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밤길에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1]
-히히이이잉ㅡ!
-월월!
-어우우우우ㅡ!
요즘들어 짐승 새끼들이 시끄럽다.
마을에서는 말 소리, 개 소리가 들려오고, 여기서는 늑대와 멧돼지 소리가 들려온다.
이 모든 일은, 저 남자가 가게에 오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야, 주인 양반. 오늘도 여기 술은 더럽게 맛없구만?"
"그래서 나도 잘 안 마셔."
뒤로 넘긴 주황색 머리와, 마부의 복장을 한 남자. 자신을 조지라고 이름 댄 남자는, 오늘도 싸구려 술을 마시며 실없는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가만히 보면 평범한 마부로 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지만, 이 가게에 굴러들어온 걸 보면, 멀쩡한 내력을 가진 인간은 아닐 것이다.
이제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길 찾아오는 놈들은 거의도 아닌, 확실하게 미친놈들뿐이라고.
"당신은 이딴 맛없는 술을 이런 이른 시간부터 마시러 오는 건가?"
언제 일어났는지, 어느새 내 옆까지 온 마부가 자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목소리를 아까보다 낮게 까는 걸 보니, 뭔가 심상치가 않다.
"내가 마시는 건 니가 마시는 쓰레기랑 다르거든."
가는 말이 고와도 오는 말이 좆같은 시대다. 상대방이 거지 같이 나오면, 이쪽은 당연히 더 거지 같이 대답하는 거다.
어째 불안하지만, 여차하면 단검도 있고, 꼬맹이도 있다. 뭔갈 저질러도 흰놈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테이블에 올려진 손에 정신이 팔려, 다른 손을 확인 하지 못했다. 녀석은 이미 검을 뽑은 상태였다.
"지랄하지 말고 사실대로 씨불여라. 여긴 왜 왔지?"
마부가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이 녀석 설마, 타국에서 온 첩보원인가?
내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판국에, 꼬맹이는 태평스럽게 스튜나 처먹고 있었다.
나는 마부와 눈을 마주쳐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들키지 않게 꼬맹이의 발을 건드렸다.
"응? 오로넬, 뭐해?"
시발, 그걸 또 정중하게 물어보고 있냐.
"말해두지만, 저 애가 허튼 짓을 해도 니가 죽는다."
검이 목으로 바짝 다가왔다.
"이런 거 가게에서 쓰면 안 돼."
꼬맹이가 엄지와 검지로 검을 잡았다.
"뭐, 뭐야 이거. 왜 안 움직여..!"
자신의 힘이 꼬맹이의 두 손가락 보다 못 하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마부였다.
똑.
그러던 말던, 꼬맹이는 그대로 손목을 꺾어, 검을 두 동강 내 버렸다.
검을 당기고 있던 마부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뭐야 이놈들, 나 같은 거 하나 잡으려고 이런 놈들을 보내!?"
무슨 뜻이지, 저건? 잡으러 와? 이 녀석, 도망자 신세인가?
"너 같은 놈 어떻게 하려고 온 거 아니니까, 닥치고 자리에나 앉아라. 싸우는 것 같잖아."
구경만 하고 있던 주인장이, 잽싸게 쓰레기통을 가져다주었다.
뭔가 싶어 쳐다보니 박살난 검을 향해 미친 듯이 삿대질을 했다.
기본적으로 방관주의인 주인장이지만, 가게는 깨끗했으면 한가 보다.
"뭐, 뭐? 날 잡으러 온 놈들이 아니라고?"
"그렇게 '나 잡아 줍쇼' 하고 드러누워 있는데 가만히 있는 거 보면 모르겠냐?"
"그, 그럼 여기엔 왜 있는 거야?"
"술 마시러 왔다니까."
"지, 진짜로 이 시간에 술 마시러 온 거야? 애 까지 데리고?"
"그래."
거기까지 들은 마부는 안심한 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휴.. 그냥 미친놈이어서 다행이네."
확실히, 대낮에 애 달고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고 있는 건 미친놈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걸 말하는 놈은 그 미친놈한테 다짜고짜 검을 들이댄 미친놈이다.
"너 마부 아니냐? 옷을 보니 마부구만.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마부가 그렇게 쫓기고 있냐?"
마부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아, 도적놈들이랑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도적? 이 근처에 도적 같은 거 없는데?"
멍청하긴 해도, 이곳은 엄연히 왕이 살고 있는 땅이다. 도적 같은 게 있어선 곤란하다. 특히 그놈 본인이.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는 놈들."
"어디에 있는 놈들인데?"
"로그브릿지."
"뭐?"
"동대륙에 있는 로그브릿지."
마부는 담담하게 말했다.
"너 여기가 어딘 줄은 아냐?"
"서대륙이잖아? 알고 있다고, 그 정도는."
"그럼 여기가 서대륙에서 제일 구석진 곳인 것도 아냐?"
"아니, 그건 몰랐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으아아악!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병신.
"으헝헝, 난 그저 도적 몇 놈 치고 간 것 밖에 없다고! 사람 목숨가지고 돈 벌어 먹는 놈들이, 자기들 목숨 좀 위협 당했다고 쫓아오다니 부당해!"
"도적을 쳐? 조지..? 아! 설마, 니가 그 킬러 조?"
"엉? 그래, 몇몇 놈들은 날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만, 무슨 뜻으로하는 말 인지는 잘 몰라. 내 운전 실력이 좀 죽여주긴 한데."
아마 진짜 죽여줘서 그런 것 같은데.
킬러 조에 대한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도적들이 앞길을 막아서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박아 버린다는 정신 나간 마부라고 말이다.
그 놈의 빨간색 마차는, 따로 색을 입힌 것이 아니라, 부딪힌 도적들의 피로 물들인 것이라는 말도 있던데, 본인의 말을 들어보니 그리 허황된 소리는 아닌 듯하다.
"이야, 그 마차 좀 보고 싶은데, 지금 어디에 있냐?"
"녀석들에게 쫓길 때 내 손을 떠났어. 말들만 챙겨서 겨우 도망쳤지. 내 애마들에게도 나름 정든 마차였는데."
"그 말들은 어떻게 됐는데?"
"후.. 말도 마. 내 애마, 로드와 킬. 날 진심으로 따르던 녀석들이었는데.. 도망칠 때 타고 있던 킬만 무사하고, 로드는 같이 도망치던 중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지."
"그런데 킬도 며칠 전에 사라졌어. 역시 도적놈들이 쫓아 온 거라고! 여기서 난 죽는 건가? 이제 나에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는데!"
로드와 킬이라니 말 이름 한번 대충 지었네.
"근데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너..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좀 더 눈앞의 위태로운 목숨을 걱정하라고!"
마부가 오열하며 내 몸을 흔들었다.
걱정은 둘째치고, 동대륙에서 여기까지 쫓아오는 놈이면, 정성을 봐서라도 잡혀 줘야한다.
"그보다, 니가 온 뒤로 짐승 새끼들이 존나게 울어대는 것 같은데, 너 때문이냐?"
"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다른 녀석 때문.."
끼이익
마부의 말을 끊고 누군가 들어왔다. 지금 올 놈이라 해 봐야, 흰놈이나 마왕, 아니면 할배 뿐이다.
그런데 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리고,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떤 등신이 놀래키려고 네 발로 기어오기라도 하고 있는 건가?
어울려 줄 생각이 없는 나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크르르르.."
네 발이긴 한데, 주둥이가 다른 등신들 보다 크다.
"주인장, 여기 개새끼들도 들어오고 그래?"
"뭔 소릴 하는 거야? 네 발 짐승이 손잡이를 어떻게 당겨?"
꼬맹이의 스튜를 만드느라, 주인장은 아직 저걸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만한 크기의 늑대를 말이다.
전체적으로 회색을 띠고 있지만, 사이사이에 푸른색 털도 간간히 보이는 늑대는, 그 큰 몸을 움직여 걸어오고 있는데도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다른 동물들이 울어대는 건 저 녀석 때문이야. 저 크기 좀 봐. 혼자서 생태계를 다 씹어 먹을 것 같이 생겼잖아. 저 녀석도 나랑 같이 쫓겼었는데 여기까지 도망쳤더라고."
"그럼 서로 구면이네? 으르렁 거리고 있는데, 저거 안 무는 거지?"
"몰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야."
시발, 바로 앞에서 잇몸을 뒤집고 있는데 담담하게도 씨불인다.
가게에 있는 등신들을 보면, 이 새끼들 진짜로 자기가 뒤질 거라고 생각을 못 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괜히 남자들의 유언 1순위가 '죽기야 하겠어?'인 게 아니다.
이제 늑대는, 달려들면 누구에게라도 바로 닿을만한 거리까지 도달했다.
저 녀석이 달려들 때, 늦지 않게 단검을 꺼낼 수 있을까?
지금 꺼내려 해 봤자 선제공격을 당하거나, 경계심만 높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저 녀석이 움직인 뒤에 반응해야 한다.
신중하게 관찰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고, 재빠르게 행동해라.
"크아아아!!!"
이 새끼..!
늑대는 내 생각을 꿰고 있는 듯, 어떠한 준비 동작도 없이, 곧바로 꼬맹이에게 달려들었다.
"응?"
"깨갱!"
하지만 그건 그릇된 판단이었다.
꼬맹이가 뒤를 돌아보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늑대는 배를 보이며 들어 누웠다.
이게 동물의 감인가 보다. 확실히, 그 상태로 물었어도 저 놈 이빨만 작살이 났을 것이다.
"와아, 멋있다. 이건 무슨 동물이야?"
꼬맹이가 늑대의 배를 쓰다듬었다.
"강아지."
마음 같아선 개새끼라고 하고 싶었지만, 앞으로 보게 될 강아지들에게 개새끼라고 할 꼬맹이를 상상하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와아~ 강아지다, 강아지."
마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꼬맹이와 늑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잠깐만요, 누님."
늑대가 앞발로 꼬맹이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말했다'
인간의 언어로 말했다.
꼬맹이를 제외한 모두가, 눈이 튀어 나올 것처럼 늑대를 쳐다봤다.
이윽고 늑대는 두발로 일어서더니 바닥을 쿵쿵 울리며 나에게로 걸어왔다.
짝!
뺨을 맞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굳었다.
"하, 내가 듣자듣자 하니까, 강아지가 뭐냐 강아지가? 쪽팔리게. 이렇게 큰 강아지 본 적 있냐?! 어?"
맞은 볼은 여전히 아프고, 저 개새끼가 씨불이는 말도 확실히 인간의 말로 들린다. 꿈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너! 친구를 두고 갔으면 다시 찾으러 와야 될 거 아니야! 말은 지쳐서 쉬려고 하는데 혼자 살겠다고 호다닥 뛰어가냐?"
그러고는 마부에게로 걸어가 일침을 가하는 늑대였다.
"내가 진짜 누님만 아니었으면, 니들은 다 씹어 먹혔어. 지금..케헼!"
꼬맹이의 주먹에 맞은 늑대는 그대로 벽에 날아가 박혔다.
"오로넬은 먹는 거 아니야. 알겠어?"
꼬맹이는 주먹을 쥔 채 늑대 앞에 섰고, 그 힘을 직접 체험한 늑대의 눈은, 공포에 물들고 있었다.
"예, 예, 누님!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제 털끝도 건들지 않겠습니다."
늑대는 곧바로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한 번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오로넬 때린 거 사과하고 와."
"예, 누님!"
늑대는 네 발로 달려와서는, 다시 두발로 일어서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누님의 지인분께 실례를 범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래. 늑대.. 맞지..?"
아직까지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개새끼가 사람 말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이쪽이 말이 안 나온다.
"예, 저는 동대륙의 광활한 초원에서 태어난 진짜배기 늑대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늑대구요."
"음.. 근데, 그.. 초원에서 사람 말을 가르치기도 하던가?"
"아 이거 말입니까? 원래 저희는 인간의 말 몇 개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떤 인간을 먹고 난 뒤부터, 갑자기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됐고, 지금은 말까지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아.. 그래? 사람을 먹어서 사람 말을 할 수 있는 거네?"
이 새끼들은 개를 먹어서 맨날 개소리만 하는 건가?
"아니요. 인간은 전에도 몇 번 먹었던 적이 있는데, 말까지 할 수 있게 된 건 그 인간을 먹고 난 뒤였습니다."
슬슬 서 있는 게 불편한지, 늑대는 네 발을 모아 자리에 앉았다.
"설마, 니가 도적단에 쫓기게 된 게, '그 인간'이랑 관련이 있는 거야?"
마부가 끼어들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가죽이 잘 팔린다는 이유만으로 동족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다니, 그런 인간은 죽어 마땅하죠. 그래서 저도 그 작자의 가죽을 씹어 주었을 뿐입니다."
늑대가 앞발을 들고 일어나, 발가락으로 강조를 하며 열변을 했다.
"하, 하하.. 역시 그런 거였어.. 그놈들이 쫓고 있던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난 억울하게 쫓기고 있던 거라고!"
"'그 인간'이 누군데?"
마부가 말을 끊고, 물 대신 술로 목을 적셨다.
"이 녀석이 먹어 치운 인간은, 로그브릿지 주변 일대를 휘어잡고 있는, 악명 높은 빨간 망토 도적단의 두목, 마들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