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누구나 가슴속에 저마다의 산타가 있다 [1]
12월 25일. 드디어 이 날이 오고야 말았다.
꼬맹이가 선물, 선물, 노래를 부르는 것도 오늘부로 끝이 나겠지만, 방 안에 던져 놓을 물건이 하나 더 늘어나는 날이기도 했다.
"야~ 그 할아버지 대단하네. 싼타가 저런 사람일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
꼬맹이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마부가 말했다.
"그래도 썰매가 없는 건 실망이야. 어렸을 때부터 그거 한 번 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 놈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도 그런 건 처음 봤으니까.
"할배!! 그렇게 많이 짊어지고 괜찮겠어!!"
그건 24일의 밤. 25일이 되기 30분 전의 일이었다.
온몸에 선물 보따리를 끼워 넣고 있는 썬더크로스를 봤다면 괜찮은지를 물을 수 밖에 없었을 거다.
양손에도 보따리가 몇 개나 쥐어져 있어서, 선물도 제대로 건네줄 수 없을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더 떨어지기나 해!!"
썬더크로스가 손짓했다.
자기가 출발할 때, 너무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다면서, 구경할 사람들은 보일 듯 말듯 한 위치에서 콩알만한 크기의 썬더크로스를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저건 뭐 하는 거냐?"
자리에 선 썬더크로스는, 짐 투성이의 몸으로 제자리에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갔다 올게!!!"
콰ㅡ앙!
그 말을 마지막으로, 폭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센 바람이 불어와, 주변의 나무들을 땅에서 쫓아내었다.
바람에 가려진 시야가 돌아오자, 무언가에 찢긴 듯이 반으로 갈라진 구름들만을 남긴 채, 어느새 썬더크로스는 사라져 있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인간이 조각도 없이 1년 내내 잠자는 것만으로 그런 비정상적인 힘을 얻을 수 있지?"
과학의 수호자이신 마법사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머릿속에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짝.
갑자기 뺨을 맞았다.
"너 좆같은 거 생각했지?"
"이제 진짜 마법도 쓸 수 있는 거냐?"
"니 얼굴만 봐도 알겠다."
"그거 니가 싫어하는 비과학 아니냐? 아무 증거도 없이 사람 얼굴만 보고 때려?"
마법사가 좋아하지는 않을 것을 생각 하고 있었으니, 일단 뺨을 맞은 건 참도록 하겠다. 내 말에 반박할 수 있다면.
"이건 엄연한 통계학이라고. 니 표정이 그랬을 때, 대부분 좆같은 말을 씨불였거든."
이걸 사네.
"아 알았어, 알았어. 그럼 이제 좆같은 표정으로 좋은 말 해줄게."
"그러면 안 맞을 거 같니?"
이 화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서둘러 술잔을 들어 마법사의 잔에 부딪혔다.
"썬더, 언제 와?"
벌써 61번째 질문이다.
썬더크로스가 떠난 뒤, 꼬맹이는 10분마다 똑같은 질문을 하면서 날 괴롭히고 있었다.
"이제 10시니까 2시간 안에는 오겠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진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같은 말을 듣고 있어야 되는 거냐.
쾅!
이 집 문은 멀쩡한 날이 없다.
개나 소나 쾅쾅 열어 젖히는 문을, 이젠 아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허허허허! 메리 크리스마스!!"
대놓고 가짜가 나타났다.
"어이, 할배. 뭐해? 당신 몬드 할배 맞지?"
외형이야 그렇다 쳐도, 진짜 할배 목소리까지 낼 수 있는 사람은 이 가게에 몇 없다.
"허허, 몬드가 아니라 산타클로스라네 젊은이."
어제 가게에 왜 안 왔나 했더니, 저 짓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냐.
차라리 어제 왔으면 몰라도, 이미 진짜를 본 등신들은, 속아 주지도 않을 거다.
-산타클로스라는데?
-딱 봐도 가짜잖아.
-뭐 하는 놈이야, 대체.
역시, 벌써부터 등신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괜히 변장 같은 거 하지 말고, 선물만 나눠 줬어도 착한 할배라는 인상이 남았을 텐데, 괜히 가짜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끝날 기세다.
"아.. 하하! 젊은이들이 쉽사리 믿질 못하는구만. 좋아! 그럼 내 파트너, 루돌프를 소개하지."
루돌프까지 준비해 온 건가? 준비성 하나는 칭찬해 줄만하군.
뭐, 썬더크로스도 여기 올 때마다 순록을 잡아 왔으니, 순록 자체는 이 근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할배가 빨간 코까지 재현해 냈을까?
몬드 할배가 문을 열자, 네 발이 달린 무언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저는 순록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순록입니다."
개새끼잖아.
할배에게 끌려오듯이 가게에 들어온 자칭 루돌프는, 빨간 코 대신 빨간 피가 흥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식사 중에 잡혀 온 듯하다.
"야, 조, 조. 그거 해봐."
마부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아, 좀! 조 조 거리지 말고 조지라고 끝까지 부르라니까. 그건 또 뭔데?"
"그 늑대들 우는 거 뭐라고 하지? 하울링? 암튼 그거. 잘 따라 한다며?"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긴 하다만.. 그게 왜?"
"저거 딱 봐도 그 늑대새끼잖아. 빨리 해봐."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냐, 하면."
아우우우ㅡ!
마부가 선창했다. 확실히, 늑대가 내는 소리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아우우우ㅡ!!
그러자 루돌프가 후창했다. 순록인 루돌프가 하울링을 하다니 이상한 일이다.
-하하하하!!
등신들도 비웃기 시작했다.
"흐음, 자네들이 믿어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군. 그럼 이 선물들은 마을에 있는 다른 착한 젊은이들에게 주도록 하겠네."
할배가 내려놓은 보따리에서는, 이 근방에선 구할 수도 없는 고급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가지 마요, 산타할아버지!!
-믿고 있었다고 젠장!
-루돌프 너무 멋있게 생긴 거 아니냐고!
술에 굶주린 등신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산타클로스를 찬양했다. 바다를 가르고 바람을 조종한다 해도, 저 정도의 환호는 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럼주가 있는 나는 동참하지 않았다.
"와아아!! 산타할아버지!!"
마법사는 달랐지만.
-산타! 산타! 산타!
야유에서 환호로 바뀐 분위기 속에서, 신나게 술을 나눠주며 돌아다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산타와 루돌프였다.
"자아, 자네도 받게."
가만히 있던 나에게도 술이 왔다. 근데 하필이면 내가 싫어하는 과일주다.
준다고 하니 받아만 두고 계속 럼주를 마실 생각이었지만, 과일주는 받아줄 수 없다.
저건 과일 음료수지,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거 말고 다른 거 없어?"
"아, 이 술을 별로 안 좋아하나? 그럼 이건 어떤가?"
보따리에서 과일주 한 병이 더 나왔다.
"그것도 말고."
"허허, 입맛이 까다로운 젊은이구만. 그럼 이건?"
"말고."
"이건?"
"아니, 왜 과일주밖에 없냐!?"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술들은 이미 등신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산타라면 선물 줄 사람 기호는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신 역시 가짜지?"
누가 봐도 가짜는 맞지만, 다른 놈들은 받고 나만 못 받았으니 화풀이라도 해야겠다.
산타의 입 속에서 어금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 아아~ 가만 보니 자네, 제리스가 아니라 오로넬이었구만! 내가 늙어서 시력이 별로 안 좋다네. 자네를 위한 선물이라면 이미 썰매에 준비 해 두었지. 루돌프!"
대답이 없다. 평범한 늑대인 모양이다.
"어이, 루돌프!!"
"네? 아아, 네!"
산타가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대답을 하는 루돌프였다. 아무래도 파트너 사이에 불화가 많은 모양이다.
산타의 부름을 받은 루돌프가 가게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거대한 썰매를 통째로 끌고 들어왔다.
집채만 한 그 썰매에는, 아직 보따리가 한 움큼은 더 있었다.
솔직히, 거기선 놀라지 않았다. 이놈들도 쓸데없이 준비성 하나만큼은 좋으니까.
그런데, 저 할배가 저것마저 가져왔을 줄은 몰랐다.
"카이랍 151. 럼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맛보길 꿈꾸는 환상의 술이지."
"다, 당신.. 그걸 어떻게 손에 넣은 거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것은 럼주의 명가 카이랍에서, 수십 년에 한 번씩 전 세계의 장인들을 초청하여 빚어낸다는 환상의 술이다.
그 도수는 약 80도에 달하는데, 한 모금만 마셔도 자신의 장기를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엄청난 물건이니, 가격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중요한 건 매물이다.
가장 최근에 판매한 게 10년도 전이고, 그걸 구매해서 마시지도 않고 보관하고 있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적어도 이 근방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술인 건 확실하다.
"난 산타라고 젊은이. 사람들이 원하는 선물은 모두 준비할 수 있지."
산타가 카이랍 151의 마개를 땄다.
강렬한 향기가 여기에서도 느껴졌다. 다른 녀석들도 향에 이끌려 하나둘씩 뒤를 돌아봤다.
"이 술을 마시고 싶으면 한 마디만 하면 된다네. 산타 할아버지께 깝쳐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이야."
이 새끼. 뒤끝 한번 오지는 할배네.
하지만 카이랍 151이라면 저 정도 쯤이야..
"사..산타 할아버지께.."
쿠구구구
땅이 흔들렸다.
격렬한 진동에, 뭐라도 붙잡지 않으면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다.
쿠ㅡ웅!
충격음은 그로부터 몇 초 뒤에야 찾아왔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할배가 한쪽 팔을 썰매에 끼워 몸을 고정하고, 술이 쏟아지지 않게 다시 마개를 채우며 말했다.
약 1분 뒤에 진동이 멈추었고, 가게에 있던 녀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했다.
"어이, 저기! 연기가 나고 있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선을 고정하니 무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부를 따라가자,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건가?
"저거 사람 아니야?"
한치 앞도 안 보이는데, 이놈들은 아까부터 계속 뭐가 보인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봐, 당겨!
-하나, 둘, 흐아아앗!
등신들이 건져 올린 건, 다 타버린 옷에 헐렁한 보따리를 쥐고 있는 늙은이였다.
"야, 이거! 썬더크로스잖아!"
하루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까지 근육이 솟아 있던 할배였는데, 지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건, 온 몸이 쭈그러진 평범한 노인네였다. 대머리와 수염이 없었으면 그 마저도 못 알아 봤겠지.
"일단 가게 안으로 옮겨!"
마법사가 앞장서서 등신들을 지휘 해, 가게까지 썬더크로스를 옮겨왔다.
"뭐 좀 알겠냐?"
썬더크로스를 살펴보고 있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심장은 엄청 느리게 뛰고, 몸은 돌처럼 단단한데.. 1년 내내 잠만 자는 인간한테 상식이 통할까?"
"어이, 썬더 왔네? 오늘은 30분이나 빨리 왔군. 괜찮아. 그거 그냥 냅둬. 좀 있으면 알아서 일어나."
주인장이 식품 저장고에서 나오며 말했다. 품에는 돼지 한 마리 분의 고기를 안고 있었다.
등신들은 그 말을 듣고도 썬더크로스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다.
"으아아악!!!"
썬더크로스가 괴성과 함께 일어났다. 주변에 있던 등신들도 똑같은 소리를 내며 나자빠졌다.
"밥!!! 바아아아압!!!!"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파를 제치고,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모조리 씹어 먹고 있는 모습은, 마치 동면에서 깨어난 곰과도 같았다.
댕! 댕! 댕!
"자, 먹을 거 여기 있다!"
주인장이 요리가 담긴 냄비의 뚜껑을 두드리며 썬더크로스의 주의를 끌었다.
그 안에 든 건, 좀 전에 가지고 나온 고기를 전부 때려 박아 만든 잡탕이었다.
썬더크로스는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가, 얼굴을 처박고 마시듯이 냄비를 비워냈다.
"뭐, 뭐야 저거..!"
그리고 음식을 먹을수록, 쭈그러들었던 썬더크로스의 몸이 다시 부풀어 올랐다.
"으어어ㅡ! 이제 좀 살 것 같구만!"
완전히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썬더크로스가, 이성을 되찾고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대체 몸이 어떻게 돼먹은 거야 당신? 인간 맞아?"
그 모습을 가장 충격적인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던 마법사가 물었다.
"응? 나 정도면 보통 아닌가?"
"보통 인간은 옷이 타버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고, 하물며 그 속도로 땅에 처박히고도 멀쩡할 리가 없다고."
"하하! 튼튼한 게 내 장점이긴 하지!"
제정신으로 돌아와도 말이 통하지 않는 할배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은 마법사는, 한숨을 쉬며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썬더, 내 선물."
마법사가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꼬맹이가 앞으로 나왔다.
"아, 오랜만이구나 꼬맹아. 그래 어디보자, 이름이 데이린이었지? 데..이..린.. 검을 달라고 했었구나. 아, 어차피 보따리에 이거 하나밖에 안 남았었지 참."
썬더크로스가 이상한 종이쪼가리에서 꼬맹이의 이름을 부르더니 보따리에 손을 넣어 마지막 선물을 꺼냈다.
"오오..!"
그 검은, 꼬맹이가 갖고 다니기엔 너무 길었다.
내 허리에 끼워 넣는다 해도 땅에 끌릴 듯 말듯 하겠는데, 꼬맹이가 차기엔 어림도 없다. 온 바닥을 긁으며 끌려다니겠지.
"자, 받아라. 메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주는 썬더크로스의 맞은편에는, 충격 받은 얼굴의 산타클로스를 볼 수 있었다. 진짜를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으앗..!!!"
선물을 손에 쥔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새하얀 빛이, 가게 전체에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