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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화 〉썰매 이름으로 탈룰라만 한 것도 없다 [1] (44/108)



〈 44화 〉썰매 이름으로 탈룰라만 한 것도 없다 [1]

"하하, 요즘 날이 좀 덥구만. 안 그런가, 오로넬?"


"그래도 할배는 옷이라도 시원해 보이는구만. 날 봐, 이건 옷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오랜만에 몬드 할배와 이야기를 했다.

저 할배는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더니, 여름에도 여전하다. 뭐, 그렇게 말하면 나도 여전히 긴팔과 긴바지다. 두께는 얇아졌지만.


"이런 날엔 젊었을 시절에 자주 먹던 뜨끈한 탕이 당기는데, 이젠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도  나는구만."

"할배 돌았어? 이 더운 날에 뜨끈한 탕은 무슨, 숨 쉬는 것도 조심해야 될 나이면서, 더위까지 먹으면 진짜 뒤져."

"아니, 젊은 놈이 그것도 안 먹어 봤나? 원래 더울수록 따뜻한 걸 먹어서, 몸속에 있는 땀을 다 빼내야, 여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걸세."

"땀 빼면서 거품도 물겠는데?"

"맛있어?"


마찬가지로 뜨끈한 스튜를 퍼먹고 있던 꼬맹이가 물었다. 하여튼, 맛도 모르면서 먹을  얘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그러엄, 맛있지. 그걸 안 먹고는 여름을 올바르게 보냈다고  수도 없을 정도라네."


"오오..!"

어차피 이 뒤에 나올 말은 먹고 싶다겠지. 하지만 방금 할배 본인이 만드는 방법을 잊었다고 했으니, 만들어 내려야 만들어  수가 없을 것이다.

"도리안, 저거 해줘."

"뭐? 무슨 요리?"

졸고 있던 주인장이 허둥지둥 대답했다.


"방금 몬드가 말한 요리."

"너 무슨 요리 얘기하고 있었어?"


꼬맹이가 몬드 할배에게 바통을 넘겼고, 주인장은 몬드 할배에게 물어야했다.


"뜨끈한 탕."


"이 ㅆ.. 그렇게만 말하면 내가 뭔 수로 알아? 지금 아무 탕 요리나 말 해 보라고 해도, 열 개는  하겠다."

주인장이 하려던 말을 참고, 순화된 단어들로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근데 저건 주인장이 잘 참은 거지, 누가 들어도 욕을 했을 상황이다.


아무리 이름을 모르는 요리라지만, 앞  설명을  지우고 말하면 어떡하라는 거냐.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노장께서 말씀하시는  들어보니 보양식의 일종이라고 생각 된다만, 여름철에 드셨다는 걸 봐선, 삼계탕이나 보신탕중 하나일 거라 생각 되는군."

여기서 또 쓸데없이 젠이 끼어들어 분위기를 조져놨다. 군인 출신은 눈치 없는  기본 소양인가보다.

"어, 그래! 아마 그 둘  하나일 걸세.  좀 아는구만, 자네."


노장이라 올려 말하는 것도 그렇고, 둘 다 전장에서 살다시피  놈들이라는  고려해보면, 젠 쪽에서는 할배와 구면인 듯한데, 할배는 초면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삼계탕은 닭으로 만들고, 보신탕은 들개나 늑대로 만드는데, 보양식으로 먹는 만큼, 신선한 걸 넣는 게 좋을 겁니다. 아쉽게도 가게에 보관 돼 있는 것들은 신선도가 부족하군요."

"하! 늑대라면  산에도 널리고 널렸지! 내 금방 한 마리 잡아옴세!"


"몬드, 내 거도."


꼬맹이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암! 이 늙은이에게 맡겨 두거라!"

몬드 할배는 호쾌하게 잔을 비우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툭.

뒤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물건은 아닌 것 같고, 누군가 벌써 취해서 바닥에 드러누웠거나, 그런 놈들을 옮기다가 놓친 것일 거다.


"어."

몬드 할배가 멈춰 섰다. 뒤에 떨어진 무언가와 연관이 있는  확실하다. 다른 등신들도 갑자기 조용해지는 게, 분위기가 싸하다. 나도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숨통이 끊어진 순록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두발로 일어서서 벽에 기대어있는, 털로 가득한 무언가가 서있었다.

"노장! 늑대입니다! 잡으십시오!"


"미친 새끼가!"

바로 앞에 있던 술잔을 젠의 머리통에 던졌다. 이런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눈치 없는 놈들에겐 말보단 이게 약이다.

"어으음.. 라보, 진정하게. 자네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나, 난 변소에 가고 있었을 뿐이라네."

"절 먹으실 생각인가요..?"

"으악! 늑대가 말을 한다!"


"조용히 하라고 좀!"

이번엔 마법사가 젠 녀석의 머리통에 술잔을 던졌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만큼 처맞았으면 뭐가 문제인지 알 텐데, 이 새낀 눈치를 넘어서 여러 가지가 부족한 모양이다.

"그, 그건 저 젊은이가 말해준 요리의 재료에 늑대가 들어간다는 말이었지, 자네를 먹겠다는 게 아닐세."


할배는 필사적으로 둘러대고 있었다.

할배가 느끼고 있을 기분은 마치, 친구와 둘이서 걷다가,  놈이 맞은편에 있는 여자를 보고, '저 여자 존나 못생겼다'라고 말하며 웃고 있는데, 그 친구 놈이 '우리 엄만데' 라고 말했을 때의 기분과 같을 것이다.


"그치만 방금.. 산에 늑대는 널렸다고.. 제가 아니면 동족들을 먹으실 생각인가요..?"


"아닐세! 나, 난 지금 마을로 내려가서 닭을 사올 예정이었다네. 늑대가 많다고 한 건.. 그래! 자네의 친구들에게도 그 요리를 대접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라네. 자네 종족은 털도 많아서 더위가 더 심할 텐데, 보신이라도 했으면 해서 말일세."


몬드 할배가 한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변명이었다.


누군가 초를 치지만 않는다면, 늑대는 이 일에 대해 넘어갈 것이다.

그것을 행하려 할 '누군가'가  일어나려 했기에, 꼬맹이가 비워둔 접시 한 장을 집어서 다시 머리통에 던졌다.

주인장이 순간 격분하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내가 눈짓을 하며 뒤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저..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물론일세! 조금만 기다리고 있게, 내가 곧 닭을 구해 와서 보양식을 대접할 테니. 자네 입에도 맞는다면 친구들도 부디 불러주길 바라네."

늑대는 주변 등신들의 동태를 살피며, 떨어뜨린 순록을 다시 입에 물고, 카운터석으로 향했다.


끼이익.

도망치듯이 뛰쳐나간 몬드 할배가 사라진 뒤, 가게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 살인미수의 현장에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저.. 순록 구이, 부탁드립니다."

"어, 어. 그래.. 제리스, 저거 갖고 주방으로 들어와라."

"네."

 옆을 지나가는 제리스의 팔을 붙잡았다. 놀라서  쳐다보는 제리스에게, 주방을 가리키며 목을 긋는 손짓을 했다. 젠 새끼를 치우란 뜻이다.


제리스는 이해했다는 뜻으로 세차게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순록을 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다들 오랜만이네요.."


늑대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의 기분을 이 이상 잡치지 않게 하려면, 대화에 응하여 기분을 풀어줘야 했다.

하지만  녀석이 말을 건넨 대상은 불특정 다수다. 즉, 아무나 대답하면 되는 거다. 아무나 해도 되는 일에, 나는 휘말리고 싶지 않다.

그도 그럴게, 저기에 대답하는 것은, 오늘이 끝날 때까지 저 녀석을 전담하겠다는 계약과도 같은 행위이다.


읍..!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나올 뻔했다. 그 원인은 피부에 닿은 포크 때문이었다. 옆에는 그 포크를 쥐고 있는 마법사가 있었다.


아무도 대답을 안 하니, 나라도 강제로 대답을 시킬 셈인가 본데, 선빵을 맞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검지를 내밀어 마법사의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우흣! 흡!'

이 녀석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참아냈지만, 간지럼을 안 타는 놈들은 있어도, 조금이라도 타는 놈들은 계속 찌르다보면 언젠간 빵 터지게 되어 있다. 반면에 이쪽은 고통에도, 간지럼에도, 버틸 수 있도록 훈련받은 몸이다.


"푸하하하하! 그만, 그마안!"

마법사의 꼴사나운 패배 선언이 온 가게에 울려 퍼졌다. 주변의 등신들과 늑대가 마법사를 바라봤다.

"어.. 음. 그래, 오랜만이야. 나 기억해?"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계약에 의해, 마법사는 늑대의 안부인사에 대답해야 했다.


"네, 시오씨.. 였죠? 담배냄새 때문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덕분에'  아니라 '때문에' 일까? 그건 담배냄새가 매우 좆같기 때문이다. 그 옆에 늘 앉아있는 나는 얼마나 좆같겠는가.

"하하.. 기억해줘서 기쁘네.."


뭐냐, 이 거지같이 울렁거리는 대화는? 이미 마법사가 당첨 되었으니, 다른 등신들은 다시 시끄럽게 떠들면 되는데, 왜 벙어리 마냥 가만히 있는 거냐. 조용하니까  이상해지잖아, 병신들아.


"오늘은 가게가 좀.. 조용하네요?"

늑대도 분위기가 불편한지,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아하하하하!!


-그래서 말이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 미친놈들은 10분 전으로 시간 역행을 했다. 저놈을 위해서 하는 짓 같기는 한데, 이 정도면 악의 없는 폭행이다.

"그.. 그래서 지금까지  하고 지낸 거야?"

'시발, 좀 도와달라고.'

마법사가 늑대에게 말을 걸면서,  허벅지를 붙잡고 소곤거렸다.


'그럴 거면 찌르지 말았어야지, 이 새끼야.'

마법사의 요청을 묵살했다.

"음.. 한 3개월만인가요? 저도 일단은 늑대이니, 무리생활을 해볼까 해서요."

"오오, 그럼 새 친구들을 사귄 거야? 몬드가 재료를 사오기 전에 친구들도 불러와. 맛있는 건 같이 먹어야지."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친구 같은 건,  명도 못 사귀었거든요."

미친.


'살려줘, 오로넬.  여기서 뭐라고 해야 돼? 진짜 죽을 거 같아!!'


 던진 말이 정수리에 날아가 꽂혔다. 이렇게 되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겠지만, 일단 이 분위기는 어떤 명의가 와도 못 살려낸다.


가게에는, 다시 초상집마냥 침묵이 찾아왔다.


"제가 동족들에 비해 너무 커서 그런지, 다가가기만 해도 경계를 해서 말을 걸 수도 없더라구요."

게다가 친구를 못 사귄 이유가 왕따를 당해서라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들어나면서, 마법사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한번만 살려줘. 나 진짜 여기 못 앉아 있겠어!'


마법사가 계속해서 구조신호를 보내왔다. 솔직히, 답 없는 상황이긴 하다. 오늘 마법사의 운세를 봐선, 가만히 놔두면 저놈의 상처란 상처는  찌를 것 같다.

나는 못마땅하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참전할 준비를 했다.


새삼 슬프게 물을 마시는 늑대가 보였다.


'아, 역시 안 되겠다.'


'개새끼야아!!'

"친구들한테 갈 때, 빈손으로 갔어?"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처밖에 남지 않은 전장에, 태연하게 걸어 들어오는 놈이 있었다.


"네, 누님. 혹시 그게 문제였던 걸까요?"


바로, 스튜를 다 먹고  짓이 없어진 꼬맹이였다.

"맛있는  나눠 먹으면 친해질  있어."

머리가 달려있고 감정을 느낄  있는 가게의 모든 생명체들은, 꼬맹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 조져진 분위기 속에서, 다시 술을 마실  있도록.

"하하. 그렇다면 다음번엔 선물을 가져가야겠군요."

늑대가 멋쩍게 대답했다.

"그래, 지금 니가 주문한 요리라도 한 번 가져 가봐. 니 입에 맞으니까 동족들한테도  맞을 거야."


분위기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는 이 순간, 마법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른 등신들도, 거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래! 힘내라고!

-만약 실패해도, 너한텐 우리가 있잖아!

-힘내라, 라보!


늑대는 축축해진 코끝을 앞발로 비비며, 등신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모든 것이 바로 잡혔다고 생각한, 그때였다.

'아오. 저리 안가, 이 개새끼들아!? 먹을 거 없다니까! 안 꺼지기만  봐라, 날도 더운데 냄비 안에 넣고 끓여주마!"

가게 밖에서 심상치 않은 말들이 들려왔다.


쾅!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나타났다.

"더워서 짜증나 죽겠는데, 개새끼들이 지랄이야, 지랄은."

들개라도 만난건지, 그 남자는 개들을 욕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

그리고 그놈은, 눈앞의 개과 동물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오늘만큼 집이 그리워지는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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