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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밤길에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3] (23/108)



〈 23화 〉밤길에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3]

"자.  받아라?"


뒤로 굴러가는 마차를 잡으려고 도적 몇 놈이 마차에 다가갔어. 그중엔 아까 그 남자도 있었지.


근데 말이 없으니 마차의 방향전환이 안 될 거 아니야?

텅!

지나쳐온 돌부리에 기가 막히게 마차가 걸리더라. 진짜 절묘하기도 했지.

쾅!


"형님!!"

"형님ㅡ!!!"

그냥 마차가 뒤집어 지기만 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하필이면  대장 같은 놈을 향해서 엎어지더라고.

"이 마부 새끼!! 잘도 형님을!!!"

말리던 놈이 사라지니까, 남은 놈들이 죄다 품속에 여분으로 숨겨놨던 검을 꺼내더니 죽일 기세로 쫓아오는 거야.


이제 와서 방향을 바꾸기엔 글렀고, 유지군 본부로 가도, 녀석들과 한패이니 날 넘길게 뻔했어. 그래서 무작정 앞으로 달렸지.

그러다보니 어느새 대륙을 넘었고, 안심할 수 있는 곳 까지 도착하니까 여기더라.

"끝?"

마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안심하고 싶었으면 대륙을 넘은 걸로도 모자라서 그 끄트머리까지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동기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데, 일어난 상황은 얼추 내가 예상했던 것과 같은 듯하다.


"그럼 이 녀석은 언제 만난 건데?"

늑대를 가리켰다.


"아, 그걸  안했네. 유지군 본부를 지나쳐서 서대륙으로 가는 다리에서 처음 봤지."

"난 영락없이 도적놈들한테 포위당한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녀석을 쫓고 있더라고. 그때 잠간 마주치고 끝이야.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지만."


"그땐  쫓기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두목을 먹은 거면 그럴 만도 하지 않아?"

"공공의 적은 조직을 하나로 만들어 주잖아. 분명 두목자리를 차지한 손녀가, 복수라는 명분으로 찬탈을 정당화 하고, 도적놈들의 통제권을 얻어 이 녀석을 쫓게 한 거겠지."

"흐음, 그런 인간이 무리의 우두머리였다니, 무리원들의 수준도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면 도망치지 않았을 겁니다."

늑대가 팔짱, 아니 발짱을 끼고 말했다.


"뭐?   놈들 얼굴  봤어?  놈은 몰라도, 세 놈만 뭉쳐도 넌 그냥 미트볼 행이었다고."

마부가 반론했다.


"저희는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봐야할 건 그들의 우두머리지요. 아무리 강인한 개체라도, 나약한 우두머리를 따르면 그 이빨이 상하고 맙니다."


"그자의 눈에선 무리를 압도하는 패기도,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과 지혜도 없었습니다. 길가에 쓰러진 인간의 품속에서 잡동사니나 뒤지는 저급한 짓이나 하고 있더군요."


"뭐.. 그때  인간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뭐,  녀석은 늑대에다가 두목이란 놈을 죽였으니까 그렇다 쳐도, 넌 목격자도 별로 없고, 세상에 널리고 널린 마부인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마부가 표정을 찡그렸다.

"나도 그건 알고 있지. 하지만 로드랑 킬이 사라진 걸 어떡해? 그 녀석들이 없으면 여길 빠져나가려야 빠져 나갈 수도 없다고."

"아, 그 분들이라면 제가 가게 뒤편에 모셔두었습니다. 본인들도 주인과 헤어져서 상심이  듯하더군요."

어째, 갈수록 말투가 점점 더 정중해 진다. 짐승들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헛된 말이 아니다.


"뭐?! 진짜?! 진짜로 로드랑 킬이  가게 뒤에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다른 마을에서 헤매고 있길래 제가 데리고 왔죠."

"고마워, 정말 고마워!"

마부가 늑대를 껴안으려 하자, 앉아있던 늑대가 네발로 일어나 으르렁 거리며 위협했다.

"아, 껴안는 건 좀. 이건 본능이라서요."

"그, 그래. 미안.."


팔을 벌리고 뛰어오던 마부는 뻘쭘하게 뒤로 돌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 이게 아니지! 로드와 킬이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대륙을 뜰 수 있다고! 하하하하! 기다려라 얘들아, 내가 간다!"


자리에 앉았던 마부는 다시 몸을 일으켜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쾅!


그때였다.

벽에 부딪힐 정도로 강하게 열린 문으로, 두개의 형체가 나타났다.

"어서옵쇼~"

"역시 여기 있었군. 마차꾼 킬러 조, 늑대의 왕 라보."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담배를 얼마나 피운 건지, 불쾌할 정도로 걸걸한 소리를 냈다.


"뭐, 뭐야! 당신이 어떻게 살아있어?! 이 녀석이 먹었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마부가 떨리는 손으로 왼쪽의 여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여자가 마들렌인가?

확실히 할망구 치고는 피부가 좋은 편이다. 대놓고 반칙 쓰는 마법사보단 덜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여기까지   딱히 너희를 잡으려고  게 아니야."


도적놈이 안심 하라고 하는데 퍽이나 믿을 수 있겠다.


"오히려 킬러 조, 너에겐 감사하고 있다. 니 덕분에 용기를 내서 손녀와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럼 바로 옆에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는 놈이 손녀겠군.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해 줬는데 대체?"

고맙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마부가 쓸데없이 따지고 들었다.

"훗, 그래. 여기서 말하긴 조금 창피하긴 하겠지. 그렇다면 좋아. 그런 걸로 쳐주지."


뭘 어떻게 쳐준다는 거지? 이미 여기 있는 놈들한테  말해놓고. 한 대 친다는 소린가?

"아니. 그보다 당신..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더 이상 그 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은 듯 마부가 화제를 돌렸다.

"그것부터 이야기 해 줘야 하는 건가? 설마 내가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린 정도로 죽을 인간으로 보였나?"

"적어도 반병신 정도는 될 줄 알았지. 그런데 도적놈들이 늑대 한 마릴 쫓고 있으니 내가 뭔 생각을 하겠어? 당연히 먹힌 줄 알았지."

마부의 말을 들은 할매가 웃었다. 웃는 소리는 영락없는 할망구다.


"하하하하, 역시 재미있는 마부라니까."

뭐가 웃기다고 한참을 웃으며 눈물까지 닦는 여자였다. 노망이 나면 날아다니는 파리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던데 사실인가 보다.

"아, 그래. 확실히 반병신이 될 뻔하기는 했지. 충격을 완화하려고 굴렀는데, 하필 나무에 머리를 부딪혔거든. 기절만으로 끝나서 다행이야."

밖은 아직 추울 텐데, 할매가 외투를 벗었다. 그러자 뒤에서  남자가 나와, 옷을 받아 들었다. 아무래도 손녀와 둘이서  건 아닌 모양이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어.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내 피가 아니었어. 상처도 없었고, 머리 말고는 아픈 곳이 없었거든. 하지만 내가 목숨만큼 아끼는 물건 하나가 사라진  알아차렸지."

틀니? 지팡이? 미아 방지 목걸이? 짚이는 게 너무 많다.

"내 '조각'.. 그게 있었다면 손녀에게 이렇게 추한 목소리는 들려주지 않았을 텐데..!!"

할매가 벽에다 주먹을 날렸다. 주인장은 말없이 노려보고는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그, 그래 손녀! 그 손녀는 어떻게  거야! 당신, 손녀한테 죽을 뻔한 거 아니었어?"


마부가 당황한 목소리로 손가락질을 했다.

"죽을 뻔하다니, 손녀는 내가 죽으러 가는  말리려고  거야."


"죽으러 간다니, 당신 유지군 본부로 가 달라며! 걔네랑 너희랑 한 통속인거 모르는 줄 알아? 지랄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시지!"

"오, 그것까지 알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래, 확실히 그놈들과는 동업 관계다. 하지만 그 동업자가 배신을 하면 어떻게 될까? 등을 찔린 인간은 눈에 뵈는 게 없어지지. 어떻게든 그 인간에게 앙갚음을 하려  거야. 나는 확실하게 죽기 위해 거기로 간 거라고."


두목이라는 인간이 그런 짓을 했다간, 손녀가 있는 도적단 까지 씨를 말리려 들 텐데, 자살충동이 엔간히도 컸나보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손녀에게 소불알을 먹는  보인 이상 뒤지는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모든 일이 소불알 하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어이없고 병신 같아서 웃음조차 안 나온다.

손녀도 어지간히 창피한지 후드를 더 깊게 뒤집어썼다.


"후우.. 잠시 흥분했군. 고해성사는 이만하면 됐고,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심호흡을 하더니 여자의 눈이 바뀌었다. 상대를 꿰뚫는 매서운 눈이다.


"내 '조각'은 니가 가지고 있겠지 라보? 피투성이가 된  옆에 니가 있었다고 들었다. 니가 내 물건을 훔쳤을 리는 없을 테고. 내 물건을 훔치던 녀석을 물어 죽였거나, 먹은 거겠지."


"그래. 그 인간은 우리 종족의 원수였다. 놈에게 죽은 동족들의 시체가 산을 이룰 정도지."


늑대가 말을 하자 도적놈들도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인간을 쫓고 있었지만, 좀처럼 빈틈이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그 인간이   번 빈틈을 보였다. 행인의 물건을 훔친다는 아주 저급하고 하찮은 일이였지. 그 쓸데없는 행위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거라곤 생각 못 했겠지만."

그 행인이 저 할매였다는 건가.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 졌다.

결국 세 놈 모두 다른 사건을 겪은 것이다.

사건의 진실이자 모든 사건의 원인인  할매는, 불알을 먹다 들킨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자살하러 가는 길에 만난 남자의 말에 감명 받아 개심했다는, 삼류 연극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마부에게는 정신 나간 손님 하나 때문에 돈도 못 벌고, 이상한 놈들에게 찍혀 마차까지 잃어버린 비극.


늑대에 이르러서는 애초에 사냥감 자체가 다른 인간이었는데, 옆에  여자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쫓기게 된 것이었다.

"동물들도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였나? 역시 조각의 힘은 몇 번을 봐도 경이롭군."

조각의 원래 주인답게, 당황하지 않는 할매였다.


"하지만 이제 주인이 왔다.  목걸이를 돌려주실까?"


목걸이 형태의 물건인가 보다.  녀석의 목에는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은데 말이다.


"먹었는데."

늑대가 대답했다.


"그렇대."


마부가 전달했다.

"하하하, 하하하하!"


할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치니까 그만  웃었으면 좋겠다.

"그럼 그 녀석을 이리로 넘겨."


한 순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 목소리에는 악의가 다분하게 묻어져 있었다.

"어이, 그 뭐냐? 할머니라고 부르면 되냐? 어쨌든, 뭐 어쩔 생각인진 모르겠는데, 사람 한명도 그냥 씹어 먹는다는 놈을 무슨 수로 감당하려고?"


손녀, 손녀, 거리면서 자기가 할머니인 걸 간접적으로 알려주더니, 정작 나에게 할머니라고 불리자 표정이 구겨지는 할매였다.

그럴 거면 딸이라고 하지 그랬냐.

"그래, 감당 못하지. 그러니까 너희가 넘기는 거야. 그 녀석을 제압해서."

"같이 있는  보니 꽤나 친해 진 거겠지? 그랬으면 좋겠군. 서두르지 않으면 여기가 다 타버릴 거니까."


여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밖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도적은 도적이다. 사람 목숨을 쥐고 있지 않으면 대화조차 성립되지 못하는 족속들이다.


"나무라서 타는 속도도 빠르겠군. 어디 내킬 때까지 생각해보도록."

할매가 벽을 만지며 이쪽을 쳐다봤다.


마지막 경고인  하지만, 응할 필요는 없다. 이미 상황은 끝났으니까.


"그러고 보니 당신, 아까 평화 유지군이랑 동업 관계라고 했지?"

이 한 마디면 된다.


"그래. 이제 와서 그게  어쨌다는 거지? 시간 끌기라면 소용없다. 앞으로 30초 뒤면 불을 붙일 거니까..?"

할매는 낯선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분노로 가득  두 남자가 서있었다.

"평화 유지군이 어쨌다고?"


"불을 어쩌겠다고?"


몬드 할배와 흰놈의 손이 할매와 손녀의 머리를 붙잡았다.

"어라..? 내 부하들은 어디.."

문 뒤로는 도적놈들이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건 알 필요 없다. 곧 만나게 될 테니."

-으아아아악!!


악명 높은 빨간 망토 도적단이 두 등신들에게 박살이 나는 순간이었다.


할매는 나이 때문에라도 때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동년배인 할배가 때리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할매도 맞는 판국에, 젊은 피인 손녀도 흠씬 두들겨 맞을 줄 알았는데, 할머니를 위한 죄 밖에 없음이 밝혀지자, 이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단 한 대만을 맞고 끝날  있었다.

그 외에 기타 잡놈들도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지만,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놈들이 많아, 사실상 도적단은 해체 되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뜬금없이 유지군 본부의 외벽이 박살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포를 맞아도 끄떡도 하지 않는 벽이 산산 조각  그 자리에는, 너무나도 낯이 익은 대검 하나가 편지와 함께 놓여있었다고 한다.

 후에, 멈추었던 유지군의 활동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하니, 편지의 발신인과 내용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이 간다.


그리고 현재.

끼이익

"어서옵쇼~"


"오늘도 맛없는 맥주 한잔!"

"예~ 맛없는 맥주 한잔 갑니다~"

마부는 여전히 가게를 들락거리고 있다.

"저에게는 생고기 한 덩어리를 주시겠습니까?"

"예~ 갑니다~"


물론, 늑대도 계속  부근에 머무르고 있다.

"니들 집에 안 가냐?"

"아니, 생각해 보니 동대륙으로 다시 돌아가면, 마차도 새로 장만해야 하고, 여기에 있었던 만큼 밀린 월세도 내야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그냥 은퇴 하려고. 여긴 맛없는 대신 돈을 안 받는다며?  걱정 할 필요도 없고 좋잖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은퇴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짐승새끼랑 다를 게 없다.


"저는 저희 무리에도 이제 새로운 바람이 불 때라고 생각해서요. 유능한 젊은이들이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무리를 이끌어 나가겠지요. 인간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리는 지금보다  강해질 겁니다."

아니 짐승새끼가 더 낫다.

"으흠, 사과주 한  더 주겠나, 젊은이?"

"앗, 네. 몬드씨.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몬드 할배는 정복을 입는 것을 그만두었다.

유지군의 외벽이 부셔졌다는 소식이 들린 날부터, 야자수가 그려진 푸른 바탕의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야~ 며칠사이에 처음 보는 동물이랑 사람이 늘었네. 넌 쟤들이랑 통성명 했어?"


언제나처럼 마법사가 새로운 것에 관심을 보였다.

"할 필요가 뭐 있냐?"


나도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어차피 등신들이야."

그저 등신이 늘어난 것뿐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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