었지만, 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위즈를 따라갈 수는 있을 테니까."
"······그런가요?"

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루아가 자꾸만 괜찮다고 말해서, 나는 내 편지를 쓰는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하스타가 떠나는 날.


"······너희 여기서 뭐해?"
"에헤헤, 하스타를 따라가려고 왔어요!"
"저, 정신 나갔어?!"
"흐흥, 멀쩡하거든요~"
"뭔가 숨기는게 있어 보이길래, 송별회라도 거창하게 해주려나 싶었는데, 같이 따라가려는 거였다고······?"


서프라이즈는 대성공이었다. 아연실색한 하스타의 등을 밀며, 나는 루아와 함께 마차에 탔다.

세 명이서 타는 마차.

오랜만에 하비셜을 나와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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