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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보면 재에 맞으니 조심하자 [1] (99/108)



〈 99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보면 재에 맞으니 조심하자 [1]

"심심하다."

"그러냐."

"아니 진짜로 심심하니까?"

"진짜로 그러냐."

마법사가 또 지랄병이 도졌다. 누군 안심심해서 이러고 있는  아나.

"하.. 가을이네."

"그러네."

"아, 진짜! 계속 대답 그 따위로 할래!?"

"그래서?"

"이 새끼가!!"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때가 왔다. 내 몸은 마법사의 손에 붙잡혀 일으켜졌고, 다물어져 있던 멱살은 단추를 토해내며 벌어지고 있었다.

"아.. 누가  도와줘.."

늘어지는 목소리로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주변의 등신들은 본 채도 하지 않았다. 아니, 본 척도  수 없었다. 하나 같이 죄다 뻗어서는, 어째 떠드는 소리 보다 코고는 소리가 더 크다 했다.

가을 같은 건, 여름보다 시원하고 겨울보단 따뜻한 계절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촌구석에서의,올해의 가을은 달랐다. 숨만 쉬어도 배가 부르고, 눈을 뜨기만 하면 졸음이 몰려온다. 뭘 해도 무료하고, 아무리 잠을 자도 나른하다. 혹시라도 죽을 일이 있다면, 가을에 죽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야."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옆에 있는 누군가를 불러세웠다.

"..네?"

부러운 듯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남색머리의 변태를 말이다.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말려 봐라. 변태같이 처맞을 생각만 하고 있지 말고."

"아, 아..! 그런 생각  했어요..!"

"그럼 빨리 와서 이거나 어떻게 해봐. 이게 니 불운 때문에 일어난 일일지 누가 아냐?"

'불운' 이라는 말에 뭐라도 씌인 것 마냥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더벅머리였다.

"오지 마!! 오면 이 새끼 집어 던진다!?"

불운을 믿지 않던 과학자 씨께서는, 마을에서 더벅머리를 발견한 뒤로 가게에 올 때까지, 6번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빨리 오라고!!"

"오지 말라고!!"

"어.. 어어..!"

누구의 말을 들을지 갈팡질팡하던 더벅머리는, 앞머리를 넘기기 위해 팔을 들었다.

-야! 하지마!

그게 변태를 소환하는 의식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와 마법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뛰어넘어, 필사적으로 그것을 말렸다.

"엇, 네.."

"휴.."

소환을 저지하느라 때릴마음이 사라진 마법사는, 세탁물을 던지듯이 내 몸을 의자로 던져 넣었다. 이것 또한 당연한 수순 중 하나였기에, 나는 넘어지는 일 없이, 정확하게 의자에 안착했다.

"아아! 심심하다고오!!"

다시 자리에 앉은 마법사는, 테이블에 엎드려, 이리저리 고개를 저어댔다. 젠놈은 매일같이 저 꼴을보면서, 대체 언제까지 마법사님이라며 치켜세워줄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ㄹ.."

마법사의 동작이 멈췄다. 위에 올려진 머리가, 나를 향해 띠꺼운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여기서도 좆같이 말하면 2회전이라는 뜻인가?

진심으로 내가 그딴 걸 신경이라도 쓸 줄 알았나.

톡. 톡.

테이블 아래에서, 마법사의 오른손에 쥐어진 자그마한 막대기가 허벅지를 두들겼다.

좆같은 새끼.

"으, 음.. 그럼 작년 이맘때쯤엔 뭘 하셨죠, 할머니? 슬슬 벽에 똥칠할 나이가 되셨나 본데, 그딴 거 그만 좀 들고 오시죠? 아주 후달리기만 하면 꺼내들고 지랄이네, 시발."

"작년이라.. 마가리스에 있을 때네. 내가 하고 있었더라?"

이제 할머니 이하의 말들은 귀에 들여보내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이면 너도 마가리스에 있었잖아, 젠."

허리를 펴고 주방을 들여다보는 마법사였다. 젠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 인간을 확인한 뒤, 칼을 놓고 손을 닦았다.

"네. 맞습니다, 마법사님."

"맞습니다가 아니라, 작년에 뭐하고 있었냐고."

젠은 마법사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착실하게 머릿속에서 대답을 찾았다.

"분명 그날은 도시 내에서 불법적인 약물을 유통하는 조직을 소탕했었던 것 같군요. 그리고 의장님께서위문 차 부대에 방문하셨고.."

"하.."

마법사는 한숨을 쉬며 검지와 엄지로  사이를 붙잡았다. 그 행위의 뜻을 알면서도, 젠은 정확히 1년 전의 일과를 보고하고 있었다.

"야."

"네, 네?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너도 마가리스에서 왔지. 저놈 부하잖아."

결국, 마법사는 홀을 돌아다니는 젠의 따까리 하나를 불러 세웠다. 젠은 상황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다물고 둘의 대화를 지켜봤다.

"ㄴ, 네! 그렇습니다!"

이 우렁차다 못해 시끄러운 대답은, 분명 저놈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겠지.

"작년 이맘때쯤에 마가리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그놈의 군대 이야기 말고."

이번엔 해선 안 될 말까지 추가됐다. 자기도 기억 안 나서 묻고 있는 주제에, 잘도 이런 뻔뻔한 요구를 한다.

"어, 음.. 그러니까, 지금이 가을이잖습니까? 가을이면, 그.. 마법사님께서 의장님께 직접 부탁하셨다던 그거 있잖습니까?"

"어? 아, 그거! 그거 이름이 뭐였지? 그거 있잖아, 그거!!"

대장놈과는 달리, 따까리는 유능한 놈인  알았는데, 제일 중요한 '그거'를 기억하지 못했다. 심심하다를 연발하던 마법사는, 이제 그거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아, 저도 이름이 기억이  납니다."

"아잇, 그, 야, 오로넬.  그거 몰라? 그거."

"설명이라도 좀 하고 물어라, 제발. 스무고개 하냐?"

"그거 있잖아, 그거. 이렇게, 뻥! 하는 거."

두 손을 모은 마법사가뻥 소리와 함께 그 손을 펼쳐보였다. 뭔가 터지는 걸 나타낸 건가. 이 짓거리에 끌려 들어온 내 속이 제일 터질 것 같은데.

"불꽃놀이."

"그래! 그거!! 누구야! 누가 말 한 거야!?"

"접니다."

"..."

마법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식었다. 젠이 정답을 말한  탐탁지 않은 듯하다. 근데 지가 아니꼬우면 어쩔 건가. 이미 답은 나왔고, 다른 등신들도 그걸 들었는데.

"어, 그래. 가서 요리나 마저 해."

마법사의 쓰레기 같은반응에도, 젠은 곧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이 녀석은 그저 마법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는 것뿐이었다. 대답을 한 것도,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마법사가 그리 하라고 말했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불꽃놀이라고, 불꽃놀이!"

그리고 마치 자기스스로 떠올린 듯이 지껄이는 마법사였다.

"그래. 나도 다 들었다고."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불꽃놀이."

"뭘 어떻게 생각해? 불꽃놀이가 사람 이름이었냐?"

"아니, 불꽃놀이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예쁘다던가, 멋있다던가, 그런 거 있잖아."

아.  또.

"뭐.. 이것들을 보면서 마시는 것 보다야, 그걸 보면서 마시는 술이 더 좋긴 하겠지."

"그럼 하자!"

"뭐?"

"불꽃놀이 하자고!"

이게 불꽃놀이가 어디 옆집 개새끼 이름인줄 아나.

"폭죽은 어디서 구하는데?"

아, 이걸 생각하고 저걸 말했어야 됐는데.

"내가 있잖아. 화약만 있으면 그깟 폭죽쯤, 몇 개는 만들 수 있다고. 설마 마을에 화약을 안 팔겠어?"

"..안 파는데? 그거."

바로 뒷자리에 있던 마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대체 이 마을에는 있는 게 뭐냐.

"그치만 그거, 그거잖아? 폭탄이랑 대포에도 쓰는 그거잖아?  그런 거 맞고 죽기는 싫다고."

이미 별의  걸로도  뒤져봐 놓고, 새삼스레 지랄이다.

"뭐야, 너. 성에 대포 같은 것도 없냐?"

"있으면 뭐해?! 맨날 무너지는데! 그리고 그런 게 있어도 이제쓸 일도 없어. 어차피 누가 쳐들어오면 지크가 다 막아 주는 걸?"

이제 자주성은 갖다 버렸구만, 아주.

"그럼 화약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데? 난 한 번 떠오른 건 끝까지 해야 하거든?"

"어.. 아마 플레임이 있는 동부전선까지 가야 할 텐데?"

거긴 대륙경계선 부근이잖아, 미친놈아. 전진배치에도 정도가 있지,화약이 싫다고 최전방에만 화약을 갖다 놓는다고? 이 정도면 전방이 뚫리면 나라가 망하는 수준인데.

"동부라고? 음.. 동부라.. 어, 조지! 조지 어디 있어!?"

이동수단이 필요함을 떠올린 마법사는 즉시 마부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법이다.

"하하하! 조지는 내가 해치우고 왔다! 아마 여기에 오려면 3시간은 더 걸릴 걸!"

문이 열리는 소리도 없이, 그곳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말투로 보나, 하는 짓으로 보나, 누구인지는 명확했지만, 면상을 보기 전까지 아는 척을 하는 건, 등신을 올바르게 다루는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 화약이 필요하다고?"

그 목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던 마법사는, 화약이라는 한마디에, 허겁지겁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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