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밤길에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2]
"마들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아니, 애초에 로그브릿지, 대륙 경계선 부근에는, 몬드 할배의 대륙 평화 유지군이 주둔하고 있을 터였다.
도적이 자리를 틀래야 틀수가 없는 지역이라는 말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로그브릿지라고? 구라를 쳐도 말이 되는 구라를 쳐라."
"너도 평화 유지군이 있는 곳이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근데 틀렸어. 그 미치광이 몬드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병사들이 탈주했거든. 남아있는 놈들의 사기는 덤으로 떨어지고 말이야. 지금은 어떻게든 조직을 유지하려 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도적단의 존재를 알고 있어도 묵인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이지. 그놈들, 아예 도적단과 손 잡고 한탕 해 처먹고 있어."
"뭔 소리야?"
"근처에 있는 마을들에 보호라는 명목으로 돈을 걷고 있어. 돈을 내지 않은 마을에는 도적놈들이 쳐들어가서 깡그리 털어 버리고, 돈을 낸 마을에는 소규모의 도적들을 보내서 그걸 무찌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그것 참, 할배가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 이야기다.
"그 도적단의 두목이 바로 노파 마들렌이야."
"노파? 직설적인 별명이구만."
"아니, 노파라는 이름만 가지고는 절대 여자를 찾아낼 수 없겠더라. 겉모습은 하나도 안 늙었거든."
"거기다 그 여자,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별 짓을 다 했다더구만, 인육을 먹고, 젊은 여자의 피를 마시고, 동물들의 심장을 먹고, 온갖 민간신앙이란 신앙은 죄다 믿고 있었어."
"뭐 그 중에 하나는 제대로 먹혀들었으니까 그렇게 젊게 보였던 거겠지."
"상당히 잘 알고 있는 듯한 말투인데, 어디서 그런 정보들을 얻은 거지?"
그렇게 거대한 규모의 도적단을 이끄는 녀석의 정보를, 일개 마부가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직 이 녀석에게는 뭔가 숨기고 있는게 있다.
"빨간 망토 도적단이라면 한번이라도 그곳을 지나간 적이 있는 마부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다고."
"그놈들, 마부들은 건들지 않고 손님만 끌고 가거든. 아니, 오히려 마부들에게 돈을 챙겨주기까지 한다더군. 그래서 일부러 그쪽으로 손님들을 데려가는 놈들도 적지 않아. 그러니 모르는 놈이 없을 만도 하지."
"그거 말고, 두목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아, 그건.."
역시, 숨기는 게 있군.
"여기서 이야기 한다고 뭔 일이나 나겠냐? 난 보다시피 대낮에 술이나 퍼마시고 있는 백수고, 이 녀석은 먹을 거에만 정신이 팔린 놈이고, 주인장은 마을에도 안 내려가."
여기서 말해도 아무런 해악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각인시켜준다.
인간은 비밀이 있으면 누군가에게는 털어 놓고 싶은 법이니까.
"사, 사실.."
좋아, 물었다.
"마지막으로 태웠던 손님이 그 여자야."
"뭐? 마지막이라면 언제? 도적들에게 쫓기기 전이냐?"
"아니, 쫓기는 중에."
???
무슨 말이지?
"이 녀석이 쫓기는 이유가 그 여자를 먹어서라며."
자리에 앉아있는 늑대를 가리켰다.
"맞아."
"근데 니가 쫓길 때 이미 그 여자가 마차에 탄 상태였다고?"
"정확하군."
???
"너 그 여자가 죽은 거랑 전혀 관계없다는 식으로 말했지 않냐?"
"맞아, 난 관계없다고."
"아무리 봐도 니가 이 녀석한테 그 여자를 던져 준 걸로 밖에 안 보이는데? 관계가 없긴 뭐가 관계가 없냐, 이 새끼야."
"아니, 아니. 잘 들어 봐. 내가 그날 있었던 일을 찬찬히 설명해 줄게."
이미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데 무슨 설명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우선, 도적들이 약탈을 목적으로 이 녀석을 가로막았겠지.
이 녀석은 평소대로 그걸 무시하고 그대로 도적을 친 뒤 전진.
하지만 도적들이 맹렬하게 추격해 오기 시작했고, 죽는 게 두려웠던 이 놈은, 속도를 저해하는 마차를 말에서 분리, 애마 두 마리와 함께 서대륙까지 도주.
그리고 마차에 들어 있었던 여자는 근처에 있던 늑대에게 그대로 꿀꺽.
대충 이 정도겠지.
이 정도면 그 여자의 죽음에 혁혁한 공이 있는 수준인데, 어디가 관계가 없다는지 모르겠다.
"그래 한번 해 봐라."
그래도 저렇게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일단은 더 들어보고 생각해 보자.
~
보름달이 밝게 빛나는 밤이었어.
나는 로드와 킬을 데리고 손님도 없는 산길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지. 한밤중이라도 극한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은 로그브릿지밖에 없거든.
그렇게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인적도 드문 산길에 한 여자가 마차를 부르고 있는 거야.
나는 순간 귀신인 줄 알았어.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하나 꺼내서 던져 봤지. 귀신이라면 통과할 테니까 말이야.
귀신이 날 홀리기 전에 전속력으로 지나가려 했는데, 그 여자가 동전을 잡더군. 실체가 있었어.
그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마차를 세웠지. 손님을 마다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
마차에 탄 여자는 유지군 본부로 가 달라고 했어. 난 별생각 없이 그쪽으로 마차를 몰았지.
"특이하게 손님을 받는 마부로군. 동전을 못 잡았으면 그냥 지나칠 셈이었나?"
여자가 잡았던 동전을 돌려주며 말했어.
"아 하하. 아가씨 피부가 너무 하얘서 귀신인줄 알았잖아."
"하하, 아가씨라니, 정말 내가 그렇게 보이나?"
"그럼 아가씨가 아가씨로 보이지 할머니로 보여야 되나?"
"재미있는 마부로군. 유감스럽지만 난 할머니야."
그 말을 듣고 난 생각했지.
한밤중에 산길에서 마차를 잡는 여자가 제정신일 리가 없을 거라고.
그래도 뭐 어쩌겠어? 이미 태웠는데. 그냥 적당히 맞춰 주면서 마차를 계속 몰았지.
그때부터 자기가 빨간 망토 도적단의 두목이고, 왜 자기가 젊어 보이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걸 주절거리기 시작하더라고.
"혹시라도 도적들이 막아서면 그냥 멈춰줘."
"왜? 부하들한테 데려달라고 하시게?"
"흠.. 뭐, 데리고 가긴 하겠지. 어차피 내가 가는 곳은 저승이겠지만."
"도적단의 두목이라는 분이 부하들한테 죽기라도 한다는 소린가? 거짓말 연습 좀 더 하고 오셔야겠네."
"하하. 그래, 연습 좀 더 해야겠군."
여자는 허탈하게 웃었어. 너무 허탈하게 웃어서 내가 뭔가 잘못 한 줄 알았다니까.
"하아.. 잠깐 혼잣말 좀 해도 되겠나?"
혼잣말을 허락받고 하는 사람이 있는 줄은 그날 처음 알았다. 아주 단단히 미친놈이었어, 그 여자.
"뭐.. 마음대로 하쇼."
"나한텐 손녀가 하나 있었어. 작고 귀여운 아이였지."
"그런데, 엄마랑 아빠라는 놈들이 그 작고 귀여운 아이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버렸지 뭐야? 아직 그 아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무엇 하나 배우지 못했는데 말이지."
한참을 웃던 여자는, 그렇게 자기 손녀 얘기를 주절거리기 시작했어.
"나는 그 아이가 떳떳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같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 같은 인간이 빌어봤자, 하늘은 들은 채도 하지 않는단 걸 나도 잘 알고 있지."
와, 그까지만 들었는데도 졸려 죽을 것 같더라고.
내가 마부 일을 하면서 졸음운전 했던 적이 없었는데, 무슨 할머니가 자기 전에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더라.
그래서 그 이후로는 뭔 이야기를 했는지도 몰라. 잠 깨려고 허벅지를 쥐어뜯고 있었거든.
게다가, 그 뒷이야기는 안 들어도 알겠더라고.
"할머니ㅡ! 어딜 도망치는 거야! 여기 있지? 더 망신당하기 전에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ㅡ!"
뒤에서 도적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그 중엔 할머니라고 하는 놈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그건 분명 손녀가 반란을 일으킨 거야.
"어이! 저거 당신 손녀 아뇨? 잡히면 진짜 뒤지는 거야?"
"아아, 정말로 왔구만.. 이제 됐으니 내려줘."
여자는 체념한 듯한 목소리였어. 나는 채찍을 꽉 쥐었지.
"내 마차에 탄 이상, 어떤 개새끼라도 안전하게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그게 내 영업 방침이거든? 그러니까 꽉 붙잡기나 하라고. 가자, 로드! 킬!"
사실, 내가 죽기 싫어서 한 말이긴 했지.
약탈할 때야, 좋은 수급처인 마부들을 살려줬지만, 이건 반란이잖아. 어떻게든 말려들 것 같았다고.
그리고 도적들이 타고 다니는 잡말 따위가 로드와 킬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거든.
손녀인가 뭔가 하는 놈들의 무리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지.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 산길 곳곳에서 도적들이 튀어나와서는 길을 막더라고. 아주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듯 했지.
"멈춰라!!!"
쾅!!
"으악ㅡ!!"
뭐, 전부 밟고 지나갔지만.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나한텐 더 이상 살아갈 이유 따위 없다고! 그 아이의 그런 표정을 볼 바에 죽고 말겠어!"
"뒤지던 말던 내 알바는 아닌데, 내 마차에 타서 뒤지겠다고 설치지 말라는 거잖아 이 미친 할망구야!! 내가 목적지 까지는 꼭 데려다 줄 테니까, 뒤지려면 거기서 뒤지라고!"
그때부터 그 여자 정신상태가 좀 이상해졌어. 나랑 대화하고 있는 건지 자기 혼자 씨불이는 건지, 영문도 모를 말을 하더군.
"그래.. 이런 나라도 살아도 되는 거구나.."
그러더니 갑자기 마차의 문을 열었어.
"어이! 뭐하는 거야, 당신! 문 닫아! 위험하다고!!"
"당신이 준 용기, 잊지 않을게."
"주긴 뭘 줘! 지랄하지 말고 문 닫으라고!!"
"그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보지."
"야!!!"
그리고 그 여자는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렸어.
조금만 헛디뎌도 그대로 죽는 속도였는데 말이야. 죽을 거면 도착하고 나서 죽으라니까, 끝까지 말 안 들어 처먹는 여자였어. 운행 중에 손님 죽으면 부정 타는데 진짜.
아무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살 사람은 살아야지.
도적놈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여자 시체라도 건지게 해주려고 속도를 좀 줄였어.
"이 마부새끼가 뒤지고 싶나, 도망을 쳐? 빨리 두목을 내놔!"
"거, 문 열린 거 안 보여!? 눈이 있으면 직접 확인 해 보라고! 나도 그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으니까!!"
"육안으로는 확인이 안 되는데요 형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두목이니까 말이야. 어디에 어떻게 숨어있을지 알 수가 없어. 어이, 마부! 마차를 세워라! 마차 안을 확인 하겠다! 안심해라, 너에겐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겠다! 잠깐 안을 확인 할 뿐이야!"
"시발, 너희 손에 들고 있는 거나 확인하고 안심이란 말을 해라!!"
이게 말로만 들으면 내가 쫄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야간에 달리는 마차 위에서 연장 들고 쫓아오는 놈들한테 둘러 쌓여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누구라도 이랬을 걸?
"진짜!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멈추라고! 너한텐 관심도 없다니까!"
"그럼 손에 있는 거 버려! 그러고 나면 생각해 보지!"
도적놈들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어. 지들끼리 뭔가 얘기를 나누더군.
"좋다! 지금 버리겠다!"
그리고 날붙이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우르르 들려왔지.
"이제 됐지! 빨리 마차를 멈춰라! 곧 유지군 놈들 본부라고!"
"어차피 니들 우호 관계잖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고!"
"..."
말이 없는 걸 보니 자기들은 티 안 난다고 생각 했었나봐.
"..이봐! 요구사항은 들어 줬다! 그쪽도 우리 요구사항을 들어 주시지! 우리 목적은 마차뿐이다!"
"알았어, 알았어!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봐! 이쪽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몇 놈이나 들러붙은 건지 확인 하려고 뒤를 돌아봤는데, 하나같이 존나 무섭게 생긴 거야.
5초 안에 질 자신 있는 놈들 밖에 없었어, 진짜로.
"어어어, 역시 안 되겠다."
"이 새끼야! 죽여버리기 전에 빨리 멈추라고!!"
"야! 그거 검이잖아! 아까 버렸는데 어디서 난거야! 역시 이 새끼들 날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구만!?"
갑자기 도적 한 놈이 검을 휘두르면서 마차에 다가왔어. 멈췄으면 큰일 날 뻔했지. 역시 도적놈들은 믿을 놈들이 못 되는구나하고 새삼스레 생각했지.
"어이, 톰! 넌 뒤로 빠져 있어라. 한번만 더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면 널 먼저 죽여버리겠다."
그때, 이놈들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놈이 나오더니 그놈을 제지했어. 그래도 이놈은 아직까지 신사적으로 해결할 의향이 있어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더군.
"우리는 마차만 있으면 된다. 멈추는 게 무리라면, 속도를 줄인 상태에서 마차만 따로 분리 시켜주지 않겠나? 그렇게만 해 주면 더는 쫓지 않겠다. 약속하지."
윽박도 지르지 않고 차분하게, 그리고 나를 베려하는 쪽으로 제안을 해줬지.
상황이 이러니, 그나마 차선책인 그 남자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자, 그럼 푼다? 잘 받고, 더 이상 쫓아오지 말라고."
나는 정든 마차를 말들에게서 분리했어. 슬프게도 울려 퍼지는 소리였지. 킬도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게 슬펐는지 머리를 떨었어.
근데, 진짜 좆 된 건 그때부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