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생일이 되면 문을 열 때마다 설렌다 [1]
'생일' 그것은 하나의 생명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자,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나이가 되서 생일은 그저 지나가는 1년 중의 하루에 지나지 않지만, 마법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나저나 저 꼬마 생일은 언제야?"
항상 쓸데없는 걸 물어보는 여자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걸 물어 봤으면 좋겠다.
"몰라."
"너희 같이 지낸지 꽤 된 거 아니야? 그런 것도 몰라?"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데이린이랑 지낼 자격이 없는 분이네요."
"넌 뭐야?"
지나가던 제리스가 끼어들었다.
"아, 아니.. 음.. 어, 손님이 부르시네. 전 가볼게요~"
제리스가 도망치듯 사라졌다.
"아무튼, 물어 본 적도 없는 거야?"
"없겠냐? 주워 온 날 다 물어봤지. 근데 모른다잖아."
"뭐? 자기 생일도 모른데?"
"생일만 모르면 다행이지, 아는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자기 얘기를 해서인지, 꼬맹이가 스튜를 우물거리며 이쪽을 쳐다봤다.
"뭘 잘 했다고 쳐다봐. 팍 씨."
"아는 거 있어."
"뭔데."
"내 이름은 데이린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하던 거나 계속 해라."
꼬맹이는 다시 그릇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어떡할 거야?"
"뭘 어떡하는데?"
"꼬마 생일 말이야. 아직 어린데 1년에 한 번은 생일파티 같은 걸 해 줘야지. 그게 애들 정서에도 좋다고."
"요즘 꼬맹이들은 그렇게 사치스런 생활을 하면서 크는 거냐?"
생일파티 같은 건 소설에서나 읽어볼 법 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런 어렸을 때의 추억들이 나중에 한 사람으로써의 정체성을 확립 시켜준다고."
"흐흠.. 그래서 너는 그런.."
마법사가 이쪽을 노려봤다.
"아무것도 아냐."
"잠시 따라와 봐."
멱살을 잡으며 마법사가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아, 일단 따라오라고."
영 좋지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마법사에게 끌려 나갔다.
"아, 뭐? 대체 뭔데?"
"꼬마 생일 말이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아까도 말했잖아."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다.
"그럼 내일 해버릴까?"
"뭘? 자살? 아! 아, 아! 장난이야, 장난!"
마법사의 손에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생일파티 말이야, 이 새끼야.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냥 해버리자고."
"니 생일도 아닌데, 왜 지랄이야, 지랄은!"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내 머리카락이 뜯겨 나갔던 것인가.
"재밌잖아, 파티. 꼬마도 분명 좋아할 거라고."
"니가 하고 싶은 것뿐이잖아."
마법사는 말없이 웃고 있었다. 부정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뭐 그럼, 깜짝 파티? 그런 느낌으로?"
"오, 깜짝 파티 좋네, 그걸로 하자."
"난 꼬맹이랑 같이 와야 하니까 준비 같은 거 안 해도 되지?"
저 녀석이 어떻게든 파티를 할 심산이라면, 내가 해야 할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닌, 가장 피해를 적게 보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인솔자라는 역할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이것만큼 좋은 자리도 없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꼬마한테 말하지만 마. 말하면 깜짝 파티고 뭐고 없으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말 같은 거 별로 하지도 않으니까."
"다른 의미로 좀 걱정되는 집안이네."
일련의 이야기는 끝이 났고, 마법사는 나온 김에 담배 한대만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담배는 원래 밖에서 피우는 거다. 이 미친놈아. 나온 김에 밖에서 피우는 게 아니라.
"어디 갔다 온 거야?"
드물게도 꼬맹이가 행적을 물었다.
"아, 잠시 오줌 좀 싼다고."
"둘이서 같이?"
"저 녀석이 갑자기 크로스를 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생일 이야기를 감추기 위해서라곤 하나, 터무니없는 화제를 꺼낸 것 같다.
"크로스?"
하지만 뱉어버린 말은 담을 수 없다.
"그것도 모르냐? 역시 꼬맹이구만."
"그게 뭔데?"
"크로스란 건 말이야, 오줌을 이렇게 x자로 교차시키는 거야."
"그걸 왜 해?"
나도 몰라, 시발.
"재밌거든."
"그럼 나도 해 볼래."
"아, 안 돼 안 돼. 방금 오줌 싸고 왔는데 나올 오줌이 있겠냐?"
이 미친 꼬맹이. 같이 오줌 싸는 거라니까. 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 거냐?
"내가 참고 있을 테니까, 화장실 갈 때 같이 가."
"그러던가."
좆됐다.
이 나이 처먹고 크로스라니.
이 나이 처먹고 애새끼랑 크로스라니!!
게다가 오줌이라는 말을 의식하자마자, 방광에 있는 물의 흐름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방금 싸고 왔다고 해서, 지금 나가자고 할 수 도 없는데, 단단히도 좆 돼버렸다.
일단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자.
그럼 자연스레 머리에서 잊혀지면서, 다시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꼬맹이, 너. 생일파티가 뭔 줄 아냐?"
"몰라."
"생일은 뭔 줄 알지?"
"태어난 날."
"그래. 그날에 아는 놈들 죄다 불러서 병신같이 노는 게 생일파티야. 선물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고."
"선물?"
"그래, 선물. 태어난 거랑 선물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준다더라."
"나도 선물 받고 싶어."
썬더크로스 때도 그렇고, 선물이라는 말만 나오면 받고 싶다고 난리다.
"너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잖아."
"맞아. 기억이 안나."
"그래 가지고 생일파티를 할 수나 있겠ㄴ.."
"뭐 하는 짓이야 오로넬!!"
갑자기 나타난 마법사가 등짝을 때렸다.
조금만 더 괄약근에 힘을 주는 게 늦었으면, 바지고 바닥이고 곱창이 날 뻔했다.
"너야 말로 뭐하는 짓인데, 이 미친놈아! 뒤질 뻔 했잖아!"
"꼬마한테 벌써 생일파티에 대해 말하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멍청아!!"
신경질을 내면서도 꼬맹이에겐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외치는 마법사였다.
"생일파티도 모르는 놈한테 생일파티를 해줘봤자, 뭔지 알겠냐고! 일단은 그게 뭔지 알아야 놀라든 말든 할 거 아냐!"
"뭐야, 그런 거였어? 난 또, 깜짝 파티 하는 거 알려주고 있는 줄 알았잖아."
"으아악, 시발! 그딴 같잖은 이유로 내 등을 친 거냐 이 새끼!"
방광에서 못질이라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랫배가 쑤셔오고, 자연스럽게 허리가 구부러졌다.
"아 미안, 미안. 그렇게 욕 할 거 까진 없잖아."
"아니, 넌 시발 욕을 먹어야 돼. 으아악!"
마법사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뭐, 뭐야, 왜 그래?"
"오줌 마렵다고오..!"
"그럼 갔다 오면 되잖아."
"아까 꼬맹이가 뭐 하고 왔냐고 해서, 오줌 싸고 왔다고 했다고..!"
"저런."
"저런이 아니지 시발! 겨우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니가 쳐서 다시 좆 됐잖아! 어떡할 거냐고..!!"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해 줄까, 그럼? 뭐 의자 밑에서 입이라도 벌려 줘?"
"아악, 미친 새끼."
"그냥 갔다 오라니까. 원래 술 마시면 오줌도 자주 나오잖아."
그냥 오줌 싸고 왔다고 했으면 진작에 그렇게 했지..!!
으아악, 시발! 근데 이제 진짜 한계다..!!!
~
쏴아아아.
"나는 왜 오로넬처럼 멀리까지 안 나가?"
"나는 임마, 오줌 구멍이 앞으로 나와 있잖아."
"나도 앞으로 나올래."
"어허. 그건 나오고 싶다고 나오는 게 아니에요! 다 쌌으면 빨리 들어가기나 해. 스튜 뺏어 먹기 전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다닥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꼬맹이였다.
"시발."
안 그래도 자괴감에 젖어 있는데, 앞에 있는 나무에서 용사가 튀어 나왔다.
"넌 또 왜 거기서 튀어나오는데, 미친놈아."
"아니, 푸흐흡. 여기서 오줌 누고 있었는데, 큭큭. 데이린이랑 크로스 하는 게 너무 웃겨서, 하핳하하!"
하필이면 이런 놈한테 보일게 뭔가. 가게 밖에 누가 있는지 살필게 아니라, 가게 안에 누가 없는지를 살폈어야 했다.
"아~하하. 아, 잘 웃었네. 근데 너 언제까지 싸고 있을 거야?"
용사도 꽤 긴 시간동안 웃고 있었는데, 내 방광에선 아직도 물을 배출하고 있었다.
"넌 언제까지 쳐다보고 있을 건데?"
"뭐 어때? 그것보다 더러운 것도 많이 봤는데."
하여튼, 여기 여자 놈들은 창피한 걸 모른다.
"으으으..!"
방광에 들어 있던 물을 전부 비우자, 그 허전함을 메우듯, 요란스럽게도 몸이 떨려왔다.
"왜 데이린이랑 크로스를 하고 있던 거야?"
"말하자면 좆같은데, 다른 얘기 하면 안 되냐?"
추운 몸을 달래기 위해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용사가 말을 걸었다.
"혹시 생일 선물이야? 크크킄..!"
"뭐야, 파티 이야기 벌써 들었냐?"
이 녀석은 아직 못 들었을 텐데.
"아까 여기서 들었는데?"
"어디 있었는데?"
"저기서 오줌 누고 있었어."
"방금도 눴다며."
"방금 다 싼 거야."
똥이라도 싼 건가, 이 년은? 나한테 오줌 늦게 싼다고 말 할 처지가 아닌데?
"너도 선물 주려고?"
"당연하지. 데이린이 마음에 들 만한 걸로, 끝내주는 걸 준비할 생각이야."
"뭘 주던 상관은 없는데, 갑옷이나, 검 같은 건 절대 가져오지 마라."
그런 걸 받아 봤자, 쓸데도 없이 방구석에서 썩어나갈 게 뻔하다.
"아. 왜? 내가 입던 갑옷 주려고 했는데."
용사가 입던 갑옷이면 엄청난 값에 팔릴 것에 틀림없고, 그 돈으로 꼬맹이가 원하는 걸 얼마든지 사줄 수 있겠지만, 갑옷 자체를 주는 거라면 받지 않겠다.
"니가 입던 거 줘봤자 맞지도 않고 쓸 일도 없다고. 안에서 냄새나 나겠지."
"냄새가 왜 나! 벗고 나서는 항상 구석구석까지 씻었다고!"
냄새 얘기를 하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용사였다.
"혹시 몰라. 종종 체취가 엄청 강한 놈들이 있거든. 그런 놈들은, 이미 코가 썩어서 자기 냄새도 잘 모른다고."
"아니야! 못 믿겠으면 한번 맡아보라고! 자!"
용사가 성큼성큼 걸어와 팔을 내밀었다.
"으, 지린내."
"뭐? 그럴 리 없어. 다시 맡아봐!"
팔의 냄새인지는 모르겠는데, 용사가 가까이 오자 지린내가 났다.
"어. 너 내가 싼 오줌 밟았다."
내가 만들어 낸 물웅덩이에, 용사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깊게도 파였다.
"으아악, 뭐 하는 짓이야! 왜 남에 발에다가 오줌을 싸!"
용사가 발을 들어보더니 경악을 했다.
"싼 게 아니라 니가 밟은 거지. 아까까지 싸던 거 뻔히 봐놓고 그쪽으로 걸어 오냐?"
"어떡할 거야! 신발에 지린내 베잖아."
"니가 힘껏 밟으니까 그렇지."
"이러면 가게에 못 들어 가잖아아."
"잘 됐네. 지금부터 마을로 내려가서 선물 고르면 되잖아. 끝내주는 걸 선물해 준다며?"
"그렇긴 한데.. 가게에서 같이 마시던 사람들한테 미안하잖아."
"아유,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말해줄게. 오줌 지려서 집 갔다고 하면 되지?"
"아! 역시 너한테는 못 맡기겠어. 그냥 들어가서 계속 마셔야지. 누가 냄새난다고 하면 니가 바지에 오줌 지린 거라고 할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용사는 그렇게 통보하고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그럴거면 나보다 먼저 들어가면 안 되지 않나?
홀로 남겨진 나는, 겨울바람을 맞으며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변함없이 사람 멍 때리게 하는 하늘이다.
"오로넬! 뭐해! 안 들어오고!"
얼마나 멍을 때리고 있었는지, 술 상대가 없어진 마법사가 날 찾으러 왔다.
"밖에서 뭘 그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었던 거야?"
자리로 돌아오자 마법사가 물었다.
"그냥 멍 때리고 서 있었지."
"하도 안 들어 오길래 취해서 꼬마도 잊어버리고 집에 간줄 알았잖아."
"내가 너도 아니고 벌써 취하겠냐? 이제 두 잔짼데?"
자리를 오래 비우긴 했는지, 나갈 때보다 마법사의 눈이 더 풀려있었다.
"그래서, 시간은 정했냐?"
아까 전, 결국 참지 못하고 변을 보러 가려는데, 꼬맹이도 같이 나가는 이유를 크로스 하러 가기 위해서라고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내가 꼬맹이와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등신들과 상의해서 꼬맹이를 데려갈 시간을 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중에 주인공이 나타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7시쯤에 오면 돼. 그때까지 준비 해 둘게."
"7시? 그 시간은 너무 늦은데. 6시 30분까지 어떻게 안 되겠냐? 이 녀석, 6시부터 밥 달라고 지랄을 한단 말이야."
"30분? 조금 서두르면 충분히 될 것 같긴 한데.. 우리에겐 저 녀석이 있으니까."
마법사가 가리키는 곳에는, 소름끼칠 정도로 활짝 웃고 있는 제리스가, 근육과 핏줄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처럼 힘을 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아, 저 놈도 있었지. 나 쟤가 무슨 선물을 가져 올지 벌써부터 무섭다. 팬티 같은 거 사오면 어떡하냐 진짜."
"에이.. 결혼반지가 아닌 게 어디야."
결혼반지는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역시 아는 게 많아서 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좆같음이 차원이 다르다.
"일단, 시간도 됐으니까 난 집에 갈 거거든? 그러니까 내가 가고 나면, 저놈이 무슨 선물 가져올 건지 꼭 좀 물어봐줘. 가능하면 다른 놈들도. 갑옷이랑 검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해. 절대로."
"어? 어어. 알았어."
대답이 시원찮다. 그래도 맡길 놈은 이놈뿐이다.
"꼬맹아 일어나라, 집 가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꼬맹이의 등을 두드렸다.
"그럼 간다?"
'믿고 간다.'는 신호를 받은 마법사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한 거야?"
가게 밖으로 나오자 꼬맹이가 물었다.
"말이야 맨날 하잖아. 쓸데없는 말만 하지만."
"평소에는 나한테까지 다 들리는데, 오늘은 안 들렸어."
이거 이미 들킨 거 아닌가? 느낌이 안 좋다.
"아, 그건 마법사 녀석이 목이 안 좋아서 그래. 나도 엄청 가까이서 들어야 들리더라고. 그래서 그런 거겠지."
"으음.. 그럼 깜짝 파티가 뭐야? 생일파티 같은 거야?"
!!!
"무슨 말이야 그게. 누가 그랬냐?"
"시오가 말 하는 게 들렸어."
"그래? 난 그런 거 못 들었는데. 생일파티랑 헷갈린 거 아니냐? 오늘 그거랑 관련된 얘기를 좀 많이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해."
"그래. 잘 못 들은 거라니까."
어차피 제대로 들은 거라고 우겨도, 내가 못 들었다고 우길 생각이었다. 그대로 납득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아무튼, 오늘은 많이 늦었는데, 방으로 돌아가면 씻은 다음에 누워라. 그대로 엎어지지 말고."
"알았어."
벌써부터 들켜버린 것 같은 꼬맹이의 생일파티까지 앞으로 18시간.
과연 등신들은 어떤 파티를 준비해 놓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