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코를 고는 사람들은 늘, 자기는 절대로 안 곤다고 한다 [4] (69/108)



〈 69화 〉코를 고는 사람들은 늘, 자기는 절대로 안 곤다고 한다 [4]

그것은, 인간이라기엔 너무나도 컸다.


머리는 보통 사람의 세 배는 컸으며, 몸을 지탱하고 있는 다리에는, 살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로 근육이 가득했다.

히히이이이잉ㅡ!!!

무엇보다 인간의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ㅇ, 왜 말이 혼자 여기에..?"


목까지 올라왔던 술들은,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상황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지 오래다.


"엉? 야, 저거. 조가 데리고 다니는  아니냐?"

가장 먼저 입을 연  오로넬이었다. 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이 정도면  술집의 명성은 거의 시트린 한 명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 맞아! 분명 검은 친구가.. 로드? 아니, 킬이었나?"

시트린이 대답했다.


"아니, 축생새끼들 이름은 안 궁금하고. 주인새끼는 어디 갔냐?"


"저기, 혹시 저분인가요?"


말의 덩치에 가려져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 사람의 발로 보이는 무언가가 문 뒤편에 보이는 것 같았다. 오로넬에게 점수를 따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뭐야, 이 새끼? 면상이 왜 이렇게 빨개?"

그곳에는 새빨간 얼굴을 한 남자가, 뒤로 나자빠진  굳어 있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

"술이라도 마신 걸까?"

오로넬을 따라 나온 시트린이 말했다.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다른 손님들도 우르르 따라 나오는 게,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

주변을 둘러보던 오로넬은 어느샌가 가게의 입구와 남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미친놈, 여길 통과하겠다고 뛰어 온 거냐?"


오로넬이 손을 뻗어 문의 높이를 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눈으로만 봐도, 말을 탄 인간이 통과할 수 있는 높이가 아님이,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으악! 뭐.. 뭐지? 성공한 건가?"


남자가 깨어났다. 주변 사람들은 놀라는 기색도, 안도하는 기색도 없다. 그저 그를 계속 바라보기만 할 뿐.


"아니, 미친놈아. 니 주변을 둘러봐라."

"아, 뭐야? 킬만 성공한 거야? 아~ 아깝네. 조금만  숙일 걸."


아니, 숙인다고 될 높이가 아닌데? 이게 정말 이 술집의 수준인가?  인간들이 세계정세에 영향을   있다고?


"너  마실 때는 말  탄다면서. 이건 왜 끌고 왔냐? 오늘은 뭐, 멍청하게 앉아만 있으려고?"


"아니, 라보 녀석이 자기가 킬보다 빠르다고 큰 소리를 치더라고. 그래서 실력의 차이란 걸 보여줬지. 저기 봐. 이제야 오네."

라보? 라보는 또 누구지?


"에헥.. 헥.. 조지씨..! 같이 가요..!"


멀리서 늑대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저기 있는 말과는 다르게 사람의 언어를 쓰고 있으니, 분명 가죽이라도 뒤집어 쓴 거겠지.

그럼 저 인간은, 저 꼴로 말을 이길  있다고 시비를  셈이다.


세상에 맙소사. 미친놈들밖에 없다던 오로넬의 말이 다시 한 번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하하, 이제 알겠지? 로드와 킬은 평범한 말이 아니라니까. 니가 아무리 잘난 늑대라고 해도, 이 녀석들은 이미 4족보행의 정점에 올랐다 이 말이야."

저걸 늑대라고  주는 건가. 착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이제 나도 이해하는  그만뒀다.


"정말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구요. 헥, 헥."

네발로 산을 올라와서 지칠 대로 지쳤을 텐데, 라보는 땅바닥에 드러눕지도, 일어서는 일도 없이 4족 보행 상태를 유지했다. 연기도 저 정도면 병이지. 딱히 칭찬할 기분은 들지 않는다.

"자, 라보. 여기 물."

"아, 감사합니다, 시트린씨. 역시 시트린씨 뿐이에요."

"뭘, 이거 가지고."

첩. 첩. 첩. 첩.

그리고 나는, 터무니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가죽일 터인 늑대의 머리 부분에서 나온 혀가, 물을 핥아먹는 것이었다.


이건 더 이상 연기와 병의 영역이 아니다. 진짜 늑대거나, 늑대들에게 길러졌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다.

전자의 경우, 인간의 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각이다. 그렇다고 후자의 경우도 생각하기 어려운 게, 늑대에게 길러졌다는 아이들은, 대부분 인간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육신을 꺾을 정도의 의지만 있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늑대가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이 정녕 가능은 한 것인가?

이 자는 대체..

"맞다, 조지.  처음 보지? 짠, 신입이야."


시트린이 모든 관심을 나에게로 돌렸다. 아무리 평범한 얼굴이라곤 하지만, 이 정도로 주목받는다면 분명 누군가의 머릿속엔 남을 것이다. 뒤처리가 꽤 귀찮아지겠군.

"응? 뭐야, 벌써 새로운 미친놈이야?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데? 제일 마지막 미친놈이 우리 사장이었지 아마?"

"나 여기 있다."

애쉬가 대답했다. 저 사람이 사장이고 저 사람이 직원이라니, 무슨 일을 같이 하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반갑습니다. 전 라보라고 해요."

앞에서는 라보가 인사를 건네 왔다. 그래, 이 기회에 저 가죽에 대해 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 네.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멋진 가죽이네요, 라보씨."


"네? 가죽이요? 그런 칭찬은 처음 받아보네요. 다들 털을 칭찬하곤 하시는데."


"그러고 보니 털도 진짜 같고 부드러워 보이네요."

"진짜 같다뇨? 어떤게요?"

"그러니까 이 털이, 진짜 늑대 털 같다구요."


"당연하죠. 제 털인데."

"응???"


"왜요?"


뭐, 뭐지? 내가 말을 잘  들었나?

"그러니까, 이 털이, 본인 털이라구요?"

"네."


"이 늑대 털이?"


"네."

"어째서죠?"


"??? 그야, 제가 늑대니까요."

"하하하하! 오로넬씨 들으셨어요? 저분 되게 재밌으시네요, 하하하!"

나는 근처에 있는 오로넬에게로 가,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세상 만물을 향해 욕을 퍼붓는 그가, 내가 처한  어이없는 상황을 부숴주길 바라며.

"이 새낀 갑자기  친한 척이야? 저놈 늑대 맞아, 등신아."


그리고 부서진 건 나였다.

오로넬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앞에 있는 라보는 확인해 보라는 듯 자신의 입을 벌리고 그 속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인간의 언어를 하는 눈앞의 생명체가, 인간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 진실은, 정신을 놓고 있던 본능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으아악!! 늑대, 늑대가 말을 한다!!"

"어어, 괜찮아요, 괜찮아요. 해치지 않아요, 해치지 않아."

"애애애애, 애초에 늑대가 어떻게 사람 말을 하는 거야!?"

"어.. 거기엔 여러 사정이 있는데."

"ㅁㅁㄹ미ㅏ법ㄷ기ㅓㄱㅂ!!"


"아오, 시끄럽네. 누구냐, 이 새끼 데려온 거? 용사 너지? 니가 책임지고 데리고 들어가, 빨리."

"나 아니야. 애쉬가 데려왔어!"


"이 새낀 또 어디 갔어? 또 도망갔냐? 내가 진짜 몰라서 가만히 냅두는 건 줄 아나본데, 잡으러 가기 전에 니가 알아서 치워라."


"..네."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몸이 가벼워지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말을 하는 늑대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 나로서는 일이 어떻게 흘러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들 모여 있었군."


몸이 다시 무거워졌다. 지평선 끝에 나타난 저 여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거 봐.  저럴 줄 알았어. 깡통 자랑 맞잖아,  새끼야. 난 들어간다."

"들어가면 나디아."

오로넬은 문을 붙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디아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욕적인 말이란 건 확실했다.


그나저나 저 여자, 어딘가 낯이 익은데.


"뭐야, 시오? 오늘은 웬 일로 깡통을 데려왔네?"


시오..? 맞아.. 마가리스의 대마법사. 전설의 술집에 걸맞는 인물..!

"야 이..! 쓸모없는 용사 새끼야, 관심 주지 말라고."

"훗, 역시 시트린은 눈썰미가 좋아. 오늘은  기능을 넣어 왔지."


"별로 느낌이 좋지 않은데."

"너라도 그렇게 생각해줘서 다행이다, 조."

오로넬과 조지가 차분히 말을 주고받는 동안, 시오의 옆에 있던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 사람의 이름이 깡통인가?

"자, 깡통. 니 노래를 들려줘!"

"아ㅡㅡㅡ악!!!"

귀를 찢고 들어와, 머리를 잡아 흔드는 것 같은 괴성을 마지막으로, 나의 세계엔 어둠이 찾아왔다.

털썩.


~

"그게 노래냐? 폭탄이지."


귀를 붙잡고 쓰러져있는 등신들을 둘러보며, 마법사에게 물었다. 이 녀석은 귀에 시멘트라도 바른 건지, 바로 옆에서 그딴 소음이 들리는데도 멀쩡하게 서 있다.

"아이 참, 아까는 잘 됐었는데. 뭐가 문제지?"

"아까만 잘 된 거라고 생각하지 못 한  문제지. 한 백 번 정도 실패만 하다가, 한 번 성공하자마자 바로 달려 온 거 아니냐?  봐도 뻔하다."

"음.. 여기가 문제인가?"


마법사는 무시로 답했다. 어차피 가게 안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저 얘기만 하고 있을 텐데, 그때마다  번이고 말해주마.


그것보다 지금은..

"싸부, 이 녀석 어떡할 거에요?"

제자년에게 끌려가던 폐급 첩보원 녀석은, 자신의 임무도 잊은 채 팔자 좋게 기절해 있었다. 이딴 일에도 일일이 기절하다니, 요즘은 백지 보고서가 유행인가 보다.


"그렇게 말 하니까 내가 존나 나쁜 새끼 같다? 당연히 아무 짓도 안 하지. 평소처럼 등신 한 마리가 늘어난  뿐이구만."


"품속에 이런 게 있던데요?"

그 손에는, 낯익은 종이쪼가리가 쥐어져 있었다. 금을 있는 대로 쳐 발라놓고, 남들의 눈에 띄면 안 되는 첩보원들에게 전달하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높으신 분들의 종이쪼가리. 바로 지령서다.

"첩보원이니까 당연히 지령서는 있겠지. 그걸 봐달라는 듯이 들고 다니니까  새끼가 폐급이라는 거고."

"어.. 나디아 얘기도 적혀있는데요? 이건 위험한 거 아닌가요?"


"..그건 좀 위험하지. 내놔 봐. 직접 보게."

"오, 시발."

~


동대륙의 어딘가. 대륙 내에서도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하는 궁전. 그곳에는 상의를 풀어헤치고, 귀찮다는 듯 턱을 괸 채, 보고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오늘로 몇  째지?"


"세세, 세 달입니다. 폐하."

보고를 하러 온 남자는, 머리를 지면에 붙인 채, 마치 바닥과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그래, 세 달. 세 달이다. 실질적으로 임무가 실패했다고 판단하는 기간이지. 안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허면.. 네놈이  여가시간을 빼앗아가면서까지 보고를 하러  건, 그 두 글자를 알리기 위해서인가?  두 글자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

"그, 그것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셨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말  보거라.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

남자는 턱을 괴고 있는 손을 저으며 친위대를 물렸다. 방금  한 마디로 충분히 목이 날아갈 수 있었던 남자에게, 관용을 베푼 것이다.


고개를 드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남자는, 이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른 채, 입을 열었다.

"파견했던 첩보원이.. 돌아왔습니다."

"뭐라? 그 자가 돌아왔다고? 도착 보고도, 중간보고도 올리지 않던 그 자가?"

"예, 놀랍게도 생환했습니다. 팔 다리도 멀쩡합니다."


"돌아왔으니 실패라 하긴 어렵다, 이건가?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했으니, 그 자가 가져온 정보가 내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 같나 보군."


"예.. 팔 다리는 멀쩡합니다만, 머리를 좀 다쳐서 온 것 같습니다."

"자세히 말 해 봐라."

"말이 제대로 통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말하는 늑대가 어떻느니, 움직이는 쇳덩어리를 봤다느니, 온갖 헛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는 중입니다."


"흐음.. 그런가. 미쳐버린 건가. 잃을 게 없어도 너무 없는 자를 썼나보군. 하긴, 속이   놈들이 뭘  수 있겠느냐.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물러가보도록 해라. 이번 일의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


보고자는 소리 없이 일어나, 조아리고 있던 고개를 더욱 조아리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남자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위엄과 권위만을 위해 만들어진 의자는, 앉을수록 아프기만 할 뿐이다.


"그래.. 마왕의 생사확인은 실패했나.. 역시 서대륙은 만만히  땅이 아니군."

기지개가 끝난 남자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전설의 술집.. 우선 네놈들부터, 내 손아래에 두도록 하겠다.”

복도를 밝히고 있는 불들이 흐려져 갔다.


멎어드는 발소리와 함께, 남자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