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코를 고는 사람들은 늘, 자기는 절대로 안 곤다고 한다 [1] (66/108)



〈 66화 〉코를 고는 사람들은 늘, 자기는 절대로 안 곤다고 한다 [1]

까악, 까악.

검은 털의 조류들이 지키고 있는 숲을 지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딥다크. 마왕군의 본거지.. 듣던 것 보다 음산하군."


 해어진 판초와, 터지기 일보직전의 배낭을 둘러맨 남자는, 산 정상에 솟아있는 거대한 성을 올려다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설의 술집이라..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남자는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반기는, 마경 속으로.


~

"어으으.. 아침인가.."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막으며 몸을 일으켰다.

한 달. 벌써 이곳에 온지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전설의 술집은 여전히 발견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무리 소문일 뿐이라지만, 서대륙의 끝이라고 직접적으로 명시까지 해 두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이곳의 주민들은 그 술집에 대해 생전 처음 듣는다는 반응인 것인가?

"형씨, 오늘 방값 계산하는 날인 건 알고 있지?"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자, 여주인이 가게 손님들로부터 방값을 받아내고 있었다. 정말로 한 달이 지났음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아, 여기요. 액수가 맞는지 확인   주시겠어요?"


"어머, 좋은 아침이에요 9번방 손님. 어떻게, 한 달 동안 지낼 만은 하셨나?"

여주인이 돈을 세며 친근하게 물었다.


"네, 뭐.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9번방은 손님이 자주 바뀌어서 걱정이었거든."

"네? 그 방에 뭔가 문제라도?"

"그게.. 윗방 손님이 좀.."

"아니 진짜, 늦잠 좀 자면  되냐? 무슨 밥을 정시마다 꼬박꼬박 챙겨 처먹으려고 하냐고 이 돼지 같은 새끼야."

여주인의 말을 끊으며 나타난 건, 바로  윗방 손님이었다. 이름을 들은 적은 없지만, 성인들끼리도 잘 쓰지 않는 욕들을, 데리고 다니는 여자아이에게 퍼붓는 모습은 몇 번 정도 본적이 있다.

"안 돼."

아마 주변 사람들이 간섭하지 않는 이유 중엔 남자의 과격한 언동도 있겠지만, 당사자인 아이의 덤덤한 반응도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뭐야? 오늘 돈 쓰는 날이야? 아이 참, 별로 안 들고 내려왔는데.“


내가 돈을 지불하고 있는 모습을  건지, 남자가 이곳을 향해 걸어왔다.


“어쩔 수 없네, 아줌마. 이번 달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라고."


그렇게 남자가 카운터 위에 올린 돈은, 방금  내가 지불한 값 보다 3배는 많은 금액이었다.


"운이 없다니, 오로넬씨가 내는 돈은 항상 많다고."


오로넬. 그게 이 남자의 이름인가보다.


"아침은 죽이네? 대체 내가 얼마를 더 써야, 밥 같은 밥을 볼 수 있는 건데, 아줌마?"

"에이, 한 번만 잡숴봐. 오늘 죽에는 평소와는 다른 고기를 넣었으니까."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아이, 그럼 일단 두개만 줘 봐."

"맛있게들 드세요~"


여주인에게서 조식  접시를 받아, 남자는 테이블로 향했다.  짧은 거리를 움직이는데도, 남자의 입에서는 하품이 연이어 나왔다.

"..손님! 9번방 손님! 어딜 그렇게 보고 계신거래?"


"아, 죄송합니다. 잠시 한눈을 팔았네요. 아까 그 손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 손님 방만 그렇게 비싼  아니죠?"

"에이, 저 손님은 신경 끄시는  좋아. 뭔가 알려지는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거든. 방값을 저렇게 많이 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무언의 계약이지."


여주인은 대답을 거부했다. 본인이 이야기한 무언의 계약을 이행하는 거겠지.

"으음. 되게 별나신 분이네요."


"평범하진 않아.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조심해야 되는 거야. 언제 무슨 일에 말려들지 모르거든."

"네, 충고 감사합니다. 아, 저도 아침 한 그릇 부탁드립니다."

"네, 금방 가져다 드릴게."



후루룩.

음, 나쁘지 않은 맛이다. 바꿨다는 고기가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는 알  없지만, 지금 먹고 있는 이 죽은, 적어도 욕을 먹을 정도는 아니다.

"존나 맛없네."

그런 의미에서 이 남자는 확실히 이상하다.

혹시나 싶어 주변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보아도, 다들 잘만 먹고 있는 중이다.

"넌 이게 맛있냐?"

"응."


"당연히 그렇겠지."


정작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자의 숟가락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내는  싫은 건가? 그렇다면 변명은 '돈을 냈으니 먹는다.' 이거나..


"죽기 싫어서 먹는다, 시발.."


저거겠지.

이런!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주변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남자의 행동거지에, 나도 모르게 경계를 풀어버렸다.

남자가 눈치 채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식사를 하러나온 손님처럼 보이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다니,  이상 첩보원이라는 이름을 대기도 힘들겠군.


뭣보다, 목표인 전설의 술집을 찾는 데에  달이라는 기간을 허비해버린 시점에서, 내 경력은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다.

이 남자를 관찰해버리고 만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찾아야 할 것을, 관찰해야 할 것을 잃어버린 나에게, 너무나도 눈에 띄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것으로라도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으려 했던 걸까.


"어, 저건  또 왔냐?"


"저거라니, 이 새끼야. 난 여기 오면 안 돼?"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남자의 지인이 온 모양이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이, 그 지인도 상당한 기인이겠지.

이미 근처 테이블에 앉아버린  어쩔 수 없으니, 나는 아침 식사가 끝나기 전까지만 이 남자를 조금 더 관찰하기로 했다.


"안 되는 건 아닌데, 보기는 싫네."

"하, 너한테만 특별히 말해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보나마나  깡통새끼 자랑질 하러 온 거겠지. 그거 말고 니가 여기에 올 이유가 없잖아?"

"아니? 절대 아닌데? 배고파서 온 건데? 깡통은 집에 두고 왔는데??"


깡통?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럼 저기 구석탱이에 가서 혼자 처먹던가."

"싫은데? 저긴 햇빛 들어오는데? 여기서 먹을 건데?"

파란 단발의 여자가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잠시 후 아침을 담은 접시를 든 채, 여자는 빠른 속도로 남자의 테이블로  착석했다.


그리고 남자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분주하게 수저를 움직여, 음식을  안으로 옮겼다.

"음, 괜찮은데? 오늘 우리 여관 아침보다 맛있어."


"이게? 똥이라도 나왔냐?"


식사 중에  얘기라니, 얼굴이 절로 찌푸려질 만한 대화였지만, 남자의 테이블을 비롯해서 누구하나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유의 대화에 너무나도 익숙해 저버린 것이리라.

"..잠깐만, 니네 여관에서 아침을 먹었다고? 근데 여기 와서 또 먹는 거냐? 배고파서 왔다며?"

"맛없는 게 나왔으니까 배가 고프지. 남겼으니까."

"아, 아아~ 맞네.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맞지, 맛없는  바로바로 남겨야지. 안 그러냐, 꼬맹아?"


"응."

남자는, 자신의 입으로 맛없다고 말했던 죽을, 계속해서 먹고 있는 중이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나도 아침으로 그런 게 나올 줄은 몰랐지."

여자는 여자대로 뭔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낌새다.


"난 또, 진짜로 깡통 얘길 하러 온  알았지.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나쁜 놈이네, 나쁜 놈! 내가 다시는 그런 의심을 안 하게, 뭐라 욕 좀 해봐. 따끔한 교훈으로 삼게."

자신의 머리에 주먹질을 하며 열변을 토하는 남자였다.


"어, 어.. 그래, 병신.. 새끼야.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좋지 않다고.."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자의 심성이 여린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런 것 치고 기어이 욕을 하고 마는 저 모습은, 충분히 의심이 가는 모습이다.


"에이, 좀 더 세게 말 해. 그래가지고 내 버릇이 고쳐지겠냐? 내가 가만히 욕만 먹고 있는  굉장히 드문 일인 건 알지?"

"아,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이번엔 그냥, 내가 참을게."

"진짜? 다음엔 이럴 기회도 없을 텐데? 진짜로 괜찮겠냐?"

"아이, 시발. 괜찮다니까 계속 지랄이네!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

아무래도 여자 쪽이 남자의 덫에 걸려든 모양이다. 아까의 그 자책하는 모습에선 선함밖에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의 그의 말투에선 악의가 다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상대가 느끼길 바라는 감정을   마디에 담아낼 수 있다니, 역시 평범한 남자는 아니다.

여자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남자의 테이블에선, 가끔씩 여자아이의 '한 그릇 더' 만이 들려올 뿐, 조용히 식사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흘러갔다.

"아, 맞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남자가 그 정적을 깨고 말을 꺼내기 전까진.


"응? 뭔데."


여자는 방금 전의 일은 잊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까 나한테만 말해 주려고 했다는 게 뭐냐? 들을 때부터 존나 궁금했거든."


"푸흡ㅡ!!"

여자의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직 남자의 공격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시오 더러워."


"그래 더러워."


"닥쳐!"

아이까지 가세한 공격을 받으며, 여자는 품속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테이블을 닦았다.


"그래서 뭐냐니까? 너무 궁금하다, 야."

"내가 분명 말해 주려고 했는데  해주겠다고 했지? 니가 기회를 차 버린 거니까, 닥치고 밥이나 먹으라고."

"아, 존나 궁금하네.  밥도 줄 테니까 얘기  봐."


탁!


식기가 테이블 위에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 배부르네. 난 이제 갈 거니까, 가게에서 보자고! 오늘은 무조건 와야 돼! 반드시! 꼭! 알겠지? 시발!"

"그렇게 말 안 해도, 이 새끼 때문에 가야된다고."

"그럼 간다!"

여자는 통보와도 같은 한 마디로 대화를 끝내고,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그저 한 끼 식사를 나누며 이루어진 대화일 뿐인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단지 그 내용만을, 사실만을, 머리가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그들만의 은어일거라 생각되는 '깡통'이라는  때문이겠지. 그걸 제외하고, 기억을 되짚어 내가 이해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남자의 이름은 오로넬이며, 입이 거칠고 연기에 매우 능숙하다.  수준은 연기를 간파해내는 첩보원인 내가 봐도 속을 정도이다.

그리고 여자의 이름은 시오. '깡통'이라는 것을 소유하고 있는  하며, 남자한테 지지 않는 거친 입을 가지고 있다.

둘의 사이는 나쁘지는 않아 보이고, 무언가의 가게에서 자주 만남을 갖는 모양이다. 그 가게가 전설의 술집이면 좋으련만.


응? 가만, 시오라고..? 마가리스의 대마법사, 시오?


그러고 보니 근래의 마가리스 발명품들은 질이 떨어졌다고 하던데, 설마 마법사가 이곳에 있어서인가?

그래. 그녀 정도의 명성이면, 전설의 술집에 초대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저 남자, 오로넬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더 관찰할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설령 그 '가게'라는 곳이 전설의 술집이 아니더라도, 남자가 그곳에서 만날 시오가 있다. 그때부턴 그녀를 관찰하면 되겠지.

 달의 헛고생 끝에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역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간 빛을 보는 법이다.


"오늘따라 많이도 처먹네. 그만 좀 먹어라 이제."

"이것 까지만."


테이블 한 켠에 어마어마한 양의 빈 그릇을 쌓아올리고도 멈추지 않던 아이의 식사가 드디어 멈췄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남자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 여주인에게 추가금액을 지불했다.


"에효, 낮잠은 자지도 못 하겠네, 이 새끼야."


"그럼 가게 가자. 가게."

"편지부터 좀 부치고. 막대기는 안 가져갈 거냐?"


"응."


"그럼 그냥 바로 간다. 종이쪼가리 가져올 테니까 여기 짱박혀 있어라."

"알았어."

남자는 곧바로 가게에 향할 예정인가보다. 거기다 지금 자리까지 비워준다니, 뒤를 밟을 준비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곧장 바깥으로 향했다.


드디어 첩보원으로써,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다. 임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나에게는, 아직 그렇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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