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작업은 보는 사람도 답답하고 하는 사람도 답답하다 [1]
-와아아아!!!
바깥이 소란스럽다. 내가 술집에서 밤을 샜던가?
아니, 등에 느껴지는 이 감각은, 분명 내 방의 침대가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소음은, 마을에서 들려오는 것인가?
따분할 정도로 조용한 이 마을에서?
이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체 이 인간들이 환호할 만한 일이 뭐가 있는지..
부스럭 부스럭
시발. 역시 시간이 됐었나.
"오로넬. 밥."
아무리 자는 척을 하고, 심각한 척을 해도, 이 꼬맹이에겐 통하지 않는다.
쿵!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뿐.
"아! 일어났어, 일어났어! 알았으니까 씻으라고!"
바닥으로 떨어진 나를 다시 들어 올리려는 꼬맹이를 안심시키고, 세면장으로 보냈다. 한 번까진 잠기운으로 버틸 수 있지만, 두 번 부턴 얘기가 다르다.
"아이고, 허리야. 거 잠 좀 잘 수도 있지, 다짜고짜 집어 던지는 건 존나 너무하지 않냐?"
「별로.」
딱히 공감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꼬맹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지.
"근데 넌 하루종일 거기 처박혀서 뭐하고 있냐? 재밌냐, 거기?"
책상 옆에 기대어 있는 막대기에게 말했다. 요즘 꼬맹이도 이 녀석에게 별로 관심을 주지 않는 탓에, 가끔씩 있는 것조차 까먹을 때가 있다.
「훗, 이몸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도 영겁의 세월을 버텨온 몸이다. 이 정도는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지.」
"그러냐."
가끔 생각이 나서 말을 해보려 해도, 언제나 이런 식으로 끝이 난다. 도대체 저기서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 거냐?
"다 씻었어."
시간이 좀 늦어서인지, 빨리도 씻고 나오는 꼬맹이였다. 하지만 나까지 준비되지 않으면 의미도 없는 짓이다.
나는 밤 동안 밀린 배변활동을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 이걸 어떡하지 오로넬씨? 식사 재료가 다 떨어졌는데."
꼬맹이의 눈빛이 따갑다.
하지만 나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다.
"다 떨어졌다고? 설마 오늘 아침이.."
이 맛도 없는 여관의 아침이 품절되는 건, 한 가지 경우밖에 없기 때문이다.
"맞아. 계란이랑 베이컨."
그건 바로, 가장 맛있는 메뉴가 나올때다.
맛없는 여관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라니, 모순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재료를 불에만 구우면 되는 요리를 맛없게 하는 것이 더 모순 적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칭얼거리는 꼬맹이를 끌고 마법사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이 이른 아침에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곤 거기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어.' 는 무슨, 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그딴 걸 먹이고 있냐?"
바지를 내리고 있는 깡통과, 그걸 가리고 있는 마법사가 눈앞에 비쳤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잖아.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원해서 하고 있는 거라고."
"나쁜걸 아니까, 이렇게 숨어서 하는 거잖아?"
"아니지, 아니지. 이건 영업 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는 것뿐이라고. 절대 더러워서가 아니라."
"으엑, 시발. 하필이면 카레냐? 안 숨었으면 진짜 처맞았다, 너."
"아, 알겠으니까 조용히 좀 해! 부탁 받은 건 해 줘야 될 거 아니야!"
마법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카레는 아니지, 카레는.
"자, 여기 카레."
접시를 내미는 마법사와, 그걸 받아드는 마을 사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어떻게 봐도 배설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오.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온도도 적당하구요."
그야, 방금 쌌으니까.
"음, 맛도 다채롭네요. 정말 맛있어요!"
그야, 안에서 섞였으니까.
"하하.. 맛있게 먹어주니 기쁘네."
마법사의 입 꼬리가 떨렸다. 내 표정을 봐서인지도 모른다.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침부터 여긴 왜 온 거야! 너 때문에 내 아침 일과가 망했잖아!"
아침마다 저 짓을 하고 있었나 보다. 딱히 그걸 계속하던 말던, 나는 신경 안 쓰는데. 옆에서 욕은 좀 하겠지만.
"밥 먹으러."
"뭐?"
"바압.."
꼬맹이가 힘없이 늘어졌다.
"진짜로 밥 때문에 왔다고? 니가? 여길?"
"그래. 아침이 다 팔렸다는데 어떡하냐? 여기라도 와야지. 그래서, 여기 밥은 어떻게 주문하는데? 그냥 아줌마한테 가서 받아오면 되냐?"
"어? 어.. 그러면 되긴 한데.."
뒷말을 늘어뜨리는 마법사였지만, 신경 쓰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여긴 밥을 먹으러 온 거지, 저놈이랑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다.
"아줌마. 아침 두 사람분만 줘."
"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잠시 자리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몇 분이 걸리든,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그리고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두 개의 접시가 자리 위로 올라왔다.
"카레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시발.
"야."
"응? 왜?"
"이거. 니가 만든 거냐?"
"글쎄? 먹어보면 알지 않을까?"
"넌 먹어보면 아냐?"
"난 알지."
"그럼 니가 먹어봐."
카레를 가득 채운 숟가락을 마법사의 입으로 박아 넣었다. 마법사는 예상했다는 듯, 이쪽을 노려보며 그것을 우물우물 씹어 먹었다.
"됐지? 이건 가게 음식이라고. 내가 한 게 아니라."
"흠.."
마법사의 입속에서 돌아온 숟가락을 쳐다보았다. 사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있었다.
"먹을만하냐, 꼬맹아?"
"응."
"그럼 너 다 먹어라."
그대로 숟가락을 내려두고, 꼬맹이에게 접시를 밀어주었다.
"지랄하지 말고 먹으라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뭐?"
-와아아아아!!!
또 그 소리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평소의 조용한 마을 그 자체였는데, 저놈들은 대체 어디에서 뭘 보고 저리도 좋아하는 걸까?
-이봐, 장군님이 오셨나봐!
-우리도 구경하러 가자!
"장군? 서대륙에 그런 것도 있었냐?"
"그러게. 나도 처음 듣는데."
"나가보면 알겠지. 빨리 먹어봐, 이놈아."
"기다려."
양손으로 접시를 들어 입을 향해 흘려보내는 꼬맹이였다. 빨리 먹으라고 한다고 식사 2인분을 2초 만에 해결하다니, 저딴 짓이 가능한 건 저놈밖에 없을 거다.
"저기, 마을 사람들이 저쪽으로 뛰어가잖아. 저리로 가보자고."
아까와는 다르게, 주변의 모든 인간들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장군이라는 놈이 있는 곳이겠지. 사람들이 저렇게 반기는 걸 보니 나름 명망도 높은 듯하다.
그런 인사가 굳이 왕이 있는 이곳에 왔다는 것은, 무언가 호출을 받았거나, 반란을 일으키거나, 둘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후자일 가능성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응원해주도록 하자.
"싸부!!"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곧바로 그 팔을 붙잡아 땅으로 패대기를 쳤다.
"커헉!! 잠깐만, 잠깐만! 나 애쉬! 애쉬!! 당신 제자 애쉬라고요!!"
"누군지 모르겠는 걸?"
목숨을 구걸하는 낯선 이를 향해 주먹을 쥐고, 면상을 조준했다.
"살려줘, 살려줘 제리스!"
뭐?
"음.. 안녕하세요, 오로넬씨?"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또 왜 여기 있냐? 저기서 병신 같은 망원경이나 들고 있어야지."
뒤에 보이는 산을 턱으로 가리켰다.
"어.. 그러니까.. 애쉬씨가 오로넬씨를 찾았다면서 뛰쳐나가려고 해서요. 말리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와 버렸네요."
"아~ 그러니까 둘이서 사이좋게 저 위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다는 말이네? 내 말이 맞냐, 제자야?"
"네! 맞아요! 커헠!!"
골빈년의 얼굴을 찌그러진 찐빵같이 만든 뒤, 옷을 털며 일어났다.
-플레임 장군님 만세!!
이제 소리의 근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장군이라는 놈이 어딘가에 멈춰선 듯 했다. 적당히 인파를 모은 뒤에는 명언이라도 던져주는 것이 고위인사들의 암묵적인 관례라고 할 수 있지.
"하.. 이년이 설치면, 제리스 니가 맞는다. 알겠냐?"
여기까지 온 이상 이 뒤에도 따라올 것은 명확했기 때문에, 제리스에게 미리 당부를 했다. 저년에게는 해봤자 듣지도 않을 거고 말이다.
"네."
근데 이 놈도 어지간히 맞아봤어야지, 이제 맞아도 아프기는 한가 모르겠다.
"와 많기도 하네."
마법사가 감탄할 만도 했다. 나도 그 술집을 제외하곤 이 마을에서 이 정도의 인파가 모인 건 처음 본다.
그리고 그 인파의 선봉에는, 반짝이는 갑옷과 붉은 망토를 흩날리며 서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 딥다크의 주민들이여!"
딥다크. 이 병신 같은 이름이, 왕이 살고 있는 수도의 이름이다.
괜히 내가 붉은색으로 도배를 했다시피 한 옷들과, 플레임이라는 이름까지 듣고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오늘 내가 여기에 온 것은 국왕 나디아 폐하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예로운 일이지!"
나한테는 매우 불쾌한 일일 것 같은데.
"오늘 어떠한 명령을 받는다 해도, 나는 앞으로도 이 한 몸을 바쳐 그대들을 지킬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도 그대들이 맡은바 책무를 다하여, 이 나라의, 이 대륙의 평화를 함께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이다!"
-와아아아아!!!!
환호하는 마을사람들 앞으로, 각종 병장기들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역시 군의 고위인사들은 결코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마왕보다 멀쩡한 놈인 것 같은데?"
"그러게."
저 정도의 인망과 멀쩡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놈이 있는데, 어째서 이 나라가 아직도 마왕의 손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실권은 흰놈이 쥐고 있긴 하지만, 저놈의 태도로는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저기 제리스, 마왕이 누구야? 그 이상한 늑대랑 놀던 남자인가?"
"그분은 댁네 점원인 조지씨구요. 마왕은 나디아씨를 말하는 거에요."
"아~ 맞아. 그랬었지. 요즘 가게에 안 나간지 꽤 돼서 얼굴이 가물가물 해."
제리스가 진심인거냐는 눈으로 골빈년의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그래. 내가 너를 보는 눈도 딱 그 눈이다. 이번 기회에 내 기분을 좀 느껴봤으면 하는 바이다.
"어? 산으로 간다."
"마왕이 불러서 왔다니까 산으로 가겠지."
분위기 때문인지 개뿔인지는 모르겠는데, 명색이 왕의 거처라는 곳이 저 따위로 험준한 산의 위에 있다니, 언제 봐도 놀라울 지경이다.
주민들은 저 성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수도의 규모도 마을 정도에서 정리되니, 아무런 이득도 없는 최악의 위치 선정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 가볼까?"
"저걸? 뭐 하러?"
"궁금하잖아. 서대륙의 장군이라니. 어차피 술집이랑 가는 길도 비슷한데, 따라 가보다가 재미없으면 술이나 마시러 가자."
아직 점심도 안 됐다.
"맞아요, 맞아. 새로운 인간은 새로운 재미라구요, 싸부. 혹시 알아요? 저렇게 말하고는 반란을 일으키러 갈지?"
그건 좀 보고 싶긴 하다. 가게에서 가장 멍청한 등신이 사라진다는데 누가 그걸 마다할까?
"자, 그럼 가자고."
한순간이라도 그걸 구체적으로 상상한 게 실수였다. 어느새 내 몸은 등신들에게 떠밀려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이, 그쪽의 외지인들."
그리고 미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도 쪽팔리게, 산에 들어선 순간, 등신들은 발각되고 말았다.
"거기서 뭘 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