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공포 영화는 몇 번을 봐도 무섭다 [2]
"오로넬ㅡ! 잘 보여ㅡ?"
"그래ㅡ! 니 머리통에 한 번 던져 볼까?"
"그럼 계획대로 잘 부탁해ㅡ!"
등신들의 배치를 확인하고, 마법사는 가게 쪽으로 달려갔다. 결국 마지막까지 자기가 뭘 할지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가게에서 쉬고 있다면, 이 단검들을 그놈 머리에 예쁘게 장식해 줄 것이다.
마부는 아직 중턱까지도 올라오지 못했다. 일이 끝나자마자 술을 퍼마시겠다고 가게에 오는 것이니, 마지막 남은 체력을 쥐어 짜내서 산을 오르고 있는 거겠지.
말하는 게 늦었는데, 이곳은 가게 근방에서 가장 높은 나무의 위다.
제리스에게서 건네받은 망원경으로, 마부와 등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단검을 던져 등신들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 나와 꼬맹이의 역할이다.
단검을 잘 던진다고는 했지만, 인간의 힘으로 이 정도의 높이차이와 거리차이를 극복하고 정확한 곳에 던져 넣으라니, 활을 가져와도 못 하는 짓을 나더러 하라고 한다. 개소리에도 정도가 있지.
"꼬맹아 보고 있냐?"
"응."
"잘 보고 있다가, 내가 던지라고 할 때 던져라."
"알았어."
근데 그 개소리를 실현 해낼 수 있는 놈이 내 옆에 있었다. 이쯤 되면 마법사가 대단한 건지, 꼬맹이가 대단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근데 이 새끼 오늘 안에 올라오긴 하는 거냐? 거의 기어오는데?"
힘들면 집에서 좀 쉬다 오면 될 것을, 고작 몇 분 빨리 마시겠다고 저 고생을 할 의미가 있는 건가 싶다. 역시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이다.
"못 올라오면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그놈의 스튜도 못 처먹고 집으로 돌아 가는 거지."
"어, 그러면 안 돼."
"그래, 그러면 안 되지. 근데 뭐 어쩌겠냐? 이미 이러고 있는데."
저놈들 면상이 저 정도로 역겹지만 않았어도 개의치 않고 술을 마셨을 텐데. 그건 분장이 아니라 분뇨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이상한 냄새까지 났고 말이다.
"오로넬, 저기."
"말로만 하지 말고 손가락이라도 들어봐라. 내가 그것까지 알아 맞춰야 되냐?"
"저기, 저기."
허공을 두 번 찌른 꼬맹이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마부와, 그곳에서 네발로 달려오고 있는 늑대가 보였다. 아무래도 동행할 생각인가 보다.
마부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 늑대는, 두발로 서서 마부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태연하게 자신의 등에 태우고, 빠르게 산을 가로질렀다.
"야, 저거 너무 빠른데? 빨리 준비하라고 해!"
들고 있기도 귀찮아서 나무에 꽂아둔 단검들을 도로 뽑아서, 허겁지겁 꼬맹이에게 건네주었다.
나무들에 박히는 단검을 신호로, 등신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늑대는 곧, 제 1 방어진에 도착했다.
1진의 책임자는, '공포'라는 주제와 무슨 연관이 있는 지도 모르겠는 토끼 가면을 쓴 용사였다. 일관성을 위해 저 녀석의 휘하 병력들도 다 같이 토끼 가면을 쓴 건 덤이다.
주변의 위화감에 눈치 챘는지, 늑대는 뛰는 것을 멈추고 일어섰다.
설마 동물의 직감으로 알아챈 건가? 확실히, 가게에서도 좆같은 냄새가 진동을 했으니, 저놈들 몸에는 그 근원이 되는 냄새가 배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헌데 그것만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을까? 아니, 저 녀석은 그저 생전 처음 맡아 보는 냄새에 경계하고 있는 것뿐이다.
오히려 그 역겨운 향과 자극성 때문에, 등신들의 정확한 숫자와 위치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놈에게 한 가지 더 나쁜 소식은, 지금 마주치게 될 토끼 군단에는, 그 냄새나는 분장을 한 녀석이 없다는 거다.
"던져."
후웅ㅡ!
갓 발사대를 떠난 단검이, 바람을 가르며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
호흡이 빨라진다. 네 개의 다리를 움직이기 위해 게걸스럽게 공기를 먹어치운다.
몸속으로 들어온 공기도, 몸 밖으로 빠져나간 공기도, 날씨 때문인지 뜨겁기만 하다.
어라? 그러고 보니 왜 뛰고 있었지? 뛸 이유가 있었나?
그건 라보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지를 보고, 그를 따라잡기 위해 달려 온 것은 맞으나, 그 이후에 탈진한 조지를 등에 지고 달린 이유는 모르겠다. 조지가 매달리자 왠지 모르게 달려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두발로 일어서자, 평소와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맡아 본적 없는 인간들의 냄새가 숲 속에 가득했고, 나무를 두드리는 묘한 소리가 숲 곳곳에서 들려왔다.
오로넬과 데이린이 당했던 것처럼, 또 외지인들이 누군가를 노리고 찾아 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쪽을 공격하려는 낌새가 보인다면, 망설이지 않고 숨통을 끊을 것이다.
한 번 어금니를 내보인 상대는, 다시는 덤벼들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밟거나, 아예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어중간하게 살려뒀다간, 언제 그 어금니에 다시 물릴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라보는 녹이 슬어버린 발톱들과 오랜만에 재회했다.
다행이, 아직까지 인간의 목 정도는 움켜쥘 수는 있을 것 같다. 송곳니도 요즘은 영 사용하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고기를 씹어오고 있기 때문에 걱정 없다.
자신의 무장 상태를 확인한 라보는, 앞을 향해 발길을 내딛었다.
맞닥뜨리는 모든 것을 배제할 각오로.
~
팍!!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단검이 옆에 있는 나무에 박혔고, 라보는 그것이 날아온 방향을 경계했다. 그러나 적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에서 들이닥쳤다.
"와아아아아아ㅡ!!!"
"으아아아아악!!!"
갑자기 뒤에서 솟아난 적들에게,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입이었다. 다가오지 말라고, 자신은 만만치 않을 거라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다음에 반응한 것은 다리였다. 급소인 배를 보호하기 위해, 뒷다리의 힘을 풀어 상반신을 넘어뜨렸고, 앞다리는 그 충격을 완화하고, 재빠르게 엎드린 자세를 만들어냈다.
긴급조치가 완료된 라보는, 적개심을 가득 담아, 낮게 울며 자리를 지켰다. 등에서 떨어진 조지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하하하하하!!"
라보를 둘러싼 적들이 웃기 시작했다. 열세에 놓인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크르르르.."
'실컷 웃고들 있어라. 머릿수만 믿고 거리를 좁혀오다니, 내 사정거리에 닿는 순간, 네놈들의 머리는 바닥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거다.'
"야, 야. 지랄하지 말고 일어나."
긴장하고 있는 순간에 등을 친 탓에, 하마터면 목을 할퀴어 버릴 뻔했다. 조지임을 확인하고 가까스로 멈추긴 했지만 말이다.
"위험해요, 조지씨! 앉아있으세요!"
토끼의 형상을 한 괴물들에게 다가가는 친구를 두고, 라보는 경고의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미지의 존재에게 섣불리 다가가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위험하긴 뭐가 위험해. 이거 시트린이잖아."
조지가 괴물에게 다가서서 그것의 얼굴을 들어 올리자, 그 아래에 시트린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는 그 순간 까지도 웃고 있는 채였다.
"이.. 이게 무슨.."
"보고도 모르겠어? 너 엿 먹이고 웃고 있는 거잖아."
"내.. 내가 뭘 했다고.."
"하하하하. 아, 아직도 웃기네."
시트린의 웃음소리를 두 번이나 듣고 나서야 라보는 깨달았다. 이 행위에 목표 따위는 없음을. 그저 운 없게 자신이 걸렸을 뿐이란 것을.
"아, 깜짝 놀랐잖아요. 진짜 죽일 뻔 했네."
"아 하하, 미안, 미안. 이렇게 놀랄 줄은 상상도 못했어."
시트린이 눈물을 닦아냈다.
"보나마나 위에 더 있지? 이 역한 냄새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고."
"응? 무슨 냄새?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인간은 같은 냄새를 지속적으로 맡으면, 일시적으로 그 기능이 마비된다고 한다.
그리고 시트린은 그 냄새에 몇 시간동안 노출된 인간이다.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시트린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입장에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턱에서부터 나타나는 걸 보니, 이 위에도 매복 투성이겠네. 맞지?"
"알면서 왜 물어보는 거야?"
"..."
조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설령 이 여자가 아는 게 있더라도, 그걸 캐내는 데에는 어마무시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하.. 그럼 같이 올라가자. 이제 술 마시러 가야지."
조지는 마지막으로 미끼를 던졌다.
만일 이 위에도 뭔가가 매복해 있다면, 시트린이 그 위치를 알고 있을 테니, 그녀가 승낙한다면 매우 수월하게 가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거절한다면 이를 인정하는 꼴이니, 어찌됐든 수확은 있는 셈이다.
"물론 그래야지. 한 명만 더 놀래키고."
"뭐? 우리가 마지막 아니었어? 이것보다 늦게 오는 손님은 없을 텐데."
"아직 오로넬이 안 왔어."
"거짓말 좀 그만 하라니까. 넘치는 게 시간인 녀석이 아직까지 안 왔을 리가 없잖아."
"진짜라니까? 올라가서 확인해 봐."
"흐음.."
조지는 못 미더운 표정으로 시트린을 쳐다봤다. 거절이 아닌 보류라니, 그가 알고 있는 시트린은 그런 똑똑한 대답을 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지령이라도 받지 않는 한은 말이다.
"확인하려면 빨리 하는 게 좋을 걸? 그 전에 오로넬이 도착하면, 너희는 당하기만 하고 끝나는 건데? 너희도 놀려 줘야지."
"당한 건 라보 뿐이니까 난 괜찮아."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조지였다.
"그래도 뭐, 무슨 말을 해도 같이 올라갈 것 같진 않으니, 먼저 올라가보도록 할게. 지금 목이 너무 마르거든."
"그래, 이따가 봐."
조지를 올려 보낸 시트린은, 지시 받은 대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오지도 않을 오로넬을 놀래키기 위해 숨는 척을 했다.
그것을 믿든, 믿지 않든, 조지와 라보는 산을 오르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이미 내려가기엔 너무 높이 올라왔고, 조지의 갈증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무슨 놀래키는데 5분, 이야기하는데 10분이냐? 이래가지고 가게에는 언제 도착하는데?"
뭐든 첫 단추를 끼우는 게 중요한 법인데, 1진부터 저렇게 시간을 잡아먹어서는, 3진까지 있는 방어선을 어느 세월에 돌파할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내버려 둬도 지들끼리 알아서 잘 하는 모양인데, 그냥 몰래 가게에 들어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오로넬ㅡ! 잘 되고 있어ㅡ?"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아래쪽에서 마법사가 짖어댔다. 지금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만 나타나서 지랄을 하니 열불이 났다.
"오로넬, 죽일까?"
"참아라, 꼬맹아. 지금 저놈을 죽여도 이 짓은 끝나지 않는다."
꼬맹이도 한 시간째 스튜를 먹지 못해서 예민해져 있었다. 여기에 마왕까지 남았다니,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안 들려ㅡ? 오로네엘ㅡ!"
관심을 주지 않자 마법사는 더 시끄럽게 짖었다.
"아, 존나 잘 되고 있으니까, 하던 짓이나 마저 하세요!"
"지금 어디까지 갔는데ㅡ?"
"이제 1진 돌파했다ㅡ! 됐냐ㅡ?!"
"뭐!? 그것 밖에 안 됐다고!?"
그렇게 대답한 마법사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길긴 긴가보다.
"그럼 3진까지 돌파하면 가게 지붕에 단검 좀 던져줘ㅡ!"
이게 무슨 말이냐면, 신호를 줄 때까지 자기는 놀고 있겠다는 뜻이다. 대책을 강구하는 줄 알았더니,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인다.
"이 ㅆ..!"
대꾸를 하려 해도, 마법사는 이미 없었다. 보이는 건 그 자리에 남은,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빛 뿐.
"야, 꼬맹아."
"응?"
"아직 보이냐?"
"응."
이제 해는 완전히 저물고,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망원경을 들여다봐도 검은색 배경밖에 보이지 않는데, 이 괴물 같은 꼬맹이는 잘도 보이나 보다.
안 보인다고 했으면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마법사를 때려 팰 생각이었는데, 참 눈치도 없고 거짓말도 못 하는 놈이다.
보이지도 않는 망원경을 내려두고 턱을 괴었다. 나는 이 시간부로 쓸모라곤 1도 없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혼자 내려가자니 꼬맹이가 설쳐댈게 뻔했다.
할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 계속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미 닦아낸 신발에서 뜨끈한 똥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똥도 아주 제대로 밟았네, 시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