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전설의 술집.
"하아.. 하아.."
검은색 털이 인상적인 코트를 입고 여유롭게 앉아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와, 광이 날 정도로 새하얀 갑옷을 입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금발의 여자가 마주보고 있다.
"흐흐흐흐,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용사여!!"
남자의 낮고 깔보는듯한 목소리는 상대를 화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크윽..마왕..!"
여자가 분에 찬 목소리로 응답했다.
"꼴이 말이 아니군. 그런데 괜찮겠나? 이제부터 이몸을 쓰러뜨려야 하잖아?"
"그 입부터 다물게 해 주마. 마왕!!"
"와라 용사!!"
"으아아아아아아아ㅡ!!!"
갑옷의 관절부가 움직이며 철컹거리는 소리가 났고 우렁찬 기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주변의 시간은 그들에게 맞추어 흘러가는 것만 같았고, 두 사람의 눈에는 서로의 모습만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둘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이윽고 여자의 검이 남자에게 닿기까지 한 발자국을 남겨둔, 바로 그때였다.
"저.. 손님? 다른 손님들에게 민폐가 되니 목소리를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오늘도 등신들의 지랄이 시작됐다.
술집에서 진심으로 검을 휘두르려고 하는 등신, 그걸 피할 생각은커녕, 더욱 거만한 자세로 도발하는 등신, 그리고 그걸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다른 등신 같은 놈들까지.
이 미쳐버린 공간 속에서 저놈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점원인 제리스 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뻘짓거리가 더 커지기 직전에 막는 것 하나만큼은 제리스를 능가할 자가 없다.
방금도 봐라. 저 '용사'와 '마왕'의 대결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그 공간을 부수고 지나갔지 않은가. 임무가 아니었다면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지경이다.
이곳은 '전설의 술집'
...이라고 알려진 낡아빠진 판자때기다.
내가 판자때기라고 부르는데는 이유가 있다.
가게 이름도, 실내 장식도, 그 흔하다는 메뉴판도 없는, 술집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긴 그저 나무로 이루어진 상자일 뿐이다.
게다가 음식은 또 얼마나 맛이 없는지, 가게 이름을 짓는다면 개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근데 이놈들은 잘 먹는다. 등신이라서 맛을 모르는 건지 이걸 먹고 등신이 된 건지, 둘 중 하나다.
그런데도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이러고 있는 게 일이기 때문이다.
이 미친놈들이 마음만 먹으면 하나같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잘나가는 미친놈들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첩보원을 파견한 게 약 12주전.
좆같게도 소문은 맞았고, 마침 여기에 온 내가, 이곳에 남아 계속해서 정보를 보내라는 임무를 받은 것이다.
저기 있는 '용사'와 '마왕'도 놀리는 게 아니라 진짜 본인들이다. 생각보다 많이 멍청해서 그렇지.
시발.
대체 이 세계지도의 끄트머리에 박혀 있는 술집을 어떻게 알고 소문을 냈는지, 소문 낸 녀석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다.
소수의 등신들만 찾아오던 술집에, 전 세계의 등신들을 불러들여선, 결국 나 같은 인간만 피해를 본다.
-...
가게는 여전히 조용하다.
용사도, 마왕도, 술잔을 들고 있던 놈들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사실, 멈춘 건 시간이 아니라 저놈들의 머리통이다. 고조되던 분위기가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갑자기 깨져버리자,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 이렇게 되어버린 놈들은 몇 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10분이고, 20분이고, 자신들의 작은 머리통도 반응할 수 있는 또 다른 외부의 개입을 기다릴 뿐이다.
오늘도 역시, 내가 나설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툭툭.
'병신들' 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술잔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하하하하하!!
등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상인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후.."
남은 술잔을 비우고 가게에서 나왔다.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적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게다.
[email protected]$!$!!%^#!
무수한 나무들을 지나쳐도, 등신들의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따라오는 것만 같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등신들의 자취를 지우며 밤길을 헤쳐갔다.
바람이 존나게 차가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