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맛있는 음식의 맛보다, 맛없는 음식의 맛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70/108)



〈 70화 〉맛있는 음식의 맛보다, 맛없는 음식의 맛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음식이 있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으면 좆같은 음식.

그러나 그걸 만들어내는 인간에게는,  가지 부류가 있다.

먹을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인간과, 먹으면 좆같은 음식밖에 만들지 못하는 인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 아니.. 이게 대체.. 도리안 님, 어째서..!"

"오, 아르겐. 오랜만이네. 몇 달만이지?"

먹으면 좆같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그 세 번째다.


"그보다,  남자는..! 주방에 있는  남자는 대체 누굽니까?! 잘도 도리안 님이 계신 곳에..!!"


"아, 얘? 주방 보조야."


"뭐, 일은 내가 다 하지만."


주인장이 젠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젠의 말처럼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주인장이었다.


"젠장..! 저 자리는 내 꿈이었는데! 제가 잠시 수련을 위해 자리를 비운동안에 가로채다니..! 오로넬 님! 한 마디 해 주세요!"


시발. 요즘 들어 등신들이 심심하면 날 찾는다. 자리가 가게 정 중앙이라 그런가.

그렇다고 이 자리를 포기할  없는 게, 정 중앙에 있어야 이 새끼들이  헛짓거리를 하는지 알아채고, 바로바로 대비를 할 수가 있다.

"근데 말이야."


"네! 강한 걸로 부탁드립니다!"

"너 아르겐 맞냐?"

주인장이 아르겐이라 부른 눈앞의 남자는, 내가 알고 있는 아르겐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갈색의 짧은 머리는 어디에  달간 감금이라도 당한  마냥 수북하게 자란 상태였고, 요리사의 긍지라고  수 있는 흰색 요리복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으며, 소매에 이르러선 아예 민소매가 되어 있었다.

"그럴 수가..!  달 사이에,  얼굴도 잊으신 겁니까?! 접니다, 저! 도리안 님의 수제자 아르겐입니다!"

"그 아르겐은 머리가 짧았는데."


"이건 수련의 증표입니다. 지난 반 년 동안, 매일같이 폭포수를 맞아온 머리죠."


"요리사가 머리에 그걸  처맞는데?"


"네? 머리에 폭포수를 맞는 건, 명상을 위해 당연히 하는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지. 오직  답을 찾기 위해 명상을 계속  왔습니다."

"그래서 답은 찾았고?"

"창피하지만 아직입니다. 진리는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그럼 그 옷은? 요리는 청결이 기본 아니었나? 먼지는 있는 대로  뒤집어쓰고, 소매는 어디다 팔아먹었냐?"


아르겐이 자신의 팔뚝을 어루만졌다. 지금에야 눈치 챈 사실인데, 팔뚝의 크기도 그때와는 다르게 어마무시하게 두꺼워졌다. 설마 운동을 했다고 지껄이는 건 아니겠지.

"이건 식재료를 좀 더 신선하게, 그리고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가 고안한 수련의 산물입니다."

"그게 뭔데."

"이봐! 밖에 곰이랑 멧돼지 시체가 있던데, 누구 꺼야? 지금 라보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고!"

마부가 허겁지겁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고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물어 볼 필요도 없었다.

"니꺼지?"

"네."


"병신."


"갑자기 욕은 왜 하시는 겁니까?"


"그래서 뭐, 깨달음은 얻었냐?"

"아직.."

"축하한다, 병신아. 반년 헛살았네."


"아니, 그래도.. 맛이 조금은 바뀌었을 지도 모릅니다. 깨달음은 얻지 못했지만, 확실히 저 자신은 성장했단 말입니다."


성장한  털과 근육뿐인데.


"일단 제 요리를 드셔보시고 생각을.."


"난 안 먹는다."

"네..? 오로넬 님도.. 저 남자의 요리가 더 좋다는 겁니까? 제 요리론 안 되는 겁니까?"

뭘 먹어봤어야 알지. 두 놈 다 꼴도 보기 싫은 요리만 내놓는데, 그딴 걸 처먹겠냐.


"어이, 당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까부터 꿈이니, 자리를 뺏었니 하는데, 갖고 싶으면 가져가라고. 나도 딱히 이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니까."

흰놈에게 탈탈 털려서 종신직으로 선고받은 주제에, 말 하는 걸 보면 거의 자원봉사자나 다름이 없다.

"뭡니까, 그 거만한 태도는? 승자의 여유? 기만? 후.. 더 이상은  되겠습니다."

그래. 내 손을 더럽히긴 싫으니, 얼른 가서 혼내주고 오도록.

"당신의 요리가 도리안 님의 요리와 나란히 설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뭐?"


 반응도 젠과 똑같았다. 이미 좆같은 음식으로는 나란하다 못해 서로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놈들인데, 새삼스레 검증할 필요가 있을까.

"스테이크. 요리의 기본이라 불리는 스테이크를  번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뭐야, 요리대결 하는  아니었어?"

마법사가 말했다. 혼자서 고상하게 담배나 빨고 있는 줄 알았더니, 들을 건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저 분이 이 가게의 주방에 발을 들이기에 적합한지를 알고 싶을 뿐."


'저놈은 무슨 자격으로 자기가 그걸 판단하겠다는 거야?'


마법사가 속삭였다. 쓰레기가 두 개나 나올 걸 하나로 줄여준다는데, 이 녀석은 아직도 엉뚱한 곳에서 논리를 찾는다.


"닥치고 고개나 끄덕여."


내 답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논리로 따지고 들어도, 이 녀석이 얻는 건 없다. 아르겐의 되도 않는 개소리만 더 길어지겠지.


결국  자리에 있는 인간들이 할  있는 것이라곤, 그저 머리통을 위 아래로 흔드는  밖에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러십니까? 재료가 부족하십니까? 고기라면 제가 가져온 식재료를 나눠드릴 수 있습니다."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는 젠을 독촉하는 아르겐이었다.

"아니. 스테이크 같은   줄 모르는데."


그런데 진짜로 서있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없었다.


"기본 중의 기본을.. 스테이크를.. 할 줄 모른다고..?"

아르겐은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들은 말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이고 있는 것이다.

"그, 그럼 당신은 대체 무슨 요리를 내놓고 있는 겁니까?"

"짬밥."


"짬..밥? 그건 어디의 요리입니까? 전 세계의 요리를 연구한 제가 모르는 요리라니?"

"내가 몸담았던 조직에서 먹던 음식들을, 짬밥이라고 부르지."


쓰레기라는 말을 장황하게도 설명한다.


"조직이라고..? 아니, 그럼 그 짬밥 중에 당신이 가장 자신 있는 건 뭡니까?"


"고등어 순살 조림."

나왔다. 이 가게의 3대 쓰레기 메뉴라고 해도 좋을 요리의 이름이.

다른 메뉴들은, 적어도 맛을 기대라도 했다가 배신당하는 게 정석인 반면에,  메뉴는 처음부터 쓰레기 같은 맛을 기대하고 주문하는, 존재 자체가 쓰레기인 음식이다.

그런 만큼, 웬만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음식을 두 번 이상 주문하는 인간은 없다. 심지어 그 변태들에게도 기대 이상의 쓰레기 같음으로 극찬을 받는 요리이니, 가게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음식인 건 틀림이 없다.

"그럼 그걸 하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안될 거 없지. 거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아르겐은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았다. 아마 자기 나름대로 음식의 외견을 상상하고 있는 중이겠지.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겠지만.

"오로넬님은 저 요리를 드셔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게 조용해지나 싶더니, 아르겐이 이쪽을 보며 질문을 했다.


"아니. 아마 이 녀석이 먹어 봤을 걸?"

나는 재빠르게 바통을 떠넘겼다.


"음, 음음."


입에 술을 머금고 있는 탓인지, 마법사는 목의 울림만으로 대답했다.

"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푸하! 너 미친 새끼지?"

"네? 갑자기 왜 욕을.."

저 정도면 할 말을 많이 참은 거라  수 있다.


"여기서도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 뭘 물어보고 앉아있어, 미친놈이."

"냄새요?"


확실히 엿같은 냄새가 난다. 그러나, 마법사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저 남자의 맛에 대한 감각이, 보통의 인간들과 궤를 달리 한다는 것이다.


"이 냄새는..! 마치 어머니의.. 고향의 냄새..!"

저렇게 황홀한 얼굴로 패륜을 저지르다니, 저게 진짜 미친놈이지. 오늘따라 가게의 다른 등신들이 유독 정상으로 보인 건 착각이 아니었다.


"여기. 고등어 순살 조림이다. 경고하는데, ㄱ.."


"잠깐."


쓰레기를 만들어낸 장본인께서 친절하게도 주의사항을 말 해 주려는데, 아르겐은 그걸 또 친절하게 무시했다.


"이 요리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백지와도 같은 상태에서, 직접 부딪혀보고 싶습니다."

저런 말을 지껄이는 놈들 중에 오래 산 놈은 못 봤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는 놈이,  번이라도 이길 리가 없다.

"이 그윽한 향. 잘 버무려진 재료들. 그리고 부드러운 순살."


저것과 정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보고 있는 음식이 나온다. 대체 이 새끼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 걸까?


"엥? 이건, 뼈 아닙니까? 분명 순살 조림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만?"


"하.. 이래서 짬밥에 짬자도 모르는 인간들이란."

젠이 고개를 저었다. 저딴 쓰레기 같은 음식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니,  고개도 절로 저어진다.

"잘 들어. 짬밥의 이름에 의미를 따지려 들지 마. 이건 그냥 '당기시오' 나, '미시오' 와 같은 말들이라고. 눈으로는 보지만 머리로는 보지 않는 그런 거."


"흠..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 요리의 이름은 고등어 (순살) 조림 이라고 생각해도 좋겠군요."


"뭐. 상관은 없지. 이걸 뭐라고 부르든, 당신 앞에 있는 음식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무슨 쓰레기 하나를 두고 이렇게 수준 높은 대화를 할  있는가 싶다.

"그럼 잡담은 이쯤하고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처먹나했네."

"쉿!"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을 지켜보기라도 하듯, 마법사의 신경은 이미 저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하긴, 쓰레기를 좋다고 처먹는 인간이라니, 신인류라도 발견한 기분일 거다.

"음..!!!!"


-음???

아르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주변 등신들의 목소리와 눈동자도 함께 커져갔다.


"맛있.. 우웨에에ㅔㅇㄱ!!"

"오, 시발."

창세의 현장으로부터 황급히 눈을 돌린 나는, 소리가 멎을 때까지 귀를 두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꼬맹이는 잔해가 튀는 걸 염려해서인지, 나와 같은 방향으로 몸을 튼 채 스튜를 퍼먹고 있다.

"어떻게.. 이런, 우우웅ㄱㄺ. 이렇게도 사랑스러운데.. 우우ㅜㄹ루ㅜㄱㄹ! 먹지 못하는..!"

스스로도 이상한지, 아르겐은 쓰레기를 입 속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얼마  가, 가게 구석구석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야! 밖에서 하라고 밖에서! 뭐하는 거야, 대체!?"

기어이 그걸 반이나 처먹고서야 마부에게 붙잡혀 끌려 나간 아르겐은, 그 와중에도 그 쓰레기를 향해 손을 뻗는 걸 멈추지 않았다.


끼이익.. 쿵!

"야, 젠."

"뭐지?"

"저 쓰레기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무 짓도 안했다만."

"똥파리 새끼들도 거르고 지나가는데 지랄하지 말고."

"흐음.."

팔짱을 낀 한쪽 팔을 올려 턱을 어루만지는  보니,  봐도 변명을 생각중이다. 무슨 짓을 했다는 건 확실하다는 거다.


"그 남자가 점주의 음식을 이상하리만큼 높게 쳐주는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맛으로 뭐라 할 처지는 못 되지만, 점주의 음식이 결코 맛있는  아니란 건 알고 있지."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이 음식을, 고등어 순살 조림을 맛있어 하는 인간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


"거 시발, 정신 나간 놈들은 좋다고 먹을 수도 있지."

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행위에는 마치 고귀한 신념마저 깃든 듯 했다.

"이건.. 음식이 아니다. 전장에서 며칠 동안 풀만 뜯어 먹어도 이것보단 맛있었어. 이걸 만들어낸 자는, 영원히 지탄받아야만 한다."


"그게 동기냐?"


"그래.. 그게 이유였다. 그 남자에겐 미안한 짓을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범행엔 뭘 사용한 거지?"

이 새낀 또 뭐야?

깍지를 낀 손을 얼굴에 갖다 댄  담배를 태우고 있는, 수수께끼의 탐정이 나타났다.

옆자리에 있으니 이 녀석이 누구인지 모를 리는 없지만, 이렇게 각을 잡고 지랄을 할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


"이거다."


젠은 자백을 계속했다. 마법사의 자리 위로, 빈 약통 같은 것이 떨어졌다.


"구토유발제라.. 이건 우연히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닌데?"

"언젠가 저런 인간이 나타날  예상하고 있었을 뿐이다."


"할 말은 그게 다인가?"


"그래. 이제 충분하다."

마법사가 턱으로 젠을 가리키자, 홀을 돌아다니던 젠의 따까리들이 달려와, 젠을 둘러쌌다. 가게 안에서 토사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으니, 상관이고 뭐고  바가 아니었을 거다.

"끌고 가."

젠은 별다른 저항 없이 따까리들의 인도에 따랐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주방의 바로 앞. 바로 피해자가 피살된 장소였다.

"치워."

"뭐라고?"

"치우라고."


치이익.

마법사가 던진 담배가 토사물에 닿아 꺼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은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했다.

"대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본인이 토하게 하셨으면, 본인이 치우셔야죠."


"흠.. 그렇군. 확실히 일리가 있어. 닦을  가져오도록 하지."

"..날 잡을  있다면."

쾅!!

닫혀있던 문이 순식간에 열렸고, 젠의 모습은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온 등신들의 어이가 동시에 털린 가운데, 오직 한 사람. 마법사만이 악에 받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새끼 잡아!!!"

그 분노는 전염되어, 어이가 털려있던 등신들도 덩달아 성질을 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야아아아!!!

그리고 가게에는..


"스튜 더 줘."


"어. 어, 그래."

냄새마저 극복한, 걸신들린 꼬맹이만이 남아있었다.


"작작 처먹어라 진짜."


"이거 까지만."


“하..”

박살이 난  뒤로는, 선선한 밤바람과 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욱ㅡ!"


 사이에 섞여 우는, 불쌍한 사내의 소리도 함께.

“거 시발, 날씨 한 번 더럽게 좋네.”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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