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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들 하지만, 꽉 찬 깡통도 충분히 시끄럽다 [3] (30/108)



〈 30화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들 하지만, 꽉 찬 깡통도 충분히 시끄럽다 [3]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결국 성공한다는 말인데, 내 눈앞에 있는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안녕하십니까? 이름 없는 술집의 주민 여러분. 저는 오늘부로 새롭게 태어난 깡통이라고 합니다."


연이은 실패를 맛보던 마법사가 진짜로 어머니가 되어 돌아왔다.

자기를 깡통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는, 아무리 봐도 그 고철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닮은 구석이라곤 쇠를 연상시키는  은색머리 뿐.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놈들 관심하나 끌어보겠다고 사람을 납치해오냐?"


내가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는 피한 것 같은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마법사가 망가진 모양이다.

발명도 포기해버리고 사람을 납치해 올 줄이야. 역시 사람이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무슨 소리야? 이게  깡통이라니까!"

마법사가 반박했다.


"저는 깡통입니다. 제 부모님도 깡통입니다."

"저거 봐라, 시발. 암만 봐도 세뇌 당했구만. 빨리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고 오라고."

"아 아니야, 이건 농담 기능을 넣어서 그런 거라고.  봐!"

남자의 복부에 손을 갖다 대자, 몇 주 전에 봤던 그 유리컵이 나타났다.

"오."

그 깡통이 맞는 모양이다.

"어때, 놀랐지? 이번에야말로 놀랐지? 인간인 줄 알고 놀랐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듯한 표정의 마법사였다. 누구로부터 뭘 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바뀐 건 외형뿐인 것 같은데, 인간의 꼴을 하고 이상한 짓을 할 수 있는 놈들은 여기에 널리고 널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놀라지 않는 건,  이놈들 때문이다.


"어.."

마법사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이미 내가 놀랐다고 확신하고 있는, 감상을 듣기 위한 눈이다.


솔직히 오늘도 누구하나 놀라는 인간이 없다면, 여기에  다른 기능을 탑재해서 오겠지만, 이미 이 녀석은 망가지기 일보직전이다. 아마 오늘이 고비겠지. 거꾸로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른 등신들이 놀라지 않는다면, 나라도 놀라야 한다.


"와,와아.. 정.말. 놀.랍.다."

본래 연기는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해 왔지만, 이런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있을 리가 없다.


미안하지만 내 최선은 여기까지다. 이제 될 대로 되라지.


"드디어! 오로넬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속일 생각은 없었는데, 마법사가 멋대로 속아버렸다. 멀쩡한 사람의 무릎까지 꿇리는  보니, 뇌내 보정이 심하게 들어간 모양이다.


"그래, 아무리 너라도 이걸 본 이상 놀랄 수밖에 없겠지! 인간 같이 생긴 녀석이 사실 인간이 아니라 고철이라니! 나라도 놀라겠어!"


 발연기에 느끼는 바가 크다니 다행이다.


"꼬마야, 너도 볼래?"

기세를 몰아 꼬맹이에게도 놀라움을 전파하려는 마법사였다.


하긴, 다른 놈들을 놀라게 하려면 용사가 없는 지금이 기회긴 하다.

첫째 날 외에는 용사의 옛날이야기 때문에 자랑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뭔데?"

"이거 봐, 뭔 것 같아?"


마법사는 양손을 펼쳐 깡통을 가리켰다. 꼬맹이는 숟가락을 우물거리며 그걸 지긋이 쳐다봤다.


"음.."

계속 쳐다보며 우물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 그냥 보자마자 느껴진 걸 말하면 돼. 굳이 맞출 필요는 없어."


보다 못한 마법사가 말했다.

"사람."

말이 끝나자마자 꼬맹이가 대답했다.

"훗, 역시 사람인 줄 알았지? 정답은 깡통이었다구."

깡통의 검지가 열리더니 불이 뿜어져 나왔다.

"응."


꼬맹이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선 다시 스튜를 먹기 시작했다.


"아,아니 안 신기하니 꼬마야?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다니까? 손가락에서 불도 나온다니까?"

신기해야 하는 걸, 일일이 설명해 주는 인간은 또 없을 거다.

"스튜도 나와?"


꼬맹이가 물었다. 그래, 이것만 성공하면 꼬맹이도 놀랄 것이다. 수많은 기능 중에 그 정도는 달려 있겠지. 제발 성공하고 오늘부로  짓을 끝내줬으면 한다.


"재료만 넣으면 나오지. 보여줄까?"

"응!"

꼬맹이가 힘차게 대답했다.


"마스터, 꼬마가 먹는 스튜, 재료들만  줘 볼래?"

"어? 뭐하려고?"


"내가 순식간에 스튜가 완성되는  보여줄게."


주인장은 반신반의하는 듯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자기 일이 줄어드는 것임을 깨달고, 선뜻 재료를 내주었다.

"야, 저거 맞냐?"

재료를 받은 깡통이, 입 속으로 그것들을 우겨넣고 있었다.


"문제없어, 문제없어.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니까. 먹는 게 아니라 재료를 넣고 있는 거야."

"암만 봐도 처먹고 있는데? 양파 먹으면서 울고 있잖아, 저거. 거기다 베어 먹긴 왜 베어 먹는 건데?"


"아, 저건 감각기능 때문이고, 베어 먹는 건 큰 재료들을 잘라서 넣는 거야. 걱정하지 말라니까."

"야!! 이 새끼 뭐하냐!?"

재료를  먹어치운 깡통이, 갑자기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양손에 주먹을 쥐고, 어깨까지 들어 올리더니, 묘하게 귀에 익은 기합소리를 냈다.


"야이 시발, 이거 그거잖아! 누가 똥구멍으로 나온 음식을 처먹겠냐고!"


잠시 후, 깡통의 둔부가 열리고, 접시가 하나 떨어지더니, 스튜가 쪼르르 흘러나왔다.

"다른 곳엔 전부 기능이 있다 보니, 조리 기능을 넣을 만한 넓은 곳이 없었다고. 그러다가 마침 눈에 들어온 게 둔부였지. 덕분에 깡통은 허투루 쓰는 공간 없이 온갖 기능들로 빼곡하게 가득 찬, 세기의 발명품이  거라고."

마법사가 땅바닥에 놓인 접시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아무리 저게 똥이 아니라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자, 꼬마야. 니가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는 스튜일 거야. 어서 먹어봐."

자기도 안 먹어봤을  같은데, 뭘 믿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맛없다고 하면 맛있다고   까지 먹일 셈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꼬맹이는  음식에 일말의 거부감도 표하지 않고 숟가락을 담갔다. 그리고 힘차게 건져낸 건더기를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음..!"

마법사와 나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꼬맹이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사는 꼬맹이가 맛있다고 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꼬맹이를 감복시킨 기세를 몰아, 다른 등신들에게서도 감탄사를 자아낼 계획이겠지.


나는 꼬맹이가 맛없다고 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뒤에 어떻게 할지는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둔부에서 음식을 꺼낸 깡통을 패야 할지,  깡통을 만든 마법사를 패야 할지를 말이다.


"맛있어."

그건 정말이지, 일말의 감정조차 들어가지 않은 대답이었다.

입은 맛있다며 움직이고 있지만, 목소리를 내는 목과, 감정을 나타내는 눈이, 무언가  곳을 향해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야, 진짜 맛있는  맞냐?"


"응."


"근데 목소리가  그래?"


이 녀석의 머리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텐데.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맛있는데 기분이 나빠."

"뭐? 너 저게 어디서 나오는지, 다 보고 먹은 거잖아."

"너무 따뜻해."

보통이라면 요리사에 대한 극찬으로 받아들일 터인 이 말이, 너무나도 똥과 같았다는 말로 들려왔다.


"으, 으음.. 그래도 일단 맛은 검증  거잖아? 어디로 꺼내는 지만 안 보여주면 되는 거라고."

"하나만 묻겠는데, 넌 먹어봤냐?"


"아아..니?"

"앞으로 니가 주는 음식은 절대 안 먹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마법사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술에 집중하기로 했다.


2주나 되는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저딴 똥 같은 거라니, 이제 다른 등신들한테도 저걸 보여주러 달려가겠지.


"아, 만족했어. 몇 천 년을 살아왔는데 오늘 만큼 기분이 좋은 날은 처음이야. 그러니까 건배나 하자."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마법사는 그냥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길 권할 뿐이었다.


"뭐야, 다른 놈들한텐 안 보여줘? 그러려고 이 놈한테 이것저것 때려 박아 넣은 거 아니냐?"


"에이, 내가 남 보여주려고 이걸 만든 줄 알아?  번이고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만들고 싶었던 거라고."


마법사가 당당하게 말하며, 옆에 서있는 깡통의 어깨를 눌러, 빈 의자에 앉혔다.

"그ㄹ.."

"물론! 만들고 난 직후의 그 뿌듯한 마음에 부풀어서 여러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었지. 근데 그것뿐이야. 절대로 이 녀석들의 취향에 맞춰서 만든  아니라고!"


내가 묻기도 전에, 물으려는 말에 반박하는 마법사였다.

뭐, 기능을  보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용사 때문에 삐져서 돌아간 횟수보다는 많은 기능이 탑재된 것 같으니, 거짓말은 아닌  같다.


"그래, 잘 알겠는데. 여러 사람이라는 게 이놈이랑 나, 두 명이면 되는 거냐?"


나와 꼬맹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을  멀리 보냈는지 꼬맹이의 머리에 닿았다. 이쪽을 쳐다보는 꼬맹이의 얼굴을 다시 스튜로 돌려놓고, 마법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두 명이면 되잖아. 어차피 다 수준도 비슷한 놈들인데."


내가 저놈들이랑 수준이 비슷하다고? 이게 정신이 나갔나?


끼이익.

"어서옵쇼~"


"어라, 뭐야? 나디아 녀석 아직 안 왔네."

용사다. 용사가 나타났다. 기껏 마법사가 2주 동안 짓밟혔던 자존심을 회복하고, 정신 승리를 하려는 찰나에, 자각도 없이 그 자존심을 짓밟고 있던 당사자가 나타났다.


"뭐, 알아서 오겠지. 여, 시오! 같이 마시ㅈ.."

"야! 잠깐만. 너 나랑 얘기 좀 하고 오자."


실실 쪼개며 평화를 박살내기 위해 걸어오는 용사의 목에 팔을 걸어 끼우고, 바깥으로 향했다.


본래 수술을 통한 치료의 경우, 수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뒤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재활이라던가, 약을 복용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마법사의 정신이 완전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인  녀석이 머리를 조아리는 게 빠르겠지만, 정말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이 놈이 그리 해 줄 것 같지는 않으니, 그것 까진 바라지 않는다.


놀라는 척이라도, 아니,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아준다면, 이 사태를 빨리 종식 시키는데 큰 도움이  것이다.


"켁, 켁. 왜 그래 오로넬? 무슨 일인데?"

목을 잡고 기침을 하는 용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들어라, 이 멍청한 놈아. 자각은 없겠지만, 너 때문에 좆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


한 명은 나, 다른 한 명은 마법사다.


내가 왜 끼어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맨날 듣기도 싫은 잡소리를 옆에서 강제로 듣는다고 생각해 봐라. 나는 내가 마법사보다 더 좆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당당히 자부할 수 있다.


"그 인간들에게 속죄할 방법이 있다면, 그리 할 테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용사였지만, 속죄라는 말에 또 용사놀이에 불이 붙은 건지, 매섭게 돌변한 눈으로 비장하게 답했다.

"기꺼이."


다른 상황이었으면 조금은 멋있게 봐 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건 그저, 자기가 싼 똥을 자기가 치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똥을 치우는 방법을, 나이 지긋이 처먹은 성인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가르쳐야만 했다.


"좋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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