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과거는 늘, 현재를 따라다닌다 [16] (86/108)



〈 86화 〉과거는 늘, 현재를 따라다닌다 [16]

'이건 먹을 수 있는 버섯. 이건 독버섯. 딱 봐도 위험하게생겼지?'

'진짜다. 먹지도 못 하는 걸  만드신 거에요?'

'어이구, 이놈아! 내가 너희들만 살라고 이런 걸 만드는  아냐? 이 녀석들도 다 삶이 있다고.'

머리가 아프다. 주먹으로 맞았으니 안 아플 리가 없었다.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는 그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그래가지고 마을 놈들을 제대로 이끌 수나 있겠어? 닥치는 대로 죽이고 뺏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에이, 버섯 하나 가지고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잘 할 수 있다고요.'

'그래? 나중에 개판치고 있기만 해봐? 마을 째로 박살내버린다?'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거기다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 어떻게 설치겠어요?'

'흐음.. 그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페어가 부르는구나.'

'네에? 쫌만 더 있어요.아직 궁금한게 많은데..'

'아이 참. 내일도 온다니까?'

'진짜죠? 내일도 오는 거죠?'

'그래. 내일이고 모레고, 맨날 온다니까.'

그리고, 그 내일은 오지 않았다.

나 혼자만이, 영원한 오늘 속에 남겨졌다.

'캉! 캉!'

금속들의 마찰음이 들려온다.

팔과 다리는 이미 소식이 끊긴지 오래다. 오직 눈만이, 희미하게나마 그 앞을 바라볼 수 있었다.

찔끔찔끔, 하얀색의 머리가 보인다.

누군가, 이 몸과 싸우고 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이 목숨을 끊으리라 다짐했건만, 벼랑까지 가지도 못한 채 쓰러졌던 모양이다.

벼랑에서 그 남자를 만났기 때문일까.

도리안.

이제와서는 무엇 때문에 그 남자를 그렇게 찾아 헤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디딘 이 땅에서, 그를 만났다. 그 얼굴을 보았다.

찾아 헤매던 것을, 찾을  있었다.

수 천 년 동안의 오늘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ㅡ!!!

눈이 뜨였다.

흰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몸에, 자신의 피가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이걸로, 저주는 풀렸다.

남은 동포들은, 다시금 이 세계에 종속되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 갈 일은 없다.

「고, 맙다..」

자신에게 세계를 가르쳐준 도리안과, 길을 잘못 든 자신을, 마지막 까지 따라준 동포들. 그 저주를, 동포들을 구해준, 흰 머리의 남자에게.

오디는 감사의 말을전했다.

남자를 바라보던 시선이 점점 허공을 향한다.

달의 그늘사이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그날 보았던  희미한 햇빛을 바라보며, 그 몸은, 닿지 않는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

쩌적.

ㅡ!!

피하기에도, 막기에도 늦은, 눈을 감는 것 밖에  수 없었던  검이, 멈추었다. 곧바로 데이린이 달려와  머리를 걷어찼다.

"오로넬, 괜찮아?"

"어.. 괜찮은데. 이것들 전부.. 멈춘 거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석상들이 멈추었다. 마왕 쪽에서도 더 이상 시끄러운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오로넬은 눈앞의 현상에 대해 머리를 굴리면서도, 그 품에서 폭탄을 찾고 있었다. 여기까지 거칠게 달려온 탓인지, 그것은 깊숙이도 박혀 있었다.

"됐다! 나갈 준비 해! 이제 설치한다!"

쩌적.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천장을 향해 끝없이 이어져있던 그 사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안돼.. 설마..!」

쨍그랑!

신에게 대항한 죄. 그 죗값을, 그 저주를 받은 자는 단  명이었다.

사슬이 끊어진 것은, 저주가 풀린 것은,  가지 사실만을 가리켰다.

「스승님.. 결국 당신은.. 제가 늦었군요..」

쿠구구구구!

요새가 흔들렸다. 동력원을 잃은 그것은, 아래에서부터 착실히,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시발..  됐네."

오로넬은 먼 산을 바라봤다. 지하의 지하까지 내려온 이상, 이미 탈출하기엔 늦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오로넬! 무슨 일이야!? 설마 벌써 폭탄을 터트린 건 아니지!?"

나디아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의 몸은 자신의 피로 가득했다.

"아니. 그냥 좆 됐어."

오로넬은 손에 쥔 폭탄을 들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 그럼 지금.."

"소리 들으면 모르겠냐? 밑에서부터 개박살이 나고 있는 중이다."

"아, 그렇구나."

나디아는 덤덤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죽어 온 그다. 그에겐 그저, 수많은 사망 사유에 낙사 하나가 추가될 뿐이었다.

"이제 스튜 먹으러 가는 거야?"

데이린은 얼이 빠진 오로넬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 씹새끼들. 니들은 떨어져도  뒤진다, 이거냐?"

요란하게도 무너지는 소리가, 그의 판단을 흐리고 있었다. 그는 데이린의 손을 쳐내고, 그 머리를 쥐어흔들었다.

"아.. 이제 모르겠다. 그냥 죽여라, 시발."

그러고는 드러누웠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뒤, 곧바로 그것을 수용한 것이다.

「이 앞에.. 탈출용 통로가 있습니다.. 늦기 전에 그곳으로 가십시오.」

피치는 주저앉은  울고 있었다. 그녀 자신은 탈출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오로넬은 그저 천장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누워있는 바닥이, 바라보고 있는 천장이, 언제 무너질 지도 모르는 일인데도, 그는 모든 미련을 버린 채, 그 붕괴에 동화되고 있었다.

"니 친구들은? 그놈들은 영문도 모르고 뒤지는 거냐?"

「..다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받아들이는 분들도있을 테고, 도망치는 분들도 있을 테죠..」

"흐음.. 역시 띠껍네. 존나 띠꺼워."

오로넬은 상체를 일으켰다. 그 손에는, 아직 폭탄이 쥐어진 채다.

"이쪽이 바깥 방향이냐, 저쪽이 바깥 방향이냐?"

몸을 완전히 일으킨 오로넬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벽들을 가리켰다.

「..저쪽입니다만.. 그건 왜..」

펑!!!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오로넬은 곧바로 폭탄을 진 뒤, 기폭 시켰다.

후웅ㅡ!!!

차가운 상공의 바람이 느껴졌다.  아득한 아래에는, 그들이 돌아가야 할 술집이 보였다.

오로넬은 피치에게로 다가가, 그 머리를 붙잡았다.

"머리 좀 길러라. 잡을 머리도 없네."

그 머리를 통째로 붙잡은 그는, 그녀를 끌고 구멍이 난 벽을 향해 걸어갔다.

「놔 주십시오. 저는..」

"지금까지 존나 뻔뻔하게 사람을 죽여 놓고, 마을 사람 몇 놈 뒤졌다고 뭐? 뒤져서 책임을 져? 죗값은 그렇게 일시불로 지불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벽에 도착한 오로넬은,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듯, 그 머리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커흡..!」

"아프냐? 그게 죗값의 올바른 지불 방법이다. 어떻게든 아둥바둥 살아서, 끊임없이 떠올리고, 끊임없이 후회하고, 뒤질 때까지, 평생을 그 기억에 고통 받아라. 그렇게 할부로 야금야금 갚아가는 걸 속죄라고 하는 거다. 이 등신 같은 년아."

「저는.. 정말.. 살아도..」

피치는, 대답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빠져나갔다.

"그래. 지금부터 미리 우는 연습 좀 해라. 매일 같이 존나게 울어재껴야 될 테니."

피치를 내버려두고, 오로넬은 뒤로 돌아섰다.

"마왕, 너부터 가라.  어차피 안 뒤잖아. 떨어지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봐야겠다."

"어, 어?"

"빨리! 시간이. 없다, 고!"

-으아아아아악!!!

점점 작아지는 나디아의 모습과 목소리로, 오로넬은 낙하시간을 계산했다.

"이제  씩 탈출한다. 막대기. 넌 나랑 저년 중에 누굴 태울 거냐."

「왜 이몸ㅇ..」

"그럴  알았다, 시발. 넌 나랑 간다. 지랄하면 부셔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꼬맹이, 넌 저년을 데리고 뛰어내린다. 저년 먼저 땅에 떨어지면 안 되니까, 똑바로 들고."

"알았어."

쿠구구구!!

"뛰어!!"

그들이 뛰어내린 직후, 붕괴가 그 바닥을 집어삼켰다. 가루가  석상들이, 지면을 향해 흩어졌다.

「윽!! 짐승 네 이놈! 왜 이렇게 무거운 것이냐!!」

"난 분명히 물어봤다? 니가 기회를  잡은 거지."

「으으윽..!!」

가느다란 빛이, 칠흑뿐인 하늘을 밝혀왔다.

오로넬은 고개를 들어, 무너져가는 요새를 바라봤다.

"좆같은 태양 새끼. 좀만 더 일찍 기어 나오지. 깜깜해서 뒤지는 줄 알았네."

ㅡ!!!

그러나, 그것은 태양의 빛이 아니었다.

요새의 상공에서 일렁이고 있는 그것은,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저건.. 사람..?'

그 빛의 중심에, 사람의 형상이 보이는 듯 했다.

ㅡ!!!

다시 한 번,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의 빛을내뿜으며.

그것은, 무너져가는 텅 빈 마을을 비추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