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과거는 늘, 현재를 따라다닌다 [6]
말을 탄 남자와, 늑대 한 마리, 그리고 누구도 타지 않은 말 하나가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렸는데도, 오로넬이 말한 무언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근데 오로넬 말이야."
"네? 아, 오로넬 씨요?"
라보는 너무나도자연스럽게 2족 보행을 하고 있었다.
"대체 이렇게 먼 곳에 적이 있는 줄 어떻게 안 거지?"
"글쎄요. 냄..새는 아닌 것 같은데.. 음?"
늑대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왜? 찾았어?"
"뭔가.. 이상한 게 있어요. 이 산에서 처음 맡아보는, 짐승의 냄새.."
"그게 무슨.."
라보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조지는, 재빨리 고삐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서 도약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떠올라, 자신의 코앞까지 닿아있는,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
ㅡ!!!
괴수의 포효가 대지를 울렸다.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조지는 두 귀를 막은 채, 간발의 차로 자신을 지나쳐 간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범이었다. 범의 모습을 한 괴수였다. 그 크기는, 그렇게 밖에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괜찮으세요, 조지 씨?"
어느새 네 발로 돌아간 라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오오, 말을 하는 늑대라? 희귀한 걸?」
괴수의 뒤편에서, 채찍을 쥔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가 괴수의 머리에 손을 얹자, 괴수는 몸을 낮추어 남자에게 자신의 등을 내주었다.
「저 말들도 아주 상태가 좋아 보이는군. 좋아, 너희들은 오늘부로 이 포멜로님의 것이다.거기 인간. 난머리에 털 난 짐승은 키우지 않으니 사라지도록.」
"응? 나?"
조지는 당황한 듯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너. 이 녀석에게 먹히고 싶지 않으면 당장 사라지는 게 좋을 거다.」
괴수가 낮은 소리로 으르렁 거렸다.
조지의 얼굴에는 더욱 짙은 의문이 묻어났다.
"머리에 털 난 짐승이라며? 이거 안 보여? ..털인데?"
조지는 킬의 갈기를 들어보였다. 확실히, 피부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저도 머리에 털 있는데요."
라보도 앞발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짐승들은 대가리, 인간은 머리.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거냐?」
조지와 라보는 놀란 듯 숨을 삼키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털 있는 게 머리고, 없는 게 대가리 아니었어?"
"저, 저도 처음 알았어요."
「내 말이 맞다니까! 어디서 그딴 되도 않는 말을 들이 미는 거야!?」
남자는 화를 내며 바닥에 채찍을 휘둘렀다. 괴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음.. 그러니까, 포..박이 씨?"
「포멜로라고 포멜로!」
"본인이 그.. 숱이 없어서 그렇게 믿고 계신 건 아닌가요? 이쪽은 일단 두 명인데.."
머리 위에 얹은 손을 흔들어 보이는 조지였다.
「너 지금 내가 대머리라고 무시하냐? 무시해? 내가 조련한 짐승들이 얼마나 많은데, 니가 평생 동안 봐 온 동물보다 내 우리에든 동물들이 더 많을 거다! 그리고 이건 대머리가 아니라 스킨헤드라고!」
악의는 없었지만,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는 법이다.
「레이! 저 건방진 놈은무조건 죽인다! 다른 놈들은 안 다치게 조심해!」
조금 전보다 더 강하게 바닥을 내리치는 남자.
레이라고 불린 괴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적개심을 불태웠다.
남자는 채찍을 허리춤에 돌려놓고, 괴수의 옆구리 부근에 적재되어 있는 창을 꺼내들었다.
「그 말과 사이가 좋아야 할 거다! 그래야 너만 죽일 수 있으니까!」
"아.. 싫다. 사장님이 이래서 대머리들하고는 말도 섞지 말라고 했구나."
조지는 안장의 뒤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언제 달아놓았는지, 왜 달아놓았는지도 잊어버린, 오래된 검.
군마를 기르기만 하면 될 뿐인데, 그러기 위해선 기마병이 되어봐야 한다며, 사장이 억지로 쥐어준 검.
그게 이런 형태로 도움이 되다니, 역시 사람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가자, 얘들아."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산 중에 울려 퍼졌다.
~
"어우, 축생새끼들. 우는 소리 한 번 시끄럽네."
여러 축생들의 소리가 섞여, 불쾌한 소음이 형성되고 있었다. 개중에는 말과 늑대의 소리도 들렸으니, 아마 조가 싸움을 시작했다는 뜻일 거다.
"오로넬은 안 싸워?"
꼬맹이가 물었다. 젠녀석은 가게가, 본진이 걱정된다며 확인을 위해 떠났다. 모처럼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놈이 사라져서 좋았는데, 이제는 꼬맹이가 지랄이다.
"싸우고 싶겠냐? 내가 가진건 단검뿐인데?"
"나도 있어."
자랑하듯이 단검을 들어 보이는 꼬맹이였다. 언젠가 내가 줬던, 뭘 자를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좆만 한 단검.
"어쩌라고."
"이거 없이도 싸울 수 있어."
"그건 너니까 되는 거고."
"안 해보면 몰라."
"안 해봐도 알아, 미친놈아."
꼬맹이의 실없는 말일 뿐인데, 마치 재능충들의 '이걸 왜 못함?'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기분이다. 주먹으로 돌도 부술 수 있으면, 나 같아도 단검 같은 찌질한 무기는 안 쓴다.
"아, 그러고 보니 막대기 너 이 새끼."
「ㅁ, 뭐냐?」
"넌 이렇게 될 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냐? 설마 니가 저 새끼들을 불렀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저 그자들을 본 적이 몇 번 있었을 뿐이다.」
"그래? 언제 봤는데?"
「음.. 그건 아주 옛날.. 네놈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그들은..」
"잠깐만 닥쳐봐."
「아직 시작도 안했단 말이다!」
"아, 알았으니까 닥쳐보라고!"
뭔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전방? 후방? 아까까진 분명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어느 쪽이지?
"이거 어디에서 오고 있는 거냐, 꼬맹아?"
꼬맹이는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고는, 팔을 들어올렸다.
"위."
쿵!!
하늘 위의 돌멩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
추방자들. 본래 이 세계의 주인이었던 그들이, 자리를 빼앗기고, 세계를 떠돌게 되기까지.
그 이야기는, 그들의 신. 도리안의 부재와 함께 시작된다.
갑작스레 사라진 관리자의 존재. 세상은 그야말로 종말을 맞이했다. 멈추지 않는 돌풍과, 쏟아지는 폭우. 급격한 더위와 급격한 추위. 지상의 모든 것들은 그렇게 멸절 되어갔다.
단 한 곳. 그가 처음으로 생명을 만들어 낸, 한 마을을 제외하고.
생존에성공했다곤 하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신의 무사를, 어디 있는 지도 모를 그 신에게 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돌풍이 멈추고,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혀갔다.
신이 다시 돌아온 거라 생각했다. 다시 자신들을 보살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신은,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해와 달을 관장하던 그의 자식들이, 새로운 신이 되어 그 자리를 빼앗은 것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득한 초월자들의 사정보다, 그들은 하루를 살아가는데도 벅찼다.
새로운 신들은 무관심했다.자신들이관리해야 할 세계를 보살피지 않았다. 그들은 땅에 선을 긋고, 자신들을 따르는 피조물을 만들어, 서로의 땅을 빼앗고 되찾기를 반복했다.
수많은 생명들이 덧없이 져갔다. 그저 그들의 창조주가 바란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삶은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소모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로 오디가 그것을 발견했다.
'조각.'
창세의 힘.
50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진, 그것의 잔재. 파편이자 찌꺼기.
전승으로만 내려오던 그 힘을 직접 확인한 장로는,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확신했다.
자신들의 신을, 진정한 세계의 관리자를, 돌려받을 때가 왔다고.
그러나 그 계획은, 신들의직접적인 개입으로 무참히 저지되었다.
그렇게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추방되어, 영원히 그곳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단 하나의 예외. 태양과 달이 서로를 가로막는, 일식의 날을 제외하고.
~
창을 잃은 피넛은, 양쪽의 검을 사용해야만 했다. 창을 쓰는 것 보다야 못하겠지만, 검을쓰지 못 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선봉으로써 쌓아온 경험은, 추방자들 중 누구보다 풍부하다고 할 수 있었다.
외팔의 남자는, 검을 내민 채 움직이지 않는다. 겁을 먹은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겁을 먹은 것은 피넛 쪽이었다.
남자가 가용할 수 있는 무기는 하나. 그것도 단 하나뿐인 팔을 사용한 하나.
자신에게는 수많은 이점들이 작용하고 있지만, 남자에게는 수많은 빈틈만이 보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데도. 눈앞의 상대에게 달려갈 수가 없었다. 검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 빈틈을 깨뜨릴 판단이 서지 않는다.
"왜 그러지? 설마 칼도 못 뽑는 병신한테 겁먹은 건가?"
「너야말로 죽인다고 지껄인 주제에 니가 와라 전략이냐? 역시 병신은 병신이군.」
그 순간, 남자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나타났다. 자신의 목을 향해, 검을 내려찍으며.
!!!
검은 막아냈다. 그러나 양손의 검을 모두 동원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피넛의 몸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를 악 물고 있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남자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 새끼가!!」
혼신의 힘을 다해,그 검을 밀어냈다. 남자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휘청거렸다.
피넛은자세를 바로 잡을 새도 없이 달려가, 검을 내질렀다.
캉!
얕았다. 하지만 상대도 급하게 막은 탓에, 자세가 불안정했다. 곧바로 반대쪽의 검을 부딪혀 그것을 저지했다.
이번에도 남자는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피넛은, 자세를 완벽하게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일방적인 피넛의 공세가 이어졌다. 그래.결국 상대는 외팔이였다. 주도권이 완전이 이쪽으로 넘어 온 상황에서, 방어에 모든 것을 쏟고 있는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지칠 때까지 휘둘리기만 할 뿐이다.
푸욱ㅡ!
마침내 왼쪽 옆구리에 깊숙하게 검을 꽂아 넣는데 성공했다.팔이 멀쩡했다면 한 번은 막아줬을 텐데, 의수를 착용하지 않은 남자의 패배다.
피넛은 재빨리 반대쪽의 검을 휘둘러, 남자의 목을 향했다.
팅ㅡ!
검이, 손에서 빠져나간다.
어째서.
그 해답은, 눈앞에 있었다.
"자세를 바로 잡으려면, 한 번은 맞아줘야겠더군. 방금 그 한 방이, 내가 살 확률이 가장높은 한 방이었다."
남자의 팔이 머리 위로 뻗어 올랐다.
빨리! 검을 뽑아야..!
촤악!!
「허억!!」
그리고 피넛은,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