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전설의 술집. (1/108)



〈 1화 〉전설의 술집.

"하아.. 하아.."

검은색 털이 인상적인 코트를 입고 여유롭게 앉아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와, 광이 날 정도로 새하얀 갑옷을 입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금발의 여자가 마주보고 있다.

"흐흐흐흐,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용사여!!"


남자의 낮고 깔보는듯한 목소리는 상대를 화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크윽..마왕..!"


여자가 분에 찬 목소리로 응답했다.

"꼴이 말이 아니군. 그런데 괜찮겠나? 이제부터 이몸을 쓰러뜨려야 하잖아?"

"그 입부터 다물게 해 주마. 마왕!!"

"와라 용사!!"


"으아아아아아아아ㅡ!!!"

갑옷의 관절부가 움직이며 철컹거리는 소리가 났고 우렁찬 기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주변의 시간은 그들에게 맞추어 흘러가는 것만 같았고, 두 사람의 눈에는 서로의 모습만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둘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이윽고 여자의 검이 남자에게 닿기까지 한 발자국을 남겨둔, 바로 그때였다.



"저.. 손님? 다른 손님들에게 민폐가 되니 목소리를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오늘도 등신들의 지랄이 시작됐다.

술집에서 진심으로 검을 휘두르려고 하는 등신, 그걸 피할 생각은커녕, 더욱 거만한 자세로 도발하는 등신, 그리고 그걸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다른 등신 같은 놈들까지.


 미쳐버린 공간 속에서 저놈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점원인 제리스 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뻘짓거리가 더 커지기 직전에 막는 것 하나만큼은 제리스를 능가할 자가 없다.

방금도 봐라.  '용사'와 '마왕'의 대결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공간을 부수고 지나갔지 않은가. 임무가 아니었다면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지경이다.

이곳은 '전설의 술집'

...이라고 알려진 낡아빠진 판자때기다.


내가 판자때기라고 부르는데는 이유가 있다.

가게 이름도, 실내 장식도, 그 흔하다는 메뉴판도 없는, 술집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긴 그저 나무로 이루어진 상자일 뿐이다.


게다가 음식은 또 얼마나 맛이 없는지, 가게 이름을 짓는다면 개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근데 이놈들은 잘 먹는다. 등신이라서 맛을 모르는 건지 이걸 먹고 등신이  건지,  중 하나다.


그런데도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이러고 있는 게 일이기 때문이다.

이 미친놈들이 마음만 먹으면 하나같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잘나가는 미친놈들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첩보원을 파견한 게 약 12주전.

좆같게도 소문은 맞았고, 마침 여기에 온 내가, 이곳에 남아 계속해서 정보를 보내라는 임무를 받은 것이다.


저기 있는 '용사'와 '마왕'도 놀리는  아니라 진짜 본인들이다. 생각보다 많이 멍청해서 그렇지.


시발.


대체 이 세계지도의 끄트머리에 박혀 있는 술집을 어떻게 알고 소문을 냈는지, 소문 낸 녀석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다.

소수의 등신들만 찾아오던 술집에,  세계의 등신들을 불러들여선, 결국  같은 인간만 피해를 본다.


-...


가게는 여전히 조용하다.

용사도, 마왕도, 술잔을 들고 있던 놈들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사실, 멈춘 건 시간이 아니라 저놈들의 머리통이다. 고조되던 분위기가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갑자기 깨져버리자,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한  이렇게 되어버린 놈들은  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10분이고, 20분이고, 자신들의 작은 머리통도 반응할 수 있는 또 다른 외부의 개입을 기다릴 뿐이다.


오늘도 역시, 내가 나설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툭툭.

'병신들' 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술잔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하하하하하!!


등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상인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후.."


남은 술잔을 비우고 가게에서 나왔다.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적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게다.

[email protected]$!$!!%^#!

무수한 나무들을 지나쳐도, 등신들의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따라오는 것만 같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등신들의 자취를 지우며 밤길을 헤쳐갔다.


바람이 존나게 차가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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