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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보면 재에 맞으니 조심하자 [6] (104/108)



〈 104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보면 재에 맞으니 조심하자 [6]

"존나 무겁네."

답지도 않게 상자를 들고 나간 게 실수였다. 내 상반신을 가리고도 남는 그 상자에는, 빈틈도 없이 오직 화약으로만 채워져 있는듯 했다.

"너 그거 운동 부족이야."

"지랄. 니들 몸뚱아리가 정신 나간 거라고."

공을 가지고 놀듯이 상자를 돌리고 있는 마법사였다. 이 무거운 걸 들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괜히 지랄을 하다가 엎지 않기만을 바랄 뿐.

"잠시 멈춰라 꼬맹아."

하나씩 상자를 짊어진 등신들이 좁아터진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 뒤에는, 남은 두개의 상자를 모두 짊어지고 있는 꼬맹이가 멈춰 있었다.

 개의 상자도 이 꼬맹이의 시야를 충분히 가리고도 남는데, 하물며 두개의 상자를 들고 있었으니 누군가가 조종해주지 않는 이상, 이 화약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오른쪽으로 한 걸음."

꼬맹이가 오른쪽으로 한 발짝을 움직였다.

"그대로 직진."

그리고 일직선으로 나아가, 나는 다시 태양 아래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저 거지같은 가게에서 탈출 한 것이다.

"오, 수고했어. 빨리 실으라고.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노동의 쓴맛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 마부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뒤로는 그놈의 말 두 마리가 고삐를 늘어놓은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저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마부가 턱으로 등신들을 가리켰다.

"야! 술 먹으러 가게 빨리 실으라고!"

상자 몇 개를 싣는데  뭐가 그리 마음에  드는지, 등신들이 똥이라도 지린 것처럼 멍청하게 서있었다. 십중팔구 좆도 아닌 이유 때문이겠지.

아니, 잠깐만. 마법사도 저러고 앉아 있네. 그럼 그냥 좆같은 이유가 아니라, 진짜 좆같은 이유 때문일 텐데.

그놈들에게 향하고 있던 걸음에 불안함이 더해졌다.

"여기에실을 수 있으면 실어 보시지?"

마법사가 비꼬는 말투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분명 수레가 있는 자리겠지. 그 문제의 원인도 수레한테 있을 거고 말이다.

"시발. 이게 뭐냐?"

그리고 그걸 확인하자마자, 내 어이는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수레요."

제자년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게 무슨 수렌데?"

너무나도당황스러워, 다시 한 번, 정확한 대답을 요구했다.

"손수레."

"씨발."

눈앞에는 상자 하나도 들어갈까 싶을 정도로 작은 수레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딴 게 대체 과일가게에  필요한 건지, 이걸 끄는데 말은 또 왜 필요한 건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럼 니 새끼는 여기에 말을  마리나 연결하려고 데려온 거냐?"

"당연하지. 수레에 말을 연결하는  상식이잖아."

나는 끔찍한 형태로 발달한 집단 지성의 끝을 목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놈들과 한 마디의 말을 나눌때마다, 머리통을 망치로 두들겨 맞는 기분이다.

"상식이고 지랄이고, 여기에 이걸 다 실을 수 있냐고. 뭘 실어야 말을 쓰던 사람을 쓰던 해서 옮길 거 아니냐."

"음.. 근데, 꼭 짐을 수레 위에 실어야 하는 걸까? 그건 편견 아닐까?"

마부가 수레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터무니도 없는 개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럼 짐을 수레 위에 실지 어디에 싣는데, 이 미친놈아. 니 머리통에 이고 갈 거냐?"

"오."

"'오.'   새끼가. 까먹었을 까봐 미리 말하는데, 이거 니가 옮기겠다고 한 거다? 머리에 이고 가던, 니가 들고 가던, 니 좆대로 마법사한테 갖다 주라고."

"여기 있잖아."

제자년이 끼어들었다. 마법사는 먼 산을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끝을 먼저 보고  걸지도 모른다. 나한테도 점점 개소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뭐야, 가져다  필요도 없었네. 받아, 시오."

마부가 땅바닥에 널브러진 상자들을 가리켰다. 이 새끼들은 자기네들이 뭐라 씨불이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걸까?

"후.. 인생.. 그냥 여기서 불꽃놀이 할까? 이 안에 담배 하나만 던져 넣으면 아주 예쁘게 불타오를 텐데. 하, 하하."

마법사는 음침한 얼굴로 힘없이 웃는 소리를 내었다.

저놈이 웃던 말던, 이 정도면 내가  만큼은 해줬다. 더 도와주고 싶지만, 곧 저 상자에서 폭발이 일어날 것 같으니, 슬슬 자리를 떠야겠다.

"그럼 난 이마..ㄴ!"

어깨가 무거워졌다. 누군가가 강하게 누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나는 붙잡힐만한 일은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적어도 오늘은.

"저기요, 오로넬 씨.. 댁네 제자 말인데요..?"

 타들어간 담뱃재가, 위태롭게 형상을 유지한 채, 면전에서 흔들렸다.

"네? 저 그런 거 없는데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왔다. 저 난장판에 더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내 의지는, 내 생각보다도 더 단단했던 모양이다.

"내가..내가 진짜 웬만해선 어떻게든 설득을 해 보겠는데, 저건 말이 안 통하잖아. 어떻게 여관까지만옮기게 도와주라. 폭죽이 완성되는 날에 마실  있게, 술은 넉넉하게 사둘 테니까."

의지가 조금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의지 같은 건, 이해관계만 일치한다면, 얼마든지 꺾일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술 하나만으론 부족하다. 이쪽은 밑져야 본전이니만큼,  번 더 찔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ㅇ, 왜? 마음에 안 들어? 생각해봐. 불꽃이 터지는 걸 보면서 여러 가지 술을 맛보는 거야. 벌써부터 두근거리지 않아?"

대답을 주지 않자, 열심히도 날 설득하는 마법사였다. 내가 원하는 말은 저게 아닌데 말이다. 어쩔 수 없으니 이쪽에서 답을 주도록 하자.

"안주는?"

"어? 아, 안주? 그치. 안주도 필요하지. 안주도 가져갈게. 먹고 싶은 거 있어?"

"닭꼬치."

"가져갈게, 가져갈게. 그러니까 제발 폭죽 좀 만들게 해주라.  그저 시발, 저 개 같은 걸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마법사가 울분을 토했다. 하긴, 저기서 만세를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는 꼴을 보고만있어도 화가 나는데, 당사자는 얼마나 화가 차오를까.

"그러니까, 저걸 니 방까지만 옮기면 된다 이거지?"

"그래."

"저 새끼들을 쓰든 말든 상관없고?"

"그래."

"에휴, 그럼 존나 쉽지. 따라와라."

다시 수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부와 제자년은 조금 전의 마법사가 한 말을 믿은 건지, 불꽃놀이를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우선 제자년에게 접근해, 그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 싸부! 불꽃놀이 오늘 한ㄷ.."

빡!!

"꾸어어ㅓㅇㄱ!"

그리고 때렸다. 일단 때렸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어깨를 흔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상에 말이 안 통하는 놈은 없다. 말귀가 어두운 놈만이 있을 뿐. 그 말귀를 조금만 뚫어주면, 어떤 인간 말종과도 말을 틀 수 있다.

"으엉엉ㅇㄺ, 항복, 항복!  들을게요! 말 들을게요!!"

이걸 한두 번 당해본 제자년이 아니었기에,  번의 흔들림 만에 이 폭력의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말귀를 열 것을 선언했다. 그걸 보고 있던 마부도,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들어올리며, 자신의 말귀가 열었음을 표현했다.

"이 상자를 마법사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옮긴다. 분명 처음에도 그렇게 말했을 텐데."

"근데 아까 싸부가 저 여자한테 갖다 주라고.."

"그게  소리냐, 이 새끼야? 알아들었으면 빨리 옮겨.  병신 같은 수레에 실든, 니들이 들어서든."

"ㄴ, 네!"

주먹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자, 제자년이 뛰어갔다. 그리고 상자를 집어,  좆만 한 손수레에 밀어 넣었다. 온 몸을 비틀며 쑤셔 박은 끝에, 하나의 상자를 겨우 싣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수레는 만석이 되었다.

남은 다섯 개의 상자는 어떻게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다섯이 넘으니, 각자 하나씩만 상자를 들고 가도 순식간에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이놈들은 항상 사람이 생각할  없는 방법으로 일을 해결한다.

"읏차!"

제자년이 상자 하나를 들고, 다시 수레로 향했다. 설마 여섯 개의 상자를  쌓을 생각인가? 그런 평범한 미친 짓은 아닐 텐데.

"자! 하나씩 들고  위에 올라타! 그럼 힘도 안 들이고 여관까지 갈 수 있어!"

근근이 실려 있는 상자 위에, 상자를 들고 올라타는 제자년이었다. 그래,  정도는 돼야 미친놈이지.

뭐 나를 제외해도 다섯 놈이나 남으니 알아서 해라.

"야, 오로넬. 빨리  타? 두고 간다?"

마법사가 날 불렀다. 상자의 한 면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그놈 꼴을 보니, 이놈도 미친 짓에는 거리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타? 니들끼리 알아서 옮기라고."

"저기 하나 남았잖아. 저건 니가 옮겨야 된다고."

그 말대로,  앞에는 짝을 잃은 상자가 나지막이 놓여있었다.

뭐지? 이게 왜 남지? 날 빼도 저걸 들고  놈은 다섯 놈이나 있었잖아?

"야, 조! 니가 들면 되잖아!"

빈손으로 말에 올라타고 있는 마부를 다그쳤다.

"난 운전해야 되서."

"그 옆에 있는 말놈한테 달아놓으라고!"

"안 돼,  돼. 빨리  거라서, 누가 잡고 있지 않으면 흘러."

"이.."

-히히이이잉!

마부가 고삐를 잡자마자, 흰색 말놈이 다리를 들어 올리며 출발 신호를 보냈다. 주인이 아직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인데, 건방진 놈이다.

"어, 어어! 로드! 야!"

그러나 마부는 주인이 아니었다. 그놈의 주인은 그놈 자신이었다. 마부는 손에 쥔 고삐가 무색하게, 그놈에게 끌려서 출발을 해버렸다.

"어..?"

등신들이 떠나버렸고, '죽여주는 과일' 앞에는, 나와 쓸데없이  상자만이 남았다.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야!!!!!"

오늘 하루는 왜 이렇게도 긴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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