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거짓말을 계속하다 보면, 지구 평면설도 믿게 된다 [1]
"오로넬!! 큰일 났어!!"
오늘도가게는 평화로웠다. 등신들은 지저귀고, 쓰레기 같은 음식이 피어나고..
"큰일 났다고!! 오로넬!!"
마법사는 지랄을 했다.
"아오!! 뭔데, 뭐! 아무것도 아니기만 해봐라? 고순조 먹인다?"
"미리 준비해둬야겠군."
젠은 조용히 고등어를 가지러 갔다.
"아, 으음.. 그래! 큰일이야, 큰일!"
팔짱을 낀 팔을 두드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옆에서 짖어댈 뿐이라면 얼마를 하든 신경 쓰지않는다. 그런데 그 짖는 걸 보라고 지랄하는 건,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다.
"사, 사실. 나, 미래에서 왔어."
"얼마나."
"어? 어어.. 한 10년?"
"그래서."
"조, 조만간 큰일이 일어나. 그걸 막으려면 내 말을 들어야 돼."
"흐음.. 그래? 큰일 날 걸 아는 걸 보니 진짜로 미래에서 왔나보네."
"고등어 순살 조림 나왔습니다."
"자, 니 꺼다."
마법사의 자리 위로, 쓰레기가 내려왔다.
젠 이새끼, 설마 마법사라고 제대로 된 걸 만든 건 아니겠지.
"으윽, 냄새!"
아니었군. 역시 이 녀석의 고순조 혐오는 '진짜' 다. 그건 이미 신념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대체 넌 왜거짓말에 안 속는 거야? 재미도 없게. 우욱."
먹으란다고 진짜 먹네.
"구라를 쳐도 말이 되는 걸 처야 속는 척이라도 하지. 미래 같은 소릴 씨불이고 있는데, 누가 속겠냐고 그걸."
그러고 보니 이 새끼 미래에서 온 거 맞잖아. 정확히는 온 건 아니고 보고왔지. 저 조각으로. 천 년 뒤라고 했었나.
"미래가 뭐 어때서! 같은 거짓말이라도 얼마나 설레는데!"
그럼 더 나쁜 거 아닌가?
"이건 진짜 니가 이상한 거라니까? 니가 한 번 해 보라고. 미래 이야기에 얼마나 잘 속는데!"
"시발, 고순조 하나 더 걸어?"
"걸어, 걸어. 나중에 맛 들려서 따라하지나 마라?"
이 새끼가 진짜. 하루에고순조 두개를 처먹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야, 꼬맹아."
곧바로 꼬맹이의 머리를 두드렸다. 입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숟가락을 붙들어 둔 채, 꼬맹이는 고개를 돌렸다.
"나 사실 미래에서 왔다."
딸그랑!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미..래..?"
시발. 이거 왜이래.
"..가 뭐야?"
이놈이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 다행이다. 하마터면 시작하자마자 쓰레기를 먹게 될 뻔했네.
"그냥 그거나 계속 먹어라."
꼬맹이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속으로 숟가락을 넣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래. 쓰레기를 먹느냐 마느냐가 걸린 일이다. 이렇게 적당히 쑤시는 건, 내 명줄을 쑤시는 것과 다름없다.
신중해야 한다. 이 중에서, 가장 거짓말에 안 속을 것 같은 놈을 찾아야 한다.
용사? 이놈은 안 된다. 이놈은 내가 여자고 꼬맹이가 남자라고 해도 믿을 놈이다.
흰놈? 확실히 거짓말에 속을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이놈은 말을 걸기가 싫다. 그냥 이놈은 아니다. 목숨이 걸린 싸움에서도 낭심을 걷어차지 않는 이유와 같다.
그럼 할배? 아.. 이 할배도 속지는 않을 것 같은데, 뭔 개소리를 해도 진지하게 듣는단 말이지. 판정패의 가능성이 농후해보이니 일단은 보류해 두도록 하자.
제리스? 이놈은 아까 마법사와 내가 말하는 걸 들었을 텐데.. 이놈이 나한테 엿을 먹이려고 속는 척을 할 수도 있다.
하.. 도움이 되는 새끼가 하나도 없다. 이럴 때 마부만 있었다면.. 비교적 정상인에 눈치가 빠른 그놈만 있었더라도..!
"어이구, 왜 그러시나 오로넬 씨? 열심히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네? 왜? 누구한테 해야 안 속을지 계산하고 있어?"
"아아니? 전혀? 갑자기 이딴 말을 하려니 소름이 돋아서, 마음의 정리를 좀 하고 있던 건데?"
"그래? 그럼 시트린한테 해봐."
당했다.
머리를 너무 오래 굴렸다. 빨리 아무한테나 질렀어야 됐는데..! 용사만 아니면 됐는데..! 용사라니, 용사라니! 저놈은 손가락 마술만 보여줘도 뒤로 넘어가는 놈이란 말이다!!
"뭐해? 빨리 안 하고. 아무도 안 속는 거니까, 시트린도 안 속겠지?"
"그으럼. 이딴 거에 아무도 안 속는다는 걸 내가 보여주지."
후.. 그래. 이렇게 된 이상, 하는 수밖에 없다. 진짜 말도 안 되는 말을 씨불이면, 아무리 저놈이라도 자길 놀리는 줄 알겠지.
"야, 용사."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네 놈이나 둘러앉은 테이블에서, 그것도 선채로, 거창하게도 술을 마시고 있는 용사였다.
"응? 왜?"
아. 이 새끼 눈풀렸네.
벌써부터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 불판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고등어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 했다.
"나 사실. 미래에서 왔다."
깡!
용사의 술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새끼들은 뭘 떨어뜨리는 걸로밖에 놀랐다는 걸 표현할 수 없는 건가?
"대..대.."
대?
"대단해!! 몇 년 뒤의 미래에서 온 거야?!"
"..10년."
씹년이 아니다. 십년이다.
마법사가 등을 찔렀다. 아직. 아직난 포기하지 않았다.
제발. 그걸 물어봐라, 용사. 미래에서 온 사람한테 물어 봐야만 하는 그걸..!
"그럼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아는 거야?!"
됐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들으면 지가 속고 있단 걸 깨달겠지.
"그래. 조가 말을 타고 슬라이딩을 하면서 들어와. 그리고 바닥에서 원을 그리면서 존나게 구르지."
'야..! 그런 말하면 누가 봐도 거짓말인줄 알잖아!!'
등을 찌르기만 하던마법사의 손이, 주먹이 되어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로드, 거기 아니야! 거기 돌!! 으악!!!
어? 이거 마부 목소ㄹ..
끼이이익ㅡ!!
바닥이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한 연기가 세어 올라왔다.
그것은, 이몸이 살아온 세월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슬라이딩이었다.
"으악!!! 내 머리!! 천장에 박았어!! 악!!"
그리고 들어오며 머리를 부딪힌 마부가, 그 머리를 붙잡은 채, 바닥을 굴렀다. 정확히 원을 그리며, 정확히 열 바퀴를.
깡!
용사의 술잔이 다시 한 번 곤두박질쳤다.
"진짜였어..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시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거짓말인줄 알았으면 술잔은 왜 떨궜냐고 이 새끼야!!
어느샌가, 마법사는 주먹질을 멈추고 웃음소리를 보내오고 있었다. 고등어의 냄새가 점점 쓰레기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아니.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그래! 하늘에서 마왕이 떨어져! 비명을 지르면서!"
나조차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지껄여서, 이놈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게 해야 했다.
-아아아아아악!!
쿵!
그리고 거짓말처럼 마왕이 떨어졌다. 아니 거짓말이 맞긴 한데, 이건 현실이잖아.
용사는 술잔을 줍고 있었다. 또 다시 그걸 떨어뜨리기 위해.
"그리고 보라놈도 떨어져!"
그 잔을 놓치기 전에,황급히 뒷내용을 덧붙였다.
-꺄아악!!
"..빨간놈도!"
쿵!
"..파란놈도!"
쿵!
"이 씹새끼들 대체 뭐냐고!! 니들 어디서 듣고 있냐?!"
"아아악..! 꺼내줘..!"
가장 아래에 깔려있는 마왕의 단말마가 들려왔다.이 새끼들..이 새끼들 대체 뭐지?
이젠 용사만 놀라는 수준이 아니라,아예 가게의 모든 등신들이 이쪽을 쳐다보며 술잔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거의 폭소를 하고 있던마법사는, 기절이라도 한 건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면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고등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시간을 끌기위해 마법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깡!
이 새끼도냐..!
"오, 오로넬 너..! 진짜 미래에서..!"
"으, 응?어, 맞아."
그럼 이거. 내기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기 하자는 놈이 속아버렸는데..? 애초에 지금, 뭔가 내가 말하는 대로 되고있지 않나..?
이거 설마..?
"그래서! 그래서 10년 뒤에는 어때!? 나는? 드디어 마법사가 아니라 위대한 과학자로 불리게 되는 건가?!
어째 이 거짓말을 처음 들고 온 놈이 제일 잘 속은 것 같다.
일단 뭐라도 씨불여야겠지.
"아니. 넌 10년 뒤에도 이 술집에 박혀있어서 사람들에게 잊혀진다. 아무리 나이를 처먹어도 늙질 않아서, 딥다크의 마녀로 불리게 되지."
"마녀..!"
10년 동안 여기서 술만 퍼마신다는 게 더 충격 아닌가.
"마녀는 나쁘지 않네! 뭔가 연구를 하는 느낌이 들잖아?"
마법사랑 뭐가 다른 건데.
"아, 그럴 때가 아니지! 너, 미래에서 왔다는 건.."
마법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심각해지고 싶은 것일 거다. 그도 그럴게, 이 녀석이 나한테 똑같은 거짓말을 할 때 했던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곧 큰일이 일어나는 거 아니야?"
그말을 듣기도 전에, 내 머리는 회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