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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작업은 보는 사람도 답답하고 하는 사람도 답답하다 [3] (59/108)



〈 59화 〉작업은 보는 사람도 답답하고 하는 사람도 답답하다 [3]

딱 딱 딱 

망치소리가 시끄럽다.


딱 딱 딱 딱


어째서 마왕성에서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가게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것 보다는 나은 것 같다.


무슨 작업 하나 시작 하는데 그리도 말이 많은지, 시답잖은 소리는 밖에 나가서 하라던 흰놈 마저도 면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분위기를 파악한 제리스가 달려 나가서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한 번씩 기절을  했겠지.

"야, 젠."


"왜 그러지?"

젠은 명태에 예쁘장한 튀김옷을 입히고 있었다.


옛 생각에 주문하던 고등어 순살 조림에도 슬슬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등신들이, 기분 전환을 위해 명태 순살 튀김이라는 것을 주문해서인데, 야전에서 먹는 생선들은 왜 뼈를  바르고 조리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애초에 순살이라고 이름 붙이질 말던가.

"니네들 수리할 때는 며칠 걸렸었냐?"


"일주일이다만."


젠과 따까리들을 포함하면 11명.  11명이 달려들어서 반쯤 박살난 성을 고치는데 걸리는 기간이 일주일. 지금도 그때와 비슷하게 박살이 났는데, 이번에 동원된 인력은 마왕 본인을 포함해서 족히 30은 넘어보였으니, 며칠이면 충분히 끝낼 것으로 보인다.


"어떡하냐, 용사님? 당분간 니 절친 못 보겠네?"

"응? 누구? 나디아?  못 마신데?"


그놈 인생사에 1도 관심 없는 나조차도 여기까지 알고 있는데, 절친이라는 놈이 제일 아는 게 없다.


원래 친한 사이일수록 자기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나는 뭐 알려줘서 알고 있는 것 같은가? 그냥 저놈이 멍청해서 그렇다. 바로 위에서 들리는 망치소리만 들어도  텐데, 저게 딱따구리인줄 아나 보지.


"못 마시는 게 아니라, 마왕성 꼬라지 못 봤냐? 자기 집이 박살났는데 뭔 술이냐, 미친놈도 아니고."


말하고 보니 생각났다. 그놈은 미친놈이 맞는데  저기에 있는 거지?

"바쁜 거면 내가 술을 가지고 올라가면 돼. 어디서든 마실 수 있다고 우린."

바쁜데 술은 어떻게 마시겠냐. 정말 끼리끼리 잘도 논다.


'와아아아!!'


또 마을 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아직도 더  놈들이 남았나 보다. 아주 대륙에 있는 지휘관들을 다 소집하고 동대륙 놈들한테 어서 오라고 문이라도 열어주지 그러냐.


"아직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마을에  더 있다가  걸 그랬네."

마법사는 가게에 온 게 후회되는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올라와봤자, 밤이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거라곤 술을 마시는 것뿐이니까.

용사를 비롯한 몇몇의 등신들이 가게에 왔다 해도, 이제 막 점심이 지났을 뿐이다. 모든 등신들이 모이려면 아직  시간은 더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거지.

"와, 싸부, 안주도 없이 드세요? 그거 그 술이죠? 옛날부터 싸부만 마시던 그 이상한 술."

안주는커녕 술도 안 마시고 있는 놈이 옆에서 헛소리를 한다.

"술도 못 마시는 년이 지랄은."


"에이,  마시는 게 아니라 안 마시는 거죠. 제가  마시는 거   있으세요?"


"그럼 마셔보던가."


들고 있던 잔을 그대로 골빈년에게 내밀었다.

"그러니까, 그 술은 싸부 밖에 안 마신다고요. 기름을 마시는  더 나을 것 같은 맛인데, 누가 마시겠어요?"

"술도 모르는 놈이 럼주의 참맛을  리가 없지."


술은 원래 좆같은 음료다. 그러니까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좆같음을 자랑하는 이 럼주야말로, 가장 술의 정의에 부합한 음료라고 할 수 있지.

"그딴 것보다, 아까 플레임이라고 했던 놈은 동부전선 책임자라고 했지? 그럼 옆에 있던 세 명도 전부 한 자리 하는 놈들이야?"

그딴 거라니, 맥주만 마시는 허접이.

"어? 플레임을 만났어? 여기엔 무슨 일로 왔데?"


마법사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용사였다. 어째 이놈은 마왕군 내에 모르는 놈이 없는 거냐.

"부서진 성을 고치러 왔다던데?"


"아, 그거 또 부셔졌어? 그럼 스톰이랑 프리즈도 왔겠네?"

박살나는 걸 실시간으로 봐놓고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다. 마왕의 그 처절한 절규를 듣지 못한 건가.

그보다 파란놈의 이름은 역시 프리즈였나 보다.  봐도 마왕이 손수 지어준  같은 꾸질꾸질한 이름에서, 그 세 놈이 그놈의 최측근인  짐작케 해 줬다.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두 명도 여기서 대단한 놈들인가 보네?"


"보자.. 플레임이 동부 전선 책임자고.. 스톰이 아마 남부 책임자에, 프리즈가 북부일 거야."

그러니까, 지금  나라의 국방은 뻥 뚫려 있다는 거다. 이런 정신 나간 나라도 천 년 이상 통일을 유지하고 있는데, 같은 시간동안 자기네들끼리 땅따먹기나 하고 있는 동대륙도 어마어마하다.


 딱..

'$%^#$#^$!!'

마왕성으로부터 들려오던 망치질이 멈추고, 다급한 외침이 오고갔다. 그 소리 가운데에,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가 섞여있었다.


'...아아아아아아!!!!'


콰직!

쿵!

인간의 소리를 내고 있던 그것은, 순식간에 가게 천장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형체를 안구에 담아내기도 전에, 천장에 가득 차있던 먼지가 가게 안을 덮었다.

음식을 하고 있던 놈이나, 먹고 있던 놈이나, 너 나 할 것 없이 비명을 질렀다.


"콜록, 콜록! 야, 빨리 창문이랑  열어!"

제리스와 5명의 노예들이 재빠르게 가게에 빛을 가져왔지만, 이미 바닥과 벽에 붙은 먼지들이 회색 공간을 만들어낸 뒤였다.


'그것'이 떨어진 낙하지점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도중이었다.


"이 정도면 뒤졌겠지?"

"글쎄."


"넌 대체 천  동안 뭘 하고 산 거냐? 무슨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여기에 미친놈들이 너무 많은 거라고. 이거 봐, 뒤졌으면 피라도 나와야지, 바닥  번 깨끗하네."

"비켜봐, 그럼. 내가 한 번에 맞춰볼 테니까."


등신들을 헤집고 연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야, 뒤졌냐? 뒤졌지?"


대답이 없다. 평범한 시체인 모양이다. 애초에 절벽 위에 있는 마왕성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할 리가 없다. 이건 상식도 아니고 당연한 거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당연한 사실.

마침내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것은, 검은색 하이힐이 꽂혀있는 얇은 다리였다.

이것만으로는 이 미식별 시체의 성별을 특정하긴 어렵다. 다리 얇은 남자야 수도 없이 널렸고, 하이힐은 이런  변태들에겐 기초중의 기초다.

모처럼 내가 시신을 수습해주려 했는데, 다리만 내놓고 뒤지다니, 이래서야 수습하는 인간이 변태가 될 뿐이다. 아쉽지만 누군가가 거기서 뽑아줄 때까지 박혀있는 수밖에 없다.


응? 잠깐만, 저거 설마?


"야 불  줘봐."


"어? 불은 왜?"

넋 놓고 시체를 쳐다보고 있던 마법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빨리. 내가 신기한  보여줄게."

"뭐라는 진 모르겠는데, 일단 자."


"잘 보라고."

마법사에게서 건네받은 성냥에 불을 붙여, 시체의 다리에 갖다 댔다.

'아아아악!!'

바닥 아래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힘없이 늘어져있던 다리가 자전거를 타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얼마나 신기했으면 스튜를 퍼먹고 있던 꼬맹이마저 의자에서 내려와 강령술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덩달아 놀라는 등신들의 성원에 힘입어, 더 가까운 곳에 불을 갖다 댔다.

"으아아아악!!!"


콰직!


바닥이 박살나며 무언가가 위로 솟아났다. 불을 지지고 있던 다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내 눈앞에 검은색 하이힐이 뻗어오고 있었다.


텁!

하지만 꼬맹이보다는 빠르지 못했다. 코앞까지 닿은 하이힐이 꼬맹이의 손에 가로막혀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저놈이 계속 스튜를 먹고 있었으면 내 안면에 그대로 직격했겠지.


"왜 멀쩡한 사람의 다리에 붙을 붙이고 지랄입니까 지랄은!!"


하이힐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주인한테 불을 지져서 그런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오, 미안해 하이힐아. 하지만 니 주인은 이미 뒤졌단다. 니가 화를 내도, 뒤진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


"이건 또 뭐하는 미친 새끼입니까? 설마 하이힐이랑 얘기하고 있는 겁니까?"

"응? 뭐야, 진짜 살아있었던 거냐?"

눈앞을 가리고 있는 하이힐을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거기엔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사무복과, 보라색 머리를 가진 여자가 보였다.


이놈들의 내구력은 상식조차 뛰어넘을 수준까지 와버린 모양이다.

"오, 벨! 안녕! 오랜만이야!"


용사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용사와 마왕군은 적대관계이다.

"아, 오랜만입니다, 시트린님. 시트린님이 계신단 건, 제가 가게까지 떨어졌나 보군요."

"응, 맞아."


"그래서 그런지 허리가  아프군요. 이왕 여기에 떨어진 거, 알코올 치료라도 받고 가야겠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고도 허리 통증밖에 없는데다가, 자연스런 직무유기까지, 정말이지 마왕의 곁에 어울리는 인재다.

"그러니까 제 발 좀 놔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친 새끼씨?"


보라놈이 허리를 굽혀 나를 내려다봤다.

"내가 잡고 있는 거 아닌데."

양손의 중지를 내밀며 증거를 보여줬다.

"아, 그렇군요. 이제 그만 제 발을 놔주시지 않겠습니까, 꼬마씨?"

꼬맹이는 대답 대신 이쪽을 쳐다봤다. 이제 재미 볼 것도 없겠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줬다.

"감사합니다."


발의 자유를 되찾은 보라놈은 망설임 없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 주인장의 앞에 섰다.

"혹시, 마시면 기절할 만큼 독한 술이 있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기절은 잘 모르겠고, 독한 놈이라면 하나 있긴 한데."

"오, 그걸로 한 잔만 주시겠습니까?"


"제리스, 저거 뭐냐, 오로넬이 마시는 술 한 잔만 가져다 줘라."

"럼주 말이죠? 금방 다녀올게요."

제리스는 잔을 들고 저장고로 내려갔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저 여자가 럼주를 마시겠다고 한 거다. 여기 있는 등신들도 일찌감치 포기하고, 나 혼자서 독점하고 있는 술을, 감히 마시겠다고 한 거다.

"괜찮겠냐? 이거 존나 독한데. 술 좀 마시냐?"


이걸 마시고 토악질을 하는 놈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서 걱정이 앞섰다.


"아니요? 술은 입에도 못 댑니다만."

"그럼 왜 마셔, 미친놈아."

"이렇게 하려구요."


때마침 올라온 술잔을 집어 들고 들이키는 보라놈, 저렇게 거침없이 한잔을 통째로 들이키는 건, 나조차도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다.

쿵!


그리고 잔이 비워짐과 동시에, 그 몸은 잔과 함께 땅으로 고꾸라졌다.


"뭐야, 뭔데?"

"기절한 것 같은데?"

기절만큼은 질리도록 봐서인지, 곧바로 대답을 하는 마법사였다.

"설마 이거, 작업하기 싫다고 마신 거냐? 자기가 기절 할  알고? 단단히 미친놈이네 이거."


 상태에서 깨어나면 진짜로 머리통이 깨진다는 게 뭔지 느껴질 정도일 텐데, 그럴 바에야 그딴 작업, 하고 만다.


"어음.. 일단은 어디로 옮겨야  것 같은데요?"

제리스의 목소리에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드러누운 인간을 치우는 건 누구라도 싫어할만 하지. 그리고 나도 내 자리 뒤에 저런  눕혀둔 채 술을 마시고 싶진 않다.


'야!!! 벨!!!'


그리고 여기서 끝날 리가 없는 등신들의 릴레이. 이미 바통은 다음 주자에게로 건네진 모양이다.

쾅!

"벨!! 어디서 땡땡이야ㅡ! ..어?"

빨간 머리의 등신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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