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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화 〉뭘 해도 잘되는 놈이 있듯이, 뭘 해도 안되는 놈도 있다 [3] (97/108)



〈 97화 〉뭘 해도 잘되는 놈이 있듯이, 뭘 해도 안되는 놈도 있다 [3]

"들은 대로야, 시트린. 날 죽여줘. 넌 용사잖아. 주변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을 살려둬도 되는 거야?"

그 말을 전하는 그놈의 얼굴은 감격으로 가득 차있었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어..? 난 행복했다니까?"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인생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잘 들어 시트린. 내가 만든 무기를 산 사람들은 죄다 죽었어. 내 저주 때문에.  그걸 알고서도 판 거야. 난 악인이라고!"

자신이 나쁜 놈이라는 걸 손수 설명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인간이 정말 간절하면 저런 짓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난 살아있는데..?"

더벅머리가 고개를 들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고작 두 마디 만에 고비가 오다니, 이 가게에 그렇게 오래 있을 재목은 아닌 모양이다.

"저주 같은 게 아니야, 웨스."

용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더벅머리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어, 엇.. 무슨.."

"나는 너의 무기를 쓰면서 더 넓은 세계에 대해  수 있었어. 용사가 될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 니가 저주라고 부르는 그것에, 나는 구원 받았어."

용사의 손이 더벅머리의 어깨를 넘어, 허리를 휘감았다. 더벅머리는 당황하더니, 이내 팔을 움직여 용사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고마워."

 등을 토닥이며, 용사는 더벅머리를 달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간을 끌고 있었다.

'빨리!! 뭐라도  해 주라고!!'

얼굴에 핏대를 새운 채, 이쪽에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이딴 상황엔 뭐라고 해줘야 되냐?"

"몰라. 니가 어떻게 해 보라고. 개소리 잘 하잖아."

개소리는 자기가 더 잘하면서.

일단 저놈 상태를 보니 상당히 '진심' 이다. 진지하게 죽음을 바라고 있다. 개소리든 뭐든, 일단 뭐라도 말을 하긴 해야 한다는 거다. 이대로 가다간 용사의 병따기 쇼를 실시간으로 관람당해 버릴 테니.

"크흠.."

"그러니까, 날 죽여줘."

늦었다.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내 기침소리는, 더벅머리의 들뜬 목소리에 싸늘하게 잊혀졌다.

"응..? 웨스? 고맙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고맙지. 니가 나한테 '구원' 받았다고 해줬는걸?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할 때야. 눈에는 눈으로, 구원에는 구원으로. 자, 어서 그 검으로 날 구원해줘."

용사가 마른 침을 삼켰다. 더벅머리와 이쪽을 번갈아 쳐다보는 그 눈은, 몇 마디의 말보다 훨씬 많은 욕을 담아내고 있었다.

"아, 아! 그러고 보니 용사, 너. 요즘 검을 하도  써서 녹슬었다며? 그딴 걸론 베일 것도  베이지!"

맞장구를 치라며 마법사의 머리를 때렸다. 어떻게 되든 간에, 우선 저놈을 구해놔야, 뒷감당이든 뭐든 할 수 가 있다.

"맞아, 맞아.  마을에 있는 대장간까지 가지 않으면  되겠는 걸!?"

"아,  정도 거리면 나랑 로드가.."

"넌 닥쳐!!"

의자 째로 마부를 걷어찼다. 이 새끼는 평소에는 눈치를 잘만 보면서,  번씩 자다 깬 미친놈처럼, 이 악물고 설쳐댈 때가 있다.

"흐음. 사실이야, 시트린?"

"으, 응.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됐어.."

"그럼  수 없네.."

용사의 몸을 놓아주는 더벅머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 체념이라고는 1도 깃들어 있지 않다.

"..이쪽의 검을 쓰는 수밖에!!"

그렇게 외치며, 그놈은  오른 다리에 달려들었다. 단검을 숨겨둔, 바로 그 다리에 말이다.

"이, 이 변태 같은 년이, 안 떨어져?  떨어져?"

이상한 년에게 바지 속을 뒤적거려지는 것과, 단검을 빼앗기기 싫다는 의지가 합쳐져, 나는 그놈의 뺨을, 그냥 치는 것도 아닌, 있는 힘껏 후려치고 있었다.

"내가, 엌! 단검을, 엌!하루 이틀..   알아..!?  안에 단검을 숨겨 놨지!?"

"손 안 떼면 이제 주먹으로 팬다? 빨리 안 놔?"

"때려! 죽을 만큼 때려줘!! 날 죽여줘!!"

이토록 완성되어 있는 미친놈은 오랜만이다. 처맞을 수록 그 눈은 흥분으로 물들었고, 그 흥분을 따라 얼굴에도 붉은 빛이 맴돌았다.

"어! 어?! 오로넬 너,  그 녀석을.. 어떻게 패고 있는 거야?"

"어."

"어."

마법사가 놀랐고, 때리고 있는 나도 놀랐으며, 맞고 있는 더벅머리마저도 놀랐다.

땡그랑!

그리고 마침내, 주먹을 처맞으면서까지 바지를 더듬던 더벅머리의 승리를 알리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그, 그럴 리가.. 당신.. 이 단검..!"

기뻐하며 난리를 쳐야 될  목소리에는, 당혹과, 의문만이 가득했다.

"말해! 어디서 이걸.. 할아버지의 단검을 손에 넣은 거야!"

"받은 건데."

그보다 할아버지라니, 설마 이 여자가 썬더크로스의 손녀라던가 그런  아니겠지.

"받았을 리가 없어! 이건 할아버지가 소중한 친구에게 전해준, 둘도 없는 물건이란 말이야!"

아, 할아버지의 친구인가.

"그러니까 그 양반한테 받았다니까? 직접 확인 해보던가."

대장장이들은 자신의 작품에 저마다 흔적을 남겨둔다. 분명 그걸 처음 시작한 놈은 별 생각도 안 했겠지만, 지금에 와선 그 작은 흔적이, 진품과 모조품의 경계를 가르게 되었으니, 참으로 의미 있는 뻘짓이라 할 수 있겠다.

단검을 주워든 더벅머리는, 곧바로 밑동을 확인했다. 저놈의 할아버지란 놈은 저기에 장난질을 쳐 둔 모양이다.

"마, 맞잖아.. 할아버지의 마지막 역작, '루돌프'..! 어째서 여기에.."

루돌프라고? 아, 그래서 루돌프 사슴 코가 빨갛다고 하던 거였나. 할 거면 코가 아니라 뿔이라고 하지. 아니, 대놓고 뿔이라고 하면 애새끼들한테는 너무 가혹한가.

"그, 그보다 당신, 이걸 얼마동안이나 써 온 거야? 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심한 저주에 시달리셨다고 들었는데.."

"어..  20년 썼나?"

"이, 이걸 가지고 20년을..? 그 불행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온 거야..?"

"불행이고 지랄이고, 그걸 받기 전부터 내 인생은 이미 씹창이 나 있었다고. 오히려 그걸 받고 더 나아진 편이지."

더벅머리는 생각에 잠겼다. 용사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것도, 내 바지를 벗길 뻔한 것도 잊은 채, 눈앞의 단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뭐하.."

"그거였어."

더벅머리가 다시 단검을 들어올렸다.

"당신은.. 나보다 더, 할아버지 보다 더 불행한 거야. 그래서 저주가 통하지 않는 거야. 그래서 날 때릴 수 있는 거야. 그렇단 건.. 날 죽일 수도 있는 거겠지."

확실히, 지금 니 새끼들이랑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불행한 인간인지 수 있다.

"그래서 뭐? 나보고 죽여 달라고?"

더벅머리가 단검을 건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 나는 수도 없이 봐왔어. 주변이 어떻게 되든 신경도 쓰지 않는, 차갑고 싸늘한 눈. 당신이라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날 죽일  있을 거야."

"아니, 안구건조증이라니까 왜 맨날 눈 가지고 지랄이야, 이 새끼들은."

첩보원인 내가 말하는 것도 뭐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인간을 판단하는 건, 정말이지 쓰레기 같은 행위 중에 하나다. 그런 짓을 해야 하니까 내 직업을 싫어하는 거고.

"그래서, 안 할 거야?"

더벅머리의 손에서 검을 채어왔다. 이 년이 여기에 계속 머무른다면, 조만간 여관 앞에도 똥이 한가득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게 생태계를 생각해서라도, 등신들은 기회가 있을 때 줄여 두는 것이 좋다.

"오로넬!"

검을 꺼내들었다. 용사가 날 불렀지만, 내 이름을 부르는 것뿐이다. 신경 쓰지 않고 오른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눈앞의 여자는 두 팔을 벌린 채 웃고 있었다. 이 얼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얼굴에는 순수한 기쁨만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뭔가 불필요한 것이 섞여 있었다.

"야. 잠깐만."

갑자기 팔을 멈춘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이 년을 베기 전에 해결해야  중대한 문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왜,  멈추는 거야? 빨리 죽여줘!"

"내가  때릴 수 있는 건, 내가 너보다 불행하기 때문이라고 했지?"

"응, 맞아. 원하는 답을 들었지? 그럼 어서.."

"내가 너보다 불행한데, 왜 니가 죽고 내가 살아야 되냐?"

"아."

"그래, 웨스! 너보다 불행한오로넬이 살아있는데, 니가 죽으면 안 되지!"

이때다 싶어 용사가 소리를 높였다. 나는 멈추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방금 죽여달라고 한 건, 주변을 불행하게 한다느니 지랄이니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 아니냐?"

"으, 응? 무슨 소리야..?"

더벅머리가 눈을 피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너, 처맞으면서 느끼고 있지."

눈을 돌린 더벅머리의 입 꼬리가,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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