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보면 재에 맞으니 조심하자 [3]
탕! 탕! 탕!
팍! 팍! 팍!
총성과 단검이 박히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정확히는 내 자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으아아악!! 왜! 왜 나한테 지랄인데!!"
내 기억으론, 저놈들의 싸움에 나는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단 말이다.
..아마도.
-!$%##!$%!
아니, 대충 소리를 들어보면 분명 지들끼리 싸우고 있는 게맞는데?
'여, 여러분. 그,그만 싸우세요!'
탕! 탕! 탕!
"시이이바알! 저 년 때문이구나!!"
저 더벅머리년. 아무리 그래도 저년을 보낸 건 실수였다. 염병을 떨더라도 마왕놈을 떠밀어버렸어야 했는데!
"와우. 오로넬, 괜찮아? 어째 그쪽으로만 뭐가 날아오.."
쿵!
마왕의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엎어졌다. 그 의자의 위에는,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늘어난 주인도 함께였다.
확실히, 저렇게 한 번씩 튀는 걸 제외하면, 대부분의 총탄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건 분명하다.
"스튜 더 줘."
"그래~"
근데 이 새끼들은 대체 뭘 믿고 이렇게 태평한 거냐. 다른 등신들처럼 멀리 떨어져있으면 몰라, 니들은 바로 내 근처에 있잖아, 이 미친놈들아.
탕! 탕! 탕!
그래. 지금 상황에 다른 놈들의 목숨을 걱정하는 건사치다. 하물며 미친놈이라면 더욱. 일단 나부터 살아야 걱정을 하든 뭘 하든 하지 않겠는가.
하..
역시 이거, 내가 나가야되는 건가? 갈 수밖에 없는 건가? 아니, 애초에 지금 내가 나간다 해도, 이 짓이 끝나긴 하는 건가?? 그깟 화약이 뭐라고, 시발.
머리 위를 가로질러가는 단검들이 보였다.이 새낀 단검을 몇 개나 들고 다니는 거냐. 내가 분명 단검은 던지는 게 아니라 찌르는 거라고 가르쳤을 텐데.
"으으어.. 오로넬..? 아, 오로넬. 말리러 가는 거구나? 기어서 가는게 꽤ㄴ.."
털썩.
잠에서 깨자마자, 다시 꿈나라로 돌아가는 마왕이었다. 저놈은 뭐 일부러 맞추기라도 하는 건가?
포복을 하니, 평소에는 몇 걸음이면 도달했던 그곳이, 아득히 먼 곳처럼 느껴진다. 괜스레 옛날 일이 떠오르는 건 덤이고 말이다.
입장권이 없으면 출입 불가인 연회장에 들어가겠다고 하수도를 기어가다니,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친 짓이었다. 결국 냄새 때문에 표적도 화장실에서 처리해야 했지 않은가. 똥 싸다가 뒤진 놈처럼 꾸며놓는 데에 얼마나 더 지랄을 했는지. 여기에서 꺼내준다 해도, 그 일만큼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이 어린 년이!'
'이 늙은 년이!'
'그만.. 그만 하세요..!'
하아, 겨우 도착했구만. 이 거지같은 옛날 생각 때문에 토할 뻔했네.
이제 이 문을 열고, 저놈들의 무차별 공격을 멈추는 일만 남았다. 화약인지 좌약인지를 가지러 가는데 끌려가긴 하겠지만, 영문도 모르는 뻘짓거리에 말려들어서 뒤지는 것보단 낫지.
"후.."
근데, 뭐라고 해야 되지? 뭐라고 해야 저놈들이 멈추지? 이 지경까지 와서, 화약 가지러 가자는 말 따위에 저놈들이 멈출까? 뭔가 다른 말이 있지 않을까? 이놈들이 멈출 수밖에 없는 말이?
그래. 이럴 때일수록 단순하고, 명쾌하게. 병신들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하는 거다.
엎드려있던 몸을 일으켜, 쪼그려 앉은 나는, 총성이 끊어지는 그 때를 노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쾅!
"거기까지다, 이 병신들아!!!"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아니, 아무것도 설명이 안 됐는데?"
마부가 사과 상자를 든 채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나도 내가 뭔 말을 했나 싶다.
"그보다 3시간은 못 올라온다는 게 이거였냐? 과일을 시발, 뭐 이렇게 많이 산 건데? 팔기도 전에 썩겠다."
"그러게. 거기 뒤에 사장도 있구만. 니가 직접 물어봐."
마부의 말에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더벅머리를 사이에 끼고 대치하고 있는 마법사와 제자년이 보였다.
'너 진짜 잘못 걸리기만 해라?'
'여기 내 가게거든?'
이 새끼들이..
"불꽃놀이."
-와아! 너무 신나ㅡ!!
아직도 사이가 안 좋아 보이길래, 사이가 좋아지는 주문을 걸어줬다. 험악하게 서로를 노려보던 두 놈은, 마치 애새끼가 된 것 마냥팔을 들어 올리고 제자리를 돌며 방방 뛰어댔다.
마법이란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듯 보여도, 현실의이곳저곳에서 간간이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는 한다. 뭐, 내가 한 건 저렇게 될 때까지 때려 팬 것뿐이지만.
"그래서, 이게 다 뭔데? 너 진심으로 이걸 팔 수 있을 거라고 사들인 거냐?"
'죽여주는 과일' 이라 적힌 간판을 겨우 읽을 수 있을 만큼 쌓여져 있는 과일의 산을 가리켰다.
"네? 이게 왜요?"
무엇하나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듯한 표정의 제자였다.
"이게 다 팔리겠냐고. 아니, 너 솔직하게 말해봐. 너 그냥 저 녀석 괴롭히는 거지."
'저 녀석'은 묵묵히 상자를 가게 안으로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제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잖아요. 조지가 저희 가게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데."
그거야 일하는 놈이 저놈뿐이니까 그렇지.
"그런 놈을 왜 저렇게 굴리냐고. 혼자 일하고 싶냐?"
"저건 저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래. 항상 때리는 놈들은 이유가 있지. 그 중에 9할은 개소리지만.
"조지가 가게 앞에서 숨만 쉬어도 과일이 팔리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저도 먹고 싶을 때 제 과일을 집어 먹을 자유가 있다고요!"
봐라. 개소리네.
"과일, 먹어도 돼?"
꼬맹이가 빨간 물감이라도 짜놓은 듯이 가게의 한편을 붉게 메우고 있는 사과의 탑을 가리켰다.
아,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어이, 조! 여기 있는 사과들 전부 얼마냐?"
내가 저걸 전부 사면, 마부가 일을 할 필요가 없잖아. 그럼 자연스레 화약을 챙길 인력이 늘어나니, 결과적으로 내가 할 일이 줄어들 거다.
"뭐? 이 사과들?"
"싸부..?"
"아니! 여기 쌓여있는 거 전부!"
꼬맹이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마부의 손에 들려진 상자는, 가게 안이 아닌, 꼬맹이의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싸부, 안 돼! 저거 내가 먹으려고 산 거란 말이에요!! 벌써 반이나 팔려서 저녁에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이게 반이나 팔렸던 거냐.
"찡찡대지 말고 돈이나 받아라."
돈을 세는 것도 귀찮아서, 가지고 있는 돈을 있는 대로 바닥에 들이부었다. 이 돈이면, 저거보다 훨씬 많은 과일을, 아니 이 가게 정도는 살 수 있으려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던가? 이년은 존나 미운 년이니 이 정도는 줘야겠다.
"흑.. 흑.. 내 사과.."
제자년은 훌쩍이며 바닥에 떨어진 금화들을 품속에 모으고 있었다. 느려터진 놈이. 이 속도면 꼬맹이가 과일을 다 먹는 게 더 빠르겠다.
"빨리, 안 주워? 빨리, 주우라고."
아직 줍지 못한 금화들을 주워, 그놈의 머리에 하나씩 던졌다. 맞을 때마다 목이 움츠러드는 게, 딱 거북이를 괴롭히는 느낌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제자년의 슬퍼 보이지도 않는 슬픈 연기를 보고 있자니, 역겨움이 몰려왔다.
"어휴, 그깟 사과가 뭐라고."
"사과.. 맛있는데요.."
"그럼 사먹으라고. 여기 널리고 널린 게 과일가겐데."
"제가 먹고 싶을 때는 가게 문이 다 닫혀 있는 걸 어떡해요."
"그럼 미리 사 놓으라고 등신아. 니 껄 미리 빼놓던가."
"그럼 미지근하잖아요. 사과는 시원하게 먹어야 한다고요."
"어우! 그냥 처먹지마."
들고 있던 금화 하나를, 그놈의 이마를 향해 내던졌다.
"아얏! 왜요!?"
"빨리 주우라고 이 등신아!"
"다 주웠어요! 싸부 손에 쥐어진 거 하나 빼고!"
"옜다, 이년아!"
딱!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 제자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빨로 붙잡은 마지막 금화 하나를, 자신의 품속으로 뱉어냈다.
"..이제 들어가요. 화약은 안에 있으니까."
갑자기 차분해진 제자년은, 금화를 껴안은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먼 산은, 형형색색으로 가득했던 과일의 산이,빈 상자의 산으로 뒤바뀐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걸 그새 다 처먹었냐?"
꼬맹이가 뒤를 돌아봤다. 입에는 반쯤 먹혀들어간 감이 물려있었다.
"음, 음."
감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어서인지, 목을 울리며 상자 안을 가리키는 꼬맹이였다.
"뭐. 이거 남았다고?"
"음! 음!"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는,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받아들인, 자그마한 사과 하나가 보였다.
"어! 사과!"
제자년의 면상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이건, 내 돈을 주고 합법적으로 구매한, 엄연한 내 소유의 과일이다.
"앗..!"
그놈의 손보다 빠르게, '내' 사과를 낚아챘다. 그놈의 면상은 또 다시 우울함으로 물들었다.
"아아! 싸부, 하나만, 하나만 주세요!"
"하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그걸.."
아삭!
말보다는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지.
나는 이 사과를 넘길 생각이 없다는 뜻을 표하기 위해, 그것을 큼직하게 베어 물었다.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크게, 제자년의 입도 함께 벌어졌다.
"그, 그래도 괜찮아요. 아직 다섯 번은 더 베어 먹을 수 있어요. 싸부,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일단, 일단 진정. 일단 그것부터 입에서 떼는 거예요."
왜 내가 미친놈 취급을 받고 있지?
아니, 이런 흐름이면 오히려 좋다. 이 사과가 인질이나 다름없어졌으니 말이다.
인질이 있으면, 얼마든지 상대에게 무언갈 요구할 수 있다.
나는 등신들에게서 한 발짝 물러선 뒤, 비어 있는 손으로 꼬맹이의 볼을 붙잡아, 수많은 음식들을 먹어치워 온, 그 입을 열어 보였다.
"다들 물러서!! 움직이면 이 녀석의 목숨은 없다!!"
다른 손에 쥐어진 사과를, 꼬맹이의 입 앞에 들이댔다.
"아ㅡ"
"안 돼, 안 돼, 안 돼! 다들 물러서! 저 사과가 죽으면, 불꽃놀이는 꿈도 못 꿀줄 알아!"
그 한마디에, 마법사가 멋쩍게 뒤로 물러섰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놈은, 화약을 쥐고 있는 저 골빈년이었지만, 이제는 저놈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내 영향력이 더 크다.
"싸부! 진정 하세요! 아직 그 사과는 충분히 우리 모두가 나눠 먹을 수 있어요! 사과를 놓아주면, 싸부한테 제일 큰 쪽을 드릴게요!"
좋다. 예상보다 훨씬 잘 먹혀들었군.
그럼, 이제 내 요구사항을 말해보도록 할까.
"좋다. 이 사과를 석방하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대체 뭐야, 이거. 꿈?"
마법사는 열심히 볼을 꼬집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뭐, 뭔데요! 빨리! 사과 식어요!"
제자의 성원에 힘입어, 목을 한껏 가다듬고는, 내 명령을 등신들에게 전했다.
"존나 빠르게. 여기로 화약을 가져온다. 실시."
"실시!!!"
제자년의 대답소리와 함께, 등신들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