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공포 영화는 몇 번을 봐도 무섭다 [1]
뿌직.
"아, 씨발."
개똥을 밟았다. 운도 지지리 없지. 한창 가게를 향해 가는 길에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지금 그곳에 가지 말라는 무언가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오로넬 냄새나."
"조용히 안 하면 니 옷에 닦는다."
옷차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꼬맹이였지만, 거기서 냄새가 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는지, 곧바로 입을 다물고 산을 올랐다.
"저기 사람이 있어."
"사람이야 있겠지. 여기에 너랑 나만 사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이상하게 생겼어."
"사람 얼굴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다, 이놈아."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넘겼지만, 무의식적으로 꼬맹이가 바라보던 곳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복부에서 쏟아진 피가 온몸에 칠갑이 되어 있고, 그러는 와중에도 목숨은 끊어지지 않아 죽지 못해 살아있는, 차라리 죽어서 안식을 얻고 싶을 정도의 몰골을 한 인간..
..처럼 보이고 싶은 인간이 누워 있었다.
내가 이걸 확신하는 이유는, 저 놈이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던 중에 나와 눈이 마주쳐서이다.
그 상황에서 뻔뻔하게 다시 엎어져서 앓는 소리를 내는 의지가 대단하다. 거기다 몇 번 자세를 바꿨는지, 바닥에 그려둔 핏자국과 몸이 놓인 곳도 어긋나있다.
역시 개똥은 무언가의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야, 저거 신경 쓰지 말고 가."
가까이 가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은 확실했기 때문에, 꼬맹이에게 주의를 줬다. 지금 보니, 가게로 가는 길 곳곳에 저런 놈들이 뻗어 있다.
이번엔 또 어떤 등신이 다른 등신들을 꼬드겨서 저딴 뻘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 의문에 답을 내기도 전에, 어느샌가 가게 앞까지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잠깐 멈춰 서서, 생각을 더 해보기로 했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 고개를 들어서 이쪽을 확인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예 해가 지고 난 뒤면 모르겠는데, 노을이라는 잔불이 남아 있어서, 공포의 공자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확신 하는데, 이 안에 있는 놈들 무슨 짓이든 해 온다. 이건 무조건이야."
내가 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자, 꼬맹이는 문고리를 노려봤다.
"야 막대기."
「왜 그러느냐.」
꼬맹이 뒤에 붙어있던 막대기 녀석이 앞으로 나와, 거만한 어조로 대답을 했다.
"니가 이거 열어."
「그걸 왜 이몸이 해야 하는 거지?」
"실수로라도 병신 같은 표정 지으면, 저 놈들이 몇 주 동안 안줏감으로 쓸 거 아니냐. 난 절대 그 꼴은 못 보거든."
「그러니까 그게 이몸과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아, 이 새끼가 진짜. 넌 면상이 없잖아. 놀라든 말든, 저 놈들 한테 이득 될 게 없다고. 아니면 쫄았냐? 올라올 때 조용하더니, 설마?"
「웃기지 마라. 이몸이 이딴 소꿉놀이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장난질에 겁먹을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럼 니가 하는 거다. 난 쫄보니까 숨어있을게."
「...」
나와 꼬맹이는 문 앞에 막대기 녀석을 두고, 등신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관찰하기 위해, 가게 모퉁이로 달려가 숨었다.
"야, 열어 이제."
출발신호를 받은 막대기는 잠시 엉거주춤 하더니, 최대한 땅바닥에 붙어 쭈뼛쭈뼛 움직이며 문을 건드렸다. 어찌나 약하게 쳤는지 문이 밀리지도 않았다.
"저 새끼 뭐 하냐 저거."
"엔드홀 쫄았어."
「아, 아니다. 이, 이몸이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다, 단지, 짐승들이 튀어나오는 충격에 이 몸이 부셔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뿐이다.」
그게 쫀 거다.
「그래, 니가 쪽팔리기 싫은 거라면, 데이린한테 시키면 되지 않느냐. 데이린이라면 저 짐승놈들이 부딪혀도 멀쩡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쫀 것 같잖아. 이 놈은 보통 내 뒤에 들어온다고."
「그럼 네녀석도 쫀 것이 아니냐!」
"아아니, 난 저놈들이 좋아할만한 짓을 해주기 싫을 뿐이라고."
「이몸은 해도 된단 말이냐!」
"아오, 그냥 열어."
쾅!
끝나지 않을 수건돌리기를 끝내기 위해, 모퉁이에서 뛰쳐나와 문을 걷어찼다.
-와아아아악!!!
그리고 예상한대로, 병신 같은 분장을 한 등신들이 파도처럼 밀려나와 내 눈과 정신을 공격했다.
「으아아아악!!」
쫄보 같이 꼬맹이 뒤에 숨어 있던 막대기 녀석은, 숨어서도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대체 저 녀석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 뭐야. 오로넬이랑 데이린은 하나도 안 놀랐잖아."
웬 토끼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용사가 말했다. 애초에 토끼가 뭐가 무섭다고. 놀래킬 생각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구만.
"뭐 하냐 니들?"
보나마나 쓸데없는 이유겠지만, 안 듣는 것 보단 듣는 게 낫다. 동기를 알아야 같은 참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나는 막을 생각 따윈 없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닥치는 일들만 피할 수 있으면 된다.
"그건 내가 설명하지!"
가늘고 자신감에 찬 목소리, 마법사가 대답을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놈들은 뭐라도 하나씩 뒤집어쓰고 있는 반면에, 이 놈은 어떤 소품도 휴대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거라곤 항상 입고 다니는 꾸질꾸질한 실험용 가운 뿐.
"그래, 말 안 해도 니가 제안한 뻘짓이란 걸 알겠군. 빨리 지껄여 보도록."
웬만한 뻘짓들은 다른 등신들이 늘상 저지르는 일들이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뻘짓들의 지분은, 대부분 마법사가 갖고 있다.
이것만 해도 그렇다. 맨몸으로도 한 지랄 하는 이놈들이, 굳이 분장까지 해 가면서 지랄을 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누군가가 부추긴 게 틀림없다.
"일단 들어가서 들어도 되냐? 이것들 좀 내 눈앞에서 치우고 싶은데."
"그래 들어와. 나도 나가기 귀찮았던 참이었어."
가게 안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갈 때 마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저 얼굴들 좀 봐라. 뭔 요상한 물감 같은 걸 발라 가지곤,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다. 이 난장판의 주제가 '역겨움'이었다면 거의 대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자리에 앉자, 저승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 같은 몰골의 괴물들은, 다시 문을 닫고 그 앞을 지키고 섰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헛소리라니, 이건 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라고."
"또 지랄이네.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면서, 자꾸 실험이니 뭐니 갖다 붙이지 말라고."
"아니, 이번엔 진짜 실험이야. 기대해도 좋아. 이 실험결과에 따라서 이번 여름은 시원하게 보낼지도 모른다고."
"됐고. 무슨 실험인지나 말해봐. 나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 정말로."
이야기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서 궁금한 척을 했다. 마법사는 진심이 1도 담겨있지 않는 내 개소리에 만족했는지, 또 콧대를 치켜세우며 팔짱을 꼈다.
"후훗, 그렇게 궁금하다면 말해주지. 그 전에 질문, 지금은 덥지만 겨울엔 추웠잖아? 그때 니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해?"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이 나왔지. 방광에 구멍이라도 뚫린 줄 알았다."
"그건 니가 집에만 박혀 있어서 땀을 배출하지 못하니까 오줌으로 나오는 거고. 다른 건 기억 안나?"
"아! 알주머니가 쪼그라들었었지."
"..알주머니가 뭐야?"
그 표정은, 생판 처음 들은 말을 머릿속에서 뒤적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 정도면 돌려 말한 축에도 끼지 않는데, 설마 이걸 못 알아먹었다고?
"그거 있잖아. 그거. 불ㅇ.."
"아아! 잠깐만! 뭔지 알겠어! 근데 그것도 아니야! 다른 거, 다른 거 없어!?"
생식기 얘기가 나왔다고 저렇게 얼굴을 붉혀선, 역시 천 년 동안 연애 한 번 못해본 인간답다. 나중에 귀찮게 구는 일이 생기면, 고백을 해서 혼내주도록 하자.
"다른 거라.. 근데 내가 이걸 왜 맞춰야 되냐? 애초에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하나만, 하나만 더 해봐. 이번엔 맞출 수 있을 거야. 추울 때 몸에 일어나는 일 있잖아!"
"흐음.. 추울 때.. 그래도 모르겠는데? 꼬맹이 너는 추울 때 어떻더냐? 아니, 그보다 추웠던 적은 있냐?"
"아니."
단호하고 간결하게. 숟가락을 들어서 스튜를 퍼먹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꼬맹이는 답했다.
하지만 그 자리 위에 스튜는 없다. 이 거지같은 냄새 때문에, 뭘 먹지도 마시지도 못 하고 있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인지, 가게에 있는 모든 테이블들의 위는 깔끔하게 비어있었다.
"답변 고맙다."
생각해 보니, 가게는 술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개판인데, 그 꼴로 만든 놈은 나한테 웃기지도 않은 수수께끼나 내고 앉아있다. 슬슬 이 짓거리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생각나는 거 없으니까, 그냥 빨리 말해라. 어차피 별 거 아니잖아."
나는 적당히 안 하면 엎어버리겠단 뜻으로 마법사의 자리에 묵직하게 두 번, 노크를 했다. 마법사도 대충 이해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으흠, 그러니까 추울 때를 생각해 보면, 몸이 벌벌 떨리잖아? 맞지? 바로 그때야. 소름이 돋잖아. 반대로 말하면, 소름이 돋으면 추워진다, 이거지."
"그래서."
"그래서, 이 무더운 여름에도 소름을 돋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봤어. 더운 것 보단 추운 게 낫잖아?"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떠오른 게 바로 '공포'야. 두려움을 느낄 때도 사람들은 소름이 돋는다고 하잖아. 바로 거기서 착안 한 거지."
"그래서 결과는?"
"다섯 시부터 누가 올 때마다 놀래키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 명 놀랐어. 이거 가지곤 결과를 도출해낼 수 없다고."
"그게 누군데?"
"방금 저 녀석."
마법사의 손끝에는 막대기 녀석이 지목되어 있었다. 확실히, 저놈에게서 결과를 얻어내기는 힘들 거다. 검에서 소름이 돋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
"뭐야 그럼. 실험 실패네. 이제 더 올 놈도 없잖아. 빨리 저것들이나 어떻게 해라."
두 시간동안 한 놈도 안 놀랐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두 시간동안 저 짓을 계속 하고 있는 저 놈들도 징하다.
"아니. 그냥 끝낼 수는 없지. 아직 두 명 남았어. 조지와 나디아. 이 두 명은 어떻게 해서든 놀래킨다."
두 놈이 다 놀란다고 해도, 표본이 너무 적다. 어떻게 되든 이 실험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더 이상 실험이 아니다. 오기나, 화풀이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험 같은 유치한 이유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됐다.
"뭐 여기서 더 어쩌려고? 해봤자 들어올 때 소리 지르는 게 다면서."
"아니, 이제 밖으로 나갈 거야. 숲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톡톡히 이용해주마."
말하는 것만 보면 그 두 놈이 무슨 죄라도 지은 줄 알겠다. 화풀이도 이런 화풀이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너랑 꼬마한테 부탁할 게 있어."
"또 뭐."
"두 사람 다, 단검 좀 던진다며?"
'시오씨!! 시오씨!!'
쾅!
어째 안 보인다 했더니, 망원경으로 등신들이 오는지 감시를 하고 있었구만.
변태 같은 취미 생활로 길러낸 능력을 뽐내며, 검게 빛나고 있는 제리스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조지 씨에요. 지금 막 산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좋아. 아직 시간이 있군. 다들 모여 봐, 빠르게 설명해 줄 테니. 오로넬, 이건 너희들이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도와주겠어?"
"하.. 그걸로 이 난장판을 끝낼 수 있다면."
문을 지키고 있던 등신들과 함께, 조지를 조져버릴 계획을 전해 들었다. 용케도 이딴 걸 계획이라고 지껄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맡게 될 역할은 귀찮기만 할 뿐, 힘든 일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저, 한 시라도 빨리 이 뻘짓을 끝내고, 술을 마시고 싶을 뿐이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