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살다 보면, 카레에 감자를 안 넣는 놈도 만난다 [1]
꼬르륵
배에서 먹을 것좀 넣어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저녁을 먹지 않은 탓이다.
꼬맹이가 배고프면 먹을 걸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듯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오늘은 그럴 가치가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 녀석'이 가게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실례 하겠습니다."
가게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 녀석이 나타났다. 갈색의 짧은 머리에 흰색 요리복을 입은 남자. 그래, 바로 저 녀석이다.
"그래서 말이야.. 야, 지금 내 얘기 듣고 있어?"
옆에 있던 마법사가 뭐라 중얼거렸다.
럼주를 가지고 온건 기특한 일이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술이 아니라 음식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저 녀석이 오는 걸 기다리느라 니가 하는 말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어, 그래 나도 안녕."
이 녀석이 옆에서 했던 말 중, 그나마 기억나는 말에 대해 적당히 대답해 줬다.
"인사할 때부터 안 들었었던 거냐고 이 새끼야!"
"아, 아, 아, 아!"
머리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갔다. 양손을 동원해 몇 번의 힘겨루기를 하고서야 겨우 풀려났다.
"후, 넌 내가 대화를 끊어준 걸 고마워해야 된다고."
흐트러진 머리를 가다듬고 마법사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게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럼주까지 사 먹였더니 뭐가 어째? 빨리 다시 뱉어내."
"자, 자. 닥치고 내 말 들어봐. 방금 들어온 저 남자 보이지? 지금 막 주방으로 들어간 남자."
"저 놈이 뭐 어쨌는데? 니 침대 파트너냐?"
그래, 이제 알겠다. 술 때문이군.
평소에 맥주나 마시던 녀석이 럼주 같은 걸 마시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거다.
이래서 말렸는데.
자기는 세다면서 마시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더니, 결국 이 모양이냐.
한 번. 딱 한 번, 인자한 마음으로 마법사의 무례를 용서했다.
"체르프 공화국에 아르겐이라고 모르냐? 요리 잘한다고 타국의 왕실이나 높으신 분들이 자주 찾는다는 놈."
"그래서 그게 어쨌는데 병신아."
취했다고 가만히 냅두니까 못 하는 소리가 없는 년이다.
어차피 이제 가게에 조용히 앉아 있기도 글렀는데, 아예 줘 패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요리 잘하는 놈이. 오늘. 여기서. 요리를 한다고. 이 개밥보다 맛난 걸 먹을 수 있다고."
그래도 제정신인 내가 참아야지.
주정뱅이 상대로 열을 내면 그거야 말로 패배다.
생각해보니 규칙도 있고 말이다.
나는 한 번 더, 이를 악물고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아~ 그래?"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다.
"너, 주인장이 만드는 음식을 먹어 보고도 이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모르겠냐?"
자칭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여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귀찮은 설명을 계속 했다.
"맛이 무슨 상관이야. 영양분만 섭취할 수 있으면 됐지."
이래서 과학자 새끼들은.
"아, 그럼 그거나 많이 드시던가. 한잔 해."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럼주 잔을 들었다.
맛난 요리와 함께 먹으려고 애지중지 아껴둔 첫잔이다. 결코 이런 일에 써도 될 리가 없다.
하지만 걱정하지마라. 이 녀석은 내가 이걸 마시는지 확인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마법사의 잔은 거의 비어있다. 한 잔도 다 못 마시고 저 꼴이라는 말이지.
저 정도 수준이면, 이 녀석을 헤치우는데 두 잔이면 떡을 칠 것이다. 세 잔이면 기억마저 지울 수 있겠지.
쿵!
마법사의 머리가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한 잔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내가 아무래도 과대평가했던 모양이다.
그럼, 이제 옆에서 떠드는 놈도 없으니, 조용히 맛난 요리가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도록 하자.
"도리안님. 오늘도 부족한 저의 지도에 어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방에선 아르겐이 주인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 저놈도 여기 단골이다. 멀쩡한 놈일 리 없지.
이미 세계적으로도 맛있다고 인증된 자기 요리보다, 그냥 재료만 씹어 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은 저 양반 요리가 더 맛있다고 하는 놈이니 말 다했다.
"아니, 뭘. 나도 요리하기 귀찮았는데, 니가 해주면 좋지."
주인장은 주인장대로 요리를 대접하는 인간의 자세가 아니다.
"오늘은 어떤 요리를 전수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배울 사람은 잘못 골랐지만, 배우는 자세만큼은 제대로 된 놈이다.
"어.. 보자.."
"스테이크! 스테이크로 해줘 주인장!"
주인장이 메뉴를 정하기 전에, 내가 먹고 싶은 요리의 이름을 외쳤다.
오늘은 임무보다 이게 먼저다. 타지에서 구르면서 언제 이런 걸 먹어보겠냐.
아르겐의 요리 중에 스테이크가 가장 맛있다고 평판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좋아, 스테이크로 하지."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스테이크는 제일 자신 없는 요리라서, 꼭 도리안님께 배우고 싶었습니다."
대체 미각이 어떻게 되먹은 거냐.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들 하던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 주는데도 본인은 맛없다고 고집을 부리니, 보는 입장에선 답답할 따름이다.
그보다, 본인 요리가 맛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왕실이니 사교회니 불려 다니면서 요리를 했던 건가? 직업의식이 참 대단한 놈이다.
"그래, 그럼 일단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주인장이 팔을 걷었다.
어?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당신 요리하기 귀찮다며! 그럼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흘러가면 저 요리는 십중팔구 나에게 온다.
운 좋게 피하더라도 저걸 따라한 아르겐의 요리가 오겠지.
난 개밥을 먹으려고 식사를 거른 게 아니란 말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아르겐이 먼저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손을 써야 한다.
"아니, 아니. 주인장. 일단 내가 저놈 요리를 먹어보고 문제점을 말해 줄 테니까, 그걸 토대로 당신이 교정해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나는 필사적이었다. 여기에 와서 이렇게 허둥댄 건 처음이다. 그만큼 주인장의 음식은 무서운 것이다.
처음 그걸 입에 넣은 날의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흠, 그것도 나쁘지 않군. 아르겐, 니 생각은 어때?"
주인장도 납득하는 것 같았다.
주인장은 요리를 하기 귀찮고, 나는 주인장이 요리를 안 했으면 좋겠으니, 서로 바라는 바는 같다.
"문제 '점'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제 요리는 근본부터 틀려 먹었다구요."
"그러니 처음부터 도리안님의 요리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효율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도리안님의 소중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빼앗을 순 없으니까요."
아르겐이 논리적으로 개소리를 했다.
누가 보면 스테이크로 사람이라도 죽이는 줄 알겠다.
주인장은 그 말에 또 흔들리고 있었다.
"이봐, 아르겐. 아까 주인장이 분명 요리하기 귀찮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은 오늘은 더 이상 최상의 상태로 요리를 할 수 없다는 말이야."
"그건 지금 시범을 보여도 완벽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소리라고. 스승의 말에 숨겨진 뜻을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스승을 위하는 척이라니, 거만하군."
나도 혼신의 힘을 다해 개소리를 설파했다.
아르겐의 얼굴은 충격으로 물들었고, 요리를 하기 싫었던 주인장 역시,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도리안님. 제자가 되서 그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르겐은 또다시 주인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알았으면 빨리 스테이크 하나만 만들어봐. 단골인 내가 평가해 줄 테니까."
아르겐과 주인장, 둘 중 한명이 또 개소리를 하기 전에, 빠르게 선수를 쳤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동물의 살점이 여러 향신료들과 함께 불에 그을리며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가 가게 안에 퍼져나갔다.
"맛있는 냄새."
주인장의 요리도 맛있게 먹어 치우는 꼬맹이에게도 맛있게 느껴질 정도의 냄새인 모양이다.
"허허허, 너는 저거 먹을 생각 하면 안 된단다. 꼬맹아."
"왜?"
"저거 먹으면 더 이상 그거 못 먹거든."
나는 꼬맹이의 자리에 쌓여있는, 쓰레기들의 잔해. 새하얘진 접시들을 가리켰다.
"진짜? 이거 더 못 먹어?"
너무 맛있어서 눈길도 안 준다는 뜻이었는데, 더 이상 주문을 못한다는 뜻으로 알아먹은 꼬맹이였다.
이건 차라리 잘됐다. 괜히 저기에 입 댔다가 맛의 기준이라도 달라지면 골치 아파지는 건 나다.
"그래, 여기는 한 명당 요리사 한 명한테만 주문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주인장한테 주문 못 하잖아."
"그, 그럼 내가 시켜줄게. 오로넬도 저거 한입만 줘."
꼬맹이가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 녀석과 나눴던 대화 중에 가장 수준 높은 대화인 것 같다.
"안 돼, 안 돼. 여긴 주방 바로 앞이라 그런 꼼수 쓰면 들켜."
오늘은 개소리가 참 잘 나오는 날이다.
"그럼 저기서 먹으면 되잖아."
꼬맹이가 가게의 가장 구석에 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안 돼, 그럼 내가 일을 못해."
"무슨 일인데?"
"이 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일."
이건 맞는 말이다. 이 자리에 있으면 가게 어느 곳이든 귀가 닿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일인데?"
"비밀."
더 이상 꼬투리를 잡히지 않게 대화를 끊어 버리자, 꼬맹이가 불만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냥 똑같은 메뉴 주인장한테 주문해서 먹어. 주인장이 더 잘해."
"진짜?"
"어, 진짜. 아까 못 들었냐? 쟤가 주인장한테 배우러 온 거라잖아.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한테 뭐 하러 배우냐."
이건 아르겐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맞아."
꼬맹이도 납득했다. 나도 맛있게 스테이크를 먹고, 꼬맹이도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스테이크를 먹을 것이다. 이제 이 대화는 끝이다.
"그럼 오로넬은 왜 쟤한테 주문 하는 거야? 병신이야?"
편안한 마음으로 요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꼬맹이가 직구를 때려 박았다.
내가 어린놈 앞이라고 욕을 안 하는 사람은 아니니 멋대로 주워 들을 수는 있는데, 그 어린놈한테 직접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몇 배는 더럽다.
"으, 음.. 병신이 아니라. 착한 사람.. 이지? 나라도 주문을 해 줘야 저 놈 실력이 늘 거 아니냐, 안 그래?"
"음.. 맞아.. 오로넬은 병신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구나."
"알았으면 닥치고 그거나 처먹도록."
의문을 해결한 꼬맹이는 다시 스튜를 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증이 한계에 달해 버린 나는, 기어이 럼주에 손을 대버리고야 말았다.
"야, 제리스!"
"예~!"
파죽지세로 한잔을 다 마셔버린 나는, 럼주를 더 주문하기 위해 제리스를 불렀다.
"이 여자가 가져온 럼주 있지? 그거 한잔만 더 가져와."
그렇게 말하며 잔을 넘겼다. 제리스는 곧바로 잔을 받아 저장고로 향했다.
-우오오오오오!!
-하하하하!
"조용히 하세요. 손님."
변태로 밝혀져 다른 등신들과 비슷하게 취급하고 있던 제리스였지만, 그래도 저놈들의 멍청한 짓을 막을 수 있는 건 제리스 밖에 없는 것 같다.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테이크가 나왔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자신의 맛을 보증하고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받은 나는, 먹기 좋은 크기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미리 썰어두면 맛이 있네 없네들 하는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미리 다 썰어 둔다. 바로바로 집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썰면서 떠올랐는데, 이걸 먹고 뭐가 맘에 안 드는지를 말해 줘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냄새부터 완벽한 이 요리가, 주인장의 맛없는 요리처럼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 하나의 행복을 위해, 이런 보석을 똥물에 처박아야 하다니,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하지만, 일말의 후회도, 연민도 없다.
스스로 흙탕물에 뛰어 들겠다고 하는 사람을 말릴 정도로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뒤에서 밀었으면 밀었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스테이크를 먹을 수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 상관없단 말이다.
오른손의 포크가 육즙이 흐르는 두툼한 살을 향해 움직이고, 입 안에 고인 침이 흘러나오려는 그때.
"어ㅡ?"
정체불명의 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서 스테이크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