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누구나 가슴속에 저마다의 산타가 있다 [2]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위험한 날인 줄은 몰랐다.
하늘에서는 인간이 떨어지고, 그 인간이 떨어진 여파로 지진이 일어나더니, 지금 현재, 그 인간이 준 선물에서 눈이 녹아내릴 것 같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쨍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진 직후, 빛은 그 힘을 잃고 점점 사그라들어갔다.
"으.. 으읏. 어? 목걸이가 깨졌어."
꼬맹이가 말했다. 깨진 건 제리스가 준 목걸이였나 보다.
부서지는 건 몰라도, 깨질 것 같은 물건은 아니었는데, 줄만 남기고 모조리 가루가 되어 있었다.
"안 돼! 내 선물이!! 당신 선물 어떻게 된 거에요!? 저건 재앙을 막아주는 목걸이인데.. 설마, 저주받은 물건이라거나 그런 걸 준 건 아니겠죠?"
당연히 가장 화가 난건 제리스였다. 요 며칠간 꼬맹이가 끼고 다니는 목걸이에 자신을 이입해서 별 망상을 다 하고 있었는데, 더는 그럴 수 없게 된 탓이다.
"아니, 일단 주운 물건이긴 한데, 제대로 감정까지 받은 거라고. 아이 참, 이거 하청을 또 바꿔야 하나.."
썬더크로스도 딱히 집히는 구석은 없는 듯 했다.
검에 대해서 제3자들끼리의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당사자인 꼬맹이는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게 서있었다.
"어ㅡ이, 괜찮냐 꼬맹아?"
"어? 응, 괜찮아."
"멍청하게 입 벌리고 서가지고는, 뭐하고 있는 거냐?"
"이게 말을 걸어서 대답해 주고 있었어."
꼬맹이가 검을 들어보였다.
"이 놈이 또 헛소리를 하네. 너 아까 눈 뜨고 있었냐?"
「데이린의 말이 사실이다. 세발 달린 짐승이여.」
가게 안에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웅성대던 등신들도 떠드는 것을 멈추고, 꼬맹이의 손을 빠져나와 스스로 공중에 떠오르는 검을 바라보았다.
"세발? 아, 이것도 발로 쳐주는 거냐? 그럼 이 녀석은 두발 달린 짐승이겠네?"
옆 자리의 마법사를 가리켰다.
「그렇다.」
검 주제에 꽤나 눈썰미가 좋다.
"그래서, 넌 뭔데? 한낱 날붙이 따위가 인간님을 향해서 그렇게 거만한 태도를 보여도 되는 건가?"
「나는 본래 데이린과 함께 세상에 나타났을 존재. 위대하신 분께서 직접 창조하신 몸이다.」
"진짜로?"
「진짜로.」
"어쩌라고."
「...」
용사와 마법사가 옆에서 손뼉을 내밀었다.
나도 그걸 왜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좋았어, 오로넬! 한 방 먹였어!"
"뭐? 뭘 먹여? 니 눈에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
"저 악당 놈한테 한 방 먹인 거지, 뭐긴 뭐야! 이제 저 녀석에게 붙잡힌 데이린을 구해야 해!"
그놈의 용사놀이. 이 정도면 정신병이다.
한번 불이 들어오면 주변 풍경까지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야, 꼬맹아. 이리로 와라."
내가 손짓하자, 검을 올려다보고 있던 꼬맹이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구했는데? 이제 어쩔 거냐? 뭐야, 이 새끼 어디 갔어?"
"오로넬, 오로넬. 저기."
마법사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야아앗!! 뒈져라, 악당 녀석!!!"
검을 뽑아들고 앞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멍청한 여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의 검이 어떤 물건인지 봐 놓고서도, 아무도 말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특히 흰놈 저 새끼.
"시트린은 인정이지."
뭐가 인정인지는 모르겠는데, 병신 같이 엄지만 내밀고 있는 게, 한대 때리고 싶게 만드는 놈이다.
이 야밤에 저놈이 멀쩡하길 기대하는 내가 진짜 병신이지.
검에 다다른 용사는, 주변의 시선 따위 1도 신경 쓰지 않고, 크게 도약한 뒤, 녀석에게 검을 휘둘렀다.
캉! 캉!
하지만 놀랍게도, 저 말하고 날아다니는 검이, 스스로를 검집에서 꺼내어, 용사와 합을 겨루었다.
용사의 무식하게 힘만 센 검을 받아 내고도 부러지지 않다니, 꽤나 단단한 녀석인가 보다.
"악당 치곤 꽤나 하는 걸! 이름을 들어 두도록 할까!"
「그쪽이야 말로 두발 달린 짐승 주제에 제법이구나. 내 앞에선 조각의 힘도 쓰지 못할 텐데, 용케도 따라오고 있어.」
「상으로 너의 질문에 대답해 주도록 하마. 위대하신 분께서 나에게 내려주신 이름은 엔드홀. 죽기 전에 기억해 두도록 해라!!」
"이야아아ㅡ!!"
어째 마왕과 지랄할 때와는 다르게, 박진감이 있어서 구경할 맛이 난다.
역시 싸움중의 싸움은 검투다. 어차피 저걸 말릴 사람이라 해 봤자 두 명 뿐인데, 흰놈은 저 모양에, 제리스는 깨진 목걸이 파편을 껴안고 흐느끼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 싸움, 끝을 볼 것 같다.
"그마아아안ㅡ!!"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귓구멍에 때려 박히는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가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가장 무신경하면서도, 좆 되겠다 싶으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남자, 주인장이었다.
"가게 부서지면 니들이 다시 만들 거야?! 힘 밖에 못 쓰는 새끼들이! 싸우려면 밖에 나가서 싸워!!"
주인장이 이렇게까지 화난 이유는, 아마도 천장에 대문짝만하게 난 흠집 때문일 것이다.
엔드홀이라 이름 대던 막대기 녀석은, 처음부터 평범한 검이었다는 듯, 바닥으로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고, 하필이면 위치도 주인장의 맞은편이었던 용사만이, 뜨거운 눈초리를 받으며 멀뚱멀뚱 서 있었다.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꼬맹이가 당연하다는 듯 앞으로 나와 ,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검을 검집에 넣고는 자기 자리로 들고 돌아가 앉았다.
"토마토 비프스튜 한 그릇 더."
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하다니, 등신들도 저런 짓은 못 한다.
"조금만 기다려 줄래~"
하지만 그 미친 짓이 정적을 걷어냈고, 등신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게는 다시 평소대로 시끌벅적 해 졌다. 특히 썬더크로스와 그 주변에 몰려든 등신들이 말이다.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 왔을 터인데, 무언가를 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진짜 맛있다, 이 술. 그냥 술술 넘어가는데?"
술.. 술..? 맞다!!
"응? 오로넬 어디가!?"
잊고 있었던 환상의 럼주를 다시 떠올리는데 성공한 나는, 몬드 할배가 서 있었던 썰매를 향해 뛰어갔다.
"아.. 안돼..!!"
그곳에는 이미 운명을 달리한 카이랍 151의 조각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용물은 이미 자국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린 듯하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있던 게 사라지니 괜스레 더 우울해 진다.
"뭐야, 벌써 돌아왔네? 저 썰매에 볼일이 있던 거 아니었어?"
마법사가 보란 듯이 아까 받은 술을 빨아대고 있었다.
"어.. 가자마자 볼 일 끝났어.. 깨졌더라고."
"뭐가?"
「킥.」
지나가던 개도 기분 좆같아 보이는 사람은 안 건드는데, 이 막대기 같은 새끼가 사람 화를 돋군다.
"이 십색기가. 내 술 부순 거 너지? 니가 부쉈지? 니가 부쉈다고 말해. 니가 부쉈어."
「맞다면 어쩔 것이냐?」
"널 부숴주마, 이 나무막대기 같은 새끼야."
원래 화난 사람 건드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의 분노가 자신에게 쏠릴 각오는 늘 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 이 막대기 녀석에게 그걸 알려줘야겠다.
「아까 그 두발 달린 짐승의 검도 날 부수지 못 했는데, 너 따위가 무슨 수로 이몸을 부순다는 말이냐? 우습군.」
테이블 위에 눕혀져 있는 막대기 녀석을 집어 들었다.
"부수는 건 내가 아니야. 이 녀석이지."
그러고는 꼬맹이에게 검을 내밀었다. 꼬맹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어이, 꼬맹이. 이거 부수면 앞으로 니가 먹고 싶은 만큼 스튜를 먹게 해 주마. 그리고 검도 이것보다 좋은 걸로 바꿔주지. 말하는 검은 멋이 안 살잖아?"
「어, 어이 네 녀석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까짓 일로 날 부술 리가 없잖아. 그렇지 데이린?」
"아까 니가 말했지? 너네 둘은 원래 세트였다고. 그러니까 이 녀석은 너랑 동급의 존재라는 거고, 그렇다면 널 부술 수도 있겠지, 안 그래? 자, 꼬맹아. 이것만 해치우면 오늘에라도 당장 그 혜택을 누리게 해 주마."
꼬맹이가 망설임 없이 검을 받아가더니 손날을 바짝 세워 머리위로 들어 올렸다.
「잠깐만, 잠깐만. 거짓말이야 거짓말. 죄송합니다아!!」
"멈춰."
가슴까지 내려온 꼬맹이의 손날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른 손에 쥐어진 검을 받아, 내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렸다.
꼬맹이에겐 아쉬운 대로 무제한 취식을 하루 동안 허용해 주었다.
"그래, 그렇게 쪼는 걸 보니, 확실한 모양이군. 앞으로도 나한테 개길 계획이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꼬맹이와 협상할 의사가 있다는 걸 미리 말해두지."
"뒤지기 싫으면 알아서 찌그러져 있는 게 좋을 거다. 니가 한낱 쇳덩어리에 불과하단 사실을 잊지 말도록."
「이이이..! 세 발 달린 짐승 놈. 기억해 두겠다.」
“뭐? 갖다 버려달라고?”
「아닙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왜 나한테 시비를 거는 놈들은 자기네들이 먼저 날 쳤다는 사실을 까먹는 걸까?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둘이서 하던 얘기는 끝났어? 이제 나와 얘기를 좀 해줬으면 하는데, 엔드홀이라고 했던가?"
그래. 아까 전 용사와의 싸움에서 했던 말도 그렇고, 꼬맹이에 대해 했던 말도 그렇고, 마법사 녀석이 질문할게 많을 거라 생각했다.
「후.. 넌 또 뭐지, 두 발 짐승?」
"내 이름은 시오, 과학자다. 너 같은 놈들을 보면 분해하고 싶어지는 사람들 중 하나지."
「...용건이 뭐지?」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아까 '위대하신 분'이라는 말을 했었지?
「그렇다만.」
"창조라는 말도 하던데, 그 자는 뭐하는 작자지? 어떻게 너를 만들었지?"
「위대하신 분이 행하시는 일에 의구심 따위 갖지 않는다. 눈을 뜨니 그분의 품이었고, 그분이 날 창조했다고 하셨다. 그것뿐인 이야기다.」
"그런 거짓말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니가 실험실에서 나온 건지, 땅을 파서 나온 건지, 하늘에서 떨어진 건지에 대한 증명은 되지 않아."
「그분에게서 비롯된 피조물 주제에, 어째서 너는 신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거냐?」
"신? 내가 아는 신은 병신과 등신뿐이다."
「그렇다면 더 해줄 이야기는 없군.」
"아, 그전에 하나 더. 이 꼬마와 함께 나타날 예정이었다는 게 무슨 말이지?"
「본래 데이린과 나는, 최강의 무기와 최강의 육체로써 어떤 사명을 띠고 함께 이 땅에 내려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갑작스레 찾아왔고, 불완전했던 데이린만이 멋대로 지상에 강림했다. 나는 그 뒤에 급하게 내려왔지만 이미 그 자리에 데이린은 없었지.」
그날이 그날이었군. 그럼 내가 주워온 게 신의 창조물이란 건가?
내가 이래서 신을 안 믿는다.
이딴 결함투성이의 물건을 만들어 놓고 지상에 던지다니, 지상은 쓰레기통이 아니란 말이다.
"하, 강림? 그럼 너희는 그때까지 어디에서 지냈는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그분의 거처이기도 하지.」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겠군. 적어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사이비 녀석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마법사와 막대기의 대화가 조용히 끝나나 싶었는데, 마법사답게 마지막에 뭣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말을 삼가라, 짐승!! 감히 누구 앞에서..」
"야."
막대기의 언성이 높아지자, 주방 너머로 주인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다.
"넌 닥치고 있어라."
「네..」
신기한건 인간을 깔보듯이 대하는 이 놈이 주인장에겐 굽신거린다는 것이다.
사람이 첫인상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아까의 그 고함소리에 겁을 먹은 것 같다.
뒤에서는 술에 취한 몬드 할배가, 썰매를 치우겠답시고 밀어대더니 발을 헛디뎌 자빠지고 있었다.
일일 루돌프였던 늑대는, 날짜가 바뀌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아, 고기를 먹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몇 시지?
1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냐고 물어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은 꼬맹이가 그만 먹을 때 까지 돌아갈 수 없으니까.
"야, 꼬맹이. 이제 배 안 부르냐?"
"더 먹을 거야."
대체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는 배다.
위대하신 분이라는 양반이 연비도 참 뭣 같이 설정해 뒀나 보다.
아무래도 오늘도 가게에서 밤을 세야 할 듯하다.
"야! 여기 썰매 뒤편에 아직 술 많다!"
저 놈은 왜 저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마부가 자신이 건져 올린 수확물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빨리 돌려!
-여기도 있다!
이놈들도 밤을 지새우긴 마찬가지 일 것 같다. 구경거리가 부족하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저놈들의 등신짓을 안주삼아 빠르게 꿈나라로 도망치도록 하자.
-어? 이건 뭐야? 카이랍151? 처음 보는 술인데?
"야!! 그거 내놔!!"
어느새 등신들의 무리에 몸을 던지고 있는 내 자신이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편히 잠들 수가 없을 듯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기억이 새하얗게 증발한,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