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죄다 쓰레기일 뿐이다 [2]
똥을 싸는 듯한 자세 그대로, 가게를 향해 쓰러진 마왕은, 눈을 뜨고 입을 벌린 채였다. 쓰러진 사람은 수도 없이 봐왔는데, 눈까지 뒤집어진 사람은 오랜만이다.
또독. 또독. 또독. 또독.
마왕이 쓰러지자 우박은 더 거세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내가 주문한 건 분명 눈이었는데, 어째서 우박이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저놈만이 알고 있겠지.
커헠!!
우박하나가 마왕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목구멍을 향해 들어가는 우박을 보고 있자니, 마치 홀인원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벌떡 일어난 마왕은 아까까지의 일을 까맣게 잊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갑작스레, 마왕의 주변에 2차 폭격이 시작되었다. 등과 머리에 나란히 우박 세례을 맞은 마왕은, 머리를 굴릴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가게 쪽으로 무작정 달려왔다.
이 사단이 일어난 이유를 알아내려면 저놈이 필요했는데, 알아서 달려와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허억..! 허억..! 저게 다 무슨 일이야!"
근데 질문을 해오는 건 이놈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문을 잠가 놓는 건데.
"니가 싸지른 일이잖아. 아니면 갑자기 왜 우박이 내리겠냐?"
"아니야! 난 우박 같은 거 부탁드린 적 없다고!"
"진짜로?"
이 세 글자는, 참으로 여러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말은, 만능 자백제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독. 또독.
"..비 말고 아무거나 내려 달라고 했지."
곧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아무거나? 콕 집어서 빈게 아니라?"
"응.."
"으흐흐..! 갑자기 좀 추운데..?"
용사가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입김이 나오고 있다.
설마..
벌컥!
문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혹시나 싶었지만, 이미 땅에는 하얀색의 얇은 막이 자리를 잡은 뒤였다.
꼴을 보아하니, 정말로 비를 제외한 모든 기상 현상을 다 보여줄 기세다.
또독. 또독.
흩날리는 하얀색 쓰레기와, 처박히는 하얀색 쓰레기가 조화를 이루며 밤하늘을 뒤덮고 있는 걸 보자니, 밤인데도 아침처럼 보일 지경이다. 집에 편하게 돌아가려고 부탁을 해놨더니, 여길 나가지도 못하게 만들어 놨다.
"으으으, 추워..!"
마부도 추위를 호소했다. 나는 왜 괜찮은가 생각해보니, 아마 뱃속에 들어간 럼주 덕분인 듯하다.
"하하, 이게 바로 선견지명일세."
그 옆에 있는 할배는 삼계탕을 들고 나와 입김을 내뿜으며 자랑을 하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저걸 병신같이 쳐다보던 놈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주방으로 달려가, 젠에게 삼계탕을 주문했다.
"넌 뭐 하냐 병신아."
담배를 입에 물고 그 앞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 있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면 손이 따뜻해져. 너도 해볼래?"
"그게 손이냐? 담배지."
차라리 다른 곳에 불을 붙여서 쐬고 말지, 굳이 멀쩡한 손을 담배에 절이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덥지는 않으니까 좋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는 만족했다. 우박이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럽긴 하다만, 더위가 가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바닥에 눈이 쌓여서 돌아갈 땐 위험하겠지만, 어차피 눈이 그치면 다시 여름 날씨로 돌아올 테니 순식간에 녹을 거다. 이 시원함이 지속되는 동안, 기쁜 마음으로 술을 마시도록 하자.
탁.
마법사가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나무로 만든 가게를 다 태워먹을 일 있냐고 말하려는 찰나에, 마법사의 입에서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야.. 저거 혹시.."
애지중지하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릴 정도로 놀랄 만한 걸 본 모양이다. 존나 큰 우박이라도 봤나보지.
탁.
마법사에게 지지려고 주웠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그건 존나 큰 우박 정도가 아니었다.
거대한 돌덩어리가, 이쪽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 새끼야! 아무거나도 어느 정도지, 저딴 거까지 뿌리면 어떡하냐고!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블랙베리라는 양반은?"
멱살이 잡힌 마왕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기 탓이 아니란 건지, 신 탓이 아니란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놈이 기우제를 대충 지낸 탓이란 건 확실하다.
-으어어어어!!
-와아아악!!
등신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다녔다. 근데 이놈들이 이러는 건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서, 아무런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좋아서 저러는 건지, 무서워서 저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게 떨어지면 죽겠지?"
옆에서 열심히 뭔갈 적고 있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그러게."
"너 그거 계산하고 있었던 거 아니었냐?! 그럼 뭘 끄적이고 있는 건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거."
시발. 일단 뒤지는 건 확정인가 보다.
"뭔가 방법은 없어? 난 죽기 싫은데."
용사가 말했다. 뒤진다고 하니까 정신없이 씨불여대고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보다 차분한 분위기에 무릎을 절로 치게 만든다.
역시 병신은 뒤질 때가 돼야 낫는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음.. 방법이라.."
그 말을 들은 마법사는 적고 있던 것을 멈추고, 다른 종이에 뭔갈 또 적기 시작했다.
"오. 적고 보니 생각보다 많네. 잘하면 살 수도 있겠어, 우리."
-와아아ㅡ!!
앞에 '잘하면'이 붙어 있는데, 잘하지도 않을 놈들이 벌써부터 성공한 분위기다.
마법사는 근처의 테이블 위로 올라가 종이에 쓰여져 있는 것을 발표 하였다.
"자, 일단 첫 번째. 가장 성공 확률이 높고, 손해도 별로 없는, 제일 추천되는 방법이야."
"간단해. 저 운석에 나디아를 던져서 맞추면 돼. 그럼 충격파는 공중에서 발생하고, 나디아는 산산조각 나겠지. 그래도 뭐, 나디아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며? 그걸로 된 거지."
"으, 으흠..!"
마왕이 헛기침을 했다. 마법사는 개의치 않고 두 번째 안을 발표했다.
"여기서부터는 확실치가 않은데, 두 번째 방법은 지크를 쓰는 거야. 저 녀석, 조각이 존나 많잖아. 그때도 하나만 써서 마왕성을 반쯤 박살냈으니, 전부 사용한다면 운석 정도는 막을 수 있을 지도 몰라. 문제는, 지금 본인이 자고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거지."
흰놈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방법은 진짜 추천하지 않는데, 나디아가 아까 그 기우제를 다시 하는 거야. 그럼 이 모든 이상현상이 멎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거는 거지."
1안 빼고는 제대로 된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에이, 이건 아무리 봐도 2안이지. 지크가 운석을 못 부술 리가 없잖아."
마왕 생각은 다른가보다.
"2안하고 3안은 확신이 없다잖아, 이 새끼야. 목숨도 많은 게 한 번만 희생해라."
나는 현실을 알려줬다.
"아니, 아니, 내가 지크랑 싸워 봤잖아. 내가 확신해! 지크라면 저런 거 그냥 부순다니까?"
그놈이 운석도 부순 적이 있냐고 물어 보려 했지만, 지금은 질문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좀 더 합리적인 대답을 해야만 했다.
"그럼 니가 깨워. 깨워서 확답까지 받아와. 그래야 고려를 하든 말든 하지."
"ㅇ, 응? 내가?"
"니가 해야지. 내가 하냐? 다른 놈들도 거의 1안으로 가자는 분위긴데, 그게 싫은 니가 해야지.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하라고."
"후..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마왕은 심호흡을 하고 흰놈에게 달려갔다.
마왕이 흰놈의 몸을 흔들자, 얼마 지나지 않아 흰놈이 깨어났고, 자기를 깨운 게 마왕이라는 걸 확인한 흰놈은 그놈의 목부터 졸랐다. 마왕은 그 상태로 열변을 토하고서야 흰놈을 설득할 수 있었다.
"대체 뭐가 떨어진다고 이 난리야?"
마왕을 던져두고, 흰놈은 눈을 비비며 등신들이 모여 있는 문 앞으로 걸어왔다.
"오."
저놈한테도 놀랄만한 광경인가보다. 하긴, 눈앞으로 운석이 떨어지고 있는 경험은 그리 흔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저씨, 저거 부술 수 있겠어?"
나에게 등이 떠밀린 용사가 물었다.
"음.. 못 하겠는데? 저거랑 똑같은 힘은 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막지는 못하겠다. 그럼 나도 죽어."
"봐라. 이놈도 안 된다잖아. 이제 포기하고 운명을 받아들여라.. 뭐야, 이 새끼 어디 갔어?"
흰놈의 확답도 받지 못했으니, 답은 1안 밖에 없다. 여기에 시간을 허비한 만큼, 더는 지체할 수 없는데, 마왕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오로넬, 저기."
마법사가 정면을 가리켰다. 나만 살자고 이러는 것도 아닌데, 봤으면 자기가 좀 데리고 올 것이지.
아무튼, 정면을 보니, 밖에서 또 이상한 주문을 외고 있는 마왕이 보였다. 마지막 발악인지 우박을 처맞으면서 잘도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은 시간이 없다.
"잠깐만."
저놈을 잡으러 가려는데 마법사가 어깨를 붙잡으며 말렸다. 시간이 없다니까 아까부터 잠깐만, 잠깐만, 이 새끼들 사실은 살기 싫은 게 아닐까?
"또 뭐."
"생각해보니까 굳이 나디아를 던질 필요가 없네. 적당히 큰 뭔가면 되겠는데?"
사람 먼저 대입해서 생각한 니가 더 대단하다. 저놈이 발악이라도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
"근데 중요한 건 속도야. 최소한 저거랑 속도가 같아야 돼. 근데 그걸 누가 해? 우린 끝이야 이제. 그보다 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니 뺨때리기가 있는데 해도 돼?"
"지랄하지 마라. 던지는 거라면 저놈이 있잖아."
이 와중에도 홀로 앉아서 스튜를 먹고 있는 꼬맹이를 가리켰다.
"내가 데리고 올 테니까, 짱돌이든 검이든, 던질 거나 준비 해 놔라."
"어.. 알았어."
마법사의 대답을 듣고 꼬맹이에게 향했다. 다짜고짜 목덜미를 붙잡고 끌고 가려 하자, 꼬맹이는 테이블을 붙잡고 저항했다. 아직 스튜를 덜 처먹었나 보지.
계속 발버둥치는 꼬맹이의 머리통을 몇 대는 때리고 나서야 겨우 데려올 수 있었다.
"야, 던질 거. 빨리 안 하면 진짜 뒤진다고 이제."
마법사는 이름 모를 등신의 잡검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바로 꼬맹이의 손으로 들어갔다.
"@@#%^^!!"
옆에선 마왕의 시끄러운 소리와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가 섞여, 모기가 앵앵 거리는 것 보다 더 짜증나는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야, 다 뒤로 꺼져! 우산 들고 온 놈들은 옆에서 우박 좀 막아!"
꼬맹이를 운석과 일직선상에 들어오도록 세운 뒤, 혹시라도 조준이 빗나갈 것을 우려해, 우산을 든 등신들을 옆에 배치해 우박을 맞지 않도록 했다.
꼬맹이는 검을 쥔 손이 운석과 수직이 되도록 자세를 낮추었고, 양 발을 땅에 꽂아 넣듯이 찍어, 몸을 단단히 지지했다.
그리고 검이 쥐어진 오른팔과 오른 다리에, 가진 힘을 모두 때려 박아, 있는 힘껏 검을 밀어냈다.
ㅡ!!!
바람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꼬맹이의 손에서 순식간에 검이 사라졌다.
그리고 엄청난 바람이 일며, 누군가 위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바닥에 쌓인 눈들과 나무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고, 땅을 향해 떨어지던 눈과 우박들도, 잠시동안 하늘을 향해 돌아갈 정도였다.
그 힘을 용케도 부러지지 않고 받아낸 검은, 속도가 줄어드는 일 없이 운석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간 뒤, 간단하게 그것을 관통했다.
정말이지 이 꼬맹이의 힘은 볼 때마다 놀라울 따름이다.
"야."
"왜?"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운석을 보며 마법사에게 말했다.
"너 파편 생각은 안 했지?"
"아."
펑!!
상황은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로 날아오던 돌덩어리가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100%였던 내 사망확률을 200%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짝!
더는 가망이 없단 걸 깨달은 나는, 마법사의 뺨을 때렸다. 이제 곧 뒤질 텐데 이런 것도 하지 않으면 억울하다.
그때였다.
쾅!!!
눈이 멀 정도로 밝은 섬광과 함께, 귀가 깨질 것 같이 큰 소리가 들려왔다.
ㅡ!!!
"으으으..!"
눈을 뜨자, 이쪽을 향해 날아오던 돌덩어리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눈도, 우박도, 그 모습을 감춘 뒤였다.
똑. 똑. 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에선 얇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한 녀석은 없었다. 가게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을 뿐.
"와아아아! 블랙베리님이 청을 들어주셨다!! 우리가 살았다!!"
오직 마왕만이 비를 처맞으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뭐..지? 일단 산 건가?"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내가 입을 열었다.
짝!
옆에서 따귀가 날아왔다.
"그런 것 같네."
마법사가 대답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이 갑자기 사라지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 새끼들과 같이 뒤졌고, 여기는 저승인 게 아닐까?
"어.. 그럼, 다시 술 마시면 되나?"
뒤져서도 술을 찾는 마부였다.
"뭐.. 그렇..겠지..?"
용사가 어물쩍하게 대답했다.
'만세에에!! 만세에에!!'
등신들이 우물쭈물 제 자리를 찾아가는 와중에도, 마왕의 외침은 끊이지 않았다.
"어, 이거 아까 내가 마시고 있던 럼주네."
"그럼 니가 마시던 거지, 내가 마시던 건 줄 알았어?"
"내가 진짜 살아 있는 거구나."
"실감 안 나면 한 대 더 때려 줄까?"
마법사가 내 얼굴 앞에 손바닥을 들이댔다.
그것보다, 죽지 않은 나에게, 살아있는 나에게, 가장 거지같은 소식이 있었다.
"집엔 어떻게 가냐 시발."
쏴아아아.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빗줄기는 더 거세졌다.
쾅!
마왕성 방향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파편 하나가 남은 건지, 번개가 떨어진 건지, 알 수는 없다.
등신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 따위 일에 반응하기엔 아까까지의 경험이 너무나도 강했다.
'안돼에에에!! 안돼에에에!!'
밖에선, 어느새 환호에서 절규로 바뀐 마왕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 줄 알아야 한다.
그 대가를 지불한 마왕을 보며, 오늘도 깨달음을 얻었다.
“내 서어어어어엉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