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그렇게, 모든 것은 등신이 된다. (87/108)



〈 87화 〉그렇게, 모든 것은 등신이 된다.

"아오, 이놈의 은행. 대체 언제 없어지냐."

지독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그건 분명  발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피하지도 않고 은행을 밟아대는 저 꼬맹이의 발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너한테 하는 말이니까 그만 좀 밟아라, 그거."

"그치만, 가는 길에 있어."

"피하라고."

"피하면 늦어."

"뭐가 늦는데."

"가게에 늦어."

"몇 분이나 늦는다고.. 야! 그만 밟으라고!"

꼬맹이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달려갔다. 그 앞에 있는 은행들은 끔찍한 몰골로부셔졌다.

악취가 올라왔다. 나는 이를 악 물고, 꼬맹이의 뒤를 쫓아갔다.

"어서옵쇼, 오늘은 일찍 왔네."

"이 미친 꼬맹이가 은행이란 은행은 죄다 십창을 내서 뛰어왔지."

"스튜 줘, 스튜."

"예~"

-하하하!

-야, 내놔!

등신들은 평소대로 등신짓을 하고 있었다. 몸에는 하나씩붕대를 처감고선, 여기가 병원인지 술집인지 알 수가 없다.

"이야, 몇 번을 봐도 깨끗하네. 얼마나 한 짓이 없으면 까진 상처 하나도 없냐?"

"넌 몇 번을 처맞아도 안 닥치네? 너도  꼴로 만들어줘?"

마법사가 꽁초를 던졌다. 그것을 가볍게 피한 뒤,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오! 오로넬 왔어? 오늘은 니가 꼴찌라고."

참고로지금은 오후 1시다.

"이 미친놈들이, 뭔 대낮부터 술을.."

"어이. 그 옆을 보지마라. 보면 죽는다. 죽인다."

용사의 면전에 욕을 뱉으려는 찰나에, 테이블의 끝에서 흰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상당히 위협적이고 강압적이었다.

하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새끼들의  따위는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 새끼 왜 옷을  입고 있냐."

그 앞에는, 웃통을 까고  위를 붕대로 덮어 놓았을 뿐인 몸뚱아리가 서있었다.

"옷 입으면 아프잖아."

"그걸 시발 말이라고.."

"이새끼!!! 그걸 봤겠다!!!! 눈알을 뽑아주마!!!"

바닥을 부술 기세로, 변태 하나가 달려왔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붙잡고 쥐어뜯기 시작했다.

"야."

"응?"

"보고 있지만 말고  달라고. 너 때문이잖아."

"응?  때문이야?"

대체 이 새끼들은 왜 말을  하면 모르는 거지.

"지크 아저씨. 오로넬이 하지말래."

용사의 말에도, 흰놈은 꿋꿋이 머리를 뜯어댔다.

몇 마디의 말을 더 걸어도, 흰놈은 멈추지 않았다. 용사는 그대로 그놈에게 다가가, 하나뿐인 팔을 붙잡았다.

"아저씨. 그만."

흰놈의 손이 떨어져갔다. 머리를 붙잡힌 탓에 뒤를 보진 못했지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보건데, 이건 분명히 닿았다. 그게 아니고선  변태같이 떨리는 숨소리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네.."

나지막한 한마디를 뱉은 뒤, 변태는 다시 구석으로 사라졌다. 가슴하나 닿았다고 튀기는.

"그래서 그 꼴로 마을에서부터 여기까지  거냐? 아프다는 좆도 아닌 이유로?"

"아픈데 좆도 아니라니! 환자는 절대안정이란 말도 몰라?"

"그건 니 꼴리는 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집에 처박혀서 나오지 말라는 말이거든?"

"아무튼! 아파서 벗었어! 다 아물 때까지 이러고 다닐 거야! 누구도 날 막지 못해!"

"누가 뭐라 하냐?  맘대로 해라,  변태 같은 년아."

흰놈이 죽일 인간들이 산을 이루겠군.

"어흐, 늙으니까 소변 조절이 안 되서 힘들구만."

바지를 문지르며할배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저 할배한테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할배, 할배는 어떻게 탈출한 거야? 그때."

"그때? 아아, 그때 말인가? 음, 그땐 힘들었지. 설마 급히 들어간 화장실에 휴지가 없을 줄은.."

"아니 그거 말고."

"음? 그때 말고 어딜 탈출한 적은 없네만? 흠.."

"저 병신 같은 돌멩이에서 어떻게 탈출했냐고."

구멍이 뚫린 천장을 가리켰다. 그 위에는 무식하게 크기만 한 돌멩이가 여전히 떠있는 채다.  구멍은 알바 없다. 아무튼 내가 한 게 아니니까.

"탈출이라니, 저렇게 멀쩡한데 탈출은 왜 하나? 주인장이 열어준 문으로 당당히 걸어 나왔다네."

"중간까지는 개박살나고 있었잖아. 존나 급박했잖아. 그때도 탈출할 생각을 안했다고?"

이 정도면 집에서 불이 나도 그대로 잘 것 같은데, 이 할배.

"뭐, 주인장이 알아서 해줄 거라 생각했네. 실제로 그렇게 했고."

"그럼 역시  눈부신 뭐시기는.."

"그래. 주인장이라네."

등신들이 하도 많아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 등신들을  곳에 모아둔,  남자에 대해서.

무너져가는 땅 덩어리를 붙잡아, 다시 공중으로 띄울 수 있고, 순식간에 어딘가로 이동할  있는 문을 만들  있는남자..

"자, 스튜 나왔습니다~"

 힘을 가지고도, 이딴 쓰레기밖에 만들어 내지 못하는 남자.

뭐, 조각이라도  거겠지.

이딴 남자를 한 순간이라도 신이라고 생각했던 게 창피해졌다.  같은 건, 날 이곳에 박아 넣은 순간, 이미 뒤진 지 오랜데 말이다.

"아, 할배. 그것도 들었어? 요즘 유지군 쪽에 엄청난 놈들이 붙었다던데."

"아 그거 말인가? 들었다네. 무려 하늘을 나는 요새라고 하더군. 화력은 물론이고,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을 거두어 주기까지 한다니, 아주 든든할 따름이야."

그 요새가 저 돌멩이란 걸, 이 할배는 과연 알까?

생각해보니 그 새끼들도 웃기는군. 속죄인지 뭔지 몰라도,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건 같잖아. 좀 더 건전한 속죄를 하란 말이다.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닌 모양이다.

"오로넬 씨, 럼주 나왔어요."

"어. 그래."

"데이린은 오늘도 귀엽네~"

 새끼만 봐도 그 말이 충분히 증명되는데, 왜 이제서야 깨달았지.

"이제 꺼져. 더러우니까."

"맞아. 꺼져."

"허억..!"

내 말은 이제 들리지도 않는지, 꼬맹이의 꺼져에만 반응하는 제리스였다.

"보셨어요, 오로넬 씨? 데이린이 저한테 말을! 말을 걸었어요!"

근데 그 반응을 나한테 한다. 때리고 싶네, 진짜로.

"꺼지라잖아, 이 새끼야. 빨리 안 꺼져? 술잔으로 맞아봤냐?"

"아, 아, 아. 갈게요, 갈게요! 또 봐 데이린!"

그래도 뭐. 이상하게 고쳐지는 것 보다는, 차라리 저렇게 예측되는 여전함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등신 같은 일상이 익숙해져버린 자신의 모습에, 갑자기 거지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 왜 나한테만 이런 좆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니가 좆같은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 거 아닐까?"

옆자리에서 좆같은 말이 들려왔다. 하여튼, 푸념 하나도 마음대로 못 하는 곳이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할머니?"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죽인다고 했지, 내가..?"

"여기선 사람 못 죽이는 거 알지?"

"집 갈 때 조심해라? 니 대가리에 존나 큰 돌이 떨어질 예정이거든?"

"아유, 어련하시겠어요?"

"이 씨ㅡ"

-ㅁㅇ라ㅣㅂ다ㅚㅂ시ㅏㅅ!

 가게는, 평소처럼 떠들썩했다.

실없는 말들에, 웃고, 화내고, 때로는 울고.

몸에 해롭기만  뿐인 술에, 목숨을 걸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가게는 이미 등신들로 가득 차있다.  이상 그 문을  등신은 없었을 터이다.

「아.. 안녕하세요오..」

시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은 못했던 여자의 등장에, 오로넬은 당황했다. 하지만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이 곳은, 이 정신 나간 가게는, 본래 그러한 곳이니까.

"어서옵쇼~"

그렇게 그녀는,  한명의 등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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