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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할배들은 대개, 손자는 좋아하지만 자식은 싫어한다 [1] (62/108)



〈 62화 〉할배들은 대개, 손자는 좋아하지만 자식은 싫어한다 [1]

똑 똑 똑

기시감이라는 말을 아는가? '뭔가 예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던 것 같은데?' 하고 느끼는, 바로 그것 말이다.

똑똑똑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나는 묘하게 그것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똑똑똑똑

일주일에  번 꼴로 미친놈들이 찾아와서 내 방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똑똑똑똑똑똑!


"아이 시발, 어떤 새..!"

그리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대답이 없음에도 미친듯이 문을 두드려대는 등신에게, 욕을 하며 문을 열었다.

"어."


그런데 그곳에는, 온갖 경우를 생각해봐도 있을 수 없는 인간이 서있었다.

"이 개새끼야!"

"어엌!!"

다짜고짜 날아온 주먹을 맞고 다시 방안으로 날아갔다. 바닥에 엎드려 있는 꼬맹이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직 밥 때가  됐나 보다.


"어어억.. 대가리야..!"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처맞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눈은 사물을 식별해내지 못하고, 몸은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


"똑바로 서라, 이새끼야.  발바닥이랑 대갈통이랑 합체시켜버리기 전에."

눈앞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도 모를 쇠막대를 손바닥에 두드리고 서있는 노친네가 보였다. 주먹치곤 아프다 싶었더니 저걸 맞았나 보다.


나는 이 양반이 여기 있는 이유도 모르겠고, 왜 저렇게 성질을 내는 지도 모르겠다.

"아악, 여긴 대체 어떻게 왔냐, 이 노친네야."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바닥에 앉는데 성공했다.

"니가 왔는데 내가 못 올줄 알았냐, 이 새끼야?"

"아니 일은 어디다 팔아먹고 왔냐고."


지금은 끊겼지만, 한때는  보고서를 봤을 테니, 대륙을 넘는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새끼는 명색이 일국의 외교부 장관이다. 나 하나 때려 패겠다고 후다닥 달려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앙? 그냥 왔는데?"

"시발, 대체 왜? 내가 뭐 했다고 미친놈아."

"뭘 했냐고? 니새끼는 이 종이쪼가리가 뭔지 기억도 안나나보지?"


노친네가  똥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여기서 쓰는 종이라 해봤자 왕놈한테 올리는 보고서가 전부인데, 저런 종이를 쓸 리가 없다.

"안 나지, 안 나지! 이 새끼야?"

탁! 탁!


종이계의 끝물, 똥종이로 기분 나쁘게 머리를 몇 대 맞고 있으니 서서히  종이가 낯이 익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저거?"


탁! 탁!

"이제 알겠냐? 이제 알겠냐고."

"아니. 사실 모르겠어."

꼰대는 계속해서 말하는 속도에 맞춰서 내 머리를 때렸다.

"으으응..? 밥이야, 오로넬?"

땅바닥에 던져도 일어나지 않는 꼬맹이가 이 정도 소음에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시계가 정확히  때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이제 안 때리냐?"

그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었지만, 꼬맹이의 기상과 동시에 노친네의 팔이 멈췄다. 이 양반 나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반복 동작에 몸이 멈추는 것도 당연한 일이긴 했다.


"데.. 데이린..!"

"니가 이 녀석 이름을 어떻게 알아?"


아! 그러고 보니 저 편지..!

"내 일평생 동안,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내 손녀딸..!"


 먼 곳 어딘가에서 망원경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조만간 어떤 변태가 이곳을 찾아올 거란 느낌은 확실하게 들었다.

"넌 누군데 오로넬 방에 있어?"


일어나자마자 떠지지도 않은 눈을 비비며 얼굴을 씻으러 가던 꼬맹이는, 자기 앞을 막아선 늙은이를 쳐다봤다.

그 늙은이는, 살아온 세월로는 곧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양초와 같은 존재였기에, 가까이에만 있어도 시체 썩은 내와 비슷한 체취가 풍겨졌지만, 웬만한 인간들은 맨손으로 찢을 수도 있을  같은 저 덩치와 근육 때문에, 처음 저걸 보는 놈들은 자기가 헛것을 보고 있는 줄 안다.

이제는 뭘 먹기도 힘들다면서 대체 무슨 짓을 하길래  몸이 유지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더 무서운 건 아직까지 머리도 하얗게 세지 않았다는 건데,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7할 이상의 마리카락이 제 색을 붙들고 있다는 건, 이미 기적의 영역이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간이 저렇게 악착같이 버티고 서 있는데, 죽음이 무슨 깡으로 마중을 나오겠냐.

"아, 그래. 내 소개가 늦었구나. 나는 너희 아빠의 아빠란다. 편하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려무나."


"나 니 아들 아닌데."

노친네는 웃는 얼굴 뒤로 쥔 똥종이를, 더 이상 보이지 않게  정도까지 구겨 쥐었다.

"나도 딸 아닌데."

노친네는 움직이지 않았다. 드디어 뒤진 모양이다.  채로 죽다니, 역시 첩보원이 아니라 장군의 길을 걸었어야 했다.

콰직!


"아, 아, 아! 아버지, 아버지!  아들! 아들!!"

 이상 구겨버릴게 없어지자 내 머리가 구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까지 꺼내지 않으려 했던 '부자의 정' 찬스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래 아들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애비한테 설명해 주지 않겠니? 설마 일을 하라고 보냈더니 범죄자 새끼가 된  아니겠지?"


"아! 아! 주웠어, 주웠어! 당신처럼 주운 거라고ㅡ!"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으엑! 이걸 밥이라고 처먹고 다니냐?"


하필이면 오늘 아침은 맹물수프에 돌멩이 빵이었다. 요즘들어 안 나온지가 꽤 됐긴 했지만, 대다수의 손님들은 영원히 그랬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이거? 지금 이거라고 했냐? 야, 꼬맹아. 니가 좋아하는 음식 가지고 노친네가 뭐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이 여관을 대표하는 최악의 쓰레기 음식이 나왔다는 거다. 이런 걸 먹고 지내야 한다는 걸 알면, 늦어도 밤에는 다시 왕국으로 돌아가겠지.

"어어어 아니야, 아니야. 데이린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이 할애비도 좋아한단다. 이것 보렴, 이렇게 빵을 찢어서 수프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단다."

딱!

이빨 사이에 뭔가 단단한 것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래, 바로 빵이다. 애초에 저건 찢는다는 연약한 행위로 분리시킬  있는 것이 아니다. 노친네가 드디어 힘 조절도 제대로 못 하는지, 자기가 저걸 쪼갠건지 찢었는지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저런 물건을 부드럽게 하겠답시고 따뜻한 수프에 담가봤자 헛수고다. 돌을 뜨거운 물에 담가봐라. 그게 부드러워 지나. 그러니까 이놈이 한 행동들은 하나같이 의미가 없는 행동이란 거다.


그러나 노친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 돌을 베어서 씹어 먹었다. 손녀를 어지간히도 갖고 싶었나 보다. 정작 그 꼬맹이는 내가 뭐라하든,  새끼가 돌을 씹든, 자기 밥그릇만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역시 여자아이가 보는 눈이 즐겁고 좋구나. 저 뽀송뽀송한 피부하며, 말똥말똥한 눈까지, 아주 귀여워. 그에비해 남자새끼라 하면, 말은 밥먹듯이 안 들어 처먹지, 집 안에 숨겨둔 돈이란 돈은  털어가지, 아주 역병이 따로 없어, 역병이."

"이놈도 돈은 털어가거든? 하루에 몇 끼나 처먹는  알아?  돈이면 차라리 몇 푼 털리는 게 낫겠다. 거기다 멍청하긴 얼마나 멍청한  아냐? 답답해 죽겠다, 답답해 죽겠어."


노친네는 더이상 빵을 씹고 있지 않았다. 꼬맹이가 자신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맛있게 먹는  보여주는 것 보다, 더 먹으라고 양보해 주는 것이 점수를 더 잘 딸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할애비는 배가 부르구나. 데이린이 좀 먹어주지 않으련?"


자기가 먹다 남은 빵은 자리 밑으로 떨어뜨려 은페하고, 온전하게 남은 빵들만을 모아 꼬맹이에게 내미는 노친네였다.

꼬맹이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접시만을 자기쪽으로 당길 뿐이었다.  달을 조련한 내가 아니고서야, 이놈의 의식을 식사와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허허. 귀.여.워."


"아오, 노망난 할배 데리고 다니는  같으니까 그딴 말좀  밖으로 꺼내지 마라. 어차피 이 놈은 댁한테 관심도 없구만."

노친네는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때리면 인정 하는 거지? 노망난 할배라는 거랑, 이놈한테 관심도  받는다는 거."

"..어디서 그딴식으로  같이 말하는 법을 배워왔는지, 매 순간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주 주옥 같구나."


"어유, 좋은 스승을 둔 덕이지."

"십새끼가.. 아무튼, 여기까지  이상, 니 보고서에 나온 내용도 확인해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뭐?! 거길 왜 가, 니가? 내가 수행 중인 임무라고. 내 일은 이제 내가 알아서 잘 하니까 신경 꺼. 게다가 여긴 무단으로 온 거라며, 빨리 돌아가서 왕놈 엉덩이나 빨라고."

"이 새끼가 어딜 감히 폐하께!!"


노친네가 자리를 내려치며 일어났다. 너무 세게 내려친 나머지 꼬맹이의 빵이 떨어지려 했는데, 그걸 잡아주려고 몸을 비트는 게 참 모양이 빠진다.


"버려진 고아 새끼를 주워다 키워서 왕궁에 들였더니, 니가 은혜를 아주 좆같이 갚는구나 후레새끼야."


"다 알고 있었으면서 갑자기  지랄이야? 이제야 은퇴가 좀 하고 싶어졌나 보지? 니가 없으면 내가 국왕 말  들어 처먹을까봐 그 나이가  때까지 버티고 있는거 아니냐?"

"..."

주변에 있던 손님들과 밖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같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우락부락한 할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으면 누구라도 쳐다본다.

"일단 앉으라고. 여기 국왕은 다른 놈이거든? 괜한 마찰 빚고 싶지 않으면 내말 들어."


"..그래서, 대답은 뭐냐? 내가 은퇴하면 더 이상 폐하의 말을 따르지 않을 생각이냐?"


노친네는  말의 뜻을 빠르게 이해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간단해. 당신이 그 양반.. 아니, 국왕.. 아무튼, 그 사람한테 은혜를 입었듯이, 나는 당신한테 은혜를 입었어. 당신이 뒤질 때까지  사람에게 은혜를 갚고 싶듯이, 나도 당신이 뒤질 때까지 내가 입은 은혜를 갚을 생각이야. 그러니까 내가 그 인간이랑  일이 생겨도, 그건 당신이 뒤지고 난 뒤의 일일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아  뒤가 걱정되니까 이 지랄 하는  아니냐!"

"존나 조용히 살 거라고! 대체 내가  짓을 할거라 생각 하는 건데?!"


"국왕 시해, 기밀 유출, 전쟁 조장, 외교 관계 파탄."

"아니 시발, 혼자서 그딴걸 어떻게 다 해!"


"아니. 내가 가르친 너라면 충분히  수 있다."


"뭐? 지금 격려하는 거냐? 나더러 그걸 하라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이 미친놈아."

가끔,  스스로도 생각하곤 한다. 그 술집에 오는 놈들은 죄다 미친놈들 뿐인데, 나도 객관적으로 보면 미친놈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날 주워다 키운게 저 미친놈인데 내가 아무런 영향을 안 받았을 리는 없다.

"후.. 그건 다음에 말 하자."

할말 안 할말  씨불여 놓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겨놓고 보류 하잔다. 정말이지 알 수 가 없는 노친네다.


"그래서? 그 술집인가 뭔가는 며칠에 한 번씩 가냐? 아니, 안 봐도 뻔하다. 이거 처먹고는 방에 올라가서 점심까지 자다가, 점심 먹고 바로 술 마시러 가지? 내가 모를  아냐?"


어떻게 알았냐 진짜로.

사실이긴 하지만,  새끼 말대로 순순히 인정하기는 싫다.


등신들에겐 보여주지 않았던 진짜 거짓말이라는 걸 쓸 때가  것 같다. 나는 죽어있던 신경을 깨우고, 모든 동력을 머리를 향해 집중시켰다.

"동작 그마아아안ㅡ!!!"


쾅!!


한창 하루 일과를 다시 써가는 와중에, 머리속에 직접 울리는 큰 소리가, 가게 내에 울려퍼졌다.

"오로넬!! 오로넬 나와!!!"


여관 문을 때려 부실 듯이 열고 들어와 울부짖고 있는, 낯 익은 변태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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