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과음한 다음 날은 못 보던 것들이 보인다. (3/108)



〈 3화 〉과음한 다음 날은 못 보던 것들이 보인다.

'과음'. 나는 과음을 싫어한다.

무조건적으로 따라오는 숙취와, 그 외에 기억도 안 나는데 덤으로 따라오는 것들이 싫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말이다.


"뭐냐, 너."

눈앞에는 발목까지 닿는 잿빛 머리를 늘어뜨린 꼬맹이가 서있었다.


옷은 어디서 주워 입은 건지 연령대에 맞지 않는 헐렁한 옷이다.


지금까지 과음 후에 별걸 다 주워 와봤지만, 사람을 주워온 건 처음이다.

"배고파."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대답할 생각이 너무 없는 답변이다.


원래 꼬맹이들은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듣는다. 자기들 하고 싶은 말만 하지.


이럴 때는 간단한 해결법이 있다.


나도 저놈 말을  들으면 된다. 꼬맹이들은 참을성이 없으니, 몇 마디 못가서  말에 대답하게 되어있다.


"몇 살이냐?"

"밥 준다고 했잖아."


"이름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밥을 준다고 했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고 주워왔나? 아니면 멋대로 들어와서 저렇게 우기고 있는 건가?


기억이 없으니 이 녀석이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도 판별 할 수 없다.


"야, 잠깐만. 그럼 니가  방에 어떻게 왔는지만 설명해봐."

"배고..프..앗..!"

쓰러졌다.

사람 쓰러지는 건, 수도 없이 봐왔다.

꼬맹이 하나 쓰러진다고 이제 와서 놀라지도 않는다.


잘 보니 숨은 쉬는 것 같고, 정말로 배고파서 쓰러진 모양이다.

그래도 내 방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꺼림칙하니, 아침을 먹으러 갈 때, 데려가서 뭘 좀 먹이는 것이 좋겠다.


"아이고 대가리야."


머리 위에서 누가 탭댄스를 추는 느낌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마신 건 오랜만이다. 기억도 없고 머리통만 아프다. 역시 술은 미친 음료다.


아무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녁에 제리스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고, 지금은 오늘을 살아야 한다.


거지같이 머리통이 아프지만, 기상 후에는 환기와 세수가 먼저다.


이  가지는 술 깨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하루를 산뜻하게 여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몸에 배게 하면 좋은 습관 중 하나다.


"아으, 눈이냐."


창문을 여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바닥에 쌓인 양을 보니, 어제 밤부터 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 쪽이냐고 하면, 맑은 날 빼고는 전부 질색이다.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마침 여기는  안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으니, 오늘은 어쩔  없이 일을 쉬어야겠다. 복지가 없으면 내가 만들어서 누리는 수밖에.

등신들을 안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눈까지 오는  추운 날씨에 나오는 물로 세수를 하니, 남아있는 술기운 까지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다.


물론, 기분만 나는 거지, 입에서는 아직도 술 냄새가 풀풀 나고 있다.


이제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으러 가려는데, 가만 보니 이거, 어제 가게에  때 입고 갔던 옷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뻗은 모양이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마자, 땀에 전 옷이, 이제 눈치챘냐는 듯, 살에 들러붙으며  기분을 잡치고 있었다.

"이거 샤워까지 해야겠는데."

확인 차, 꼬맹이의 상태를 확인 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숨도 잘 쉬고 있고 자세도 그대로다. 제대로 잘 뻗어 있는 모양이다.


"샤워만 하고  먹으러 갈 거니까.  살아있어라."


꼬맹이의 머리가 살짝 움직인 것 같았다.

"으읗흐.. 추워..!"


겨울철 샤워는 목숨을 건 행위라는 것을 매일같이 깨닫는다. 몸을 닦고 있는 수건마저 실시간으로 차가워지는 느낌이다.

몸을 닦는 것 보다, 따뜻하게 하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대충 몸을 닦은 뒤, 곧장 옷을 껴입었다.


남아있는 물기가 옷에 스며들었지만 땀이 아니니 괜찮다. 아무튼  찝찝한 거다.

옷을 다 입은 뒤, 침대 옆에 엎어져 있는 꼬맹이에게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이런 헐렁한 천 쪼가리 하나로 춥지도 않나? 창문도 열어 놨는데.

"야, 야, 일어나."


발로 꼬맹이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반응이 없다. 밥은 꿈에서 먹을 예정인가 보다. 아니면 저승이거나.


"계속 그러고 있어라. 나는 밥 먹으러 간다."

밥이라는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녀석의 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어린놈 치곤 꽤 힘이 세다.


"발목만 붙잡으면 밥이 나오냐? 안 일어나? 이렇게 매달고 간다?"


일어나는 대신에 꼬맹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도 힘차게.


그럴 힘이 있으면 일어나는데 쓰는 게 서로에게 편할 텐데. 꼬맹이들이란.

어쨌든, 나는  말은 지킨다.


이놈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2층에서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방에서, 식사를  수 있는 1층까지 가는 동안, 2층 복도와 계단 청소는  녀석이  끝낼 것 같다.

쿵쿵쿵


계단을 내려가니 요란한 소리가 났다. 이 녀석이 남자였으면 여기서 벌떡 일어났을 텐데, 남자는 아닌 모양이다.


"아줌마~ 바압~"


1층에 다 다르기 전에 미리 주문을 한다.

항상 식사를 하는 자리에 앉아, 발에 붙은 것을 떼어내 옆자리에 앉혔다. 얼굴이 먼지투성이다.

이건 가만히 놔두면 내 식사에도 들어   같으니, 이 녀석의 옷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머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자, 녀석은 힘없게 식탁으로 고꾸라졌다.

완성된 식사가 슬슬 이쪽으로 오고 있다.


먹을 것의 냄새가 느껴지는지, 이 녀석도 벌떡 일어나 자기 자리에 음식이 놓이는 것을 목도 했다.


헌데 오늘 아침은 하필이면 맹물 스프와 돌멩이 빵이다.

"이러언 시파알!"

이 녀석같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면 맛있게 먹겠지만,  때문에 속까지 쓰린 나는, 돌멩이 하나정도만 씹도록 하고, 나머진 이 녀석에게 양보해야겠다.

"먹어도 돼?"


굶어죽기 일보직전이면서 허락을 맡다니 기특한 놈이다.

"그래, 다 먹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뜨거운 스프 한 그릇을 한 번에 비우더니, 이가 부셔질 기세로 딱딱한 빵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맹물 스프도 맹물 스프지만, 돌멩이처럼 딱딱한 빵은 먹는 것조차 힘든데, 역시 사람이 목숨이 걸려있으면 못 할게 없다.

꼬맹이는 내가 빵  덩이를 다 먹기도 전에, 스프  그릇과  다섯 덩이를 작살냈다. 그러고도 부족한 모양인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아줌마,  그릇만 더."


추가분의 음식은, 아까처럼 전투적으로 섭취하지는 않고, 보통 속도보다 약간 빠른 정도로 먹는 꼬맹이였다.

나는 이쯤에서 이 녀석이 대체 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름은 뭐냐."


꼬맹이는 자기한테 물어본 거냐는 듯 반쯤 먹은 빵을 입에 물고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그래 너 맞다.' 라는 뜻으로 턱을 한번 내밀어 줬다.

"데이린."

"나이는?"


"세 본 적 없어."


세는 법은 아는 지나 모르겠다.


"부모님은?"


"기억 안나."

고아인가. 그렇다기엔 피부도 깨끗하고 눈에 띄는 외상이나 상처 같은 것도 없다.

부모님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에 버려진 것 같진 않은데, 가출이라기엔 옷이 너무 대책도 없다.


"옷은 계속 그 꼴로 다닐 거냐? 안 추워?"


"응. 안 추워."

입고 있는 성인 남성용으로 보이는 검은색 상의가 하반신 일부까지 덮고 있으니, 속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속옷과 상의 두 겹이 전부겠지만,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내가  뭐라 말할 이유는 없다. 필요하면 자기가 구해서 쓰겠지.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지낼 곳도 없지?"

"응."


"하.. 그럼 일단은 내가.."

"잠깐!!!!"


여관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제리스냐. 마침 잘 왔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쓸모 있는 인간인 제리스가 왔다. 이 녀석이라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겠지.


"마침 잘 왔다니 무슨 말씀이죠? 역시 그 아이를 저에게 맡기시는 건가요?"


뭔가 이상하다. 제리스에게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설마 이 녀석..


"뭐? 이 꼬맹이를 맡고 싶다고?"

"네!!!"


눈이 정상이 아니다.


"미친 변태새끼."

그 가게에서 오랫동안  했다는 것에서 미리 눈치를 챘어야 했다.

정상인인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니, 제대로 미친놈이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자기가 미친놈임을 인지하고 있는 미친놈이다.


"변태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오로넬씨.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더러운 목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아니에요! 제가  아이의 털끝 하나라도 건들 놈으로 보이세요?"


"존나게."


 일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다.

눈만 봐도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대충 알 수 있다.


가게에 있을 때는  알아봤지만, 지금 저 눈은 영락없는 미친놈의 눈이다.

꼬맹이도 본능적으로 역겨움을 느꼈는지, 제리스와 거리를 벌렸다.


"잠시  말을 들어주세요. 저런 천사같이 귀여운 아이와 동거할 생각에 흥분한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누가 앉으래?"


개소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으려는 놈이다. 나는 개를 의자 위에 앉혀두는 취미는 없다.


"앉으려면 바닥에 앉아."

"하지만 거기까지에요. 흥분이라는 게, 성적인 의미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흥분이라기 보단 기대, 그래, 기대를 한 거죠."

거기까지라니 거기가 종점이다. 그 뒤에 뭐가 더 있는 거냐, 미친놈아.


제리스는 내 말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리고 제가 저 아이를 맡는 게  아이에게도 좋다고 생각되는데요?"

"주어 선택 똑바로 한  맞지?"


"생각해 보세요. 오로넬씨는 거의 일주일 내내 저희 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가시잖아요.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할지 본인이 어떻게 아시죠? 반면에 저는 술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항상 보고 있어요.

입에  리가 없죠. 실제로 마셔 본적도 없구요. 아이의 안전을 고려하면 저희 집이 더 낫지 않겠어요?


어제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으시잖아요? 아니 애초에 기억은 나세요?"

"안 나는데."

"그것 봐요! 어제 그런 짓을 해놓고 기억이 안 나신다니! 역시 당신에게 아이는 맡길  없어요!"


제리스가 벌떡 일어나 빠득빠득 우기기 시작했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은 괜히   같다.

"지랄하지 말고 그게 무슨 일인지나 말해. 아니, 어제 있었던  전부. 다 듣고 나서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녀석을 넘겨주지."


"정말이죠? 딴 소리 하기 없기에요."

원래라면 오늘 저녁에 가게에 있는 '정상인' 제리스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이런 정신 나간 놈한테 들어야 하다니, 주변에서 점점 정상인이 사라지고 있어 슬플 뿐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면  녀석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파편만 남은 기억으로 어떻게든 거짓말을 판별해 내는 수밖에.


"저는 그날따라 손님도 없고 주문도 없길래 일찌감치 저장고에 내려가서 술을 찔끔찔끔 마시고 있었죠.. 악!!  때리세요!?"

제리스가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거 이거, 초장부터 구라를 치네. 술은 입에도 안 댄다며? 어디가 구라냐? 아까 말한  구라냐? 지금 말한 게 구라냐?"


나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아까 거요."


"구라다 싶을 때마다 팰 거니까,  생각하고 쳐라?'

제리스의 눈이 떨렸다. 구라를 쳐도 앞뒤가 맞게 쳐야지, 내가 호구로 보이나 보다.

그나저나 맨날 내려가서 뭐하나 싶었더니 술을 빨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신으로 일하기 힘든 가게일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맨 정신으로 일하고 있지 않았을 줄이야.

"계속해."

나는 엄지로 식탁을 가볍게 두 번 치면서 말했다.


~

아.. 아무튼 그렇게 술을 마시고 올라가고 있는데, 점장님이 내려오시더라구요.


"어, 여기 있었구나, 제리스. 이거 어떡하냐? 4번 손님이 나한테 주량승부를 걸어가지고..  아무튼, 가게는 부탁한다!"

그래서 저는 대체 어떤 상식 없는 사람이 가게 주인한테 주량승부를 건 건지 보려고.. 아, 여긴 기억나신다고요? 그럼 어느 부분부터.. 두 분 뻗은 뒤요? 아, 그때면 분명..

"에헤헤헤, 저놈들 뻗은 거 봐라 하하하!"

오로넬씨가 먼저 뻗은 두 분을 보면서 세상 행복하게 웃고 계셨죠.

점장님도 거의 뻗기 직전이셨고 사실상 시트린씨랑 오로넬씨 둘이서 마시고 계셨어요.

"아아이, 아저씨 좀 마시잖아? 맨날 말도 없이 혼자 마시고 있길래 그냥 쫄보인줄 알았는데 말이야.. 딸꾹!"

"나도 맨날 미친놈들처럼 마시길래 얼마나  마시나 싶었는데.. 그냥 미친놈들이었잖아? 고작 이거 마시구 취하냐? 어?  아직 한참 남았는데?"

그때 오로넬씨가 웃으면서 점장님 등을 치셨는데, 점장님은 그대로 뻗으셨어요.

"헤헤, 아저씨 마음에 드는데, 이제 슬슬 이름 좀 말해주면 안댈까아? 어디 출신인지도 알려주면 좋겠는데.."

시트린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오로넬씨가 갑자기 술통을 통 째로 시트린씨 자리 위에 올리셨어요.


통 안에 술이 별로 안 남아 있긴 했는데, 3잔이나 4잔 정도는 나올 만큼 들어 있었을 거에요.


"그거 다 마시면, 이름이랑 어디 출신인지 다 말해줄게. 내가 아까 먼저 뻗으면 가르쳐 준다했지!? 아직  안 뻗었다?? 니가 먼저 뻗을 거 같은데, 그거 마시면 그냥 말해줄게. 어? 파격적이지 않냐???"

그러자 시트린씨는 오로넬씨를 한번 쳐다보고는 씨익 웃으면서 통을 들고 들이키셨어요.

그러곤 바로 뒤로 엎어지셨죠. 그걸 보고 미치도록 웃으셨어요, 오로넬씨.


"에헤헤헤ㅔ헤 바로 뻗네 등신같은년 ㅎ하ㅏ하!!"

그리고 뻗은 시트린씨한테 다가가서 귓가에 뭐라고 말씀하시곤, 집에 갈 거라면서 저한테 하산하다가 죽을 거 같으니까 좀 데려다 달라고 하셨어요.

저는 여기서 주무시게  분들에게 뭘 좀 덮어드리고, 가게 뒤처리도 대충 해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죠.

근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이미 가셨더라구요.

아, 물론 바로 가게 밖으로 뛰어 나갔죠. 눈도 오고 있어서 잘못하면 진짜 죽었을 거 같아서요.


그래서 산 중턱까지 쉬지도 않고 내려갔어요.

한참을 뛰니까 숨이 너무 차더라구요. 잠시 숨 좀 돌리면서 근처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어딘가에서 빛이 솟아오르고 있었어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았죠.


저는 홀린 듯이 그 빛을 따라 걸어갔고,  속에서 그녀를 발견했어요.

마치 운명적인 만남.. 아아아!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에요. 진짜! 정말로 빛이 났다니까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빛기둥의 바로 앞에, 오로넬씨가 반쯤 엎드린 상태로 바닥을 짚고 있더라구요.

거리가 꽤 돼서, 뭐라고 하시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뭔갈 중얼거리고 계셨어요.


자세를 보니 토하기 직전인 것만 알았죠.


"눈부시니까 불 끄라고 시ㅣ발!!!!"

그리고 멀리 있는 저에게도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욕을 하시면서 빛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후려 치셨어요.


그리고 빛기둥 속에서 그 아이가 튕겨져 나왔죠. 빛은 그 뒤로 사라졌구요.

"저는 그 아이가 걱정 되서 죽을힘으로 뛰어갔어요. 튕겨져 나간 곳이 암벽지대라 잘못하면 정말 죽었을 수도 있었다구요! 이래도  아이를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 하시나요!"


제리스가 이때다 싶어 눈을 부라리고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진정해봐, 처맞기 전에. 자, 일단 일어나서 이 녀석 얼굴을 한번 보라고."


나는 한손으로 꼬맹이의 머리를 잡고 제리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면에서 보니까  귀여.."

"뭐?"

"아,아니에요. 어, 얼굴이 어때서요?

"봐, 날아갈 정도로 맞았는데 얼굴에 아무런 외상도 없는 건 이상하지."

손을 움직여 꼬맹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제리스에게 보여주었다.


"얼굴이 아니라 다른 곳을 때렸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 얼굴 빼고는 맞아도 쓰러지기만 하지 안 날아가."

반은 목격담이고 반은 경험담이다.


"그, 그럼!"

"아, 꼬투리 잡지 말고. 일단,  뒤로 어떻게 됐는지나 계속 말해."

나는 엄지로 찌르듯이 제리스를 가리키며 강압적으로 말했다. 한번 주먹맛을 본 놈들은 웬만해선 이것에 굴복한다.

마,말씀하신 대로 아이는 멀쩡했어요. 으에에 때리지 마세요!

아무튼,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는 제쳐두고, 암벽에 부딪혔는데 상처도 없고, 표정도 무덤덤하고, 옷도 없고. 저는 더더욱  아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하는 말이..

"배고파."


..였으니까요.


"우에에에에ㅔㄱ"

이게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갑자기 오로넬씨가 토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알몸의 소녀를 제쳐두고 오로넬씨의 등을 두드렸죠.


"먹어도 돼?"

"아,아니 이거 먹는 거 아니야!"


"왜?"


"아아아, 그러니까ㅡ."

한손으론 다 큰 아저씨 등을 두들기고 있고 한손으론 떼 하나 묻지 않은 소녀를 가로막고 있으니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우으으읅, 뭐야? 제리스잖아. 머 하다 이제야 온 거야?"


그리고 그제야 오로넬씨가 절 알아보셨어요. 하지만 취한 사람 말에 대답하면 대화가 길어지니, 저는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부축해 드렸죠.


"아아, 맞다. 제리스. 너,  좀 벗어라."

"네?!"


"저거 데리고 갈 거니까 옷 벗으라고오!"


확실히 뭔갈 입히려면  묻은 오로넬씨 옷 보단 제 옷이 더 적합하긴 했지만, 말씀 하시자마자 강제로 벗기실 줄은 몰랐어요.


"야, 입어. 입고 따라와. 밥 줄 테니까."


오로넬씨는  덮인 바닥에 쓰레기 버리듯이 제 옷을 던지셨고, 그 아이는 그걸 또 입고 여기까지 따라왔죠.

"그게 끝?"


"끝."


"뭐야, 완전 별일 없었네."

나는 옷깃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주량승부에서 내가 이긴 뒤, 집에 오면서 이상한 꼬맹이를 주워 왔고, 정상인인줄 알았던 제리스는 변태였다. 대충 이걸로 정리 되는 하루였던  같다.


"아니, 아니, 아니, 아이를 때리셨잖아요. 아동폭행 하셨잖아요!"

"아 글쎄, 바람이라도 불었겠지. 맞은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나는 다시 한 번 꼬맹이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였다.

제리스도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는지, 고구마 먹다가 목 막힌 사람 같은 표정이 됐다.

"암튼, 이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헛소리 그만하고 얘 입을 옷이나 사와. 돈 줄 테니까."


왜 이 상황에 이런 변태가 좋아할 만한 일을 시키냐 하면, 눈이 와서 귀찮은 것도 있고, 옷가게가 어딘지 모르는 것도 있지만, 지금 당장 이 녀석을 내 눈앞에서 치우고 싶어서 이다.


아직 숙취도 안 가셨는데, 이 녀석과  마디를 더 나누다 보면, 진심으로 누구 하나가 죽을 지도 모른다.

"네!?"

예상대로 제리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너무 밝아져서 기분이 나쁘다.

"진짜, 진짜로 제가 사온 옷을 입혀도 되나요?!"


"누가 입히랬냐 이 새끼야. 사오기만 하라고, 사오기만."

자기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놈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아니, 잠깐만.. 지금 몽땅 사버리면 내일부터 여기에  구실이 없어져버려.. 그렇다면 하루에 한 벌씩.. 그래, 그렇게 하면 매일같이 올  있어.."

제리스가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나빠서 가까이 가서 들을 생각도 들지 않는다.

"너도 옷가게 어딨는지 모르냐?"


중얼거리는 제리스의 말을 끊고 물었다.

"아뇨! 지금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제리스는 언제 중얼거리고 있었냐는 듯이 여관을 뛰쳐나갔다.

저 속도면 우물쭈물하다가 저 녀석이 먼저 도착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어느샌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꼬맹이의 머리를 툭툭 쳐서 깨운 뒤, 여관주인이 있는 카운터로 갔다.

"아줌마, 잘 먹었수. 여기 밥값. 아, 그리고 조금 있다가 금발머리 변태 한명이  거거든? 그놈 오면 내  어딘지 말해주지 말고 가져온 옷만 두고 가라고 해줘."


"옹냐."


여기 여관주인은 말이 짧아서 좋다. 꼬치꼬치 캐묻질 않는다.


나이 지긋이 먹은 아줌마가 사정도 듣지 않고 부탁을 들어주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몇 마디 하는데 얼마나 멈춰있었다고, 그새를 못 참은 꼬맹이가  채로 자고 있었다.

머리통에 정중하게 노크를 해도 일어나지 않길래, 뒷목을 잡아 들어올려, 방까지 올라왔다.


철컥

"아아, 죽겠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몸을 늘어뜨렸다.


밥 한 끼 먹고 오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먹은 것도 돌멩이랑 친구 먹은  한 조각뿐인데 말이다.

꼬맹이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던져놨다. 조용한 걸로 봐선, 그 꼴로 계속 자고 있는 모양이다.


좋냐 싫냐 하면 꼬맹이들은 싫어하는 편이지만, 이 녀석이 꼬맹이인 시점에서 이미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 이 녀석을 맡아야만 하는 이유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너 같은 놈을 만나면 나처럼 해줘라~  말이야. 알겠냐, 이 망할 놈아?'

등신 같은 얼굴을 한, 등신 같은 남자가 나에게 말한다.


 병신 같은 말을, 나는 죽을 때 까지 거스를 수 없다. 그렇게 정했다.


그게,  등신에게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


아래층에서는 애처롭게 울부짖는 변태의 절규소리가  동네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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