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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애들 놀이가 더 무서운 법이다 [1] (8/108)



〈 8화 〉애들 놀이가 더 무서운 법이다 [1]

술래잡기를 할때 한번쯤 생각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술래잡기가 술래'를' 잡는 놀이인지, 술래'가' 잡는 놀이인지 말이다.

정답을 말해주자면, 술래잡기는 술래'가' 잡는 놀이다.

술래를 제외한 다른 놈들은, 모두 도망쳐야 한다는 뜻이다.

"알겠냐고, 이 새끼들아. 돌 좀 그만 던져라."


"왜? 그게 더 긴장감 있고 좋잖아!"


용사의 팔에 가득 안긴 돌무더기에, 하나의 돌이 더 올라갔다.

"긴장감은 내가 느끼는  아니라, 너희가 느껴야 되는 거라고 미친놈들아!"

주변의 나무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무언가가 뚫고 지나간 자국들이 보인다.

"아 알았어, 알았어. 재미없게."

돌무더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눈이라는 완충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살벌한 무게감을 풍기고 있다.

"알았으면 빨리 꺼져. 숫자 세야 되니까."

-이야호!


모여있던 등신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시발."

술래잡기든, 숨바꼭질이든, 술래를 잡든, 술래가 잡든, 술래가 있는 놀이의 근본은 모두 같다.


그건 바로, 얼마나 좆같이 술래를 괴롭히는가이다.


달려야 하는 술래를 계속 달리게 만들고, 찾아야 하는 술래를 영원토록 찾게만 하는, 나는 지금 인간의 순수한 악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건 지금으로부터 약 한 시간 전의 일이었다.


"하아, 한가하구만."


주인장이 턱을 괴며 한숨을 쉬었다.


"만석인 날도 있으면 공석인 날도 있어야지."


나도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눈이 와서 쉬려고 했는데, 이미 며칠 전에 멋대로 하루 쉰 날이 있어서, 이번 주 보고서의 분량이 꽤나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가게에 와보니, 늘 보던 등신들 몇 명밖에 없었다. 그냥 하루 쉴걸 그랬다.

"흐음, 그래도 너무 가게가 조용하니까 술 마실 맛도 안 나는걸."

마법사가 맥주를 내려놓았다. 며칠 전과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앞으로 럼주는 나 혼자 마시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럼, 눈도 오는데 우리 밖에서 놀지 않을래?"

용사가  소리가 나게 잔을 내려놓으며 일어났다.


나는 그 눈 때문에 여기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한 인간이다.


눈이든 비든, 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똥일 뿐이다.

"흐음.. 나쁘지 않은데?"

마법사도 동의하는 듯 했다. 실내파인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실외파였나보다.

"담배는 역시 시원한 바깥 공기를 맡으면서 피워야지."

그냥 연기 중독자였다.


"하아, 나가서 인가.. 잘들 놀다 오라고."


주인장이 힘없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주인장이 가게 밖으로 나가는 건 한 번도  적이 없다. 의외로 실내 체질인가 보다.


"걱정하지 말라고 주인장, 나도 안 나갈 거니까."


나는 나가지 않을 거란 의사표명을 밝혔다.


앉아서도 별 짓을 다하는 놈들이, 밖에 나가면 무슨 짓을 더 할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없다.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 보다, 혼자서 술이나 마시는 게 낫지.


"무슨 소리야? 너까지 포함해서 여섯 명이야. 빠지는 건 없어."


용사의 손이 어깨를 움켜쥐는 것이 느껴졌다.


"뭐 하고 놀길래 여섯 명이나 필요한 건데."

"그러게. 뭐 하고 놀지."

"어휴, 뭐 하고  건지는 정하고 사람을 포함시키든 말든 하세요. 빡대가리씨."


먼지를 털어내듯, 용사의 손을 어깨에서 치웠다.


"흐음.. 뭐가 좋을까.."

그 머리로 '생각'이란 걸 하려 하다니, 제 주제를 너무 모르는 놈이다.


하루 종일 그렇게 있어 준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술래잡기 어때?"

용사가 즉답했다. 역시 용사라는 이름답게, 다른 이들의 예상을 깨부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내가 괜히 기대를 한 탓이다.


근데 술래잡기는 아니지.


"이 존나게  산에서 술래잡기를 하자고? 술래 죽일 일 있냐? 그리고 그건 몇 명이 하든 상관없잖아."



갑자기 누군가가 내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이, 네 녀석 방금 뭐라고 했나? 시트린이 하자고 했으면 하는 거다. 알겠나?"


그러고 보니, 용사의 열렬한 지지자인 흰놈도 가게에 있었다. 분명 마법사도 용사의 편을 들겠지.


"가, 가게에서 무력을 쓰는  금지 되어있지 않았던가, 아저씨? 규칙을 어길 셈이냐?"


"앙? 그 규칙을 만든  난데? 꼬우면 덤비시든가."

미친. 주인장이 만든 거 아니었나, 그 규칙?

그렇다면  새끼가 가게에서 제일  놈이란 건가?

그럼 얘기가 다르지.


"아 알았어, 알았어. 할게, 할게. 할 테니까 내 몸에서  떼."

이 등신들도 못 깝치는 놈한테 내가 들이대 봤자다.


"근데 어떻게 여섯 명이 나오냐? 이 녀석 포함해도 다섯 명이잖아."


꼬맹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가게에는 나와 꼬맹이, 마법사와 용사, 그리고 흰놈 뿐이다.

"저기 한명  있잖아."


용사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네? 저요?"

지목당한 제리스가 놀란 듯이 물었다.

일하고 있는 놈까지 숫자에 포함 시켰을 줄은 몰랐다. 일이라 해도 돈은 안 받는다는 것 같다만.

"어차피 더 이상 손님도   거 같으니까, 마음대로 해라 제리스."


"네? 그렇게 말씀 하신다면 뭐.."


제리스도 그렇게 싫은 건 아니었는지, 주인장의 허가가 떨어지자, 곧바로 등신들의 옆에 합류했다.

또 어깨에 누군가의 손에 올라왔다. 시간 끌기는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그래. 나간다, 나가."

바닥에는 신발이 빠질 만큼의 눈이 쌓여 있었다.

"바닥이 이 꼴인데 어떻게 뛰어 다닌다는 거냐 대체."


실내에 있을 때도 몸이 저절로 쳐졌는데, 밖에 나와서 눈을 직접 맞으니 움직이기도 싫다.


"뭐, 어때. 똑같은 조건인데."


마법사가 눈을 밟으며 말했다. 그보다 이 녀석들, 술 마시고 괜찮은 건가.

"그럼 술래를 정해볼까?"

용사가 팔을  채로 깍지를 끼고, 몸 안쪽으로 한 바퀴 돌려, 그 속을 보았다.

깍지 사이에 비치는 모양으로 점을 치는 것이다. 저런 짓 해도 질 놈은 진다.


"잠깐만, 누가 이 녀석한테 가위바위보 좀 알려줘라."

꼬맹이가 나에게 가위바위보가 뭔지 물어봤지만, 눈 때문에 서 있는 것조차 고역인 나는, 원래 가르쳐주기도 싫었지만, 가르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마법사가 꼬맹이를 옆으로 데려가더니 뭔갈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자! 이제 해 보자고."

마법사가 돌아오며 손바닥으로 내 허리를 두드렸다.


-가위바위보!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 새끼들 나만 빼고 전부 보자기라니, 무조건 짰다. 마법사가 내 등을 친 게 아마 신호였을 것이다.

"..아홉, 열ㅡ!"


술래가 된  까진 그렇다 치는데, 이 새끼들이 도망치지도 않고, 갑자기 돌을 집어 던지는 게 아닌가.

대체 술래잡기를 어떻게 배워 처먹은 건지 모르겠다.

돌 세례를 피하느라 이미 땀까지 흘려버렸으니,  이상 잃을게 없다. 이 병신 같은 놀이에서 완벽하게 이겨주마.

우선, 상황을 분석하자.


일단 여긴 존나게 넓은 산이다. 체력에 모든 재능이 몰려 있는 이 녀석들 상대로, 10초나 되는 시간을 세고, 뛰어서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최대한 몸을 숨기고, 몰래 접근하여 술래를 넘긴 뒤, 빠르게 시야에서 벗어나, 은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부스럭 부스럭


수풀 사이에서 소리가 났다. 누군가 저기에서 움직이고 있다.

외투도 흰색이고 머리도 흰색이라 멀리서는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멈춰 서서는 보호색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양심도 없는 놈이었다.


자세를 더 낮추어 포복으로 전환하고 수풀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쏴아아아.


수풀에 가까이 가자, 안쪽에서 물줄기가 흐르는 소리와, 연기가 올라오는  보였다.

이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거다. 오줌이다.


오줌을 누고 있는 게 확실해진 이상, 소리를 감출 필요도, 천천히 다가갈 필요도 없어졌다.

오줌을 누면서 뛰지는 못할 테니까.

"잡았다, 이 새끼야!!"


"으아아악!!"

흰놈이 놀랐는지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 미친놈이 갑자기 몸을 틀어서 물줄기를 나에게 향했다.


간발의 차로 사각지대에 몸을 던져, 아슬아슬하게 그것에 닿는 것만은 면했다.


몸을 다시 일으킨 나는, 곧바로 흰놈의 등을 두드리며 술래를 넘겼다.


"오줌 싸면서 10초나 세시지, 변태새끼야!"


그리고 지금 까지 보존해 뒀던 모든 힘을 사용해 흰놈에게서 벗어났다.

뒤에서 알아들을  없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풀에서 멀리 도망쳐 온 나는, 곧바로 숨을 곳을 찾는 데에 착수했다.

한 번 자리 잡으면 절대로 발각 될  없는 곳. 등신들이 제풀에 지쳐 그만두지는 않는지 확인이 용이한 곳.  두 가지가 조건이다.


"오로넬, 여기야 여ㄱ.."

"쉿, 오로넬이 술래라니까. 조용히 해."

나무 위에서 꼬맹이와 용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술래 아니야! 방금 넘기고 왔다고."


크고 잎이 많아 숨기 좋아 보이는 나무다. 또 나무인 만큼 높은 곳에 있어 감시에도 탁월하다.

용사  새끼도 애초에 뛸 생각이 없었단 거다.


"그럼 지금은 누가 술래야?"


"지금은 모르겠는데. 일단 내가 잡은 건 흰놈이야."

"흰놈? 아, 지크 아저씨? 아무튼 넌 아닌 거지?"

"그렇지."

나무에 거의  오르자 용사가 손을 내밀었다.

"휴우, 이제 여기서 버티고만 있으면 되겠군."


"그래도 조심해야 돼, 지크 아저씨 무진장 빠르거든. 뭣보다, 역대 토벌대 중에서도 괴물들만 모여 있었다는 17대 마왕토벌대의 유일한 생존자니까."

"그래?"

17대 토벌대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다.


대원들 하나하나가, 다른 기수였다면 용사 자리에 오르고도 남을 인간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는 전설의 기수.

그러나, 살아서 개선문을 넘은 자가  명도 없는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기수이기도 하다.


전멸한 줄만 알았는데 그 녀석이 생존자인가.

그런 괴물한테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뒤가 오싹해진다.


하악..하악..


어디서 숨소리가 들린다. 거칠고, 열기가 담긴.


이 녀석들은 아니고.

혹시.. 위..?

"찾았다!!!"


절규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내가 앉아있는 가지보다 더 높은 곳에, 그 놈이 있었다.

하얀 입김을 내뿜고 있는, 짐승이.


-으아아아악!!!

"빨리 도망쳐어어!!! ..엉?"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뒤를 확인했다. 거기엔 남겨져 있는 꼬맹이와 용사, 그리고 그 두 명을 무시하고 나에게 달려오는 흰놈이 보였다.

"왜 나만 쫓아오는 거냐고!!"

"숨어서 시트린이랑 노닥거리고 있다니, 절대 용서 못 한다아악!"


"야!! 이거 술래잡기라고! 놀이라고 놀이! 감정 실지 말라고!!"

아무튼 잡히면 곱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체력도 별로 안 남았는데,  같은 일이다.

"오로넬! 이쪽이야!!"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두놈 빼고, 나한테 반말을 쓸 사람은 한 놈밖에 없지.

오른편에서 마법사가 손을 흔들었다. 지금 쫓기고 있는 게 보이지도 않는 건가. 무슨 생각이지?

"야! 이 새끼 지금 술래잡기가 아니라 날 죽이려는  같은데, 어떡하냐!!"


"알겠으니까, 빨리 이쪽으로 와!!"

마법사에게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마땅히 다른 선택지도 떠오르지 않은 나는, 마법사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근데 괜찮은 거 맞지 이거? 저 놈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나 도와줄  있는 거 맞지?


그런 생각이 겹치는 와중에, 내 발은 마법사를 지나쳤고, 그걸 확인한 마법사는, 눈이 덮인 바닥에서 무언가를 당겼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묶여져 있던 끈이 팽팽해지면서 모습을 드러냈고, 전속력을 내고 있던 흰놈은 줄에 걸려, 나무 몇 십 개나 되는 거리를 날아가, 눈 속에 박혔다.


"허억, 허억. 살았다.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 놈이구나, 너."

무릎을 잡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생명의 위기를 느낀 건 오랜만이다. 그것도 이딴 병신 같은 놀이로.


"생각보다는 뭔데? 나한테 럼주 얻어먹으면서 살고 있는 주제에."

싫으면 가게에서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방금  도와준 참이니 한 번 참기로 했다.


"술래잡기가 원래 이렇게 살벌한 놀이였던가."

나무에 기대어 숨을 돌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근데, 술래가 저 모양인데 계속할 수 있냐 이거?"

나는 흰놈을 가리켰다. 기절한 건지 뭔지,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응? 지금 내가 술랜데?"


마법사가 자신을 가리켰다.


"지랄하지 마, 그럼 저놈은 왜 나한테 달려든 건데?"

"모르지."


"니가 날 구할 이유는 또 뭐고?"

"잡으려고."


하.. 그것도 맞는 말이네.


"아오, 그럼 빨리 잡고 꺼져. 앉아서 쉴 거니까."

마법사는 가볍게 내 머리를 누르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다.

"어? 오로넬씨, 뭐하고 계세요?"

제리스가  앞에 나타났다.

"저 녀석한테 쫓겨 다니느라, 지쳐서 쉬고 있지."

나는 눈에 묻혀 다리만 보이는 흰놈을 가리켰다.


"지크씨잖아요? 어떻게 되신 거죠?"


"날 잡으러 오다가 여기에 걸려서 넘어졌지."


나는 기대어 있는 나무에 묶여 있는 끈을 토닥거렸다.

"여유롭게 앉아 계신 걸 보니 잡히지는 않으셨군요?"


"뭐, 그렇지."

저 놈한테는 말이지.

제리스 녀석, 나에 대한 경계가 점점 풀려가고 있을 거다.

그렇다고 섣불리 행동하면 안 된다.

녀석이 나에게 가장 가까워 졌을 때, 또 내가 곧바로 달릴 수 있는 자세가 되었을 때.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근데 너는 왜  숨어있고 돌아다니고 있냐? 다른 놈들은 죄다 숨어있던데. 이럴 거면 숨바꼭질을 하지."


"제 쪽으론 아무도 안 오길래, 저만 놔두고 다들 돌아가신  알아서요."

제리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술래가 저 꼴이 났으니,  하고 싶어도 못 할 걸?


"아, 그런가요?"

제리스가 내가 앉아 있는 나무쪽으로 걸어왔다.


"읏차, 그냥 다른 녀석들이나 찾으러 가자고. 술래도 없는데 무슨 술래잡기야."


나는 의심을 사지 않고 일어나는데 성공했다.


이제 언제든 달릴 수 있다. 저 녀석이 공격 범위내로 들어오는 순간, 바로 술래를 넘기고 도망쳐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저쪽으로 누가 뛰어간  본 것 같은데요."

아마 마법사겠지.

"그럼 일단 그쪽으로 가자. 빨리 집에나 가야지."


술래잡기가 끝났다는 분위기를 거듭 강조하며, 제리스를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녀석의 무방비한 등이 보인다.


바로.. 지금이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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