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들 하지만, 꽉 찬 깡통도 충분히 시끄럽다 [2]
모든 생물들은 본능적으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닫혀 있는 변기통이 그렇고, 수업시간에 날아오는 종이쪼가리도 그렇다.
하지만 진화라고 해야 할지, 퇴화라고 해야 할지, 그 본능을 거스르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 등신들이다.
-와하하하!
여느 때와 같이 시끄러운 날이었다.
등신들은 여전히 등신짓을 하고 있고, 주인장은 여전히 개밥을 만들고 있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내 옆자가 비어 있다는 거다.
한 두 번 늦은 적은 있었지만, 마법사가 이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똥이라도 싸고 있는 건가?
"오로넬씨, 왜 그렇게 빈자리를 쳐다보고 계신가요? 혹시 시오씨가 늦으셔서 심심하신 건가요?"
근처를 지나가던 제리스가 물었다. 심심했으면 뒤에 있는 등신들이나 구경했겠지, 멍청하게 빈자리나 쳐다보고 있겠냐.
"아니 맨날 옆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아무도 없는데도 소리가 들리네."
'자, 가자! 니 힘을 보여줘!'
"봐라 이거. 나만 들리는 거냐?"
"어? 저도 들은 것 같.."
쾅!
해가 바뀌어도 문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올해도 여전히 등신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도구로써, 있는 힘껏 벽에 부딪히고 있다.
"흐흐흐, 이 무지한 것들! 내 발명품을 보고 전율하도록 해라!"
낯이 익은 등신이다. 옆에는 사람 키만 한 고철덩어리가 있었는데, 드디어 미쳐버린 건지, 고철덩어리를 보고 전율하라고 한다.
"너무 놀라워서 아무 말도 안 나오나 보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등신들이었지만, 이건 놀란 게 아니라 머리에서 다른 기관으로 명령을 하달하는 게 존나 느릴 뿐이다. 심한 놈 중에는 때리고 나서 5초 뒤에 반응하는 놈도 봤다.
"야! 추우니까 닥치고 빨리 앉아!"
한겨울의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열린 문을 타고 들어와 피부를 유린했다. 다른 등신들도 몸을 떨고 있는데, 문과 일직선상에 놓인 내 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훗, 진짜 그래도 되겠어? 내가 여기서 움직이면 더 놀랄 텐데? 다들 놀라 자빠질 걸?"
"이미 다 놀라 자빠졌으니까 빨리 와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 줬는데도, 마법사는 병신 같은 자태를 뽐내며 고철덩어리에 팔을 얹고 있었다.
"좋아. 잘 보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잘난 머리를 치켜들고 걸어오는 마법사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옆에 있는 고철덩어리도 마법사와 함께 움직였다. 고철의 무게가 상당한지, 걸을 때 마다 바닥이 울린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여기 술 한 잔 더 줘!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법사는 아무 일 없이 자리에 도착했고, 등신들은 다시 자기들이 하고 있던 짓을 이어갔다.
"어째서 아무도 안 놀라지!? 어째서야! 왜 너도 안 놀라냐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대체 어디서 놀라야 하는 건데?"
마법사가 내 멱살을 잡고 신경질을 냈다.
"이거 보라고!"
마법사가 고철덩어리를 두드렸다.
"고철덩어리잖아."
"맞는데! 고철덩어리는 맞는데! 스스로 움직여서 여기까지 왔잖아! 다른 고철은 못 하는 거잖아!"
"여기 있는 놈들이랑 다를 바 없구만 뭘.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말하고 움직이는 돌인데."
마법사가 가슴을 쳤다.
"그건 비유고! 이건 진짜 고철이라고! 고! 철!"
마법사가 한 번 더 고철덩어리를 두드렸다. 깡깡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허ㅡ억."
"거기서 놀라지 말라고!"
"뭐 어쩌라고 도대체."
"으으으..!! 점점 강도를 높이려 했는데 안 되겠어. 이걸 보고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을까? 자, 보여줘!"
마법사가 명령하자, 고철덩어리의 팔과도 같은 부분이 반으로 접히더니 불이 뿜어져 나왔다.
열기가 얼마나 센지, 다른 등신들도 잠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놀라는 녀석은 없었다. 한 사람만 빼고.
"야! 가게 태워먹을 일 있냐! 빨리 꺼!!"
바로 가게 주인이었다.
회심의 일격에도 아무도 놀라지 않자, 마법사는 힘을 잃고 털썩 주저앉았다.
"양심 없는 새끼."
좆도 아닌 걸로 내 시간을 뺏고 멱살을 잡다니, 욕을 먹어도 싸다.
"시발.. 불.. 뿜을 수 있다고.."
"대체 어디서 놀라야 될지 모르겠는데, 설명이라도 좀 해주면 안 되냐? 그럼 놀라줄게"
반쯤은 엿 먹으라고 한 말인데, 진짜 어디서 놀라야 될지는 모르겠다.
"너, 너.. 진심으로 묻는 거야?"
"어."
마법사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어~이! 오로넬, 시트린 안녕. 데이린도 안녕?"
용사가 좋지 않은 때에 나타났다.
"안녕."
스튜에 집중하고 있는 꼬맹이는 간단한 대답만을 보내왔다.
"또 잘 놀다가 왜 이쪽으로 왔냐? 오려면 조금만 더 일찍 오지. 방금 전에 옆집 문 닫았다."
"응? 무슨 말이야?"
하여간 비유를 알아듣는 놈들이 없다.
"그보다 시오 옆에 저거 뭐야? 엄청 큰 돌이다."
"어.. 어? 그래! 관심이 가지?"
마법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나이 대략 천 살. 아직도 관심이 필요한 나이이다.
미리 말해두는 건데, 용사는 방금 가게에 온 게 아니다. 한참 전부터 다른 테이블에서 놀다가, 방금 이 자리로 온 거다. 아까 그것도 이미 다 봤다는 말이지.
"봐. 이 녀석, 내가 가는 대로 따라오고, 담배에 불도 붙여줄 수 있어."
마법사는 고철덩어리와 몇 걸음을 걷더니 담배를 내밀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고철덩어리는, 아까처럼 센 불이 아닌 약한 불을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어때?"
존나 큰 성냥이랑 다를 게 뭔데.
"음.. 그게 다야? 다른 건 더 없어?"
"어, 어.. 이게 전부인데.."
"에이, 그래도 불은 너무 실망이다. 난 이것보다 더 큰 돌이 불을 뿜는 것도 봤다구."
이런 걸 여기서 말고 또 볼 곳이 있단 말인가?
"어디였지.. 무슨 폐허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날아다니기까지 하는 엄청 큰 돌에서 불까지 뿜어져 나왔지. 때려잡는데 고생 좀 했어."
"야, 그거 용 아니냐?"
돌처럼 단단한 피부에, 날개가 있고, 불을 뿜는 존재는 용 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허구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맞아, 용! 한번밖에 본 적이 없어서 이름을 까먹었네."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개소린 줄 알았는데, 그걸 진짜로 봤다고?"
"그렇다니까. 포효를 처음 들었을 땐 오줌까지 지렸다고."
"와.. 야, 더 말해봐. 생긴 건 어떻게 생겼냐? 책이랑 똑같아?"
"꼬리가 엄청 길고 발톱이 웬만한 검들보다 날카로워. 또 피부가.."
-야, 저기 뭐하는 거야?
-시트린이 용을 봤다는데?
-우리도 들으러 가자.
근처에 있는 등신들이 이야기를 흘려듣고는 용사의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게는 흡사,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듣기 위한 꼬맹이들의 모임과도 같이 바뀌었다.
"...난 이만 갈게."
힘없이 잔을 내려놓으며 마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취했냐?"
"신경 꺼!"
괜히 나한테 화풀이를 하며 가게를 뛰쳐나가는 마법사였다.
기세 좋게 뛰어 나간 것 까지는 좋았지만, 느리게 따라오는 고철덩어리 때문에, 문을 열고 한참은 기다리고 서 있어야 했다.
"두고 봐!! 내일은 정말 누구나 놀랄법한 걸 가져 올 테니까!"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훗, 오늘은 정말 놀랄 거다."
마법사는 고철덩어리와 함께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가게에 입장했다.
"야, 또 삐져서 나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아 삐진 거 아니라고! 취해서 갔던 거야, 취해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됐고. 어차피 또 그 조각으로 천 년 뒤인가 하는 곳에서 보고 만든 거잖아. 아니냐?"
"뭐.. 원본은 그렇지. 근데 이건 내가 직접 고민하고 만든 오리지널이라고."
"아 그래? 그럼 다행이네."
"무슨 뜻이야?"
마법사가 노려봤다. 내가 좆같은 소릴 할 거란 걸 직감한 모양이다.
"천 년 뒤의 인류는 담배에 불붙이는데 그런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들고 다니는 줄 알았지."
"흐, 흐응.. 재, 재밌네? 기능이 적은 건 이 녀석이 아직 시작기라서 그런 거야. 이제부터 하나씩 늘려나갈 거라고. 그때가 되서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울고불고 빌어도, 너는 절대로 안 만들어 줄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입 꼬리를 부들거리며 억지로 웃던 마법사가 결의를 다진 눈으로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등신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기가 바라는 물건을 완성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칭송받아 마땅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놀라는 건 별개의 일이겠지만.
애초에 이곳에 있는 등신들은, 다들 무언가 한 가지에 미친놈들뿐이다. 검에 미친놈, 맛에 미친놈, 말에 미친놈, 그리고 그냥 미친놈들까지.
이 녀석도 그런 놈들 중 하나이니, 어렵잖게 목표에는 도달할 것 같다만, 꺾이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대가리가 깨져도 잘못된 길을 계속 걷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요컨대, 갈 길은 제대로 골라야 한다는 거다.
괜히 등신들에게 휘둘려서 요상한 물건을 만들어내지 말고, 마법사 자신이 만들려 했던 걸 끝까지 만들었으면 한다.
저놈들의 괴이한 취향과, 마법사의 기술이 만나면, 뭐가 만들어질지 짐작도 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놈 이름은 뭔데? 고철덩어리는 아닐 거 아냐."
"로봇이라고 하던데."
"아니 아까는 오리지널이라며. 그럼 이름도 따로 지어야지. 뭘 그대로 쓰고 앉았냐?"
"음.. 아직 정한 게 없는데."
"봐라. 넌 그것부터가 글러먹었어. 오리지널이라면서 이름은 모방한 걸 그대로 쓰고. 저 등신들이 관심도 안 준다고 뛰쳐나가서는, 집에서 하루 종일 이놈만 잡고 있었지? 오늘은 뭔 병신 같은걸 달고 왔냐?"
왠지 모르게 이 녀석이 이상한 걸 만들어내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꼽을 준다면 길을 잘 못 들지는 않겠지.
등신들이야 어차피 처음부터 있던 곳이 저 밑바닥이라지만, 그나마 이 가게에서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마법사를 저 놈들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 수는 없다.
원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게 더 아프듯, 그 충격으로 저놈들 보다 더 미쳐버릴 지도 모르고 말이다.
"..냉장 기능.."
"뭐?"
"냉장 기능!"
"그게 뭔데."
마법사가 자신 없게 손가락을 튕기자, 고철덩어리의 배에 해당하는 부분이 열렸다. 그 안에는 유리컵에 담긴 물이 있었다.
"앗, 차가워! 뭐야, 왜 이렇게 차가워?"
그 물은,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저장고에서 나오는 가게의 술 보다 더 차가웠다. 눈 속에라도 넣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어! 방금 놀랐지? 놀랐지? 너 놀랐다?"
"저 깡통새끼 때문이 아니라, 물이 차가워서 놀란 거라고. 너도 한대 처맞으면 놀랄 걸?"
"깡통? 깡통이 뭐야?"
뒷말은 신경 쓰이지 않고 깡통에 대해서만 묻는 마법사였다.
"그러게. 깡통이 뭐냐? 욱 해서 씨불이다 보니 튀어나왔네. 깡 소리 나는 통이니까 깡통이라고 했겠지, 뭐."
"좋아! 오늘부터 이 녀석의 이름은 깡통이다. 입에 착착 감기고 좋은 이름인 걸. 답례로 너한텐 이 녀석의 성장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도록 할게."
아무리 봐도 멸칭인데, 잘도 시작기에 그런 이름을 붙인다.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가게에서 지랄하는 걸로만 좀 참아줘라."
"다들 안녕~ 어, 시오! 어젠 왜 그렇게 일찍 간 거야? 섭섭하게."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걸 진심으로 모르는 건가, 이 용사라는 여자는.
"으,응.. 어젠 좀 취해서 일찍 갔어.."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용사와 이야기하는 게 거북한 모양이다.
"어제 봤던 돌이네? 손에 든 건 뭐야?"
"새, 새로운 기능이야. 무엇이든지 차갑게 만들어 버릴 수 있지."
컵을 만져보더니 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차갑긴 한데, 예전에 봤던 얼음땡이란 녀석이 더.."
-시트린이 또 옛날이야기 해 준다!!
이번에는 저놈들이 나빴다.
그렇게 용사는, 또다시 마법사의 관객들을 빼앗아 갔다.
"..내일.. 두고 보자고.."
마법사는 주먹을 쥐고 이를 갈며, 또 한 번 내일을 기약했다.
그리고 다음날.
"이것보단 시뻘갱이가 더.."
그 다음날.
"이것보단 빅풋이.."
또 그 다음날.
"이것보단 꽐라.."
또 또 그 다음날.
"이건 좀.."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