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코를 고는 사람들은 늘, 자기는 절대로 안 곤다고 한다 [3]
"뭐? 첩보원?"
"네.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오늘 아침부터 오로넬씨, 당신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눈앞의 남자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목적인 전설의 술집도 찾았고, 내 직업도 밝혔다.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다. 이건, 일종의 승리 선언이었다.
"나? 난 왜?"
"바로 여기. 전설의 술집에 오기 위해서요."
"아, 그래서 전설의 술집, 전설의 술집 거렸구나."
애쉬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찾으려고 날 미행했다고? 그냥 산만 오르면 나오는 곳을? 너 병신이냐?"
"어음.."
대답할 수 없었다. 남자의 말이 백번은 더 옳았기 때문이다. 설마 이 넓은 산중에서 유일하게 확인하지 않았던 곳에 목적지가 있었을 줄이야, 스스로도 한 달 동안 뭘 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첩보원님이 여기는 왜 오셨는데? 친구라도 있냐?"
"아니요. 여기가 왜 전설의 술집이라 불리는지, 대체 누가 있기에 그렇게 불리는 건지, 그걸 조사하러 왔습니다."
"미친놈들밖에 없다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불리지. 이거, 말이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게, 보나마나 구라구만. 말하기 싫으면 때려치워. 나한테 말 걸 생각은 더더욱 하지 말고."
"ㄴ, 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남자는 아주 강경하게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
정면으로 몸을 돌린 그는, 술잔을 집어 들고는 조용히 술집에 녹아들었다. 옆자리에는 아침에도 봤던 어린아이가 함께였는데, 술집에 애를 달고 오다니, 아까 남자가 말한 미친놈들의 범주에 자신도 포함되는 게 틀림이 없다.
"어, 그럼 나도 이만 술 마시러 간다. 열심히 해~"
"저도 일하러 가 봐야겠네요. 수고하세요."
애쉬와 제리스도 잇따라 자리를 떠났다. 멍하니 서있는 시트린도, 곧 떠날 기색이다.
-어이, 시트린! 빨리 와! 술에 김빠지겠어!
"아, 맞다! 나도 술 마시던 중이었지. 미안하지만 나도 가볼게. 안녕~!"
그리고 언제나처럼, 첩보원은 홀로남아 임무를 수행한다.
나는 그분의 눈과 귀가 되기 위해 존재할 뿐, 고독을 느끼고 있을 틈은 없다.
-하하하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조금 난처한 상황이다. 가게에 있는 손님들 모두, 대화할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인인 내가 끼기엔, 그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여기선 철판을 깔고, 아무 곳에나 끼어드는 수밖에 없나.
누가 봐도 비협조적일 것 같은 오로넬은 최후의 최후다. 우선은 가장 사람이 좋아보이던 시트린이 있는 쪽으로 가보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가게에 온 신입입니다! 여러분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합석해도 괜찮을까요?"
오랜만에 연기하는 '밝은 얼굴'이다. 이렇게 밝은 인간상을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웃는 얼굴은 끽 해야 침을 못 뱉게 하는 정도지만, 밝은 얼굴은 거절이라는 선택지를 없애버린다.
"이봐. 형씨."
맞은편의 험상궂은 남자의 얼굴이 더욱 험상궂게 변했다. 남자뿐만이 아니다. 그의 옆자리도, 그 옆자리도, 심지어 시트린마저도, 마치 내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ㄴ, 네? 제가 무슨 실수라도.."
"실수? 아니, 이건 실수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야.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단추가 잘 못 잠겨있었나? 바지에 오줌이 묻어 있었나? 대체 뭐지?
"가게에 들어온 지 20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손이 비어 있군. 술을 마시는 가게에 와서, 술이 아니라 다른 걸 찾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분명 방금 전 오로넬에게 내 목적을 전부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이 사람들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 아는가 보다.
그게 아니고서야 내가 20분 전에 가게에 들어 온 건 기억하고,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일은 기억 못 하는 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일단은 저 질문으로 보건데, 이 사람들은 술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괜한 이야기는 흥을 깨트릴 뿐이겠지.
그렇다면 여기선..
"아! 저는 처음 방문한 술집에서 마시는 첫 잔은, 단골분들이 추천해 주시는 술로 마시거든요. 그래서 아직까지 참고 있었던 거에요. 폐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자, 이번엔 어떠냐?
"아유,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잘 못 했어, 형씨."
"아니야, 우리가 더.."
됐다. 험악했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
그리고 입 꼬리들이 씰룩 거리는 걸 보니, 자신들의 추천을 받은 술을 마시겠다고 해서, 기분도 좋아진 모양이다. 손님에 불과한 그들이, 주인인 것 마냥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단골이기 때문이리라.
"저, 그럼. 제가 마실 술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맡겨만 두라고, 형씨! 어ㅡ이! 제리스!"
"네ㅡ!"
크게 대답하는 제리스였지만, 딱히 빨리 오기 위해 다리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 형씨한테 맥주 한 잔. 제일 시원한 걸로. 알겠지?"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뭐야, 추천한다는 게 맥주인가. 맥주야 질리도록 마셔봤지. 어떤 술이 나올지 내심 기대는 했지만, 이건 이거대로 좋다.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술이니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말해줬지.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라고 말이야."
"하하하! 바보 같아."
-하하하하.
손님들이 대화를 이어갔다. 잠입은 성공한 모양이다. 이제 이 사람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 틈을 찾자. 사람이 많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발언권은, 결국엔 모두에게 한 번씩은 찾아오니까.
"맥주 나왔습니다~"
술이 왔다. 아까의 당부 때문인지, 잔을 잡은 손에서부터 시원함이 전해져왔다. 손님들은 대화를 멈추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 형씨. 이게 가게에서 가장 맛있는 술이야. 시원하게 들이켜 보라고."
"네, 잘 마시겠습니다."
음! 확실히 시원하다. 목에서부터 배까지, 술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윽..!"
그런데, 맛이.. 맛이..! 이게 맥주..? 끝 맛은 쓸데없이 쓰고, 배는 어찌나도 부풀어 오르는지, 물을 마셔도 한 통은 마신 기분이다.
설마 나한테 장난을 치고 있는 건가? 친해지자는 뜻으로? 그, 그럴 수도 있다.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야.
입에 대고 있는 잔을 살짝 내려, 주변의 얼굴들을 훑어보았다.
틀렸어.. 이 인간들 암만 봐도 진심이다. 자식의 식사를 지켜보고 있는 부모의 눈이야..
"응? 형씨, 왜 이렇게 오래 마셔? 혹시 입에 맞지 않나?"
'네' 라고 대답하면 죽일 것 같은 표정이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다 마셨어요. 여기. 역시 추천해 주신대로 맛있네요."
"그래? 이게 입에 맞다고?"
"네! 고향에서 먹던 맥주보다 훨씬 맛있네요."
미안하다, 내 고향아.
고향을 판 덕분인지, 손님들의 표정도 한껏 밝아졌다. 아니, 그냥 밝아진 정도가 아니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를 하는 수준이었다.
"마스터! 드디어 찾았어! 임자를 찾았다고! 이 술이 맛있대!
그리고 거기서 내 대답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뭐?! 진짜? 누구야! 드디어 내 작품을 알아봐주는 인간을 만나는구나!"
들뜬 목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왔고, 곧 그곳에서 중년의 남자가 달려 나와 내 몸을 붙잡고 흔들었다.
"아, 역시! 여기 있는 맛도 모르는 놈들이랑은 얼굴부터가 다르군! 내 언젠가는 너 같은 남자가 나타날 줄 알았지. 저 맥주가 취향이라면 다른 술들도 입에 맞을 텐데, 한 번 먹어 볼래?"
이 끔찍한 술에 비견되는 술이라니, 제발 머리가 흔들려서 잘 못 들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네, 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들은 것이든, '네' 이외의 선택지가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외지인이고, 이곳에 섞여들어야 했으니까.
"좋아! 제리스, 드디어 그걸 꺼낼 때가 왔구나."
"'그거' 말씀이시군요. 바로 가져올까요?"
"그래. 혹시 썩은 게 있다면 새로 담고."
'썩은 거' 라니, 난 대체 뭘 먹게 되는 거지?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멀어져가는 제리스의 발소리가 들려올수록, 내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응? 표정이 왜 그래? 아, 썩었다고 해서 그렇구만? 걱정할 필요 없어. 귀빈용으로 따로 보관해둔 술들을 가져올 뿐이니까.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어서 썩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전혀 위안이 안 되는데.
"점장님ㅡ! 이거 맞죠ㅡ?"
저장고에서 유리상자를 가지고 올라온 제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그거다, 그거. 빨리 가져와."
"네ㅡ!"
유리상자는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화려한 장식들이 수놓인 상자 속에는, 그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유리잔들에, 형형색색의 술들이 담겨진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기분 같아서는 내가 직접 설명해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날 찾는 녀석들이 많아서 말이야. 뭐, 마시면서 차차 맞춰보라고."
남자가 상자를 들어내자, 은빛 쟁반 위에 올려진 잔들만이 자리에 남았다.
"그럼 재밌게 놀다 가라고. 또 볼 수 있으면 좋겠군."
남자는 그렇게 사라졌다.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독약들을 나에게 떠넘기고 말이다.
"와, 향은 엄청 좋은 걸?"
시트린이 말했다. 확실히, 향은 나쁘지 않다. 웬만한 술은 향이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건데, 이미 맥주를 경험해 본 나로서는 영 탐탁치가 않다.
"괜찮다면 여러분들과 함께 마시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그래서 나는, 이 고통을 나누기로 했다. 기쁨은 나눌수록 줄어들고, 고통은 나눌수록 더 커지지만, 마음만은 편해질 수 있다. 모두가 함께 고통 받는다는 동질감 말이다.
"무슨 소릴. 이 영광은 온전히 형씨의 것이야. 우리가 나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지. 마음만 감사히 받도록 하겠네."
"맞아. 이건 너만을 위한 술이야. 나도 참고 있다고. 궁금하니까, 빨리 마시고 맛이나 좀 알려줘."
이것은 선의인가, 악의인가? 나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어졌다.
환심을 얻는데도 목숨을 걸어야 하다니, 역시 전설의 술집이라 불릴 만하다. 그분께서도 그걸 염두 해 두고 날 파견하신 거겠지.
그 은혜에, 믿음에, 답해야만 한다. 설령, 내일 하루를 화장실에서 보낸다고 해도!
벌컥! 벌컥!
"그르를를ㄺㄱ, 이까짓 술쯤..!"
"뭐라고 하는 진 모르겠는데, 열심히 마시고 있는 건 알겠어!"
탁!
"오오오, 한 잔 째!"
앞으로 다섯 잔!!
텁!
"잠시 화장실 좀..!"
역시 무리였다. 이미 뱃속으로 들어간 술들이,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밖으로 꺼내달라고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어도, 결국 몸과 정신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 포기한 게 아니다. 배가 요동쳐서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일 뿐, 일이 끝나면 다시 저것들을 내 뱃속으로 집어넣으리라.
윽, 토할 것 같아.. 빨리..!
한 발자국이면 닿는 문이, 지평선보다도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으아아앗ㅡ!'
멀리서 들려오는 기합소리.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났던 일과 동일한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나는, 출렁이는 몸을 이끌고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괴성을 지르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손님들의 관심도 이쪽을 향했다.
"나는 된다!!!"
쾅!!
문을 박차고, 태양을 등에 업은 채 나타난 것은, 새까만 피부와 붉게 불타는 눈.
그리고 네 개의 다리를 가진..
히히히이이잉ㅡ!!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