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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 〉작업은 보는 사람도 답답하고 하는 사람도 답답하다 [5] (61/108)



〈 61화 〉작업은 보는 사람도 답답하고 하는 사람도 답답하다 [5]

쿠구구구궁

상당히 위에서부터 굴러오기 시작한 건지, 가속도를 충분히 얻은 돌덩이는, 말 그대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중이였다.

옆으로 피한다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간단한 선택지가 있었다.

바로 꼬맹이를 잡아, 돌을 향해 내미는 것이다.

쾅!

돌의 크기가 크기였던 만큼, 박살이 났다 해도 파편의 여파가 남아있었다. 그래, 마치 그때  운석처럼.

-아아악!!


등신들이 엄살을 부렸다.


뭐 어쩌겠나, 돌을 굴린 놈이 잘못이지. 두 명이 확실하게 뒤지는 것보단, 수십 명이 아픈기만  게 그놈에게도 위안이 될 거다.


"괜찮으세요ㅡ!!"

멀리서는 돌이 굴러오는 것을 알렸던 제리스가 뛰어오고 있었다.

"다행이다. 허억.. 데이린이 있었구나."

내가 살아있는  보고 안심하는 제리스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물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설마 돌 굴린게 너냐?"


"아아아, 아니요. 제가 무슨 깡이 있다고 오로넬씨에게 그런 짓을 하겠어요?"

"그럼 혹시 저년이냐?"

"싸부ㅡ!!"

"어음.. 그러니까.."

바닥에 떨어진 파편 하나를 주워,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골빈년의 두개골을 향해 조준했다.


"뒤져라!!!"


딱!!


올해 들었던 소리 중 가장 경쾌한 소리였다. 미간과 돌이 하나가 되다시피 맞은 골빈년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은혜도 모르는 가축 같은 년, 감히 나한테 돌을 밀어?"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아, 주울  있는 만큼의 돌멩이를 가져가, 골빈년의 위에서 하나씩 떨어뜨렸다. 말이 떨어뜨린다지, 거의 던지는 수준이었다.


"아, 아니, 저한테도 책임은 있는데, 민  아니라, 밀린 거..!"

"어디서, 어디서 변명질이야 이게. 가만히 있는 돌이 혼자서 굴러 오냐?"

"뭐하는 짓이야, 오로넬!"

마법사가 소리쳤다.

"말릴 생각 하지마라. 오늘이야 말로 이년한테 예절 교육을 해야겠으니."

"왜 혼자서 던지고 있냐고! 나한테도 내놔!"

마법사는 내 손에 있는 돌의 절반을 가로채갔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이년에게 쌓인 게  많았었다.

"아, 아! 왜들 이러세요! 전 억울해요!"

"잠깐, 잠깐, 잠깐. 진정해 보세요, 오로넬씨, 시오씨."

"넌  뭐냐, 제리스. 너도 돌 좀 줘?"

"아, 그럼 하나만.."

소심하게 하나만 가져가나 싶었는데, 오지게도 세게 던지는 제리스였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인간들에게서 분노를 자아내다니, 내가 가르쳤지만 대단한 놈이다.

"아, 그게 아니라. 일단 진정들 하세요. 오해에요, 오해. 애쉬씨가 돌을 민 게 아니라구요."

"그럼 그렇게 큰 돌이 바람 때문에 밀렸다고 하는 거냐, 지금?"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 이걸 뭐라 설명 드려야 하지. 직접 보시는 게 나은데 따라와 보시겠어요?"


"설명이 안 되기만 해봐라. 이년이랑 같이 눕혀놓고 돌 맞는다? 꼬맹아, 저것 좀 일으켜 세워라."


"응."


얼굴을 가린 손틈 사이로 분위기를 엿보고 있던 골빈년을 일으켰다. 제리스가 변호를 하겠다며 형벌을 미뤘으니, 그게 끝날 때까지는 살려둬야겠지.

"으아앙, 전 그저 싸부가 반가워서 달려온 것 뿐인데에에!"

"우는 연기 하지마라. 앵앵거리는 소리 짜증나니까."


"네."


이년에게 폭력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고고, 나 너무 많이 맞았는데 호~ 해 줄래, 데이린?"

"오로넬이 애쉬는 맞아도 싸다고 했어."


봐라. 방금까지 맞고 있던 주제에, 일어나자마자 태연하게 꼬맹이에게 잡소리를 하고 있다.

쿵! 쿵!

"여기에요."


제리스가 멈춰선 곳은, 나에게 굴러왔던 크기의 돌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그 앞에는 단두대보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날붙이가, 깔끔하게 돌을 잘라내 네모난 모양으로 가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다보니, 운반하기 좋게 원형으로 뭉쳐둔 벽돌을 가져와, 이곳에서 마지막 가공을 하는 듯하다.

"이게 뭐? 여기서 밀었다는  아니냐?"

"잠시만 지켜보세요. 저 돌이 어떻게 되는지."

쿵! 쿵!

날붙이가 돌을 잘라낼 때마다, 근처의 땅이 울렸다. 그리고 진동이 반복될수록, 대기 중인 돌들이, 고정해둔 자리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텅!


결국 틀을 벗어나는 돌이 발생했고, 이탈이 발생하자마자, 그 앞에 서있던 등신 한명이 달려가, 그것을 막아냈다. 제리스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만히 냅둬도 돌이 굴러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네, 그렇죠."


"근데 저걸 보면 돌마다 한명씩 배정 돼있는  같은데? 굴러가면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아니냐?"

"네, 맞아요."

"그럼 결국  새끼가 자기 일을 안 해서 돌이 굴러온 거잖아. 직접 굴린 거랑 다른 게 뭔데?"

"어.. 그러게요."

"이 새ㄲ..!"


곧바로 골빈년의 머리채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하여간 머리는 나쁜 게 눈치는 빠르다.

그래도 도망을 쳤다는 건, 오늘 중에는 내 눈앞에 알짱거리는 일이 없다는 거겠지.


"넌 뭐하고 있냐?"

노린 적도 없는 제리스가 눈을 감은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까 설명이 안 되면 저도 같이 맞는다고.."


"근데 이년이 없어졌잖아. 같이 맞을 년도 없으니까, 이제 닥치고 니가 하던 일이나 마저 하러 가라고."


"ㄴ, 네."


"여기 있었군. 잠시 작업 현황을 둘러보고 왔는데 그쪽이 없어져서 얼마나 찾았는지 아나?"

"아, 그거? 잠시 돌에 치여 죽을 뻔해서 말이야."

"음, 마침 부탁하려던 일도 그거였다. 보다시피 돌의 무게가 상당해서 그런지, 간간히 돌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더군. 특히 피로가 쌓인 인원에 한에서는 더욱."

"으흠."

듣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눈으로는 사라진 골빈년을 찾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마법사도 사라져 있었다. 설마 그년을 쫓아간 건가?


"그래서 말인데, 그쪽의 딸.."

"딸 아니다."

"아무래도 좋아. 어쨌든 그 꼬마라면 여기 있는 돌들을 혼자서도 관리할  있지 않나?"

"그렇겠지."


"그렇다면 부탁을 좀 해도 되겠나? 저기에 붙어있는 인원들만 작업으로 돌려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


"상관없긴 한데, 니 양심은 괜찮냐? 애새끼들한테 이런 중노동을 시키는 건 뭐시기 조약 위반이잖아."


"거긴 동대륙, 여긴 서대륙. 이 정도면 충분한가?"


"양심을 아주 끼웠다 뺐다 하는구만."

"그럼 부탁하지."


거의 통보에 가까운 부탁을 하고, 젠은 사라졌다. 뭐, 내가 하는  아니니까 상관없나.


어차피 힘은 넘치도록 남아도는 꼬맹이다. 가끔은 이런 운동이라도 해 줘야 몸이 풀리겠지.

"들었냐, 꼬맹아? 거기에 서서 튀어나오는 돌이 있으면 다시 집어넣으면 된댄다. 부수진 말고. 알겠냐?"

"알았어."

"하암, 작업 하는 것만 봐도 졸려 죽겠네."

꼬맹이를 감독해야하는 나는, 근처 돌부리에 걸터앉아, 괜히 자기와는 상관도 없는 일에 나서서 땀을 흘리고 있는 등신들을 관찰했다.

가공된 벽돌을 옮기는 등신, 운석 때문에 조져진 땅을 다시 매끈하게 매우고 있는 등신, 시멘트를 바르는 등신과, 만드는 등신, 고작 몇 십 명의 등신들이 더 추가되었을 뿐인데, 낡아빠진 성은 점점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아아니! 내 부하들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마왕님께서 직접 데려온 인간이라길래 잠자코 있었더니 더 이상은 못 봐주겠군!"

물론, 그렇다고 모든 등신들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나는 그저 귀관이 명령을 내리지 않은 부하들에게 잠시 도움을 요청한 것뿐이다."

"도움은 무슨, 대놓고 빡센 작업에 집어넣었잖아! 그리고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게 아니라, 명령을 받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놈들이라고!"


노란놈이 길길이 날뛰었다. 옆에서는 '빡센 작업' 이라는, 돌을 각 층으로 옮기는 일이 진행중이였다.

"휴식이라고..? 작업 중에 말인가?"

젠은 난생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따까리 다섯 명이 근무 중에도 도망치려 한 이유를  것만 같다.


"당연히 쉬어야지! 계속 일만 시키다가 뻗으면 어떡할 건데?!"


"다른 인원들의 작업 강도가 높아지겠지."


"그러면 다른 녀석들도  뻗을 거 아니야! 너 혼자 남아서 작업할 생각이냐!?"


"아니. 아무도 뻗지 않아. '자기가 뻗으면 동료들에게 피해가 미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병력들이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거든. 귀관은 조직의 발목을 붙잡는 머저리가 된다는데 마음 편히 뻗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다 같이 쉬면되잖아! 무슨.. 대가리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긴 한 거냐!?"


마왕군이 대가리 운운할 정도면 상황이 얼마나 상식을 벗어낫는지를 알 수 있다. 내가 봐도 저건 미친 짓이다.

"물론, 그저 일만 시킬 뿐이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겠지. 그래서 나는,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보상을 그들에게 약속한다. 단 하루 동안, 모든 걸 허용하는 거지. 규칙도, 상하관계도 따지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자유에 목숨을 걸라니, 노예도 아니고.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497번이나 병사들에게 목숨을 노려졌다. 중대장실에 온갖 오물들이 투척 돼있는 건 일상 다반사였지."

"지금에 이르러선 오히려 그들이 갈망하고 있을 정도다. 상관에게 개길 때의 그 쾌감은 어떤 유희와 오락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감정이거든."


그러고 보니 그렇게 도망치려했던 놈들도 작업장에 끌려오고 나서는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 오히려 다른놈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던져지면 성향이 뒤틀린다더니, 젠의 말대로 저 쾌감에 맛을 들린 모양이다. 불쌍하기도 하지.

"이제 됐다!  이상 필요 없어! 그런 변태 짓은  부하들하고나 해라. 내 부하들은 다시 데려갈 테니."


"그래도 되겠나?"

"뭐?"


"귀관의 부하들을 나에게 맡긴다면.. 확실하게 오늘 중으로 작업을 끝낼  있다. 그리고 난 그 모든 것을 귀관의 공으로 돌릴 의향이 있고 말이야. 아무리 사령관이라고는 하나, 변방에서 경력을 끝낼 생각은 아니겠지?"

"그.. 그건.."


"'군주의 직속.' 귀관이 원하는 건, 이 성에 발을 들이는  아닌가? 왕좌를 지키는 검이 되고 싶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군주의 눈길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때, 그 눈에 들어야 하지 않겠나?"

“기회가 왔을  잡지 못하는 건, 지휘관으로써 실격이라고, 난 생각한다. 귀관의 생각은 어떻지?”

"..!"


노란놈의 눈과 입이 벌어졌다. 역시 군인은 군인이 잘 안다. 젠은 어렵잖게 가용 병력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반갑다 제군들. 하루 동안의 협력일 뿐이니, 나에 대해선 그저 지나가던 패잔병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군."


지휘권을 넘겨받은 젠이 가장먼저 한 것은, 병력들을 모아두고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노란놈의 부하들은 마왕성에서 봤던 그 해골들과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까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오늘 안에 이 작업을 끝내려 한다. 따라서 휴식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약속한다! 오늘  작업이 끝나고, 내일이 밝았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태워서라도 제군들의 노고에 보상할 것임을!"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다른 등신들도 하나 둘 작업을 멈추고 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릇! 작업이란 작전이요, 작전이란 목숨을 거는 것이다!  작업에 제군들의 목숨을 걸어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제군들을 기다리고 있을 내일을 위해!!"


-와아아아!!!


머리 위로 연장들이 솟아올랐다. 등신들이 함성을 지르며 결의를 다졌다.

더 이상 여기가 전쟁터인지 작업장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아이, 술은 새참 때만 주겠다네."


"뭐야, 술 찾으러 갔다  거였냐?"

거지같은 담배냄새와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 때문에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새참 때를 기다려야만 하는 건가?


"새참 때가 언제라는데?"

"작업이 절반 정도 진척되면 이라던데? 진척도가 낮으면 몇 시가 됐든 간에 안 줄 거래."


"그래서 그때가 언제냐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새끼야. 대충 3할 정도는 됐다고 스쳐 들은 게 다라고."


"하.. 3할?"


고작 마왕 한 놈 때문에  까지 통제 당하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 등신들도, 결국엔 술을 위해 술을 참고 있는 건데,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나 둘! 하나 둘!

하지만, 그래. 그게 바로 이놈들이지.


그래야만 그 가게의 등신 같은 손님 새끼라 할 수 있지.


모든 등신들이 모이지 않으면, 그 술에 의미는 없다. 맛도 없는데 의미까지 없다면, 그건 마실 가치도 없는 술이겠지.

"야ㅡ! 제리스ㅡ!"


"네ㅡ! 왜 그러세요ㅡ!"


바로 맞은편에서 땅을 파고 있는 제리스를 불러 세웠다.

"혹시 거기에  더 있냐ㅡ!"

"삽은 뭐 하시게요ㅡ!"

"있냐, 없냐, 그것만 말해ㅡ!"


"여기 있어요ㅡ!"


"딱 들고 기다려라ㅡ!"


"뭐 하려고? 너 설마 도와줄 생각이야?"

"뭔 개소리냐? 난 그저,  골빈년을 붙잡았을 때 집어 처넣을 묫자리를 파러 가는 것뿐이라고."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뭐냐? 왜 따라와? 설마 이 등신들의 작업을 도우러 가는 건 아니겠지?"


"아니? 난 실험하러 가는 건데? '땀을 흘리고 나서 마시는 음료가 그냥 마실 때보다 더 시원한가?' 에 대해서 말이야. 뭐, 땀을 흘릴 일이 없으니, 니 묫자리 파는 거나 좀 도와주도록 할게."


"아이고, 병신."


"병신 반사."


"반사 무효."

"무조건 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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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어왔다. 이 무더운 여름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해가 저물어 간다. 숲에서 들려야할 정신 나간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딱딱딱딱

들리는 것은 연장과 연장이 부딪히는 소리, 오직 그뿐.

"거 작업하기  좋은 날이네."

나는 오늘도, 등신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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