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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화 〉뭘 해도 잘되는 놈이 있듯이, 뭘 해도 안되는 놈도 있다 [4] (98/108)



〈 98화 〉뭘 해도 잘되는 놈이 있듯이, 뭘 해도 안되는 놈도 있다 [4]

"무슨 소리야! 느낀 적 없는데?! 아니, 느꼈지. 고통을 느꼈지!"

애쓴다, 시발.

"하.. 갈수록 답이 없어지네, 이 새끼들은."


"아니라니까 그러네! 빨리 하던 거나 마저 해!"


더벅머리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힐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한 번 팔을 벌렸다.


좋다. 나도 변태를 상대하는  좆같으니, 니 새끼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도록 하지.

"이게 뭐야? 어쩌라고?"

더벅머리의 눈앞에 주먹과 단검을 내밀었다.


"골라. 단검으로  방에 뒤질래, 주먹으로 뒤질 때까지 처맞을래?"

더벅머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걸 고민하는 것도 충분히 웃기는 상황이지만, 제발 뒤지려면 인간으로써 뒤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떨리는 손가락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따라 들려왔다.

"주.. 주먹."

시발.

그래. 백 번 정도 양보했더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은커녕, 자기 스스로도 그 몸을 상처 입힐 수 없었으니, 난생 처음으로 느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색다른 감정을 느낄 법도 하지.


"주먹!!"

근데 이건 아니지.

"하.."


이제 이건 사람 새끼가 아니라 변태 새끼다. 원인을 따지자면 내가 뺨을 때린 게 각성의 계기였겠지만,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이놈의 뺨을 후려쳤으리라.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저기요!"

근처의 변태들은 폭력을 휘두르면 알아서 치료가 됐는데, 그것마저 극복한 변태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저기요!!"


"아오,  닥치라고!"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한데, 시끄럽게 짖어대며 얼굴을 들이대길래, 나도 모르게 주먹을, 포상을 날리고야 말았다.


그 주먹에 맞아, 아주 멋들어지게 날아간 더벅머리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걸 지켜보고 있던 용사의 발치에 떨어졌다.

"하아.. 하아.."


바닥에 드러누운 더벅머리는, 뺨을 어루만지며 고통을 음미했다.


"웨, 웨스! 왜 그래? 어디 아파?"


용사는 그런 더벅머리를 일으켜 세우고는,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봐도 머리가 많이 아픈 것처럼 보이는데, 저놈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아..! 너무 죠하아.."

"무슨 짓을 한 거야, 오로넬! 웨스를 이렇게 바보같이!"

!!!

갑자기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이 번뜩였다. 저 변태에게 시달리지 않고, 마음 편히 술을 마실  있는 방법이.

"그냥 때린 것밖에 없는데. 어디 머리라도 부딪힌 거 아니냐?"

"맞았는데 이렇게 된다고? 침도 제대로  삼키잖아!"

"똑같은 충격을 주면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르지. 안 그러냐?"


쿡쿡대고 있는 마법사를 팔꿈치로 찔렀다. 그보다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데.


"으, 응 맞아."

"똑같은 충격.. 그럼 나더러 웨스를 때리란 거야?"


"그래. 그럼 정신을차릴 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와는 완전히 무관계한 일이 되겠지.

용사는 한참동안 그 얼굴을 바라봤다. 쾌락에 젖은, 얼빵하고도 천박한 얼굴을.  눈에는 변태만이 보일 뿐인데,  놈의 눈에는 다른 뭔가가 보이는 걸까.


"후.. 웨스, 미안해. 한 대만 때릴게? 널 위해서."


마침내 결심을 다진 용사는, 더벅머리의 어깨에 올려둔 손 하나를 떼어내어 주먹을 쥐었다.

어깨 위에 올려둔 손과, 주먹을 쥔 손이 일직선상에 놓였다. 물리치료 대상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내가 때린 거지만, 저렇게 좋아할 만큼 때렸나 싶다. 무의식적으로 때려서 그런가.

빡!!


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더벅머리의 머리는 순식간에 천장을 향해 넘어갔고, 용사는  몸이 넘어가지 않도록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되,  거야?"

"그걸 나한테 물어보냐. 당사자한테 물어야지."


용사는 조심스레 그놈의 머리에 손을 가져가, 다시 정면을 향하도록 했다.

면상이 저게 뭐냐.

그 얼굴은, 허용량을 초과한 쾌락을 받아들여, 쾌락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를 나타내고 있었다.


눈은 어디를 보고 싶은 건지 뒤집혀지기 일보직전이고, 다물어진 입 사이로는 침이 새어나오고 있다.

"괜찮아, 웨스?"

"시트린..! 시트린..!!"


더벅머리가 용사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몸을 쓰러뜨렸다. 용사가 바닥으로 엎어졌고, 더벅머리는 바닥에 손을 집은 채, 그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오' 같은 소리 하고있네. 천 년 동정이. 저런 거 해본 적은 있냐?"


"고백은 수도 없이 받아 봤거든?"

"'밥 같이 먹을래요?' 랑, '옆자리 비어 있어요?' 는 빼라."


"....."


그럼 그렇지, 시발.


그보다 저놈들은 뭐하는 짓이지. 내가 알기로 저 자세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는데.


"웨, 웨스. 일어나게 비켜줘"

"하아.. 하아.. 시트린..!"

더벅머리가 고조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용사의 몸에 얼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팔을 뻗어 꼬맹이의 스튜를 빼앗았다.

"아. 스튜 줘."

"이쪽 보고 먹어라."


꼬맹이가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왜?"

"애새끼들은 보면 안 돼."


"알았어."

이게 제대로 설명이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꼬맹이는 다시 숟가락을 움직이며 식사로 돌아갔다.

"아! 땀 묻히지 마, 웨스! 냄새 나잖아!"

용사가 저렇게 곤란해 하고 있는데도, 흰 머리의 후견인 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술잔을  채로 굳어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 광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머릿속에 담아내고 있었다.

"시트린.. 부탁을 하나만 들어 줄 수 있을까?"

하던 일을 끝마친 변태년은, 아까보다 한층 더 붉어진 얼굴로, 용사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


"뭐, 뭔데?"


"..한 대만 더 때려줘."


면상을 비비던 꼴만 봐도,  대로는 만족하기에 한참 모자를 텐데, 참으로 예의바른 변태였다.

"때려달라고? 맞으면 아프잖아. 왜..?"

변태니까.


"아, 아직 제정신이 아닌  같아. 한 대만 더 맞으면 돌아올 것 같은데.."

더벅머리가 관자놀이에 손을 얹으며 자신의 상태를 호소했다. 마빡에는 여전히 빨간 손자국이 남아있는 채였다.


"그, 그럼 한 대만 더 때릴게? 입 꽉 다물고 있어?"

흥분으로 가득한 그 얼굴이 미친 듯이 끄덕거렸다. 어찌됐던, 용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기에, 그 요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두 놈은 또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를 마주했다.

"자, 간다? 하나, 둘.."

우드득.

용사의 손에서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등신들의 이목은 모두 저쪽을 향해 있다. 흰 머리의 후견인 씨도, 천 년 동안 연애 한 번  해본 누구 씨도, 바닥에 엎어져 있던 말박이 씨도, 의자에 거꾸로 앉은 채, 그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빠각!!

아까보다 더욱 심각한 소리가 더벅머리의 마빡을 강타했다.

"저.. 저거.."

마법사는 입을  하니 벌린 채, 손가락을 들어 가리킬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따위로 때리냐는 표정이었다.

털썩.

그리고 당연하게도, 더벅머리는 쓰러졌다. 그게 정신이 수용할 수 있는 쾌락의 한계를 넘어서인지, 육신이 수용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어서인지는, 아무도  수 없었다.

"어? 웨스? 웨스?!"


면상을 확인하려 해도, 쓰러지면서 돌아온 앞머리에 가려져, 환호인지 절규인지 알 수 없는, 그 입만이 보일 뿐이었다.

"부럽다. 뒤지겠다는 소원도 이루고. 저게 어딜 봐서 불행하다는 거냐, 대체?


"그러니까,  같은  없다니까? 어,  숨은 쉬는데?"

"아이고."

아직도 목숨이 붙어있는 꼴을 보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역시 멍청한 놈들은 하나같이 명줄만 질기다. 변태 짓도, 자살도 제대로 못하는 등신 같은 놈이.


"이제 이쪽 봐도 돼?"


꼬맹이가 깨끗하게 비운접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이쪽을 보고 먹으라고 한 탓에,  먹은 접시를 내려두지도 못한 채 들고 있었나 보다.

"그래. 이제  마음대로 해라. 이쪽을보든, 저쪽을 보든"

"알았어."


"저거, 역시 안 돌아가겠지?"

썩은내가 나는신발을 내려다보며, 마법사가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한 나는, 닥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오게  미래를 떠올려 버렸다.


"내가 똥 밟고 오는 날이 저 년이 뒤지는 날인 줄만 알고 있어라."


지금이라도 죽여 놓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거의 반쯤은 시체와도 다름없는 몸뚱아리를 내려다보았다.


"웨스ㅡ!"

그 몸뚱아리의 이름을 울부짖는 등신의 목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밤이 깊으면 밖에 있는 똥들을 어떻게 피해가야 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걱정’은  감정이 사라지기만  뿐, 원인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후.."

나오지도 않는 답을 안주삼아, 술을 들이켰다.


"인생, 시발."


오늘도, 집에 가긴 글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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