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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화 〉달리지 않는 자에게 내일은 없다 [1] (90/108)



〈 90화 〉달리지 않는 자에게 내일은 없다 [1]

'달리기.' 태고 이래, 지상의 모든 동물들은 그것에 의해 종의 존속과 쇠퇴를 함께 해왔다.

포식자들은 자신의 뛰어난 무기와 함께, 이 달리기를 정복했기 때문에, 느려터진 초식동물들을 조질  있었고, 달리기를 포기한 초식동물들은 영원히 포식자들에게 처맞는 운명을 걷게 된 것이다.

뭐, 하도 처맞은 탓에, 맞는 것에 최적화 된 몸으로 진화해, 포식자들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초식동물들도 있지만, 그래봤자 그놈들이 할  있는 건 맞는 역할일 뿐, 때리는 역할은 평생토록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달리기 시합하자!"

물론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니 대체 거기서 왜 그러니까가 나오는데? 늑대랑 말 중에 누가  빠른지 얘기하고 있던 거 아니었냐?"

 용사라는 놈의 대화에 공감이란 없다. 상대가 원하는 말을 하게 해주고, 듣기까지 하지만, 그 말이 끝나면 어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뿐이다.

"그러니까 달리기 시합을 하자는 건데?"

그놈의 그러니까는 어디에 갖다 박아도, 말이 되는 줄 아나보다.

"혹시 달리기가 싫어서 그런 건가요, 오로넬 씨? 확실히 술래잡기 때도 오로넬씨가 제일 느리긴 했죠."

"그땐  때문이었거든? 눈만 없었어도 한 놈한테 술래 넘기고 마을로 돌아갔는데, 니들이 운이 좋았지."

"그럼 달리기 하는 거야?"

"아니. 그리고 그럼도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라고, 미친놈아. 다리 보다 머리를 좀 처움직여라 넌."

"아아. 아아아! 달리기 시합 하자아아, 하자아ㅡ!"

다 큰 어른이 바닥에 드러누워서, 그것도 몸을 굴리며 떼를 쓰고 있는  보고 있는 사람의 기분을 서술하시오.

정답은 매우 좆같다이다. 그냥 좆같다도, 상당히 좆같다도 아니다. 아주 꼴도 보기 싫은 좆같음이다. 저딴 놈이 영웅이라고 불리고 있다니. 동대륙 놈들도 어지간히 미친놈들이다.

"달리기 시합이 뭐야?"

옆자리에선 또 기초상식 문제를 출제하고 있었다.

"넌 대체 아는 게 뭐냐?"

"달리기는 알아."

"그럼 달리기는 뭔데?"

"빠른 거야. 달리기를 하면 빨라져."

저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시합이 뭐야?"

이 새끼도 아무데나 그러니까를 박네. 따라 해도 저딴 놈을 따라하냐.

"그건 말이지, 데이린. 시합이라는 건, 실력을 겨루는 거야!"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꼬맹이에게 얼굴을 들이대는 용사였다.

"실력?"

"그러니까 달리기 시합은, 누가 더 빠른지 겨루는 거지!"

"..그걸  겨루는 거야?"

"주인장! 스튜 하나, 맛나게 해서 이쪽 테이블로!"

꼬맹이의 머리를 미친 듯이 쓰다듬었다. 이 녀석이 이토록 기특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명치를 처맞은 용사는,  머리를 쥐어짜며 그 해답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딴 꼬맹이한테도 말문이 막힐 정도라니, 용사가 되지 못했으면 '저건' 대체 뭐가 됐을까?

"오로넬. 머리."

"뭐."

꼬맹이의 머리를 만졌던 손에는 정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머리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꼬맹이의 머리를 헝클어 놓았다.

"하지 마."

"싫은데."

"..뭐 하냐, 너."

한창 꼬맹이의 머리를 조지며 즐기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마법사가 기분 나쁜 목소리로 흥을 깼다.

"조용."

틱!

손에 흐르는 전기 마법으로 혼쭐을 내줬다.

진짜 마법을 본  인상 깊었는지, 나는 어느샌가 마법사에게 멱살이 잡혀 있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공공연한 장소에서 마법을 보여주는 건 금기였던 모양이다.

"어.. 아니?"

난 미치지 않았으니 가벼운 부정을  본다.

"정전기 튈 거 알고 일부러 했지! 뒤진다, 진짜?!"

"무슨 소리지? 정전기? 이건 전기 마법인데?"

틱!

이번엔 진짜 튈 줄 몰랐다. 그냥 아까 했던 손동작을 다시 했을 뿐이다. 근데 그걸 상대가  리가 없었다.

"아, 아, 아! 이번엔 진짜 실수! 실수우!! 장난이었어, 장난이었다고!"

마법사에게 붙잡힌 손가락에서, 화염 마법이 발현되기 직전이다. 기분이 어지간히 더러웠는지, 거듭된 사과에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 생각났어, 데이린!"

찌그러져있던 용사가 일어났다. 쓰지도 않는 머리를 얼마나 혹사시킨 건지, 머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법사가 한눈을  그때, 재빠르게 손을 당겨, 그 손가락을 구출해 낼  있었다. 마법사의 손이 뒤늦게 탈출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내 손가락은 주먹 속으로 도망간 뒤였다.

"아, 아. 저거부터, 저거부터  번 들어보자고. 저놈이 뭐라 할지 안 궁금해?"

마법사는   눈알을 굴리더니 이내 자리로 돌아갔다.

"별로 재미없는 말이면 패던  마저 팰 거니까, 전기 마법인지 뭔지 준비해 두는  좋을 거다, 이 새끼야."

거지같은 말을 남기고 말이다.

근데 저렇게 대놓고 팰 거라는 말은 무슨 깡으로 하는 거지? 손가락도 풀려났는데, 내가 그냥 맞아만 줄 것 같나? 그럴 바엔 그냥 싸우지.

뚜벅. 뚜벅.

용사는 자신만만하게 꼬맹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스튜를 먹고 있는 그 몸을 돌려,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해답을 들려줬다.

"겨루는 건 보상을 걸고 하는 거야! 이긴 쪽이 진 쪽에게서 합당한 보상을 받는 거지!"

"보상..!"

꼬맹이의 눈이 빛났다. 선물 때도 그렇고,  이렇게  받는 걸 좋아하는 거냐, 이놈은.

말해두는데, 내가 이놈한테 돈을 안 쓰는 게 아니다. 돈 같은 건 쓰레기처럼 넘쳐흐르니,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당부해도 저놈이 필요 없다고 하는 거다.

"그래, 보상. 평소와는 다른 특제 스튜가 먹고 싶니 않니, 데이린?"

용사는 고개를 들어 주인장과 눈을 마주쳤다.  눈은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고, 곧이어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봐야 고기나 몇 쪼가리 더 넣고 특제라고 우기겠지.

"시합.. 하고 싶어."

"봐 오로넬! 데이린도 한다잖아! 그럼 너도 하는 거지?"

"아니."

내가 왜.

"왜!! 넌 특제 스튜가 먹고 싶지 않아?!"

"어."

꼬맹이 말곤 아무도  먹을  같은데.

"그럼 갖고 싶은 게 뭐야! 니껀 내가 해 줄게!"

"없는데."

부수는 것밖에 못하는 놈이.

"뭐라도 있을 거 아냐! 아무거나 하나만 말해 보라고, 아무거나! 이 몸을 더듬어도 좋다고!"

"안 꼴리는데."

이 새낀 대체 왜 이딴 거에 자기 몸까지 거는 거지?

"그건 니가 이 아래를 본 적이 없어서 그래! 나도 벗으면 굉장하다니까?"

"전에 봤는데."

"그땐 붕대를 감고 있었잖아! 안되겠어. 너  봐!"

용사는 곧바로 셔츠에 손을 가져갔다. 그 첫 번째 단추가 순식간에 열렸음에도, 누구하나 나서서 그걸 말리는 놈은 없었다.

단  명.  머리의 어떤 신사를 제외하고 말이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바로 옆자리에, 가게의 어떤 등신들보다 눈을 번쩍이며 그걸 바라보고 있는 마법사가 있는데, 굳이  뒤에 서는 흰놈이었다.

"네 녀석이겠지? 시트린에게 저런 저급한 일을 시킨 건."

지가 스스로 하고 있는 건데.

"아저씨이이!!"

내 머리를 붙잡고 있는 흰놈을 발견한 용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놈에게 향했다. 자기한테 유리한 전장을 택하다니, 악랄한 년.

"으으읅ㄱㄹ. 오로넬이, 오로넬이..!"

"걱정하지 마라 시트린. 이 변태는 내가 책임지고 죽여주마."

변태는 입 꼬리가 씰룩거리고 있는 당신이 아닐까요.

"죽이지 말고, 자발적으로 달리기 시합에 참가하게 해줘, 아저씨."

이딴 게.. 용사?

"어이. 들었겠지? 달리기 시합에 참가하고 싶다고 해라. 그럼 편하게 죽여주마. 네놈은 똑똑하니, 거절하면 어떻게 될지도  알겠지?"

시발 뭘 골라도 뒤지는 거냐.

이런 답도 없는 상황이 닥쳐도 걱정하지 마라. 방법은 늘 있다. 이런 거지같을 때에만 쓰는 비장의 수. 그건 바로..

"..조건이 있다."

"말해봐라."

"시합은  명이서, 두 팀으로 나눠서 했으면 좋겠군."

방법을 생각할 머릿수를 늘리는 것이다.

"오로넬! 드디어 할 마음이 들었구나! 너라면 그럴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는, 시발. 그렇게 만들어 놓고 이 새끼가.

"보자.. 나랑 데이린이랑, 오로넬이랑, 아저씨가 있으니까.. 앞으로 여섯 명만 더 있으면 돼!"

흰놈도 어느샌가 숫자에 들어가 있다. 저 놈은 저딴 불균형적인 몸뚱아리로 뛸 수나 있나?

아, 잘 뛰었지. 술래잡기 때.

"으, 으음~ 나도 갑자기 달리기가 하고 싶네?"

마법사가 어색하게 참가 의사를 밝히며 몸을 일으켰다.

"어, 어. 나도."

"저도ㅡ"

그리고 순식간에 여섯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에 있는 젠까지 손을 들고선, 마치 눈치게임이라도 하는  같았다.

"이제 됐군."

흰놈이 말을 끝마치자, 그놈을 향해 무언가가 모여들었다.

허공을 가르며 그놈에게 도착한 여섯 개의 검들이, 몸을 합치며 하나의 정육면체가 되어갔다.

저게 눈치게임의 정체였구만.

그럼 여기서 진심으로 달리기 시합이 하고 싶은 놈은 저거 하나뿐인가.

기쁜 얼굴로 지원자들의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저거'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남은 하루를 다 조졌다고 선언하듯이, 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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