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누구든 살면서 한 번은 산타를 만난다. (13/108)



〈 13화 〉누구든 살면서 한 번은 산타를 만난다.

산타클로스라는 인간의 존재를 긍정하는가?


누구든 어렸을 때 한 번씩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년 12월 25일 마다 새빨간 옷을 입고, 새빨간 코를 가진 루돌프라는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면서,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전설의 할아버지를 말이다.

하지만 요즘 애새끼들은 아무도 그 전설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선물이 누구에게서 나오는 건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가정에서 지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산타의 전설은 어른들의 입맛에 맞게 고쳐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선, 산타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미움조차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산타는 그런 아이들. 고아들에게만 선물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순록과 썰매도 거짓말이다.

산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동물이든, 물건이든, 자신의 몸 단 하나의 힘만으로, 전 세계에 있는 고아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잘못 알려진 건 그의 이름이다.


그의 진짜 이름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썬더크로스이다.  유래는 순간이동과도 같은 그의 속도에, 번개마저 잘렸다는 일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약하면, 썬더크로스는 전 세계에 있는 고아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할아버지라고   있겠다.


"오오오..!"


웬일로 꼬맹이가 반응을 보였다.

"야, 그건 진짜 아니다. 크큭."

마법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쉽사리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어? 거짓말이야?"

꼬맹이가 되물었다.


"당연히 진짜지. 내가 산증인이라고."


다시 꼬맹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아니, 야. 내가 천년을 살았는데, 그런 미친 할아버지는 본 적도 없다. 지어내는 것도 어느 정도지, 썬더크로스가 뭐냐 썬더크로스가. 크큭."

"넌 천년동안 집 안에만 박혀 있었잖아. 방구석 폐인 새끼야."

"이 씨ㅂ.."

"맞지? 맞잖아. 반론 있으십니까?"

마법사가 지랄을 하기 전에 손가락질을 하며 제지했다.


"흐으음.. 그래. 맞는 말이긴 하지."


"거봐. 그리고 방금  입으로 천 년 살았다며? 고아한테만 간다니까? 니가 애야? 애냐고? 정신 똑바로 안 차려?"

"근데 상식적으로 전 세계를 하루 만에  수 있냐 이거지. 거기다 고아들한테 선물까지 나누어 준다고? 무슨 분신술이라도 쓰는 거야, 그 할배는?"


"말이 안되는 게 어딨냐? 내 앞에는 천  먹은 노인네도 있는데."


"이 새끼가 진짜..!"


"선물. 선물은 뭐 하면 받을 수 있어?"

분위기가 적당히 조져질 쯤에, 꼬맹이가 팔을 잡아당겼다.

이번엔 어떻게 마법사를 닥치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잘됐다.

"그냥 별 짓 안 한 거 같은데. 살다보면 그냥 와."


"그럼 나도 받을 수 있어?"


"나야 모르지. 근데  그렇게 선물에 집착하냐? 갖고 싶은 거라도 있냐?"

"말 안 해줄 거야. 썬더크로스한테 받을 거야."

"그래라.  양반이 줄지  줄지는 모르겠다만."


"그럼  뭘 받았는데?"


마법사가 물었다.

"난 뭐 받았더라. 아, 이거 받았었다."


나는 항상 다리 쪽에 숨기고 다니는 단검을 꺼냈다.

겉모습이야 투박하고 볼품없지만, 20년이 다 되어 가는 긴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현장에서 굴러 온 녀석이다.


"뭐야, 그냥 골동품이잖아. 썬더크로스가 아니라 폐품 줍는 할아버지 아니야?"


한방 먹였다는 듯 쿡쿡대는 마법사였다.


"이 검으로 쓰레기들 처리를 좀 하긴 했지. 생긴 건 이래도, 날은 끝내주게  들거든."

뽑은 검을 이리저리 돌려 보였다.

"나도 검. 검 받을래."

"썬더크로스한테 받을 거라며. 왜 나한테 난리야."

"오로넬이 썬더크로스한테 말해줘."

말도  되는 걸 부탁하는 건 꼬맹이들의 종족 특성이다. 적당히  귀로 듣고 흘리도록 하자.

"근데 너, 검이  필요하냐? 맨몸으로도  죽일 수 있으면서."

"무슨 소리야?"


마법사가 끼어들었다.

"너 술래잡기 할   봤냐? 이 녀석이 달리는 속도."

"좀 빠르기는 했지."


"좀 빠르기는 무슨, 어떤 인간이 좀 빨리 뛴다고 눈밭이 흩날리고 강풍이 부냐?"

"많이 빠른가 보네."


"아무튼, 달리는 것만 해도 그 정도라고. 여기 올라오는 길에 암벽이랑 동굴 같은 거 무너진 거 있었지? 그거도  이 놈 짓이야. 온 몸이 흉기라니까."


"조각도 없이?"


"조각도 없이."

"어떻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돌리고 있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어 술잔 옆에 놔두었다.


"아무튼, 필요 없잖아 검. 이왕 부탁하려면 다른 걸 부탁하라고. 좀 유용한 거. 부모님 달라고 해보던가. 나 좀 혼자 살게."


"와,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너."

"안 돼. 검이 좋아."

"왜? 멋있어서?"

"응."


"그래, 검. 보기만 하면 멋있지. 근데 들고 다니긴 무겁지, 손질 안하면 녹슬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에요. 그런 걸 다 할 수 있겠냐? 니가?"


"할  있어."

"말이나 못하면."

뭐, 이 녀석에게 썬더크로스가 온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다. 나도 그 날 한 번을 빼면 평생 만나지 못했으니까. 헛된 꿈을 꾸는 것 정도야 마음대로 하게 해 주자.

끼이익.


"어서옵쇼."

이제 술을 마시기엔 꽤나 늦은 시간일 텐데, 어떤 등신이 들어온 모양이다.

쿵! 쿵!

걸음소리와 함께 바닥이 울린다. 어지간히 거구인 듯하다.

쾅!

꼬맹이의 옆자리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올려졌다.


"오랜만이군 도리안. 이건 늘 가져오는 선물. 단골들이랑 잘 나눠 먹으라고."

"루..루돌프..! 루돌프야..!"

마법사가 떨리는 손으로 옆을 가리켰다.


마법사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온몸이 새빨갛게 얼룩져 있는 순록이 초점 없는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선물..? 너 혹시 썬더크로스야?"

꼬맹이가 순록에 손을 얹고 있는 거한을 향해 말했다.

"응? 뭐야, 내가 언제 너한테 선물 준 적이 있던가, 꼬맹아?"


써..썬더크로스다!!


틀림없다. 저 상처투성이인 얼굴, 머리는 하나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풍성한 수염. 그리고 사람 머리통도 쪼개 버릴 수 있을 거 같은 저 알통! 내가 19년 전에 만난, 그 썬더크로스다.

"아니, 아직  받았어. 그러니까 검 선물해줘. 검."

"무슨 소리야. 옆에 부모도 다 있구만.  고아들만 챙긴다고."

응?


"부모 아니다."

눈을 부릅떴다. 보호자라는 말은 넘길  있어도, 부모라는 말은 못 참는다.

게다가 부모라고 했다는 건,  옆에 있는  녀석과 나를 묶어서 봤다는 말이다.

"뭐야, 아니야? 아, 다시 보니 하나도 안 닮긴 했네."

"조심하라고 할배. 어떻게 하면 이딴 할망구랑 내가 부부로 보이는 거야?"


"뭐? 노총각 냄새 풀풀 나는 놈이, 나랑 부부 취급 해 준 것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노총각 냄새? 내가 첩보원 생활 하면서 여자들을 얼마나 끼고 놀았는데, 천 년 동안 연애도 못해본 니 냄새겠지."

"이게!!"

"아.. 시끄러우니까 그만 좀 하지?"


할배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늙어서 노망이 왔나보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건데.

"어이, 썬더. 오랜만이네."


순록을 가지러 온 주인장이 인사를 건넸다.


"그러게 말이다. 아~ 이날이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러고 보니 올해는  번 깼다면서?"


"아니, 살고 있던 동굴이 갑자기 무너져서 깨버렸지 뭐냐. 아, 이것 때문에 하루 만에 선물 다 못 전해주는 거 아닌지 몰라."


술잔을 받아  썬더크로스는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서 주인장과 이야기를 계속했다.

근데 암만 봐도 저 동굴 이야기는 꼬맹이가 부순 동굴인 것 같다.


"한 번 깼다니, 당신 1년 내내 잠만 자고 있는 거야?"

궁금한  못 참는 마법사다.

"1년은 아니고 1월부터 11월까지는 자지. 내가 임마, 하루 만에 전 세계를 다 돌아야 되는데, 그 정도는 자줘야 힘이 비축되지. 안 그러고선 절대 못해."

"잠만 자는데 그 근육은 어떻게 만든 거야?"


"이건 뭐, 12월 1일에 눈 떴을 때부터 계속 운동해서 만드는 거지."


이건 체질이다. 그것도 존나 오지는 체질. 그걸로 밖에 설명이  된다.

1년 내내 잠만 자고는, 일어나자마자 운동을 한다고? 평범한 사람은 운동을 한다는  떠올리지도 못  뿐더러, 살과 근육도 다 녹은 뼈 밖에 없는 상태에서 운동을 할 수도 없을 거다.

애초에, 1년 동안 잠만 자는 것 자체가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났다.

마법사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어,  단검은.."

할배가 내 단검을 집어 들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런가. 나에게는 19개월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세상은 19년이 흘러버렸나."


"그 단검. 기억나, 할배?"


"그래.. 그런 눈으로 사람을 쳐다보는 꼬맹이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냐."


"아, 안구 건조증이라."


"아."

"뭐가 '아'야 미친놈들아."

할배가 단검을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래도 용케 19년 동안 이걸 들고 다녔군."

"날이 어지간히 잘 들어야지. 이제 그거 말고 다른 검은 잡지도 못해."


"허허, 그거 잘 됐네."

"그래서 왜 많고 많은 선물 중에 이걸 준건데?"

"아, 줄 게 없어서 내가 쓰던 거 준거야."

"뭐?"

"그해에 하청 놈들이 조사를 똑바로  해서 말이야, 니가 집계가 안 됐어."


"만나지라도 않았으면 아예 몰랐을 텐데, 하필 니가  앞에 나타나 버렸잖냐. 안구 건조증이었을진 몰라도, 그런 눈을  꼬맹이를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쓰던 단검이라도 준 거고. 아무튼 그 이후로 하청 놈들도 싹 갈아치웠지."

"하, 시발. 선물도 아니었구만."


"맘에  들면 지금이라도 선물 바꿔줄까?"

"아니 무슨 이 나이에 선물이야. 됐어. 이 녀석 선물이나 잘 챙겨주라고."


"맞아, 검 줘. 검."


꼬맹이가 스튜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나 참, 날붙이를 달라고 하는 꼬맹이는 또 처음이구만."


"썬더크로스면 잠자코 꼬맹이들 소원대로 해 주라고."

"아 그래, 그래. 얼마 전에 잘 빠진 검 하날 주웠는데, 그거라도 줄게."


"그렇댄다."


"와아, 검이다 검!"


어차피 일주일도 안 돼서 질릴 거면서, 벌써부터 들떠있는 꼬맹이었다.


"자, 순록고기 나왔습니다."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당 한 접시씩, 주인장이 뭔가를 가져다주었다.

-왜 우리는 안주냐!

-왜 저기 먼저 주는 거야!


드물게도 제대로 먹을 것의 냄새가 나는 요리에, 다른 등신들도 빨리 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꼬우면 앞자리에 앉던가! 니들 꺼 엎어버리기 전에 닥치고 기다리고 있어!"

주인장이 호통을 쳤다. 역시, 등신들을 방목하고 있는 인간답게, 제압도 확실하다.


접시에는 소스가 뿌려진 고기와 으깬 감자, 구운 채소들이 담겨져 있었다.

고기를 굽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양반이 이렇게 많은 재료를 담아내다니, 있을 수가 없다.


라고 생각한 순간에, 주방에서 제리스가 나오는 게 보였다. 그럼 그렇지.

"맛있어!!"

 먹어도 맛있어 밖에 말 못하는 꼬맹이지만, 이번엔 느낌표가 두개  붙었다. 두 배는 더 맛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먹어 줄만 한 건 역시 이거밖에 없지. 도리안이 만드는  아니거든."


할배가 포크도 쓰지 않고, 손으로 집어든 고기를 씹어 댔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다른 등신들보단 월등하게 정상적인 입맛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아직 불안하니 마법사가 먹는 것 까진 봐야겠다.


"뭐야 안 먹어?"


마법사도 나랑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아니, 나는 럼주 오면 같이 먹으려고.    먹냐?"

"나? 나는 너랑 건배하고 먹으려고 그러지."

"아, 생각해 보니 나 아직 잔을 다 안 비웠었네. 빨리 건배하자 그럼."


"어, 어. 그래."


마법사가 당황하는 듯했다.




마법사와 나는, 한참동안 잔을 입에만 댄 채 서로를 노려봤다.

사실, 내 잔에는 한 모금 정도만 남아있어서 이미 다 마신 상태다. 이 놈만 마시는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손가락으로 마법사의 옆구리를 찔렀다.

"푸흐흡!"

마법사의 입가에 정체되어 있던 맥주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휴, 술 아깝게 그러면 쓰나. 빨리 안주나 먹으시지."


나의 승리다.

"아 알았어. 먹는다, 먹어."

마법사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곤, 마지못해 포크를 집었다.


"윽, 맛없어."


역시 주인장의 손이 문제가 아니라 가게가 문제인 건가? '터가 안 좋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야, 근데 맛없다면서 왜 계속 먹냐."


"여기 묻은 맥주가 아까워서 그래. 신경 쓰지 마."


그런 것 치곤 걸신들린 것 마냥 흡입하는 중이다.

"이게 진짜 맛있다고? 진짜?"

"맛없어, 맛없어. 먹지 마. 안 먹어도 돼."

식기를 뺏어 가려는 마법사의 손을 급하게 저지했다. 뭐,  것도 먹을 생각인 건가?


정말로.. 먹을 수 있는 건가? 술집에서 안주를? 드디어?


일단은, 먹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맛이 없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은 뒤에 마법사에게 주도록 하자.

으깬 감자를 포크 위에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음..!"

"어때?"

마법사가 물었다.


"이게 왜 맛있냐?"


"그치?"

"말도 안 되네 진짜."


"말도 안 되지 진짜?"


"이러면 술을 더 마실 수 밖에 없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법사와 나는 식기를 내려놓고 제리스를 불렀다.

-럼주/맥주 한잔 더!


"예~"


추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12월 첫날의 밤은, 맛있는 안주와, 멍청한 등신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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