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생일이 되면 문을 열 때마다 설렌다 [2]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침이 되었나 보다.
굳게 닫혀져 있는 커튼을 걷었다.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아침은 사람들 마다 기준이 다른 법이다.
널브러져 있는 책상에서 성냥을 집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 쓴 성냥은 바로 끄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주전자를 데우기 위해 한 번 더 사용한다.
"후우.. 선물이라.."
오늘은 오로넬이 주웠다는 꼬마의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다.
물론 하자고 한 건 나고, 파티는 재밌지만, 선물을 고르는 일 만큼은 재밌지가 않다.
말을 하지 않고서야 상대가 뭘 좋아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후우.. 다들 잘 알아들었겠지? 이상한 거 가져오면 내가 오로넬한테 한소리 들을 텐데."
오로넬의 말대로, 뭘 선물할 것인지 사전 조사를 해 보았는데, 그의 염려대로 9할이 검과 갑옷이었다.
일단은 다른 걸로 바꾸라고 말 해두긴 했는데, 뭘 가져 올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왜 안 되는지 이유라도 가르쳐 줬으면, 내 선에서 조금 더 쳐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건 오로넬의 잘못이다.
주전자의 뚜껑이 들썩거렸다.
갈아둔 원두를 필터에 담아 컵 위에 두었다.
새어나오는 수증기에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 본다.
주전자의 불을 끄고 필터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여기까지의 일을 마치면, 피우던 담배가 끝이 난다.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후, 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의자에 앉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이 공정대로 움직여야 한다. 하루의 첫 단추를 끼워 넣는 의식이다.
그걸 위해서 일부러 필터도 싸구려로 바꿨다.
커피를 내리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이다. 담배가 끝나면 곧바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
원두는 딱히 가리지 않는다. 커피를 딱히 맛으로 먹는다기보다는, 속을 따뜻하게 데우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어디보자 선물.. 할 만한 게.."
의자를 돌려 작업대를 살펴봤다.
마을에 있는 흔해빠진 물건들 보다, 이 시대에는 없는 물건을 주는 게 꼬마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일단은 신기할 테고 말이다."
"어? 이거 괜찮지 않나?"
때마침 눈에 들어온 물건에, 손을 뻗었다.
~
"흐~흠, 데이린한테 무슨 선물을 해 줄까~"
점심때가 됐지만 배가 고플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잠도 오지 않는다. 데이린의 생일 파티라니, 기대돼서 참을 수가 없다.
결국, 잠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오로넬 씨의 댁에 찾아가서 데이린에게 줄 남색 파티용 드레스를 전했는데, 실컷 두드려 맞기만 하고 쫓겨났다.
파티의 주인공인 데이린이 드레스도 없이 서 있을 걸 생각하니 너무 불쌍해서 드레스는 문 앞에 두고 왔다. 역시 오로넬 씨는 데이린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
자고로 어린 아이들에게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법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 뒤에 집으로 돌아간들, 할 일도 없었기에, 마을을 아무렇게나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주변의 상점들이 시끌벅적 해졌다.
"자, 자! 예쁜 옷 많아요, 예쁜 옷!"
흐음.. 옷이라, 옷은 평소에도 매일 선물하고 있어서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데이린의 마음에 들만할 선물을 찾자.
그러고 보니 어제, 시오 씨가 무슨 선물을 할 건지 물어 보더니, 결혼반지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물론, 데이린 같이 귀여운 결혼상대라면 나야 환영이지만, 그건 적어도 몇 십 년 후의 일이다.
나는 그저, 데이린이 행복하고 무탈하게, 성년이 될 때까지 지켜줄 뿐이다.
"흐음.. 정말 행복한 고민이네."
"어~이, 거기 잘생긴 총각!"
"이것도 별로고.. 저것도 별로.."
"어~이, 금발머리 총각!"
"예?"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대륙에서 금발은 꽤나 드물다고 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허름한 노점이 있었다.
"총각, 특별한 사람에게 줄 선물을 찾고 있지?"
수상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연륜이 느껴지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걸 어떻게..?"
"뭘. 여러 가게를 들락거리는 걸 보고 그렇게 생각 했을 뿐일세. 자네가 쓸 물건인데 여성용 속옷 가게 앞을 어슬렁거리진 않을 거 아닌가? 변태라면 모르겠지만."
"그 말 대로에요, 할머니."
"할머니가 아니야. 부르려면 적어도 아줌마라고 불러주게."
말투로 보나, 목소리로 보나, 어딜 봐도 할머니인데, 연세에 민감하신 분인가 보다.
여성의 불편한 곳은 건드리지 않는 게 신사라고 할 수 있겠지.
"네, 아주머니. 그래서 저한테는 어떤 용무시죠?"
"호오, 아주머니! 좋은 울림이야! 자네에겐 특별히 다른 사람에겐 팔지 않는 물건들도 보여주지."
"이게 다 뭐하는 물건인데요?"
"하나같이 영험한 힘을 가진 물건들이지. 예를 들어 이 장갑, 이 장갑을 끼고 있던 사람들은 한 번도 손을 다친 적이 없어."
노파가 흰색 면장갑을 가리켰다.
"장갑을 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아니지, 아니지. 장갑을 껴도 손을 다치는 일은 은근히 많지 않은가? 넘어질 수도 있고, 검에 찔릴 수도 있고 말일세."
"그럴 일이 더 적지 않나요?"
"알겠네, 알겠어, 다른 걸 보여주지. 그럼 이 반지는 어떤가? 이건 자네가 원할만한 물건일걸세, 이 반지를 선물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반하거든."
"반드시요? 혹시 이 물건들, 조각인가요?"
"오오, 젊은 총각이 조각을 알고 있을 줄이야.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조각은 아닐세. 그저 미신이 서려있는 사연 있는 물건들이지."
"그럼 사기인 게.."
"사기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지. 어디까지나 미신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이 물건들의 사연은 전부 진짜라네. 내가 직접 목격했던 것들이니까 잘 알고 있지."
직접 보셨다고? 이것들을 전부? 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 거지? 윽,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쉰내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내 냄새 아니야!"
"네?"
"아, 아니. 내말은, 가격은 정말 싸게 받을 테니, 속는 셈 치고 한번 사보는 게 어떻겠나?"
"흐음. 그래도 저는 제 인생은 스스로 이루고 싶은걸요. 미신 같은 거에 의지하지 않고요."
"호오, 마음가짐까지 정말 마음에 드는 젊은이로군. 그렇다면 이 녀석을 꼭 보여주고 싶군."
"하.. 이게 마지막이에요. 이건 뭐하는 물건인데요?"
"이건 말이지.."
~
"오로넬, 오로넬."
"아아아아.."
나룻배에 탄 듯한 기분이다. 물살에 따라 내 몸까지 함께 흔들린다.
"일어나, 오로넬."
"으어어.."
눈의 초점이 돌아오고, 바로 앞의 꼬맹이를 보자, 이곳이 배가 아니라 침대 위임을 깨달았다.
흔드는 빠르기와 표정으로 보아하건데, 틀림없이 저녁때가 된 것이다.
"몇시냐..?"
무슨 일이든 오래 하면 피곤한 법이다. 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고서야 잠만 잤는데 이렇게 피곤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여섯시야."
"으어어.."
몸이 너무 무거운 나머지, 기껏 일으킨 몸이 다시 침대로 엎어졌다.
"아, 다시 자면 안 돼. 일어나 오로넬. 일어나아."
꼬맹이는 흔들기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침대에 있던 나를 방바닥으로 질질 끌고 가더니, 옆구리를 잡고 들어,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얼른 준비해, 얼른."
얼굴을 비비고 시간을 확인했다. 꼬맹이는 내가 다시 바닥으로 엎어지지 않도록 등을 꽉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등신들의 파티 준비까지, 남은 25분 동안 무슨 핑계를 대고 저 녀석을 붙들고 있어야 할까?
"너 그게 옷 다 입은 거냐?"
"응"
양말도, 스타킹도 신지 않은 채, 롱 스웨터 한 벌만을 입고 있는 꼬맹이였다. 바지는 입고 있는 건가?
아무튼, 이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저거 입어. 오늘은 저거 입고 가야 돼."
제리스가 문 앞에 두고 간 남색 드레스를 가리켰다.
한창 잘 시간에 찾아와서는, 미친놈처럼 문을 두드리더니, 오늘 꼬맹이가 이걸 입고 와줬으면 좋겠다고 지랄을 하길래 실컷 때려 팬 후 돌려보냈다.
근데 옷은 두고 갔더라. 누가 들고 갔으면 어쩌려고.
"왜? 저거 불편해보여."
"사실, 오늘은 드레스의 날이거든? 꼬맹이들이 저딴걸 입고 다니는 날이지. 안 입고 가면 주인장이 스튜도 안 해줄 걸?"
되도 않는 구라를 쳤다.
"이잉.. 입기 싫은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말은 듣는 꼬맹이다. 솔직히, 재워주고 먹여주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거 입고 있어라. 난 샤워 좀 하고 나올 테니까."
이제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오래 잠들어 있어서 그런지, 두뇌 회전이 시원찮다.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역시, 가장 쉽고 간단한, 욕실에서 뻐기기 작전이다.
자고로 남자란 무엇이냐? 욕실에서 30분 동안 물만 맞고 서있는 족속들이 아닌가?
그에 비하면, 20분 뻐기는 것 정도야, 눈 깜짝할 새다. 공화제와 군주제의 장단점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내다보면 지나갈 것이다.
철컥 철컥!
언제까지 씻을 거냐고 보채며, 계속해서 문을 열려고 하는 꼬맹이를 제지하면서 겨우 20분을 버텼다.
"어후, 시원하네. 이제 가자."
"오로넬 너무 늦어.. 배고파.."
여관 밖으로 나오면 바로 가게까지 뛰어갈 줄 알았는데, 그럴 힘도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다. 이건 이거대로 잘 됐다.
가게 밖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파티에 대해 몰랐다면, 등신들이 다 죽은 줄 알았을 것이다.
꼬맹이도 위화감을 느꼈는지 섣불리 들어가지 못 하고 있다.
"뭐하냐? 안 들어가고."
"너무 조용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그거야 들어가면 알겠지."
꼬맹이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하듯 문을 가리켰다.
꼬맹이는 망설이면서도, 이내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끼이익
-와아아아!!!
-생일 축하해 데이린!!
등신들이 너나 할 거 없이 고깔모자를 뒤집어쓰고 박수를 쳤다.
그런 거 안 써도 충분히 멍청해 보이는데 말이다.
꼬맹이는 감동을 받은 건지, 어이가 없는 건지, 제자리에 멈춰 서있는 채였다.
"나 생일 아닌데."
후자인 것 같다.
"어차피 꼬마 너, 생일이 언젠지도 모른다며? 그럼 오늘이 니 생일인 걸로 하자고. 이제 기억 했지?"
마법사가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고깔모자는 쓰지 않았다. 등신 같아 보이긴 싫은 모양이다.
케이크 위의 초는, 꼬맹이가 10살처럼 보여선지, 꽂기 귀찮아서인지, 하나 밖에 꽂혀있지 않다.
"빨리 불어라. 그래야 앉지."
등이 밀려 케이크에 얼굴을 부딪힐 뻔한 꼬맹이는, 뒤를 돌아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불을 껐다.
-우후우우우!!
더 큰 소리로 환호하고 박수를 치는 등신들이었다.
분위기를 타서 꼬맹이한테 잔을 들고 뛰어 오는 미친놈은 없어서 다행이다.
자리에 앉자, 주인장이 고기가 가득 담긴 특제 스튜를 가져다 줬다.
본인은 생일파티 한정판이라고 하지만, 그냥 맨날 내놓는 스튜에 고기를 더 넣은 것뿐이다.
"자~ 데이린, 선물 받아야지."
용사가 무언갈 들고 꼬맹이의 뒤에 나타났다. 꼬맹이는 선물이란 말에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뒤로 돌아봤다. 대체 이 녀석에게 선물이란 뭘까.
용사가 꼬맹이에게 건넨 것은, 한손 안에 들어오는 원 모양의 작은 패, 토벌대의 증표였다.
20대 토벌대는 저 녀석 한 놈이었기 때문에, 저 패는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매우 희소가치가 높은 물건이다.
꼬맹이가 그 가치를 알아 줄 리는 없지만 말이다.
"이런 거 막 줘도 되냐?"
"괜찮아. 어차피 이제 왕국으로 돌아가지도 않을 거고."
당연하게도 이 패의 거래나 매매는 불법이다.
"그러냐."
그래도 본인이 괜찮다면야 뭐.
용사가 선물을 전하자, 다른 등신들도 하나 둘씩 선물을 쥐고선 줄을 지어서 꼬맹이의 앞에 섰다.
선물 중에는 이 녀석들이 줬다고는 믿기지도 않을, 머리핀과 인형 같은 것도 있었고, 사람새끼인가 싶을 정도로 요상한 선물들도 있었다.
특히, 집 앞에서 주워 온 것 같은 곡괭이를 선물한 놈도 있었는데, 그놈은 그 자리에서 곡괭이로 머리를 찍어줬다.
선물 행렬은 줄어들고 줄어들어, 요주의 인물인 제리스와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가져왔다는 마법사만이 남게 되었다.
"야, 니 거 먼저 보자. 저건 마지막에 확인 해야겠다."
원래 맛없는 음식은 가장 마지막에 먹거나, 버려야 한다.
그래서 마법사의 선물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내 생일도 아닌데 내가 나서서 확인 하는 것은, 이 모든 물건들이 내 방의 공간을 차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짜잔."
마법사가 내민 상자에는, 한손에 들어오는 낫 모양의 쇳덩어리가 들어있었다.
"총이잖아 미친새끼야."
"어, 맞다. 너도 총 알겠구나?"
바로 손잡이를 잡아서 마법사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둔탁한 타격음이 가게에 울려 퍼졌다.
"아!!! 존나 아프잖아, 시발! 왜?!"
"왜? 왜가 나오냐, 이 새끼야? 이걸 애새끼한테 쥐어줄 생각을 해? 사람 죽일 일 있나, 미친놈이."
"인생은 그렇게 배워 가는 거야. 인간은 무언가를 잃었을 때 비로소 깨달잖아? 길을 잃었을 때 지도의 유용함을 깨달고, 부모를 잃었을 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지. 그러니까 이것도.."
"개소리 하네."
막대를 다시 들어 올리자 마법사는 몸을 움츠렸다.
그 대화를 듣고 있는 다른 등신들은, 평소보다 더 등신 같은 얼굴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 애썼다.
그래. 이 쇠막대기. 총이라고 하는 쇳덩어리는, 내가 마가리스에 잠입해 있을 시절에 마법사가 만든 물건이다.
활이나 석궁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휴대성과 조작 난이도가 특징으로, 당시 조직 내에서도 이것에 대해 알고 있던 자는 한 손 안에 꼽는다.
물론, 그 정보를 털어간 나도 알고 있다. 그걸 받아본 놈도 알고 있겠지.
아무튼, 쓰기 쉬운 살상 무기를, 살아있는 살상 무기 곁에 둘 순 없다.
누군가 피해를 입는다면, 그건 십중팔구 꼬맹이와 같이 사는 나일게 뻔하다.
죽고 싶지 않은 이상에야 저걸 말리지 않을 놈은 없다.
"아니, 갑옷이랑 검 말고는 된다며?"
"다 무기류잖아! 척 보면 모르냐? 이런 걸 꼬맹이한테 쥐어 줘봐라, 가지고 놀다가 사람 한명 죽는 건 시간문제.."
"받을래, 저거."
꼬맹이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어떡해서든 받고 말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마을 사람들과 나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뭔갈 떠올려야 했다.
"야, 그럼 그거 빼. 그거. 그거 있잖아."
총을 가리키며 흔들었다.
"뭐? 총알?"
"그래. 그거. 빨리 빼 봐. 그거 없으면 작동 안 하잖아. 맞지?"
"맞긴 한데, 그럼 이걸 들고 있을 이유가 없는데?"
"지랄하지 말고 빼. 니 대가리를 치기엔 충분하니까."
"하~ 멋을 모르네."
총을 받은 마법사가 어딘가를 만지작거리더니, 무언가 분리되어 나왔다.
그것을 품속에 넣고, 다시 총을 꼬맹이에게로 건네는 마법사였다.
"멋있어."
빈껍데기만 남은 무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꼬맹이였다.
일주일 뒤면, 침대 아래에서나 보이겠지.
드디어 제리스의 차례가 왔다.
어제 마법사가 잘 말해 줬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믿고 싶다.
믿고 싶은데도, 뭔가 좆같은 게 나올 거 같은 기분이 멈추질 않는다. 제발 기분 탓으로 끝났으면 소원이 없다.
"제리스, 니가 마지막이다. 제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널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선물이었으면 좋겠구나."
나는 자상하게 어깨를 토닥였다.
"물론이죠, 오로넬씨!"
자신 있게 대답한 제리스는, 품속에서 고이 간직하고 있던 상자를 내밀었다.
가까이 가기 싫다던 제리스가, 받고 싶은 선물을 꺼내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꼬맹이의 표정이 참으로 오묘하다.
"흐음, 저 정도 크기면 결혼반지 같은 건 안 나올 것 같군."
"긴장을 풀지 마, 오로넬. 크기가 큰 만큼 뭐가 나올지 몰라."
마법사와 나는, 혹여나 상자에서 거지같은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며 그것을 지켜봤다.
"근데 니 것도 좆같은 거였잖아. 어딜!"
"어, 어! 나온다, 나온다!"
마법사가 말을 돌렸다.
"내 선물을 받아줄래, 데이린?"
마침내, 상자가 열렸고, 나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튀어나온 건, 지극히 평범한 목걸이였기 때문이다.
아니, 장식이 주먹만큼 큰 걸 보니 펜던트인가? 솔직히 그 둘은 구분이 안 간다.
아무튼, 그 원형의 장식에는,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바뀌는 투명한 보석이 가운데에 박혀 있었고. 그 가장자리에는 어딘가의 문자인지 기호인지 모를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거 설마, '나는 바보입니다' 같은 거 아니지?"
마법사의 의심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아니에요! 이건 부적이라구요, 부적."
"부적? 그딴 걸 진심으로 믿어?"
역시 과학의 수호자.
"이 목걸이는 몸에 재앙이 닥치는 걸 막아준다고 해요. 미신 같은 거 믿지는 않지만, 데이린이 별 탈 없이 지냈으면 해서요."
이 녀석은 재앙을 입는 쪽이 아니라 입히는 쪽인데. 괜한 걱정을 한다.
"오.. 멋있어."
꼬맹이도 마음에는 든 모양이다. 이 녀석이 쓰는 형용사는 맛있다와 멋있어 밖에 없다.
"자, 내가 걸어 줄게."
내친김에 꼬맹이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제리스. 하지만 웬일인지 꼬맹이는 순순히 목을 내밀었다.
펜던트 자체가 원체 커서 그런가, 땅콩만한 꼬맹이가 착용하니 머리가 두 개처럼 보였다.
"안 무겁냐?"
"응. 괜찮아."
"그래."
옆에선 자축을 하는 건지 제리스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지! 오늘은 파티니까 아무도 집에 못 가는 거다!!"
-와아아아!!!!
용사가 유리병에 든 술을 하나 들고 테이블 위로 올라가 소리쳤다.
잘 둘러보니, 다른 테이블에도 평소 가게에서는 내놓지 않는 술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파티 때 까지 이런 싸구려 술을 마시고 싶진 않은지, 마을에서 구매해 온 모양이다.
-와하하하!!!
-더 부어, 더 부어!!
그렇게 파티가 시작된 가게는, 바로 옆에서 하는 말도 근근이 들릴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 깨지는 소리, 엎어지는 소리, 별의 별 소리가 한곳에 섞여 들었다.
"오로넬은 선물 안 줘?"
꼬맹이가 물었다. 받아먹을 수 있을 때, 끝까지 빨아 먹으려는 모양이다. 같은 고아 출신으로서, 나쁘지 않은 자세다.
"받고 싶냐? 있긴 있는데."
"괜찮아. 선물이면 다 좋아."
"하.. 니가 괜찮다고 했다?"
나는 뒷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싸구려 선물을 꺼냈다.
"자."
"히에에엑, 단검이다, 단검! 무기는 안 된다더니, 니가 주려고 그랬던 거구나? 동네사람들 보소! 오로넬이 꼬마한테 단검 준다아아!!"
마법사가 미쳐 날뛰었다.
-오오오오~
사람 짜증나게 하는 건, 기가 막히게 잘 하는 놈들이다.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건 오히려 저놈들에게 빌미를 쥐어주는 거니까.
"으~ 오로넬 역 겨 워~"
근데 저놈들에겐 이미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하.. 이 새끼들이.. 술로 안 털린지 좀 됐지? 오늘 개박살 내 줘?"
"오~ 오로넬이 주량승부 하제!!"
"너넨 내일 아침에 일어날 생각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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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지 이성의 끈을 놔 버리자, 가게에는 제정신인 놈이 하나도 없었다.
주제도 모르고 나에게 덤빈 녀석들은 순식간에 진압되었고, 옆에서 자기네들끼리 마시던 놈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씩 뒤져갔다.
"으으으, 이제 나 밖에 안 남았구만."
"오로넬, 오로넬."
뻗지 않은 건 나 혼자 뿐인 줄 알았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물 고마워."
꼬맹이가 반쯤 감긴 눈을 간신히 붙잡고 서 있었다.
"..그 한마디 하려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냐?"
"오로넬이 감사 인사는 꼭 하라고 했어."
"다른 놈들한테는?"
"했어."
고작 그거 하나 때문에 잠도 안 자고 버티고 있다니, 웃기지도 않은 꼬맹이다.
"고마우면, 그걸로 찌르지나 말라고."
꼬맹이는 이제 대답이 없다.
"아ㅡ 나도 이제 잔다."
털썩.
가게에는, 더 이상 살아있는 녀석이 없다.
바닥에 널브러져, 한 자리씩 차지한 채, 오지도 않을 내일 아침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
오직 가게의 조명만이 살아남아 등신들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