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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썰매 이름으로 탈룰라만 한 것도 없다 [2] (45/108)



〈 45화 〉썰매 이름으로 탈룰라만 한 것도 없다 [2]

"어."


마부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하여간 운도 지지리 없지, 개새끼 욕을 할 때 친척인 늑대새끼가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다 한참 민감할 때에 냄비발언까지 해버렸으니, 늑대의 상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법사는 이마를 한 번 치고는, 또 다시 분위기가 조져지기 전에, 허겁지겁 잔을 비웠다.


"냄..비..?"


"워, 워. 진정해 라보. 니가  못 들은 거야. 밖에 있는 개새끼들한테 한 거라고. 넌 늑대잖아."


마부가 능숙하게 늑대를 진정시켰다. 역시 말을 기르는 놈이라 그런지, 동물을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다.

"맞아, 난 늑대야. 개가 아니야. 조지씨도 그냥 화가 나셔서 그런 것 뿐일 거야.. 후.."


그리고 놀랍게도, 그 한 마디에 늑대는 완전히 평온을 되찾았다. 마법사는 눈동자를 크게 부풀리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래.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친구를 먹겠냐?"

"친구.."

늑대는 그 말을 곱씹었다.


"같은 술집에 앉아서 웃고 떠들면 그게 친구지, 친구가  거냐?"


그건 너희 등신들의 기준이지.. 만, 늑대의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 같으니 고개는 끄덕여 주겠다.

"그보다, 좋은 무리엔 들어갔어? 예쁜 암컷들은 많고?"

 놈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전문가는 척 보면 알 수 있는 건가?


"아직.."

"뭐? 아직? 어휴, 내가 말했지? 암컷들은 몰라도, 수컷들은 너처럼 큰 물건 가진 놈들 싫어한다니까."

아, 둘이서 자주 합석을 하더니, 그때 들은 모양이다. 확실히, 몸집이 커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크긴 크다.

"저기 오로넬. 얘는  벗고 있는데  물건이 어디 있어?"


꼬맹이가 하필 물어도 이딴 걸 물었다. 주인장이 아직도 순록 구이를 붙잡고 있는 탓에, 꼬맹이에게 스튜가 제공되지 않아서이다.


"저놈한테 큰 게 뭐가 있겠냐? 이빨이지, 이빨."

"이빨보다 저게 더 큰데? 꼬.."

"아, 주인장! 이 새끼한테 빨리 스튜 좀 해 주라고!"


잠자코 듣고 있던 마법사의 코에서 술이 뿜어져 나왔다. 애새끼 입에서 저딴 말이 나오는 게 어지간히도 웃긴가 보다. 난 더러워 죽겠구만.


아무튼, 이 병신 같은 대화를 기점으로, 다른 등신들도 더 이상 늑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둘씩 음량을 올려가며 떠들기 시작했다.

"아, 그럼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떡해요? 무리에 들어가겠다고 이걸 땔까요? 짝도 없이 평생을 살아가라고요?"

전형적인 기만자들의 말투다. 자신이 잘난  어쩔 수 없으니, 그걸 감안하고 대책을 내 놓으라는 뜻이다.


"내 말은, 무리에 들어가지 말고 무리를 만들란 거지. 수컷들에게 잘 보이긴 글렀으니까, 마음에 든 암컷 한 마리 후려서 빠져나와."


마부는 도중에 말을 끊고, 저장고에서 갓 올라온 맥주를 음미했다.

그 표정은 마치, 예술작품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인간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얼굴이었다. 바로 '쾌락'이다.

"크으으, 이거지 이거. 뭔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더울 때 시원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

아마 주인장이 빚은 술이라 그럴 거다. 쓸데없이 배만 부르고 쓰다.


"빠져나오고 뭐요?  다음은 어떻게 하는데요?"

늑대가 재촉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궁금하긴 한가 보다.


"빠져나오면 끝이지 뭐긴 뭐야. 어차피 여기에 너보다 센 늑대는 없잖아. 지들이 뭐 꼽다고 때릴 거야 어쩔 거야?"

"그렇긴 한데.. 다른 동족들에게 미안하잖아요."


"아니, 너 늑대 아니야? 약육강식이라는 말 몰라? 약한 놈들이 센  밑에 알아서 기어야지, 니가 눈치를 왜 봐? 사람 말을 배우면서 가치관도 사람 같이 바뀌었어?"


"그럴지도 몰라요.. 이런 제가 늑대 무리에 들어가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저는 사람도, 늑대도 아니게  건 아닐까요?"

저건 술자리에서 절대로 해서는  될 금기중의 금기. '자아성찰'이다.

물론, 저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저놈 주변에 있는 놈들이 잔뜩 마신 상태니, 전혀 괜찮지 않다.

-얌마, 사람 말을 할 수 있으면 사람이지.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아니, 늑대지. 처음 보는 사람이 널 판단할 수 있는  겉모습뿐이야.

-아이, 참ㅡ

곧바로 등신들의 개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냄비에 넣어야 할 놈들은 저놈들이 아닐까 싶다.

-내애 가아 와았 다아!!!


쾅!!

그런 와중에,  다른 혼돈이 찾아왔다.


"라보는?! 라보는 있는가!?"


문을 깨부수고 들어온 몬드 할배의 양 팔에는, 양계장 하나를 털어  것 마냥 닭이 가득했다.


"어유, 몬드 어르신, 뭘 그렇게 사왔어요?"


사정을 모르는 마부가 신기한 듯이 물었다. 저 정도 양이면 늑대 몇 마리는커녕, 여기 있는 등신들 입에 다 집어넣고도 남는다.


"아, 조지인가. 라보와 라보의 친구들에게 보양식을 대접할까 해서 말이네. 내가 젊을 적에 여름만 되면 먹던 음식이지."


"혹시, 삼계탕?"

마부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진짜 여름에 먹는 음식이라고? 더워 죽겠는데, 거기에 뜨거운  먹는 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 자네도 알고 있나?"

"아~ 그럼요. 거기에 술  잔까지 마시면 끝내주죠."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빨리 먹고 싶구만. 주인장, 아까 그 젊은이 좀 불러주게."


주인장과 제리스가 날 쳐다봤다.  새낄 풀어줘도 되냐는 뜻인 것 같다.

가게 주인까지 나한테 동의를 구하다니, 어떻게 되먹은 가게인지 모르겠다. 일단은 저 새끼가 없으면 요리를  수 없으니, 풀어주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에서 무언가 뜯기는 소리와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으, 내가 깜빡 잠이 들었나? 근데 머리가 좀 아프군."

이마를 타고 흐르는 선혈이 느껴지지 않는지, 젠은 목을 꺾으며 주방으로 돌아왔다.

"오우, 왔구만 젊은이. 어서  닭 전부 삼계탕으로 만들어 주게."


할배도 피 같은 건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예?! 이 정도 양이면, 가게에 있는 냄비로는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습니다만."

하긴, 나도 주방에 들어가 봐서 안다. 여기엔 큰 냄비가 없다는 걸.

근데 저건,   가져와도 한 번에 다  넣을 정도의 양이다.

"흐음.. 그럼 일단, 늑대 친구들에게 줄 것부터 만들어 주게. 우린 그 다음에 먹으면 되니까."


"에이, 어르신. 그러면 만들 필요 없어요. 이 녀석, 늑대 친구는 하나도 못 만들었대요."

"아."

할배는 자기가 또 아픈 곳을 찌른 줄 알고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미 마법사와 마부가 실컷 때린 뒤였기 때문에, 늑대는 아무렇지 않았다.

"하아.. 나도 동대륙에선 잘나갔었는데."

그저 신세를 한탄할 뿐이었다.

우두머리 자리는 자기 손으로 버리고 와놓고, 여기서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 은퇴를 울부짖던 인간들도 막상 은퇴하고 나면,  시절이 그립다며 지랄을 해댄다.


"그렇게 너무 무리에 집착하지 마. 늑대는 아니더라도, 여긴 어엿한 니 무리잖아."

"조지씨..!"

-그래, 우리가 있잖아!

“여러분..!”

늑대는 코를 훌쩍이며, 닭을 들고 서있는 몬드 할배에게 다가갔다.


"몬드씨. 요리는 제 친구들의 수만큼, 가게에 계신 분들 만큼 부탁드립니다."

"하! 맡겨 주게!"

늑대의 요청에 호탕한 웃음소리로 화답하고, 할배는 그대로 닭을 들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젊은이! 냄비는 어디 있는가! 나도 거들겠네!"


할배가 나올 때까지, 등신들은 술밖에 주문  수 없었다. 가게의 불이란 불은, 모두 할배가 점거해 버린 탓이다.  할배가 저렇게 열중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주방에선 냄비가 덜컹거리는 소리,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재료를 씻는 소리 등이 일사불란하게 들려왔다.


"여기서 마늘을 넣으시고.."

만드는 법을 까먹은 할배에게, 젠이 조리법을 설명해줬다.


잠깐, 마늘?

"야! 정지, 정지, 정지! 마늘 넣지 마!"


"왜? 당신 마늘  먹어?"

"나 말고, 저놈. 저놈이 못 먹잖아."


"저요? 마늘은 한 번도 먹어  적 없는데요?"


늑대가 대답했다.

"먹으면 뒤지니까 못 먹어봤겠지."

"네!? 마늘 먹으면 죽어요!?"

"몰라 거기까진. 근데 개들한텐 안 좋아. 안 그러냐?"

팔꿈치로 마법사를 치며 동의를 구했다. 아마 이 지식을 주워들은 게 마가리스였던  같은데, 그럼 이 녀석도 알고 있을 거다.

"응? 아아, 확실히 그런 걸 본 것 같기도.. 한데.. 가물가물 하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먹고 뒤질지. 그러니까 냄비 하나에는 넣지 말라고. 그건 저놈이랑 꼬맹이한테 먹이면 되니까."

저걸 먹어 본 놈이라 해 봤자, 할배랑 마부가 전부인데, 마늘 하나 안 들어갔다고 맛이 없다고  놈은 없겠지. 설령 그러는 놈이 있어도, 남은 건 꼬맹이가 다 먹을 테니, 문제는 없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렇게 가게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많은 그릇들로 가득 찼다.

이놈의 열기 때문에, 먹기도 전부터 아까보다 더 더워진 건 덤이다. 이미 며칠분의 땀을 다 빼낸 것 같은데, 굳이 이걸 먹고 더 빼내야 하는가 싶다.


"음! 그때의 냄새 그대로구만! 자, 다들 드세!"


모든 등신들이 음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몬드 할배가, 먹어도 좋다고 허가를 내렸다.

그 한마디에 기분이 최고로 고조된 등신들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며 술을 탐했다.

"맛있어."

"하하! 내가 뭐라 했나.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마음껏 먹게!"

옆에서는 꼬맹이의 의미 없는 말에, 할배가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야, 맛있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나는, 이것이 정녕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에 대한 답을, 옆자리의 마법사에게서 찾고 있었다.

"맛? 맛은 있지. 먹을 만해."


그래, 재료를 이렇게 때려 박아놓고 맛이 없으면 쓰나. '맛은 있지' 라는 말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음식은 맛이 전부니 더 이상 생각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자리 위에 놓인 숟가락을 집어, 미지의 음식을 향해 한술을 떴다.

"음..!"


처음 같으면서도 익숙한 이 느낌, 그래 이건 마치..

"존나 덥네."


여름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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