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과거는 늘, 현재를 따라다닌다 [2] (72/108)



〈 72화 〉과거는 늘, 현재를 따라다닌다 [2]

"와. 존나 무섭다. 그러니까 일식을 일으키는 게 그 빡빡이란 말이지?"

저 등신들이 저러고 있는 게 이해가 갔다. 설마 일식이라는 현상 뒤에 그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파란 피부에 빡빡이라니. 술맛이 절로 떨어졌다.

"아니,   아직 다 안 끝났잖아."

마부는 아직 더 할 말이 남은 모양이다.

"남은 건 딱 봐도 그거 아니냐? 넌  말이랑 같이 튀고, 대피소에 있던 놈들은  죽었겠지."

"하나도  맞는데? 도망을 왜 가? 대피소가 있다니까."

"흐름상으로 보면 땅을 조져놓은 것도 그놈 아니냐? 그런 놈 상대로 대피할 곳이 어딨는데?"

이러면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스운 빡빡이 이야기가 돼버리는데.

"우리 사장은 기마병으로 입대해서, 만기제대 때까지 살아남은 인간이야. 그런 인간이 '대피소'라는  만든다면, 그건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이지."

"뭐야, 진짜로 아무도 안 죽었어?  빡빡이는? 그놈이 언제 갈  알고 거기서 버텼는데?"

"넉넉하게 일주일은 있었던가? 한 이틀 동안은 땅이란 땅은 다 부수고 있는 소리가 들려서, 나갈 엄두도 못 내겠더라고. 대피소가 그것보다 더 깊어서 다행이었지,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땐, 우리 사육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니까."

"음.. 그걸로 끝?"

"뭐, 끝이긴 하지. 그 뒤로 사장이 운송으로 업종을 바꾸면서 마부가 됐어."

"뭐야, 좆도 안 무섭잖아?"

"처음부터 말했잖아. 그딴 이야기 아니라고."

"그랬었나."

"그래서 한 번 더 물어봤잖아. 제발 말  들어라."

가만, 근데 이거 마법사가 시킨 거 아니었나?

"뭐, 어때. 난 오줌이나 싸러 간다."

"뭐야, 오로넬? 안 무섭다면서오줌 싸러 가는 거야?"

용사가 입을 가리고 물었다. 나름 날 비웃고 있다는 동작이겠지. 저걸  번이나 듣고도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대체 뭐하는 놈인 거지? 그리고 오줌이랑 공포는 대체 무슨 상관이지?

저 빌어먹을빡빡이 이야기를 듣는답시고 30분을 앉아있었는데, 이 정도로는 그 혐의를 벗기에 부족한 건가?

"그럼 오줌이 마려운데 어떡하란 거냐? 여기서 싸? 니가 치울래?"

"아. 더러운 소리 그만하고 같이 나가. 나도 오줌 마려우니까."

한창 허리띠를 붙잡고 용사놈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마부가 등을 떠밀며 바깥으로 끌고 갔다. 그래, 그 '무서운 이야기'의 주인공도 오줌이 마렵다고 자리를 비우는데,  정도면 엮지 못하겠지.

쏴아아아ㅡ

"이젠 앞도 잘 안 보이네. 이거 제대로 조준 된 거 맞나?"

"내 것도 안 보이는데 니 조준 상태를 어떻게 알아."

수압이 약한지, 마부는 나처럼 맑고 청아한 물줄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면 단순히 멀리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후.. 그러니까 저 남은 빛까지 사라지면,  대머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거야?"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뻔히 알겠는데, 굳이 담배를 태워서 본인의 존재를 알리는 놈이다.

"그건 이쪽 말고 저쪽으로 가서 말하라고."

구체적인 방향을 가리켜줄 손이 남지않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뭐야? 너 혼자만 있는 거야? 조지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몰라. 자신감이 없나보지. 저어기 구석에 찌그러져서 싸고 있네."

"그보다,  어떻게 생각해? 조지 이야기."

"존나 재미없던데."

"아니 그거 말고. 지금 여기도 일식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놈들이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넌 니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며?"

"아니, 시발. 그러니까 니 의견을 묻고 있는 거잖아. 난 안 믿는데 넌 어떠냐고 이 새끼야."

머리를 얻어맞았다. 물줄기를 틀어 반격하고 싶었지만, 바람이 날 돕지 않았다.

"음.. 글쎄.  그것보다 니 뒤에 있는 그 막대기가  신경 쓰이는데."

항상 꼬맹이의 근처에서 쥐죽은  있던 막대기가, 마법사의 뒤에 떠있었다. 오줌을 싸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이런 거 있었지."

「흐음..」

"'흐음' 이 지랄. 숨 쉴 입도 없는 게.  말 있으면 빨리 하고, 없으면 꼬맹이 옆에 계속 찌그러져 있지?"

「이번엔 이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을 거다, 세 발 달린 짐승아.」

이 녀석의 말을 무시한 기억은 없는데. 개소리라고 욕을 했으면 했지.

「믿기 어렵겠지만 아까 그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그리고 이 짐승의 말도 사실이지.」

"뭐, 이놈? 너 방금 뭐라고 했었냐?"

"여기도 일식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놈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벌써 세 번째다. 기억 좀 해라."

기억할 가치가 있어야 기억을 하지. 개 짖는 소릴 일일이 기억하는 인간이 있겠냐.

"그러니까 정리하면,조가 만났던 파란 빡빡이가 여기로 올 거란 거냐?"

「그렇다.」

"뭘 근거로? 또 그때처럼 '그냥 알고 있다' 같은 개소리는 아니겠지?"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또 끄집어내는 마법사였다. 아마 그날부터 이 녀석에겐, 저 막대기는 그냥 사이비일 뿐이었을 거다.

「저 짐승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냐? 그자들의 목적은 조각이라고 했지 않느냐.」

아. 맞다.

여기, 조각 존나 많지.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어, 그러고 보니 일식은 이렇게 어두워지지 않.."

쾅!!!

마법사는 미처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어둠으로 뒤덮이고 있는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어둠이 내 시야를 완전히 침식하기 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무너지고 있는 마왕성의 모습이었다.

~

"악!! 으으..! 괜찮아, 너희들? 살면서 이런 일을 두 번이나 겪을 줄이야."

가장 먼저 땅으로 떨어진 건 조지였다. 그것은 조지가 다른  보다 낮은 지대에 있어서일 수도, 더 무거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했다. 아무리 그가 저지대에 있고 몸이 무겁다 한들, 다른 두 사람이 아직까지 떨어지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야, 야! 놓으라고! 바지 내려가잖아! 뒤지려면 혼자 뒤지라고!"

"이런 곳에서 죽기 싫어! 아직 만들고 싶은 게 산더미만큼 있다고!!"

자신보다 조금 높은 곳이긴 했지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화의 내용으로 봐선 어딘가에 매달려있는  했다. 조지는 소리를 더듬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긴가..?"

아직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탓에, 두 팔과 두 다리가 눈의 역할을 대신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팔을 휘젓던 조지는, 시오의 가운으로 추정되는 것을 움켜쥐는데 성공했다.

"아아악!! 뭔가 날 잡았어!  대머리가 왔나봐! 대머리가 날 붙잡았어!!"

시오는 더욱 격렬하게 오로넬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그가 붙잡고 있는 나무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깐의 순간에 그가 내린판단은, 무게를 줄이는 것이었다.

"꺼져, 꺼져, 꺼져!"

오로넬의 자비 없는 발길질이 시오의 상반신에 내리꽂혔고, 마침내 그의 바지는 자유를 얻을  있었다.

"영원히 널 저주할 테다, 오로넬!!!   같은.. 어?"

저주의 말과 함께 퍼부으려던 욕을, 한 마디도  꺼내기 전에, 그녀의 발은 땅에 닿아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빛이 생겨났다. 가게 안의 누군가가 불을  것이다.

"시발."

탁!

자신의 꼴을 확인 한 오로넬은, 스스로 가지를 꺾고 떨어졌다. 아니, 내려왔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그 나뭇가지는, 2미터도  되지 않는곳에 있었으니까.

"뭐.. 알지? 내가 일부러  걷어찬 거. 안전한 걸 알고 내려 보낸 거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난 진심으로 저주했으니까, 알아서 하고."

끼이익!

"무슨 일이야?!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는데?"

가게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시트린이 뛰쳐나왔다. 가게의 불을 밝힌 것도 그녀인 것으로 보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그 빡빡이 새끼 오기 전에."

보이지도 않는 바깥 풍경을 두리번거리는 시트린을 밀어 넣으며, 오로넬은 가게 안으로 돌아왔다.

"어? 뭐냐?"

-종말이다! 종말이야!!

방금 전과 전혀 바뀐 것이 없는 가게였지만, 그는 강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랄하고 있는 등신들,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주방, 스튜를 처먹고 있는 꼬맹이.. 어떻게 여기는 멀쩡한 거냐?"

바로 그 바뀐 것이 없는 게 위화감의 정체였다. 인간이 공중으로 떠오를 정도의 충격을 받고도, 테이블이 흩어지기는커녕, 데이린이 먹고 있는 스튜조차 흘린흔적이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고한다.ㅡ」

그리고 조지에게 들었던 대로, 가게를 가득 채울 정도의 목소리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

"아, 시끄러. 누가 밖에서 소리 지르는 거야?"

시트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니들이 가진 조각 수거하러 왔다는데. 쓰지도 않는 거, 그냥 줘라. 주면 닥치고 가겠다잖아."

오로넬은 자리에 앉아서 태연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 제정신인 인간이 할 짓은 아니었다.

"안 돼. 검 없는 용사 본 적 있어?"

"안 주면 다 죽여 버리겠다는데? 너 때문에 다른 사람이 뒤져도 괜찮냐?"

"누구 앞에서 누굴 죽여?! 이 악당놈이..! 안 되겠어. 다녀올게."

"어딜?"

"저 녀석을 쓰러뜨리러."

쾅!

멋들어진 말을 하며 문을 걷어찬 시트린이었지만, 문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조각을 내놔라.」

그 앞에 당도한, 파란 피부의 사내들에게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악, 대머리다!!"

시트린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한 번 더 걷어차, 문에 걸친 남자를 날려 보냈고,  옆의 남자에겐 주먹을 내리꽂았다.

"워우. 진짜 빡빡이네. 한 놈이 아니었구만? 근데 이거 좆 된 거 아니냐? 이럼 이쪽에서 선빵을 친 게.."

「조각을 내놔라!!!」

오로넬의 불길한 예상이 적중하듯, 쓰러진  남자와 같은 복장을 한 무리가, 시트린을 향해 달려왔다.

시트린은 조용히 검을 뽑아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적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등 뒤에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있다.

그녀는,  상황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 흥분은, 고스란히 검으로 전해졌다.

"조각을 가지고 싶으면 날 먼저 쓰러뜨려라!!"

쾅!!!

자욱한 흙먼지가, 숲속을 뒤덮었다.

~

가루가 되어버린 마왕성의 상공에 정체돼있는 거대한 땅. 그 위의 수많은 조형물들은, 마치 이동요새를 방불케 했다.

「밖이 소란스럽구나. 쓸데없는 피가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로님. 일처리만큼은 확실한 피넛이잖습니까?」

장로는 자신의 지팡이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게다가 여긴 블랙베리의 땅입니다. 그놈 남매가 저희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그만.」

장로는 감겨져있던 눈을 들어 올려 제자를 바라보았다. 쳐지고, 희미했지만, 흔들리지 않는 눈. 그녀 또한 그런 스승의 눈을 바라보았다.

「잘못은 그 둘에게 있는 것이지, 저들이 아니다.  번이고 말했지 않았더냐.」

「죄송합니다, 장로님. 조각의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급해졌나 봅니다.」

「흐음.. 그래. 그럴 만도 하구나. 13개나 되는 조각이 한곳에 몰려있는 건 드물지.」

장로는 지팡이에 몸을 실고 힘겹게 일어섰다. 제자의 부축을 받으며 바깥으로 나간 그는, 어둠에 가리워진 태양을 바라보았다.

「저 태양을 볼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구나.」

「네, 장로님. 곧 입니다.」

「그래.. 조각을 완성해서 그분을, 우리의 세계를, 돌려받자꾸나.」

장로는 다시 실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자는 말없이 그 뒤를 쫓았다.

아래에서는 곳곳에서 흙먼지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결코 빼앗기지 않겠다는, 저항의 증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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