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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화 〉과거는 늘, 현재를 따라다닌다 [15] (85/108)



〈 85화 〉과거는 늘, 현재를 따라다닌다 [15]

"야."

...

"야!"

「앗, 네! 부르셨습니까?」

"진짜 여기 맞냐? 계단이 무슨 이렇게 많아."

신의 자격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그들은 한치 앞의 계단밖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통로를 내려가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계단은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돌겠네."

몇 분을  투덜거리며, 남자는 계단을 내려갔다.그렇게 한참을 더 내려가자, 아래쪽에서 익숙한 빛이 보였다.

"아, 이제야 뭐가 좀 보이네. 근데 빛은 어디서 들어오는 거냐?"

「이곳은 제단. 50개의 조각을 모두 모아서, 번째 신을 되찾기 위해, 장로님이 비밀리에 만드신 장소.」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신을 만들어 낸다는 목적으로 변질된 장소. 그녀는 그것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고이 모셔두었던 17개의 조각들은,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도 자신을 기절시킨 사이에, 장로가 가져갔을 것이다.

이제와서  조각들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그것을 떠올려 버릴 것만 같아서, 그녀는 머리를 저으며, 그 기억을 애써 지웠다.

"음? 뭔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같은데.."

나디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살아온 세월은 그 자신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어디서'보다 '언제' 인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걸 부수면 되냐? 별거 아니네."

품속에서 꺼낸 폭탄을 제단에 부착하려는 오로넬이었다.

「아닙니다. 징벌의 사슬은 여기보다 더 아래에 있습니다.」

피치가 벽을 누르자, 또다른 계단이 나타났다. 오로넬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죽상을 지었다.

"아, 맞다! 기억났어!"

계단을 내려가던 나디아가 소리 질렀다. 누구도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났다니까 오로넬?"

"뭐가, 이 십새야. 다리도 아파 죽겠는데, 지랄하려면 벽에다가 해라."

"아니, 방금  여자가 50개의 조각을 모아서 신을 되찾느니 어쩌니 했잖아."

「...」

피치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게 뭐 어쨌냐고오. 이 새끼들이 신을 찾든 병신을 찾든, 내 알바야?"

"그거 말인데. 조각 50개를 모아도 그런 일은 못 벌인다더라."

"와~ 진짜~? 존나 신기하다~ 됐냐? 이제 닥치고 걷기ㄴ.."

「그럴 리가 없습니다!!」

피치의 목소리가 통로 속에 울려 퍼졌다. 그녀가 소리를 지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말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모든 일들이, 헛짓거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분명 장로님께서 그 정도의 힘이 있다면 가능할 거라고! 분명 실험도..!」

"그건 고작 조각 3개로, 게다가 애초에 만들어내는힘을 가진 조각을 써서 한 거잖아?"

「그건..아니.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확실히 이상했다. 어디선가 들었다고 운을 뗀 그였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은 '들은 것'이 아닌, '본 것'이었다.

나디아는 대답을 보류한  웃고 있었다. 마치, 일부러 그 정체를 묻기를 바라듯이.

「당신, 아까와는 사람이 다르군요.」

"응? 내가?  멀쩡한데? 그치 오로넬?"

"..."

이번에는 오로넬이 대답을 거부했다. 사람이 네 명이나 있는데도,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맞잖아? 오로넬? 대답해줘."

나디아는 오로넬의 입이 열릴 때까지 치근댔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의 기억이 있는 그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 씹새끼가 진짜!!"

"어억..?"

계단에 대한 불만을 계속 토로하던 오로넬의 신경을 자극해버린 나디아는, 그에게 멱살이 잡힌 채, 계단 아래로 던져졌다.

 번 구르기 시작한 몸은, 두 번, 세 번, 몸이  때마다 가속해갔고, 이윽고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그 몸은 계속해서 굴러갔다.

그들은 계단의 끝에 도착하고서야,  아래에 자욱한 핏자국과, 시체가 된 나디아를 마주할  있었다.

「ㄱ, 괜찮은 겁니까? 이 사람.」

"뒤져야 정신을 차리지 이 새끼는. 야!  일어나냐?"

그의 발에 몇 번 걷어차인 뒤, 머리를 긁적이며 나디아가 일어났다.

"..어? 뭐지? 나  죽었나?"

"그래.  뒤졌으니까, 이번 생은 정신 좀 차리고 살자. 계단에서 다리를 삐어서 뒤지냐."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오로넬이었다.

"아, 그랬어? 창피하네. 하하."

다시 돌아왔다. 그 멍청하기만 한 남자로. 아까의 남자는.. 대체 뭐였던 걸까.

"이제 진짜 다 온 거지?  아니냐?"

오로넬이 가리킨 곳에는, 성벽만한 크기의 석상이 지키고있는거대한 방이 보였다. 어둑하던 통로와는 다르게, 태양이라도 떠있는 것처럼,  방은 밝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그것이 있었다.

징벌의 사슬.

두 명의 신이 꽂아 넣은, 불모의 공간을 영원히 떠돌아야 하는, 저주의 낙인이자, 이 요새를 움직이는 핵.

이것을 부수면, 그 저주는 물론, 이 요새도 기능을 정지한다.

"그래서, 진짜로 부셔도 되냐? 저게 부서지면 너나 니 친구들이나, 다 같이 뒤지는  알고있을 텐데?"

「이것은 저희들의 죄. 남의 것을 빼앗고, 부숴온, 죄악의 상징. 오랫동안 그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아니, 무시해 왔습니다.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 이것이 옳은 일이라 믿고 싶어서.」

「오늘, 동포들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이것과 마주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비로소 그들의 기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보 같은 장로님은 혼자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으로 뛰쳐나가신 거겠지만, 이것은 우리 모두의 죄입니다.」

그 얼굴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이 하려는 것은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다.

"뭐,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막을 이유는 없지."

오로넬은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들의업보를 생각하면, 죽음이 더 편한 선택지이긴 하다.하지만 지금 그런 걸 이야기 해 봤자, 그가 해야 할 일이 늦어질 뿐이다.

"간다."

오로넬은  생각을 접고 앞장섰다. 이제는 다른 것을 생각할 때였다. 누가 봐도 사슬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방과, 그 밖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석상.

어떻게 생각해봐도, 너무나 조용했다. 자신이  신이라는 작자들이었다면, 저것에 절대 간섭할 수 없도록, 손을 써놨을 것이다.

ㅡ!!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쿵!

방의양쪽을 지키고 있는 두 석상들이 움직였다. 그 어깨에서 먼지들이 쏟아지고, 내딛은 발은 땅을 울렸다.

예상은 했지만, 거구를 두체나 상대해야 하다니, 시간이 얼마나 허비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하.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군."

심각한 표정의 오로넬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디아가 앞으로 나섰다.

"..자신 있냐?"

"그럼. 내가 정면에서 주의를 끌고 있을 테니까, 옆으로 돌아서 들어가라고. 폭탄만 설치하면 끝이잖아."

오로넬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폭탄을 내려다봤다.

"들어간 사이에 입구를 막히면 답도 없으니까, 잘 피해 다니라고."

"빨리 가."

대답도 없이, 오로넬은달려갔다. 그 뒤를 데이린과 피치가 따랐다.

나디아는 석상들의 앞에 홀로 섰다. 그들의 창과 검은, 그 크기와 무게만으로도 자신을 죽일 수 있어 보였다.

"하.. 400년 만인가, 이걸 쓰는 건. 좀 아프겠지?"

석상들이, 자신을 향해 걸어왔다. 나디아는 자그마한 단검을 들어보였다.

"400년 동안, 너무 맞기만 했어. 이제 화풀이 하나쯤은 해도 되잖아?"

걸음은 도약이 되고, 그 석상들은 순식간에 나디아에게 당도했다. 그들의 검과 창이,그의 머리를 향해 하강했다.

"내 성을.. 잘도부셨겠다..!"

그리고 그 단검이, 나디아의 심장을 관통했다.

~

ㅡ!!!

뒤에서는 화려하게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젓가락만 한 단검으로얼마나 시간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왕이 그 석상들을 붙들어 놓고 있을 때,  시라도 빨리 이걸 처리해야 한다.

"방이 쓸데없이 왜 이렇게 넓어..! 존나멀잖아!"

망할 놈의 사슬은, 가까이 있는  닿지 않았다. 꼬맹이와 미친년은, 어느새  옆을 달리고 있었다.

척. 척. 척. 척.

근처까지접근을 허용하고서야, 그 발소리에 눈치 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방심하고 있었다. 입구의 석상만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옆이다, 꼬맹아!"

ㅡ!!

꼬맹이의 옆을 노리던 석상이 박살났다. 밖에 있는 두 놈과는 달리, 크기도 인간만하고, 그리 단단하지는 않아보였다.

문제는 그놈들의 숫자였다. 방의 옆면에서 기어 나오고 있는 석상 놈들은, 끝이 없이  숫자를 불려나가더니, 어느샌가 벽을 이루고 사슬의 앞을 막아섰다.

"시발.. 내가 이런 거까지 해야 되냐?"

석상들의 면상을 부수고, 복부를 걷어차고, 그 손길을 피하며, 사슬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 몸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 석상들은 곧바로 빈 공간을 매우며, 퇴로를 막았다.

제대로 탈출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마음 속 한켠에 묻어두었다.

「여긴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빨리 폭탄을!」

"꼬맹이! 넌 저쪽을 막아라! 조금만 버텨!"

망설일 틈은 없다. 곧바로 사슬에 붙어, 품속에 넣어둔 폭탄을 더듬었다. 분명히 여기에 넣어뒀는데, 잡히질 않는다.

씨발! 이럴 때만!!

「오로넬님! 뒤!!」

미친년의 목소리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커다란 그늘이 있었다. 얼굴을 가릴 정도의  그늘이.

이미 피하기는 늦은, 석상의 검이, 내 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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