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살다 보면, 카레에 감자를 안 넣는 놈도 만난다 [2]
쾅!
스테이크가 사라진 직후, 1초가 채 지나지 않은 찰나의 순간, 나의 눈은 방금 까지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쫓고 있었다.
스튜를 먹고 있는 꼬맹이, 팔짱을 낀 채 졸고 있는 주인장,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아르겐, 그리고 테이블을 내려찍고 있는 마법사.
다시 시간이 흐르고,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선 고기 조각들이 폭죽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한 번에 썰어 놓은 것이 이런 일로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그게 원인이었다기보다는, 이 여자를 내 옆에 그대로 둔 것이 잘못이었다.
보통 이렇게 센 술로 엎어지면 웬만해선 못 일어날 텐데, 어떻게 일어난 거지? 스테이크의 냄새가 너무 강렬했나?
최고점에 다다른 육편들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강을 시작했다.
대부분이 바닥에 처박히겠지만, 그래도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고기 한 조각이 나타났다.
지금,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왼손을 움직였다.
마침내, 손과 고기가 만나는 그 순간.
"이 새끼야아악!!"
"으어어억!"
마법사의 주먹이 얼굴을 후려치며 몸을 밀어냈다.
그리고 때마침 이쪽을 돌아보던 꼬맹이의 입 속에, 내 손에 안착했던 고기 조각이 그대로 쑤셔 박혔다.
"음."
꼬맹이는 입에 들어온 게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턱을 움직이고 봤다.
"어디서 너 혼자 맛있는 걸 처먹을라고!! 앙!!"
"너 때문에 하나도 못 처먹게 됐잖아, 이년아!!!"
나는 허기와 분노가 담긴 주먹을 마법사의 안면을 향해 처박았다.
규칙이고 뭐고 알 바 아니다. 지금 이걸 풀지 않으면, 오늘은 잠도 못 잔다.
"..!!"
마법사가 가볍게 내 주먹을 잡아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녀석, 악력으로 내 주먹을 으깨버릴 생각이다.
"앉은뱅이 주제에 뭔 놈의 힘이 이렇게 센 거야..!"
"학문의 기초는 체력이라는 말도 모르냐, 이 새끼야?"
"아아악, 잠깐만, 잠깐만!!"
취한 탓인지, 항복을 선언하는 손바닥 치기에도, 도저히 힘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은 손으로 열심히 저항해 보곤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대로면 왼손이 다진 고기가 돼버리고 만다. 뭐라도, 뭐라도 생각해내야 한다.
그, 그래 급소! 급소를 누르자!
바로 눈앞에 보이는 쇄골이 급소인 걸 떠올린 나는, 다른 한 손을 뻗어, 부숴버릴 기세로 마법사의 쇄골을 압박했다.
조금 뒤, 마법사는 고통을 호소하며 힘을 풀었고, 나는 마침내 손의 자유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아악! 존나 아프네 이 미친놈아."
붙잡혀 있던 왼손에는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제대로 피가 통하고 있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으으, 그렇다고 급소를 쳐?! 난 장난이었는데."
술 취한 놈들의 '장난이었는데'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 중 하나다.
본인들은 진짜 장난으로 하는 거긴 한데, 힘 조절이 하나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거 보이냐? 이게 장난이냐? 길게 말 안할게. 취했으면 더 설치지 말고 집 가서 자라. 제발, 부탁이다."
왼손을 덜렁거리며 마법사에게 호소했다.
이 새끼.. 눈의 초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뭔 개소리야! 아직 마실 수 있거든!! 어이 거기! 금발에 키 크고 변태같이 생긴 점원! 럼주 한잔 더 가져와!!"
마법사가 고함을 질렀다.
"저기.."
왼손을 어루만지며, 마법사에게 럼주가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주방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기 맛은 어떠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이 새끼, 아까 그걸 다 봐놓고 묻는 건가? 놀리는 건가? 시비 거는 건가 지금? 주방 쪽에도 분명 파편 하나가 튀었을 텐데?
"너도 아까 봤잖아. 이 녀석이 엎어버려서 하나도 못 먹었다고."
혹시 다시 하나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화를 참고 말했다.
"아, 예. 다 봤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아니고, 이쪽 분에게 묻는 겁니다."
아르겐이 꼬맹이를 가리켰다.
시발. 그거까지 봤구나.
리필이고 뭐고 다 물 건너갔다. 열 받아서 옆에 있는 마법사를 한대 때렸다.
맞으니까 또 지랄을 하려 하길래, 바로 술잔을 들어 건배를 시켰다. 역시 취한 놈들은 계속 먹이는 게 약이다.
꼬맹이는 본의 아니게 섭취해버린 스테이크의 맛을 떠올리고 있었다.
"음.. 고기가 덜 익었었어. 별로 씹지도 않았는데 사라졌어."
원래 그런 음식이다.
"또, 고기 냄새도 안 났어."
원래 나면 안 된다.
그래도 저 말이랑 딱 반대로 하면 주인장이 만드는 개밥 같은 음식이 나올 것 같긴 하다.
"그럼 답은 나왔군. 향신료도 쓰지 말고, 그냥 센 불에 지지듯이 구워라."
주인장이 마치 엄청난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말했다. 저렇게 조리하면 스테이크가 아니라 그냥 탄 고기다.
"역시, 그게 문제였던 겁니까! 드디어 눈이 떠졌습니다."
지랄.
"지금 당장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눈이 떠졌다는 둥 개소리를 지껄이며, 아르겐은 열심히 쓰레기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으글그긁를.."
두 번째 잔까지 비워낸 마법사는, 인간의 언어가 아닌 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저놈 스테이크는 살면서 한번은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마저도 이젠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 번 주먹을 들어, 마법사에게 분풀이를 하려 했더니 흰놈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흐리멍덩한 눈에 초점이 돌아오더니,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노려보는 흰놈이었다.
조용히 주먹을 내리고 잔을 들이켰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이렇게 된 거, 일이나 해야겠다.
다른 놈들 정보를 캐기엔 이미 술에 익어 있을 시간대이니, 마침 앞에 있는 아르겐 녀석의 것으로 아무거나 주워 가야겠다.
"그러고 보니 넌 자기 요리가 맛없다면서, 무슨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요리를 먹인 거냐?"
"아, 저 말입니까?"
"네, 너 말입니다."
아르겐은 불속에 던져둔 고기 덩어리를 바라보며 주인장처럼 팔짱을 끼고 있다.
저 팔짱은 할 게 없어서 끼고 있는 것이란 게 확실해졌다.
"전.. 전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제 요리가 맛있는 줄 알았습니다. 자기가 만든 요리는 어차피 맛있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제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요리를 하면서 맛을 보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 기본도 안 지키면서 용케도 일류 요리사가 됐다.
"자기가 뭘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사람들한테 먹였다?"
"예, 정말 그분들께는 씻지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 제 요리가 그 정도로 형편없는 것일 줄은.."
아르겐이 자신의 양 손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그래서, 어쩌다가 니 요리를 먹게 된 건데?"
"제 곁에는 저와 10년을 함께한, 부주방장이자 친구가 한명 있었습니다. 저도 그 친구의 요리를 좋아했고 그 친구도 저의 요리를 좋아했죠."
"저희는 노점을 운영하며 체르프 곳곳을 돌아다녔고, 여러 가지 맛과 음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입소문을 탄 건지, 여러 국가와 단체에서 연락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자신의 실력과 견문을 넓힐 기회라며 흔쾌히 응했죠."
"그렇게 최고의 주방장이라는 칭호를 얻고, 세계를 돌아다니던 중, 그 친구가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만난 아리따운 여성분과 맺어지며, 저희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비어버린 부주방장 자리를 메우기 위해, 여러 요리사들에게 제의 해 보았지만, 자신들에겐 너무 무거운 짐이라며 극구사양들을 하시더군요."
"그렇게 혼자가 돼버린 저였지만, 손님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 해야만 했습니다."
아르겐은 목이 타는지 이야기를 멈추고 물을 찾았다.
"결국, 그 친구가 해 오던 일을 제가 직접 하게 되었고, 저는 제 요리를 먹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르겐이 한숨을 쉬었다.
"정말 끔찍한 맛이었죠. 간이며, 요리의 온도며, 식감이며,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습니다."
"저는 혹시나 싶어 다른 요리사들에게 맛을 봐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너무 맛있다며 갖은 미사여구로 저의 요리를 칭찬했습니다."
"솔직히, 그냥 '괜찮다' '나쁘지 않다' 정도였으면, 저도 납득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칭찬을 들으니, 저를 따라다니는 체르프 최고의 주방장이라는 칭호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 다른 호응 없이도 재잘재잘 잘만 떠드는 놈이다. 가만히 있어도 술술 불어주니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 생각은 점점 제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더 이상 손님께 요리를 내놓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리로 벌어들인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맛의 진리를 찾아 세계를 떠돌기 시작한 겁니다."
그 여행의 끝이 여기라니, 길을 잘못 들어도 단단히 잘못 들었다.
아르겐은 고해성사를 끝낸 듯한 표정을 지으며 탄내가 나는 고기를 뒤집었다.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주인장표 스테이크는, 당연한 듯이 나에게로 왔다.
확실히, 첫 주문이 나였으니, 나에게 주는 건 맞지만, 고기를 먹고 문제점을 말해준 건 꼬맹이다. 이 영광은 이 녀석에게 돌리도록 하자.
"응? 주는 거야?"
꼬맹이가 놀란 듯하다. 이 녀석 입에는 맛있는 음식이니, 그걸 선뜻 주는 게 이해 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그래. 너 다 먹어라."
"그럼 내 것도 줄게."
꼬맹이가 자기 접시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암살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필요 없으니까 너 먹으라고. 난 이것만 있으면 되니까."
럼주가 든 잔을 두드렸다. 주인장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음식은 이제 이것 하나뿐이다. 괜히 이것마저 잃기 전에, 얌전히 만족하도록 하자.
나이프와 포크를 꼬맹이에게 건네주었지만, 꼬맹이는 나이프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포크를 집어 들어 그대로 고기를 향해 찍어 내렸다.
"맛있어."
꼬맹이가 고기 한 덩이를 통째로 들고 씹어 먹으며 말했다. 고기를 얼마나 태운건지 바사삭 하는 소리가 났다.
"맛있다고? 그게?"
순수한 의문에서 우러나온 질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걸 맛있다고 먹을 수 있는 거지?
"응, 먹어볼래?"
꼬맹이가 한때는 소고기였던 것을 내밀었다. 겉만 검게 탄줄 알았는데, 속까지 거멓다.
"아니, 난 괜찮다니까."
저걸 보니, 좋던 속도 안 좋아 지는 것 같다.
"그럼, 제가 한입 먹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르겐이 고개를 내밀었다. 자신의 혓바닥이 완벽이라 평가하는 주인장식 요리니, 본인도 당장에라도 먹고 싶은 모양이다.
"자."
꼬맹이가 포크를 내밀었다. 멀리서 그걸 보고 있던 제리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
아르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이 맛은.."
목 메인 소리와 함께 눈물이 떨어졌다.
"맛있어, 맛있어! 내 요리가 맛있어! 맛있다ㄱ..! 쿠헠!"
맛있다를 연발하며 꼬맹이의 고기를 계속 뜯어먹던 아르겐은, 자신의 것을 돌려받기 위해 달려든 꼬맹이에 의해 넘어졌다.
"한입만 먹는다면서! 이 사기꾼! 사기꾼을 잡으면 응징해야 한다고 오로넬이 그랬어."
아르겐의 몸에 올라탄 꼬맹이는 살벌한 기세로 파운딩을 먹였다.
어느샌가 제리스도 주방에 들어가서는, 아르겐을 밟아대고 있다. 꼬맹이가 먹던 음식을 먹은 게 셈이나나 보다.
"꼬맹아, 그만해라. 진짜 죽겠다."
"그치만, 이 녀석 사기꾼이야."
아, 살려는 주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그 녀석은 사기꾼이 아니라 머리가 아픈 놈이다. 불쌍한 놈이니까 니가 참아라."
멱살을 잡고 있던 꼬맹이가 아르겐의 얼굴을 한번 쳐다봤다.
"알았어. 그래도 얘가 뺏어 먹은 만큼 더 먹을 거야."
"알았으니까, 손이나 씻고 와라."
꼬맹이는 붉게 물든 손을 털며 주방을 나왔고, 제리스는 몇 번을 더 밟은 뒤에야 분이 풀리는지 씩씩대며 걸어 나왔다.
"나..는.. 해냈어..!"
털썩
주방에서는 행복한 표정으로 뻗어 있는 전직 주방장의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아이, 한 잔 하자니까 오로넬. 나 아직 괜찮다고오."
다시 또 살만해졌는지, 마법사가 말을 걸어 왔다.
왜 이 새낀 뒤지질 않는 거냐.
"아, 취했으면 집으로 좀 꺼지라니까."
내 목소리가 왼쪽에서 들리자 그제야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마법사였다.
"니가 나가기 전까진 나도 안 나가지!"
이미 얼굴로는 오만상을 짓고 있으면서, 입만 살아서는 술잔을 들이댄다.
"어휴, 시발. 너는 오늘 뒤졌다."
사람 한명 살리는 대가로 꼬맹이에게 추가 주문을 허용해 버렸으니, 지금 당장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
꼬맹이가 식사를 끝낼 동안 이걸 계속 상대하고 있을 바에야, 내가 조금 취하더라도 이 놈을 완전히 보내버리는 길을 택하겠다.
"야, 한잔 하자며. 빨리 마셔, 다음 잔 마시게."
"어으, 잠깐만, 우우욱!"
"아, 진짜!"
시발.
뭐 하나 되는 게 없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