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코를 고는 사람들은 늘, 자기는 절대로 안 곤다고 한다 [2]
"하, 그래. 이게 날씨지. 병신 같은 여름. 1년 뒤에 보자."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하곤, 남자는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편지를 부친다고 했으니 우체국으로 가는 거겠지.
"응?"
남자가 이쪽을 돌아봤다. 이번엔 경계를 확실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키는 일은 없었지만, 서로의 모습조차 겨우 보일 정도의 거리를 간파해낸 남자에게,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우체국의 위치는 알고 있으니, 먼저 그쪽으로 가 있을까? 그게 아니고서야 거리를 더 벌리는 수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망원경은 방에 두고 온 형편이다.
"..어이, 거기."
이번만큼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먼저 우체국으로 가도록 하자.
"거기 수상하게 생기신 분? 잠시 이쪽 좀 보실까요?"
뒤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상하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돌아볼 수 없다. 돌아보는 건 그걸 인정한다는 뜻이니까.
자연스럽게, 태연하게 이곳을 벗어나자. 5년 동안 살아남은 첩보원을 얕보지 말란 말이다.
텁.
"너 부르는 거 알잖아. 어딜 가려고?"
또 다른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렇게 강제로 돌려진 내 눈앞에, 빨간 머리의 여자와 금색 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네? 당신들은 누구시죠?"
우선은 이렇게 잡아떼는 수밖에.
"방금까지 데이린.. 아니, 여자아이와 성인 남자를 미행하고 있으셨죠?"
"네? 전 그냥 우체국에 가고 있던 것뿐인데요? 그리고 여자아이와 성인 남자라면 저기랑, 저기랑, 저기도 있는데 어떤 분을 말씀하시는 거죠?"
평소라면 흔히 보이는 조합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유독 딸과 함께 나온 아버지들이 많이 보였다. 오늘의 내 행운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웃기지 마. 우리가 모를 것 같아? 우린 몇 달 동안 저 산에서 그 사람을 관찰하고 있다고."
"네? 그게 무슨..?"
무슨 말이지? 몇 달 동안 관찰했다고? 그 남자를? 이 사람들도 설마, 나와 같은..
"데이린을 당신 같은 악당들의 손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섭니다!"
변태잖아.
"이미 다 들켰으니까 잠자코 따라와. 안 그럼 다친다?"
"아, 잠깐, 저는 진짜 그런 게 아니라, 잠깐!"
내 행운이, 어째서..! 여기서 끝이란 건가?
남자의 뒷모습이, 전설의 술집을 향한 유일한 단서가, 점점 멀어져 갔다.
~
-으아아악!
"존나 시끄럽구만."
여관에서부터 날 감시하던 놈이 뒤에 따라붙어 있던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검거하는 게 마찬가지로 날 훔쳐보고 있는 놈들일 줄은 몰랐다.
나한테는 저놈이나 니 새끼들이나 다를 바 없거든, 미친놈들아.
그나저나 그 남자, 하는 짓이 암만 봐도 첩보원이었지.
감시대상이랑 눈이 마주칠 정도의 폐급을 보내다니, 대체 어떤 등신이 보낸 등신이지?
이딴 한적하다 못해 허허벌판인 마을에 사람을 보내는 이유는, 그나마 전설의 술집뿐일 텐데, 그 새낀 암만 봐도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내 신원이 밖으로 새어 나갔을 리는 결코 없고, 설마 그 술집을 찾지도 못한 건가? 저 병신 같은 뒷산을 오르기만 하면 발견할 수 있는 판잣집을?
아니, 뭐. 일반인이라면 찾기 어렵겠지. 산속이라고는 해도, 존나 깊숙한 곳에 있으니까.
그런데 첩보원이라는 놈이 그걸 못 찾으면 안 되지. 조금만 꼼꼼하게 뒤져봐도 다 보이는데.
"..오로넬. 오로넬."
"어?!"
"우체국."
"아이 씨, 부르려면 툭툭 치기만 하라고. 잡아당겨서 또 자빠질 뻔했잖아, 이놈아."
"어제는 당기라고 했어."
"그건 어제였으니까 어제만 당겨야지, 오늘은 치기만 하라고, 치기만. 알지도 못하면서 이 멍청한 꼬맹이가."
"알았어."
아무튼, 우체국엔 도착했는데, 편지를 보낸 다음엔 어떡하지? 그냥 예정대로 가게에 갈까?
저 새끼들이 하는 일이다. 처분하는 것처럼 끌고 갔지만, 분명 그놈을 자기들의 감시 명소에 데려갔을 거다.
어차피 그놈들과 있으면, 술집의 위치는 언제든 알 수 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쪽에서 친절하게 알려주도록 하지.
가게에 불러들이는 편이, 이쪽에서도 놈의 정보를 빼먹기 쉽고 말이다.
"간다."
"응."
잘 보고 있어라. 이 폐급 첩보원새끼.
놈들의 매복지를 바라보며,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여, 여기가 전설의 술집..!"
"어 맞아. 근데 진짜 별거 없다니까? 그냥 맛없는 술이 공짜인 가게일 뿐이야."
애쉬가 말했다.
처음엔 이 사람들이 날 어떻게 할 줄만 알고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눈을 뜬 곳도 인적이 드문 산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건네준 망원경에 맺히는 풍경을 바라보자, 긴장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곳에 전설의 술집을 가리키는 나침반, 오로넬이라는 남자가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근데 제리스, 넌 괜찮아?"
"네? 뭐가요?"
"지금 가면 일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뭐, 상관없어요. 술 마시는 것 보다 데이린을 바라보는 게 더 좋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이 사람들도 술집에 대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냥 알고 있는 걸 넘어, 손님과 점원이라는 걸 알았을 땐, 솔직히 속은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애쉬와 제리스, 그리고 오로넬까지. 모두 처음 듣는 이름인데, 전설의 술집이라도 무조건 유명 인사들만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럼 됐어. 어이 너. 빨리 여기 와서 문이나 열어. 첫 입장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뺏을 순 없지."
"아, 네."
여기서부턴 눈에 띄지 않게 둘 사이에 섞여 들어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안내해준 것에 대한 감사라고 생각하자. 문을 열고 들어간 것 정도로 내 신분이 탄로 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텁.
이제 이걸 열면..
쾅!
"이야아앗ㅡ!!!"
분명 문을 잡았을 뿐인데, 몸이 이상하리만큼 가벼워지더니 눈앞에 광활한 하늘이 펼쳐졌다.
쿵!!
"아악!!"
그리고 그 상태로 땅과 부딪혔다.
"어, 괜찮아!? 사람이 있었구나. 미안해!"
산들바람과 함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순백색의 검과 눈부신 금발의 여성. 그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무언가에 압도되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시트린 안녕."
"시트린씨 안녕하세요."
"어, 둘 다 안녕! 이 사람은 두 사람이 데려온 거야?"
시트린! 그래, 이 여자가.. 역대 최강의 용사..!
"응, 맞아. 뭔가 여길 엄청 오고 싶어 하길래 데려왔어."
"그렇구나. 많이 아프지? 자, 손잡아."
동대륙 최강의 기사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열어젖힌 문에 내가 밀려났다는 이유로.
첩보원으로써, 관찰대상에게 감정을 보이는 일 따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전설이라 불리는 자와의 접촉은, 이 기묘한 고양감은, 결코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벌레 들어오니까 문 닫으라고, 이 새끼야!"
깡!
나무로 된 텅 빈 술잔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걸 머리에 맞은 시트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 미안 미안, 오로넬. 그래도 사과는 해야지."
그리고 그 남자가 나타났다.
이 전설의 술집에서, 이 전설의 인물에게 폭언을 휘두르는 이 남자는, 대체 정체가 뭘까?
"사과고 자시고, 애초에 벌레들이 좆같다니까, 갑자기 가게 밖으로는 왜 뛰어나가는 건데?"
"맞다, 그랬었지. 지금 보여줄게. 잘 봐."
나를 순식간에 일으키고, 시트린은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스르릉
순백색의 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 가지 의문은, 이 행위와 벌레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흐아아앗!!!"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는 뽑아든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것을 말없이 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쾅ㅡ!!!
"으아악!!"
울리는 땅이 다리를 흔들고, 거센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감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콜록, 콜록! 뭐, 뭐야?! 허억..!"
눈앞의 나무들이 사라졌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다. 교묘하게도 술집을 가리고 있던 나무들이, 깨끗하게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벌레들이 붙어있는 나무를 부순다. 이게 내가 생각한 해결책이다."
탁!
멋들어지게 검을 집어넣으며, 그녀가 말했다. 애쉬와 제리스는 아직도 먼지를 뱉어내는 중이었고, 남자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어때 오로넬? 이번엔 확실하지? 나도 할 땐 한다고. 벌레를 싫어하기도 하고 말이야."
"콜록, 그럼 마왕새끼 조지러 갈 때도 성부터 부수지, 뭐 하러 그 안에 들어갔냐?"
"그야, 그 녀석은 그 정도에 안 죽을 거라 생각해서지. 그렇게 되면 그 녀석이랑 그 녀석 부하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잖아."
"그래. 그것 참 맞는 말이네."
"또 트집 잡으려고 했지? 안됐지만 오늘의 나는 진지하다고."
"그럼 거기 그놈한테 사과나 마저 하라고. 열심히."
남자가 문을 향해 돌아섰다.
"아, 근데 너."
"응?"
"내가 한 번씩 그 새끼한테 '벌레'라고 부르는 거 못 들었냐?"
탁.
문이 닫혔다. 아직 먼지는 걷히지 않았다. 시트린은 남자의 말을 곱씹고 있는 듯했다.
"음.. 오로넬이 나디아한테 벌레라고 했던 적이 있었나? 제리스, 기억나?"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없는데요."
"나도 들은 적 없는데."
"이상하네. 오로넬은 똑똑한 줄 알았는데."
그 남자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나는 알 방도가 없었다.
부웅. 부웅.
하지만 그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먼지가 안 걷히네요. 바람은 부는 것 같은데."
"응? 가만히 보니까 이거, 먼지가 아니라.."
부웅!!!
"..벌레잖아."
베어 넘긴 나무들과 맞먹는 양의 벌레들이, 시야를 흐리며 먼지처럼 주변을 떠돌던 미물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들 무기 챙겨!"
스릉!
"아니! 당신이랑 나는 있는데, 제리스랑 저놈은 어떡하라고!"
"내가 지킨다!"
"이런 씨.."
쾅!!! 쾅!!
"으아아악!!!"
수십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고 나서야, 벌레들이 가리고 있던 하늘이 열렸다.
휘이잉ㅡ
두 명의 인간과, 수십 개의 왕국의 격전이 일어난 자리에는, 바닥을 매울 정도의 날개가 땅에 떨어진 채,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끼이익.
"허억..허억.. 싸부, 이 여자 진짜 미친 여자에요."
"어, 왔냐? 이제 벌레는 한 마리도 안 남았겠네. 역시 니가 진짜 용사다. 어떻게 그딴 미친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냐?"
"훗, 이 정도는 돼야 용사가 될 수 있는 거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확실히 그래 보인다, 미친놈아. 그래서 저놈은 누군데?"
남자가 날 가리켰다. 여관에서 얼굴을 들킨 줄 알았는데, 역시 나는 얼굴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얼굴은, 그야말로 첩보원을 하기 위해 태어난 얼굴이라고, 스스로도 종종 생각하곤 한다.
"아, 저는.."
"이름 말고. 뭐 하다 온 놈인지나 말해. 보다시피 여긴 미친놈들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너도 미친놈일 거고."
그럼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니가 뭐라고 불리는 미친놈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니가 뭘 하던 미친놈인지, 난 그것만 알면 돼."
이름과 직업. 둘러댈 가짜신분 따위, 이미 수십 개는 준비 되어있다. 본래는 이름과 직업을 함께 묶어서 가짜신분으로 사용하지만, 직업만을 묻는 거라면 나는 그야말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저는.."
이곳의 특성을 고려해, 이 사람들과는 겹치지 않으면서, 너무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을 직업을 선출해냈다.
"첩보원입니다."
나는, 자신의 직업을 당당히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