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과거는 늘, 현재를 따라다닌다 [13]
「이제 과거 이야기는 됐습니다. 결국, 새 삶에 만족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오디는 한층 더 강하게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과거를 고하는 그 얼굴이,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
"여기부터가 본론인데 아쉽네."
도리안은 그것을 웃어 넘겼다. 오디는 점점 더 화가 차올랐다.
「당신의 몸이 이곳에 묶여 있더라도, 당신은 언제든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행방을 캐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남자나, 다른 손님들에게! 이게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 무엇이란 말입니까?!」
도리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그 눈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오디여. 너는 이런 변방의 술집에 수십 개의 조각이 모여 있는 것이, 우연인 것 같으냐?"
「..!」
오디는 떠올렸다. 일식의 날을 준비하며, 대륙에 퍼져있는 조각들의 위치를 살필 때 들었던 위화감을.
누군가가 옮겨놓기라도 한 듯,한 곳에 뭉쳐있는 조각들의 무리를.
설마.. 그렇다면..
"말했을 터이다. 이 몸으로 세계를 둘러보고 싶다고. 너희들이 있는 이 세계에서, 이 한 몸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당신께서는.. 우릴..」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만두지 않았다.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우리를 찾아냈다. 우리를 불러냈다.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여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그가손을 내밀었다.웃는 얼굴로, 언젠가 봤던 그 얼굴로.
뿌득.
그러나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잡아서는 안된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한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뿌득. 뿌득.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몸은 손을 뻗을 여력조차 없었다.
「도리안.. 나의 신이여.. 영겁의 시간을 넘어, 다시 한 번 당신을 만났습니다만.. 그 세월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나 봅니다..」
오디는 쓰러졌다. 그러나 곧바로 일어났다. 그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뿌드득. 뿌드득.
그 몸을 흡수하고 있는, 17개의 조각들에 의해.
ㅡ!!!
거대한 빛줄기가, 도리안을 덮쳤다.
~
ㅡ!!!
"와, 시발. 저기 갔으면 뒤졌겠다. 진짜로."
멀리서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새하얀 빛이 번쩍였다. 내가 저기에 없는 건 행운이기도 했지만, 저것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건 불행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뛰어야 되냐, 근데? 지하가 언제 나오는데?"
손에 쥐어진 이 폭탄. 마법사가 준, 이 폭탄이 아니었다면, 나도 지금쯤 저기에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밑도 끝도 없이 지하를 찾아야 하는지금 상황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
"오로넬! 이거 가져가!"
몬드 할배와 꼬맹이에게 질질 끌려 저장고로 내려가기 직전, 마법사가 나에게달려왔다.
"이게 뭔데?"
"폭탄."
"뭐 어쩌라고."
"터트리라고."
"여기서?"
"아니! 거기에 가서! 저렇게 큰 물체가 떠 있는데 아무런 의문도 안 들어?"
"니들을 보면 의문 같은 건 아무런 소용도 없더라."
"개소리 하지 말고! 잘 들어! 멀리서 대충 봤는데, 저 구조라면 아마 지하에 저걸 들어 올리고 있는 뭔가가 있을 거야. 조각이든, 그거랑 비슷한 뭔가든."
"그래서?"
"그걸 찾아서 터트리라고, 이 병신아. 사람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 열 받게 하네, 이게."
마법사가 주먹을 들었다.
"아니, 잠깐만. 그럼 그걸 터트리고 나면, 난 어떡하라고? 떨어져서 뒤지라고?"
"아."
"'아'는 시발, 니가 처맞을 때 나는 소리고!"
꼬맹이와 할배에게 붙잡혀있는 팔을 대신해서, 끌려가는 다리로, 마법사의 배를 걷어찼다.
"아! 이 새끼가!"
"니가 먼저 사람 목숨으로 지랄했다? 지랄했지? 나 때리면 넌 쓰레기가 되는 거야, 알겠어?"
마법사의 주먹이 수그러들어갔다.
"어우, 그냥!"
하지만 그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억! 시발..!"
"내놔 봐!"
마법사는 배를 잡고 뒹굴고 있는 내 손에서 폭탄을 빼앗아, 그것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자."
그리고 이상한 막대와 함께, 그 폭탄을 다시 돌려줬다.
"뭐가 바뀐 건데? 이 좆만 한 막대가 내 목숨이라도 구해 주냐?"
"구해주고 말고. 그게 바로 기폭장치라는 거다, 이 유인원아."
"또, 또. 지만 아는 거 나왔다고 염병을 떠네."
애써 내 말을 무시하고, 마법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이 폭탄만 있을 때는 설치 시간을 기준으로 몇 분이 지나면 터지는데, 이 막대가 있으면, 원할 때에 터트릴 수 있단 거야."
"오.."
열심히 이해한 척을 해줬다. 이럴 땐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고 배웠다.
"지크가 가자고 한 거니까, 돌아올 방법도 그놈이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때 돌아와서 터트리면 되지. 이제 알겠어?"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돌아갈 생각이냐?"
벽을 통과한 뒤, 다시 모인 등신들에게 마법사의 말을 전했다. 흰놈의 얼굴은, 그날따라 수도 없이 본 탓에 익숙해져버린, 어떤 표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
그럼 그렇지, 시발. 앞도 생각 못하는 새끼들이 뒤를 생각했을 리가 있나.
"그럼 어차피 뒤진 거, 지금 터트린다? 만나서 좆같았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 새끼들아."
"잠깐."
"뭐, 왜, 뭐? 뒤지긴 싫냐? 어차피 뒤질 텐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없는 건 아니다'라는 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이 미친놈이.
"도리안만 찾으면 된다. 그거면 다시 가게로 돌아갈 수 있다."
"적진 한 가운데에서 사람 하나를 뭔 수로 찾냐고.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이 새끼가, 진짜."
"그쪽은 내가 알아서 하지. 네놈은 나디아와 그걸 설치하러 가라. 나중에 날 못 찾더라도, 나디아를 방패로 쓰면 살 수 있을 거다."
"..."
지금이 대들어도 될 때인지 눈치를 보는 마왕이었다. 조용히 있는 걸 보니, 지금 입을 열었다간 뒤진 횟수가 늘어날 뿐이란걸 깨달은 모양이다.
"그럼 나는 자네 쪽에 붙는 게 좋겠군, 지크. 아무리 자네라도 주인장을 지키면서 싸울 수는 없을 테니."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상황은 지금에 이른다.
이 요새인지 마을인지 모를 땅덩어리 위를 몇 분은 뛰어다닌 것 같은데, 지하로 갈 수 있는 단서 같은 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헥, 헥. 그러니까 차라리 땅을 파자니까? 아까부터 팠으면 못해도 절반은 뚫었겠다."
마왕이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섰다. 나는 안 멈출 건데.
'아, 아! 오로넬! 버리고 가지마! 오로네에엘!!'
등신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여전히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 좀 보이냐, 꼬맹아?"
"응."
"뭐? 뭔데?"
"피해."
그 말을 듣고 돌린 고개 앞에서는, 파란색 주먹이 뻗어오고 있었다.
"이, 씹..!"
쾅!
그 손에 닿은 벽이, 처참히박살났다.
이 미친놈들은 닿기만 해도 뭐가 박살이 나는 거냐..!
생각할 틈은 없었다. 곧바로 자세를 바꾼 상대의 다리가 엄습해왔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피했지만, 다음 공격은 위험하다.
하지만 내 옆에는 꼬맹이가 있었다. 다행이 늦지 않게 꼬맹이의 지원이 왔고, 나를 공격하려던 그 팔은, 꼬맹이의 주먹을 막는 데에급히 투입되었다.
치이익.
습격자는 뒤로 밀려났다. 밀려났을 뿐이다. 그 거인 조차도 두 방에 절명을 맞이한 주먹을, 저런 아담한 크기의 인간이, 버텨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왕을 버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저런 놈한테 한대라도 맞아봐라. 운 좋게 막아낸다 해도 뼈가 가루가 될 것 같은데, 막지도 못한다면 죽음 밖에 없다.
그렇다면, 목숨을 연명할 방법은 공격뿐이다.
"쉬지 말고 공격해라, 꼬맹아. 저년 공격은, 내가 봉쇄해 줄 테니."
단검을 꺼내들었다. 저 피부에 들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초라하고, 오래된 단검을.
"알았어."
쾅!
후폭풍을 일으키며, 꼬맹이는 달려갔다.
~
습격자는 고전하고 있었다.
2명의 상대라곤 해도, 남자 쪽은 전혀 이 싸움에 낄 수준이 아니었다.
한 번. 단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면 끝. 그저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목숨이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을, 남자는 결코허용하지 않았다.
한쪽을 공격하려 하면, 다른 한쪽의 공격이 들어왔고, 그 공격을 막아내면 양쪽에서의 협공이들이닥쳤다.
자신의 몸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던 그의 단검도, 점점 그 몸에 타격을 쌓아갔다.
"어이, 막대기!! 니 새끼 뭘 쳐보고 앉았냐! 빨리 안 도와?!"
남자가 어딘가를 향해 소리쳤다.
설마 증원..?
아니, 거짓말이다. 근처에 있는 인기척은 단 하나 뿐, 그것도 이곳에 오려면 10분은 족히 걸릴 속도다.
이자는, 자신의 동요를 유발하고 있다.
혼자였다면 순식간에 쓰러뜨리고도 남았을 남자의 존재가, 그 옆에 있는 단 한 명의 조력자로 인해, 가장 까다로운 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
팔 끝에 날붙이가 스쳐지나갔다. 이 남자의 단검으론, 어림도 없는 상처였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 남자가 말했던 막대기가 꽂혀있었다. 스스로를 움직이며, 말을 하는 막대기가.
「한 번이다. 데이린을 위해서 한 번만 도와주마, 이 세 발 달린 짐승아.」
습격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그것으로부터, 조력자의 정체를 추론할 수 있었다.
잿빛 머리와, 말하는 검.
습격자는, 두 사람을 밀쳐내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디의 자식 피치가,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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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천사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