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여자와 기계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 [1]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라는 말이 있다.
길게 풀어 말하는 놈들은기술의 발전이 어쩌니저쩌니 잘도 떠들어 대지만, 쉽게 말하자면, 그냥 자기가 본 적도 없는 건 죄다 마법으로 치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끄럽다, 좆간. ㅃ빨리 내놓아라, 술을."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마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치직치직.
깡통의 내부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술잔을 들어 입으로 털어 넣고 있는 그 손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창조주인 마법사는, 그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지이이잉..
그리고 숨이라도 멎은 듯이, 깡통의 머리통에서 울리던 소리가낮아지며 침묵했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눈은 바닥을 향해 고꾸라졌다.
"아, 이번에도 실패네."
그제서야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그놈의 곁에는, 처음 보는 재떨이가 함께였다. 제발 바닥에 터는 거라도 참아달라며 제리스가 사 온 것인데, 나에게는 그저 휘두를 무기가 늘어난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저걸 휘두르면 흰놈이 제지해 주겠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껏, 내가 맞을 때는 가만히 있으면서, 내가 때리려고 할 때만 지랄을 하는 흰놈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니, 아주 좆같은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음~ 오늘은 뭘 한 건데?"
용사가 내 어깨 위에 팔짱을 얹으며 몸을 숙였다. 나는 어깨를 기울여, 그 팔이 흘러내리도록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흰놈의 분노는 이놈 때문이다. 어이없는 새끼. 이년이 멋대로 들이대는 걸 나더러 어떡하란 말인가.
"연료를 좀 바꿔보려고 했지. 언제까지고 나디아한테 지원을 받을 수는 없잖아."
"그래.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네. 대체 그놈한테 뭘 받는 거냐?"
럼주로 목을 축이며 마법사에게 물었다. 그놈의 담배가 재떨이에 비벼지며 단말마 같은 연기를 내뿜었다.
"심장."
"뭐?"
"심장이라고. 볼래?"
대답을 들을 겨를도 없이, 마법사는 깡통의 셔츠를 풀어헤쳤다. 다른 멀쩡한 옷들을 내버려두고 셔츠만 입히는 건, 이럴 때를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 시발."
옷을 벗겨낸 마법사가, 엄지와 검지로 깡통의 유두를 돌리고 있었다.
"ㅁ, 뭐? 이렇게 만들걸 어떡하라고! 나라고 이런, 이런 걸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마법사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얼굴만 붉혔다 뿐이지, 깡통의 유두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수치심 때문인지, 한 번씩 손이 미끄러지기는 했다.
미친놈이. 저럴 거면 대충 면상만 인간처럼 만들 것이지, 괜히 저런 쓸데없는 것까지 재현을 해서 지 무덤을 판다.
나사를 완전하게 풀어낸 깡통의 유두가 유륜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러자 그것을 붙잡고 있던 유륜이 기둥처럼 늘어나며 앞으로 돌출되었고, 마법사는그것을 손잡이처럼 잡아, 깡통의 왼쪽 흉부를 열어젖혔다.
더럽기도 하네, 진짜.
"자, 보라고."
그곳에는 빨대처럼 얇고 기다란 관들이 가득했다. 깡통이 기능을 멈춘 탓인지, 그 관에는 어떠한 것의 왕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해서 관들을 눈으로 쫓자, 그놈들이 모여드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게바로 깡통의 심장일 거다. 근데 이건..
"이게 무슨 심장이냐?"
어떤 등신이 시작한 개소리인진 모르겠지만, 심장은 ♡모양이 아니다. 하물며 이놈처럼 검지도 않다. 이걸 진심으로 심장이라고 받아들이는 놈은, 신기한 듯 머리통을 처박고 있는 저 용사놈뿐일 거다.
"아 나도 안다고, 알아. 그냥 거기 꽂혀있으니까 심장이라고 한 거지. 좆같이도 구네, 진짜."
"..아니, 나 한 마디밖에 안 했는데?"
"지금부터 하려고 했잖아. 내가 니 아가리 꿈틀거리는 걸 한두 번 보는 줄 알아? 내가 설명해 줄 테니까 닥치고 있어, 넌."
억울하다. 진짜 순수한 호기심이었는데. 저렇게 욕을 해댈 줄 알았으면 나도 욕부터 박고 시작하는 거였는데.
"일단, 내가 받은 건 진짜 심장이 맞아. 사람 것이 아니다 뿐이지. 알겠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목을 앞으로 내밀어 보이는 자세로, 대답을 요구하는 마법사였다. 나는 계속 지껄여 보라는 뜻으로 술잔을 내려놓으며 그놈의 눈을 쳐다보았다.
"나디아네 성에 있던 해골들 있잖아? 그놈들 심장부에 박혀있던 물건들이야. 만져보면 알겠지만, 이건 장기가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단단해. 이건 문자 그대로 전지라고, 전지. 안에 뭐가 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해골들의 동력원인 건 확실해."
"모른다고? 저렇게 구멍을 뚫어 놓고는?"
마법사는 그 해골들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던 나는, 다시 심장의 이야기로 궤도를 바꾸었다.
"내가 좀 전에 분명히 연료를 좀 바꿔 본 거라고 했지? 이건 그냥 빈껍데기라고."
"그럼 그.. 연료는 뭐로 바꾼 건데?"
되도 않는 머리로, 열심히 대화를 따라오고 있는 '척'을 해 보이는 용사였다.
"술. 뭐, 실패한 것 같지만."
마법사가 손을 몇 번 꼼지락 거리더니, 그 심장을 관에서 떼어냈다.
뚝뚝.
관이 붙어있던 구멍에서, 탁한 액체가 떨어졌다.
"으, 냄새."
몇 달은 썩힌, 그것도 구석진 곳에서 정성스럽게도 썩힌 술의 냄새였다.
"어우, 왜 이러지? 그냥 평소에 내가 먹던 술을 준 것 뿐인데?"
그 술이라서 그렇겠지. 주인장이 정성스럽게도 조져놓은 술인데.
"일단 그거부터 치우자, 시오. 토할 것 같아."
내내 머리통을 들이밀며 대화에 끼어들던 용사가, 저만치나 뒤로 물러나 있었다.
"으으, 그래야겠다. 야, 젠."
신경을 안 쓰는 척, 이쪽을 염탐하고 있던 젠놈의 식칼이 멈칫했다. 그러나 그 눈은 마법사를향하지 않았다. 이 역한 냄새는 저놈에게도 충분히 전해지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이놈이 자신을 부르는 이유 따위는 뻔하니까.
"이젠 바로바로 대답도 안 한다, 이거지? 은혜가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보은은 선택적으로 하시겠다?"
"아닙니다, 마법사님. 잠시 생선의 비린내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을 뿐입니다."
마법사의 외통수에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던 젠은, 의미도 없는 변명을 지껄였다.
"그래? 그럼 이것 좀 버리고 오면서 연습 좀 해. 이것도 비린 내 못지않거든."
그리고 그 의미도 없던 변명까지 사용해, 마법사는 젠의 퇴로를 가로막았다.
"ㅇ, 아~ 그렇습니까? ㄱ, 그럼, 마법사님의 호의. 기쁘게 받아들겠습니다.
결국, 눈을 파르르 떨며, 젠은 오물을 받아들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 천인공노할 쓰레기놈이지만, 이 마법사놈은 은혜를 원수로 갚게 하고 있었으니, 이놈도 만만찮은 쓰레기라 할 수 있겠다.
"우욱, 여기 있습니다."
헛구역질을 하며, 젠이 깨끗해진 심장을 내밀었다. 확실히, 검은 색인데도 윤기가 흐르는게,얼마나 빡빡 씻어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 냄새는 완벽하게 지우지 못했지만.
"아이 참, 이제 어떡하지? 또 이걸 질질 끌고 내려가기는 싫은데."
마법사가 신세를 한탄했다.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잔에 든 거 니 면상에 뿌린다?"
나는 세발 정도를 앞서 가, 그놈이 씨불일 지도 모르는 말을 미리 차단했다.
"눈치 빠른 씹새끼."
극찬을 하는 걸 보니, 내 예상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럼 시험이라도 해 보게, 니가 마시던 술이나 줘봐. 그건 여기 술이 아니잖아."
마법사도 주인장의 술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잔을 내놓길 요구했다. 마침 잔을 채울 때도 됐고, 저 쇳덩어리를 옮기는 일을 돕는 것도 막아냈으니, 흔쾌히 잔을 주기로 했다. 일종의 승리 선언이었다.
"자. 근데 이걸로 되겠냐?"
당장 제리스를 불러서 잔을 채워놓으라는 뜻이었다.
"어. 지금은 이 정도면 돼. 새로운 연료를 인식시키기만 하면 되거든. 그래도 그 다음엔 필요하니까 미리 시켜 놓을까."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법사가 럼주를 주문했으니, 가만히 있어 주기로 했다.
곧, 두 잔의 럼주를 가지고 제리스가 나타났다. 한 잔은 내 자리에, 그리고또 한 잔은 멈춰있는 깡통의 면전에 놓였다.
"자, 이제 이걸.. 연결하면..!"
깡통의 심장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유륜이 원래 위치로 복귀하였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유두가 다시 유륜의 중앙으로 박혀 들어갔다.
지이잉..!
깡통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허공에 멈춰있던 그놈의 팔이, 테이블 위의 잔을 붙잡았다. 마법사는 깡통의 어깨를 토닥이며, 명령을 전했다.
"자, 깡통. 이게 새로운 연료야. 한 번 마셔봐."
그 말이 끝나자마자, 깡통은 자신의 입 속으로 럼주를 털어 넣었다. 왜 저딴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연료를 보충하는 지는, 마법사만이 알고 있는 영역이다. 분명 그리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탁!
깡통이 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도중에 기능을 정지하는 일도 없었다. 역시 원인은 주인장의 손맛때문이었나? 생물을 넘어 기계한테도 영향을 미치는 그 쓰레기 같은 맛은, 정말이지 어떤 의미로는 인류의 지혜를 뛰어넘은 물건이었다.
<..들,아.>
?
잡음이 섞인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깡통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씹새끼들아!!>
분노로 가득 찬 외침과 함께, 깡통이 몸을 일으켰다.