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할배들은 대개, 손자는 좋아하지만 자식은 싫어한다 [3]
-우하하하!!
쨍그랑! 쨍그랑!
등신들이, 시끄럽다. 평소의 몇 배는 더.
어라아..? 그런데 나는 왜 누워있지?
어라..? 그런데 천장이 왜 이렇게 빨간 거지..?
어라..? 뭔가 평소와는 다른 것 같은데.. 뭐지..?
어라.......
~
"아후, 그 노친네때문에 불안해서 잠도 못 자겠네. 어이, 막대기. 오늘은 되도록이면 닥치고 있어라."
옷을 갈아입은지 한 시간도 안 되서, 나는 다시 외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뭔가, 뭔가가 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몸이 왜 그래야 하지?」
그리고, 내 돈을 주고 빌린 내 방에서 조차, 순순히 내 말을 들어 처먹는 새끼는 없었다.
"음.. 그렇네. 니가 왜 그래야 하지? 방에서 못 나가게만 하면 되는데, 맞지?"
「..무슨 이유인지 말은 해 줘야, 이몸이 협조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니냐.」
"협조? 꽤 재밌는 말을 쓰네, 너. 난 한 번도 협조해달라고 말 한적 없는데."
「...」
"빨리 골라. 실컷 지껄일 수 있는 여기에 있을 거냐, 닥치고서라도 꼬맹이와 가게에 올라 갈 거냐."
「..데이린과 함께 하도록 하지.」
"되게 오랫동안 고민하네. 생각해보니까, 너 어차피 위에서 같이 떠들 인간도 없잖아."
「자의와 타의는 엄연히 다르지 않느냐.」
"음, 그럼 어디 마음대로 해 봐. 니 말을 들어줄 인간이 있다면 말이지."
"오로넬, 안 가?"
가게에 간다는 한 마디에, 벌써 준비를 다 마친 꼬맹이가 문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니 막대기나 챙겨라. 니가 달라고 해서 받은 거잖아."
"엔드홀은 혼자서도 잘 해."
"그냥 귀찮다고 하지?"
꼬맹이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하하하하하!!!'
"이거 봐라. 진짜 무슨 일 있다니까? 이 시간에, 그것도 여기에서 쪼개는 소리가 들리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산 중턱. 아직 술집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등신들이 본격적으로 모일 시간도 아니였다.
그나마 그 소리가 비명소리나 우는소리가 아닌 웃음소리라는 것이 위안일 뿐이다.
"오로넬, 안 들어가?"
"음.."
등신들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는 가게의 문 앞에서, 나는 멈춰섰다. 그 노친네가 럼주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그걸 마시는 걸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안쪽에서 착란이라도 일으킨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그 새끼도 분명 제정신은 아닌 상태라는 건데, 평소에도 날 좆같이 보는 노친네가, 여기의 규칙도 모르는 그 노친네가, 날 가만히 놔둘거란 보장이 없다.
「뭘 하고 있는 거냐? 데이린이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닥쳐봐, 시발. 저긴 지금 무법지대라고."
"무법지대가 뭐야?"
지랄도 풍년이구만.
"에라이 시발, 모르겠다. 이 문을 열었을 때 누가 달려들면 바로 던져버려라 꼬맹아. 알겠냐?"
"알았어."
그래, 이 녀석이 있는데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지? 역시 몸이 좋으면 머리가 편해진다.
끼이익.
"아하하하! 뒤진줄 알았는데 용케 살아있었구만, 몬드!"
"자네도 하나도 안 변했구만, 발프. 대체 몇 년 만이지? 이렇게 만나는 건."
"몰라. 니가 대륙 뭐시긴가 만들 때가 마지막 아니었었나?"
시발, 내 인생보다 길잖아. 저걸 친한 거라 할 수 있는 건가?
뒤지기 직전의 노친네 두 놈이 웃어대는 걸 보니, 마치 노인정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저놈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는 틈에, 서둘러 자리에 앉고 싶은 심정이지만, 거기엔 큰 문제가 있었다.
"거기. 내 자리."
저놈들이 앉아있는 자리가 내 자리였기 때문이다.
"어, 데이린이구나. 오늘은 일찍 왔구만, 오로넬."
"뭐, 이런 날도 있지. 그러니까 옆에 그 노친네를 데리고 빨리 옆으로 좀 꺼져줬으면 하는데."
"하하, 알겠네. 자, 발프 빨리 일어나게. 내가 자주 앉는 자리는 저쪽이야. 이 자리는 이 젊은이의 자리라네."
"흐음.. 그래?"
노친네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몬드 할배에게 나와의 관계를 밝히지도, 주먹을 올려 나를 때리지도 않았다.
나부터가 모르는 척을 했으니 이쪽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오늘에 한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너도 비켜. 거긴 오로넬 자리야."
"암, 데이린이 비키라는데 비켜주고 말고! 빨리 자리로 안내하기나 해라 몬드!"
이놈들이 광신도급으로 추종하는 꼬맹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욕을 먹거나 맞았던 기억밖에 없는데, 이 꼬맹이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애새끼들은 하나같이 짜증나는 존재일 뿐인데 말이다.
"하아아암. 뭔데 이렇게 일찍들 오는 거야? 말해두는데 지금은 나 혼자라서 엄청 느리거든? 빨리 달라고 제촉하지마."
주인장은 아직 잠도 덜깬 상태였다. 저 노친네와 같이 올라왔을 터인 제리스가 보이지 않는 건, 저 '엄청 느린' 속도를 어떻게 하기 위해, 뭔갈 하고 있는 거겠지.
"아, 그것보다 몬드. 다른 손님들은 언제 오냐? 여기에 유명인들이 그렇게 많다면서?"
"유명인? 내가 그런 거에 둔한 거 잘 알잖나. 뭐, 지금은 좀 이르긴 하지만, 오늘 안에는 다들 모일 걸세."
그 '지금'이 오전 10시다. 그놈들이 다 모이려면 6시간도 넘게 남았다는 말이지.
"아니 뭐, 용사라든가, 마법사라든가, 이름보다 별명으로 불리는 놈들 있잖아. 그런 놈들 없어?"
몬드 할배가 모른다는데 그냥 술이나 마실 것이지, 집요하게도 후벼파는 노친네였다. 그렇게 내 보고서가 못 믿음직스러웠으면 진작에 와서 직접 조사를 하지 그랬냐.
"아아~ 용사는 시트린을 말하는 거구만. 그렇지? 마법사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용사라고 하니까 마왕 녀석도 여기 단골이라는 게 생각났다네."
"마왕이라고..?"
좆됐다.
내 보고서에서 유일하게 거짓으로 작성된 단 한 줄, '마왕은 무사히 저지되었음.' 의 진위여부가, 밝혀지려 하고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라고 구라를 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이 사안에 걸려있는 모가지가 너무나도 많았을 뿐이다.
우선은 마왕을 저지하고 돌아온 용사, 단신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와, 역대 최강의 칭호를 부여받은 그 등신.
마왕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게 밝혀지면 그 녀석의 모가지가 날아간다. 용사로써의 모든 혜택을 거부하고 서대륙에서 은거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려지면, 군대를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무엇보다 그 다음으로 책임의 소지가 있는 것이 바로, 마왕토벌대를 보낸, 왕놈이다.
그러니까 나의 거짓말 한 마디에는, 나라를 위하는 애국의 마음이 담겨있었다는 걸, 저 노친네도 이해 해주길 바란다. 안 해준다면 뭐, 이걸 다 까발리고 왕놈과 사이좋게 목을 치라고 할 뿐이고.
"그래, 마왕. 멀쩡하게 살아있지. 아니, 멀쩡하진 않을지도 모르겠군. 언제든지 그 목을 칠 수 있는 인간이, 늘 가게에 붙어있거든."
"뭐? 토벌대도 실패한 걸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인간이? 그놈은 또 뭐하는 새끼야?"
노친네는 몬드 할배가 아니라 이쪽을 보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말은 분명 나한테 한 말이겠지.
"아, 그러고 보니 뭐 하는 사람이었지? 이봐, 오로넬! 자네 지크가 뭘 하다 온 건지 아는 거 없나?"
이걸 이렇게 떠넘기다니, 이 할배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담그는 재주가 있다.
"잘.."
모르겠는데. 라고 말 할 셈이었다.
"그래, 뭐 아는 거 없나, 자네?? 응?? 아는 게 없으면 안 돼지?? 일이잖아??"
내 자리까지 순식간에 달려와서 테이블을 찍어대는 이 노친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래서 일말의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는 대답을 해 줬다. 멱살이 붙잡힌 채 몸이 들어올려졌지만, 나는 정말로 아는 바가 없었다. 참으로 애석할 따름이었다.
"아, 자자 발프씨. 진정하세요. 가게에서 싸우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흰놈이 올때까지 이렇게 있을 작정이었는데, 여기서 제리스가 등장했다.
"놔라, 멸치! 이 새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단 말이다!"
"아이 참, 잠시 멈추시고 제 말좀 들어 보세요!"
쥐고 있던 럼주를 내 자리 위에 올려두고, 제리스는 노친네의 팔을 붙잡았다.
"자, 화가 나실때는 여기, 스튜를 먹는 데이린의 옆모습을 보세요."
"..!"
어째서인지 내 몸이 의자 위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까지 왜 화를 내셨는지도 모르겠죠?"
"아.. 아아..!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지.."
"그걸로 됐어요. 이 가게에선, 이 가게에서 만큼은, 속세의 짐을 벗어던지세요. 그저 저 순수한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의 안식을 얻으세요."
"그래.. 니 말이 맞다 멸치. 가게에서 피를 볼 필요는 없어."
이 정도면 종교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일도 좆같은 참이었는데, 여기서 교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 문을 나가면 넌 뒤진다. 명심해 두도록."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나 싶었더니, 노친네가 귓가에 저주를 속삭였다. 어차피 나갈때도 이 꼬맹이를 달고 있을 텐데, 문 밖이나 여기나 다를게 있나 싶다.
"야, 제리스. 넌 여기 앉아라."
노친네를 따라가려는 제리스를 불러세워 꼬맹이의 옆자리에 앉혔다. 이렇게 해두면 저쪽방향에서 오는 노친네를 막을 수 있겠지. 꼬맹이의 옆이니 이놈도 만족할테고 말이다.
"네? 제가요? 여기에 앉아도 된다는 건가요..? 데이린의 곁에..?!"
"그래. 거기 앉게 해 줄테니까, 저 노친네가 또 이쪽으로 오려고 하면 막으라고. 알겠냐?"
"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너무나도 예상했던 반응이다. 뭐, 오늘은 막대기 녀석도 있겠다. 대놓고 집적대는 게 아니라면 꼬맹이도 가만히 있겠지. 어차피 먹는 거 밖에 하질 않는 놈이니.
"응?"
등 뒤의 문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던 햇빛이 사라졌다.
누군가, 저 앞에 서있다.
이 시간에, 해가 뜨고 6시간도 지나지 않은 이 시간에, 술을 마시러 온 놈이 있다.
너무나도 짚히는 놈이 많아서 특정을 할 수가 없다. 왜 문 앞에 서있기만 하고 들어오질 않는 거지? 설마 인간이 아니라 구름에 가려진 것 뿐인가?
하지만 이놈들의 뻘짓을 예측 못 할 내가 아니다.
끼이익.
그렇게 확신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고, 태양을 등 진 하나의 그림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티가 날 가면을 면상에 처바르고, 뻔뻔하게 가게로 들어온, 멍청한 제자년이 말이다.
'이 미친년이 진짜로 뒤지고 싶어서 왔냐? 지금 당장 찔러 줘?'
노친네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입 모양으로 제자의 선택에 유감을 표했다.
'괜찮아요. 이러면 안 들켜요.'
대체 저 밀가루 반죽같은 면상의 어디가 안 들킨다는 건지, 제자년은 가게 한복판에 멈춰선 채 웃고 있을 뿐이었다.
'혼자라면 들키겠지만..'
제자년의 등을 비추고 있던 햇빛도 무언가의 그늘에 의해, 가려졌다.
"와, 저 사람이야? 전혀 늙은 것 같지 않은 몸이네."
"하아암, 졸린다. 오로넬 저 새낀 이 시간에 왜 있는 거야?"
'오늘은, 손님이 좀 많을 거거든요."
무수한 등신들이, 자신의 자리를 향해, 일제히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